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전문가들, 북유럽에서 우리 교육의 미래를 보다
일등만을 요구하는 대한민국 vs 낙오자 없는 교육 핀란드
한국 교육의 최정점에는 언제나 서울대가 있다. 그 대학에 몇 명의 학생을 입학시켰는가에 따라 그것이 교장의 능력이 되고 지역의 자랑거리가 된다. 그 학생이 좋은 대학에 들어간 이후 어떤 길을 걸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하니 적성이나 미래에 대한 고민 없이 무조건 좋은 대학 간판 아래로 스며들어 간다.
모두가 평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는 오래 전 깨어졌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도 속담 책에서나 찾아볼 말이 된 지 오래이다. 부자가 부자를 낳고 부자가 판검사를 만드는 대한민국에서 가난은 천형과도 같다. 양반과 상놈이 태생부터 갈라지는 조선의 신분 질서와 21세기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신분 질서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의 교육을 망친 것은 부자들과 권력의 아기자기한 협동이었다. 그들에 의해 대한민국의 교육은 수술대에도 오르지 못할 정도로 망가져 있다. 외국어고와 특수목적고가 생겨났고 자율형사립고라는 학교 계급이 또 만들어진 나라 대한민국에선 일등만을 요구했으며 일등만이 사람 대접을 받았다.
그래서였다. 대한민국의 교육을 걱정하는 교육 전문가 39명이 북유럽의 작은 나라 핀란드 교육에 주목했다. 그들은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비롯한 이광호, 이부영, 김명신 등의 교육 관련 시민 단체 활동가와 현직 교사, 언론인, 도종환 시인, 참교육연구소와 교육개혁시민연대 등에서 '교육 희망 찾기'에 골몰하는 인사들이었다.
이들이 핀란드를 다녀온 것은 1년 전인 2009년 초였다. 이들 교육 탐방단은 각자의 영역에서 바라본 핀란드 교육에 관한 내용들을 토론과 연구를 통해 1년 만에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핀란드 교육 혁명>(살림터)이다.
인구 500만이 조금 넘는 핀란드는 숲과 호수의 나라요, 요정의 나라이며, 환상과 신비의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학부모와 교사, 지역과 국가가 모두 나서서 '교육 혁명'을 이룬 나라이기도 했다. 그렇게 이룬 교육 혁명의 열매는 학교 간의 교육 격차나 학생 간의 수준 또한 차이가 없는 '교육 천국'으로 나타났다.
핀란드 학습 평가법은 단 세 가지 '잘했어, 아주 잘했어, 아주아주 잘했어'
핀란드의 교육은 대한민국처럼 소수 학생만 끌고 나가는 교육이 아니었다. 핀란드의 교육은 다름과 차이를 인정한 뒤 전체 학생을 일정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쌍끌이 교육을 택했다. 그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교육 낙오자가 없는 나라, 학원이 없는 나라, 광폭한 일제 고사도 없는 나라 핀란드에 다녀온 도종환 시인은 책머리에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아는 걸 다시 배우는 게 아니라
모르는 걸 배우는 게 공부이며 열의와 속도는 아이마다 다르므로
배워야 할 목표도 책상마다 다르고
아이들의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거나 늦으면
학습 목표를 개인별로 다시 정하는 나라
변성기가 오기 전까지는 시험도 없고
잘했어, 아주 잘했어, 아주아주 잘했어
이 세 가지 평가밖에 없는 나라
친구는 내가 싸워 이겨야 할 사람이 아니라
서로 협력해서 과제를 함께 해결해야 할 멘토이고
경쟁은 내가 어제의 나하고 하는 거라고 믿는 나라
나라에서는 뒤쳐지는 아이가 생기지 않게 하는 게
교육이 해야 할 가장 큰일이라 믿으며
공부하는 시간은 우리 절반도 안 되는데
세계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보며
그는 입꼬리 한쪽이 위로 올라가곤 했다
가르치는 일은 돈으로 사고파는 상품이 아니므로
언제든지 나랏돈으로 교육을 시켜 주는 나라
청소년에 관련된 제도는 차돌멩이 같은 청소년들에게
꼭 물어보고 고치는 나라
여자아이는 활달하고 사내 녀석들은 차분하며
인격적으로 만날 아는 젊은이로
길러 내는 어른들 보며 그는 눈물이 핑 돌았다
- 도종환 시 '북해를 바라보며 그는 울었다' 중에서
몇 해 전까지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도종환 시인이 본 나라는 핀란드이다. 그와 함께 떠난 39명의 교육 전문가 중 누군가 핀란드의 교육 정책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눈물까지 흘렸다고 했다.
도종환 시인은 시의 말미에 '우리나라 아이들을 생각하며 마침내 그는 울었다'라고 했다. 그러니 그 어느 전문가는 핀란드의 교육이 부러워 눈물이 핑 돌다가 끝내는 경쟁에 내몰린 채 이기적이거나 고독해져 버린 대한민국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울었다는 것이다.
책을 읽어 보니 그럴 법도 했겠다 싶었다. 일제의 잔재에다 유행 지난 영미식 제도를 대충 버무려 만든 한국형 경쟁 체제에서 교육을 받았던 나 역시 핀란드의 교육은 '꿈의 교육'으로 다가왔다.
핀란드 교육의 기본은 신뢰와 자율
핀란드 교육 탐방을 다녀온 39명의 인사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핀란드 교육 혁명의 성공 요인은 어느 한