중국의 최초의 왕조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BC 수천년전까지로 올라가게 된다.중국 문자는 많은 고대 문명 가운데서 쓰여진 글자 중 오늘날 유일하게 남아 있는 독특한 상형문자이다.
표의문자로서 역사적인 자료들이 수천년을 유지하며 영원히 수록, 보존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주 흥미있는 주장이 있어 눈길을 끈다.
중국의 한문이 성경의 기록, 창세기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옛날의 중국사람들, 수천년전의 한무리의 사람들이 바벨론 사건 이후 흩어져 중국으로 이동하였으며, 그래서 그 이후에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으며, 그래서 창세기의 기록이 있는 성경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약 5만 자로 추산되는 중국의 문자는 상형문자 6백여개, 표의문자 7백여개, 표음 문자 2만여 개로 되어 있다.
그림문자(상형문자)가 최초의 문자라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으며, 상형문자가 표의문자로 발전되었고 나중에는 표음문자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한자는 이 세 가지 문자를 모두 포함하는 셈이다(한글은 완전한 표음문자이다).
그런데 그림 문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로가 잘 아는 물체나 사건에서 글자의 모양을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즉 반드시 공통적으로 일반화된 지식의 토대 위에서 만들어져야 문자가 실제로 사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상형문자(그림문자)가 만들어져서 오랫동안 사용되었다면 그 그림이 나타내는 사건이나 사물은 대단히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물이 水라고 표시되었던 것은 그 강물의 흐름의 줄기 모양을 딴 것이며, 나무가 木으로 표시된 것도 나무의 모양에서 비롯된 것이다.
바벨탑 사건 이전까지는 하나였던 언어가 여러 개로 나누어지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인류는 서로 말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무리를 지어 이동하게 되었을 것이다.
현재 중국인들의 조상이 그 중의 한 무리였다면 그들이 문자를 만들면서 그 때까지 있었고, 배웠고, 깨달았던 내용들을 가지고 상형문자를 만들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실제로 한문자는 수없이 많은 성경의 기록과 놀라운 일치를 나타내 보이고 있다는 견해가 있어서 소개하려고 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을 찾아보자.....
男(남)
남(男)이란 글자는 밭 전(田)과 힘 력(力)이 결합되어있다.
그런데 창세기에는 아담과 하와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고 말았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남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
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
로 돌아가리니.....(창3:17-19)
즉 남자(男)는 밭에서 힘을 다하여 수고하여야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 문자는 성경과 너무나 일치하고 있다.
人(사람 인)
사람 인(人은) 두 개가 하나로 합쳐있는 형태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어다."(창2:24)
그런데 하나로 합쳐진 두 개의 선을 자세히 보면, 한 개의 선이 가슴 근처에서 두 개의 선으로 갈라진다. "그가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창2:21)
또 여(女)를 보면 사람 인(人)에 -(갈비뼈)를 취한 모습으로 보여진다.
중국 창세설화를 보면 여와라는 여인이 등장한다.
船(배 선)
큰 배(船)는 배(舟)에 여덟(八) 사람(口)이 탔음을 말한다.
중국에서는 사람을 말할 때에는 입구(口)를 썼었다.
그런데 노아 홍수 때의 방주에 노아와 그의 가족 여덞 명이 탔다는 사실은 우연일까?
중국의 오래된 설화에는 실제로 노아의 홍수와 방주같은 매우 유사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고 하는데, 그 홍수를 이겨낸 사람의 이름은 "누와"라고 전해진다.
天(하늘 천)
"크다"는 것을 나타내는 "大"와 하늘을 나타내는 수평선 "一"이 결합되어져 " 天"이 이루어 져서, "하늘"을 의미한다.
"대저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 위에 크신 왕이시로다"(시95:3)
神(하나님 신)
신(神)은 "示"와 "申"으로 나누어 진다.
왼쪽의 "示"는 "하나님의 신"이라는 뜻으로, 계시(啓示)라는 단어에 사용된다.
示(시)는 세분의 삼위일체 하나님이 (小) 하늘 "一"에서 땅 "一" 아래로 내려와 나타내 보인다는 것을 묘사한다.
오른쪽의 "申"(신)은 "펼치다, 알리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또한 밭이나 동산, 정원의 뜻을 가진 "田"과 관계가 비슷한 모양을 가진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내려 오셔서 동산을 창조하신 모습을 사실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仁(어질 인)
어질 인(仁)은 처음 사람 즉 아담(人)과 그의 옆구리로부터 취한 하와 즉 두번째(二) 사람을 나타내 준다. 아담과 하와는 범죄하기 전 인류 역사상에서 오직 2인의 완전한(仁) 인류였었다. 특히 여(女)는 사람 인(人)에서 갈비뼈를 하나 취하여 만들었음을 나타내 준다.
七(일곱 칠)
일곱(七)은 인간이 신을 찬양하기 위해 손을 치켜 올리고 있는 경건한 모양을 나타낸다. 심지어는 현재까지도 중국에서는 정월 초이렛날을 ' 인날(人日)'이라고 부르고 있다.
성경에서는 7 이란 숫자는 완전한 숫자를 말한다.
영(靈)
또한 하나님은 靈이시라고 성경은 말한다.
"靈"은 비우(雨)와 세개의 구(口)와 무(巫)로 구성되어진다.
다시 雨는 하늘을 뜻하는 一과 덮는 것을 나타내는 그리고 물(水)로 나뉘어 진다.
창세기 1:2절에 보면 창조 당시에 물이 지구를 덮고 있었고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셨다고 되어 있다. 그 아래에 있는 세 개의 口자는 삼위의 하나님을 나타낸다.
이 문자에도 삼위일체 하나님이 표현되고 있는데, 品자를 보면 세 개의 口자로 이루어져 있음을 보게 된다. 品性, 品格 등에 모두 品자가 사용되어진다. 완전한 인격이 되시는 삼위 하나님을 나타내는 문자이다.
그 아래의 巫자는 工자 안에 두개의 人자가 있는 모습이다. 즉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을 창조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나타내는 靈이라는 문자에는 이러한 뜻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즉 하늘 아래에 물에 덮인 지구가 있었는데 그 지구에 삼위하나님(口, 口, 口)이 오셔서 두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이 문자는 기독교의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요4:24 "하나님은 영(靈)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조(祖)
이 글자 역시 시(示)를 포함하고 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천지 창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대상은 바로 사람이다. 오직 사람만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서 창조되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존귀함이며, 인간이 특별한 존재가 되는 까닭이다.
이렇게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함을 입었음을 나타내는 문자가 祖자이다. 祖자는 역시 示와 且로 구성이 되어 있다. 示는 神자에서 본 것과 같이 하늘(一)에서 땅(一)으로 오신 세분 하나님(小)을 나타낸다.
그 다음의 且는 "또" 혹은 "게다가"를 뜻하는 문자이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닮은 '또' 다른 존재를 창조하셨고 그 사람이 바로 인류의 조상(할아버지)이 되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창1:26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조(造)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모두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그러나 오직 인간만은 특별한 방법으로 창조하셨는데 창2:7절 말씀 그대로 이다. 즉 흙(土)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하나님의 입(口)으로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되었다.
인간은 하나님의 생기(생명)가 아니면 흙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造자는 告자와 [걷다, 움직이다]를 나타내는( )으로 나뉘어 진다. 즉 말하고(告) 움직이는( )사람이란 뜻이다.
造는 말하고 움직이는 존재를 창조한 하나님의 능력이며 인간 창조의 기념이다.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그래서 최초의 사람인 아담이 탄생되었다. 先人, 先祖라고 할 때 우리는 흔히 先자를 쓴다. 先자는 흙(土)에 생기(')를 불어넣음으로 존재하게 된 사람(人) 을 뜻한다. 최초의 사람 아담은 그래서 인류의 先人이 되었다.
광(光)
그 첫 번째의 사람은 빛난 광채를 띤 영광스러운 존재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바로 그러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요일1:5)
火자는 이 사실을 나타내어 보여주고 있는데, 하나님의 형상을 담아 창조된 아담은 (人)과 불꽃이 합하여져서 불을 뜻하는 '화'자가 것이며, 또 인(人)과 불 화(火)가 합쳐져서 광(光)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빛나다'를 나타내는 광(光)자는 첫 사람 아담에 대한 기별이 포함되어 있다. 즉 첫 번째(一) 사람(人)에게서 발산되는 광선의 불(火)이 곧 빛날 光 자인 것이다.
시편 104:1, 2절에 보면 "하나님은 빛을 입으시며"라고 되어 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된 아담도 빛을 입었던 것이다. 그러나 범죄함으로 그 빛의 옷은 벗겨지고 수치가 드러나게 되었다.
물론 우리는 재미있고 가벼운 마음으로 이러한 주장을 읽어보고 있다.
그러나 이런 한자들의 의미가 우연히 성경의 진리와 일치하는 것일까? 기독교인들이 억지로 성경의 내용과 맞춘 것이 아니라, 초기의 중국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민족이었다는 것은 단순한 추리가 아닐른지 모른다.
세상의 왜곡된 시각이 아니라 기독교인의 올바른 시각을 가지고 중국의 최초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그들에게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실한 믿음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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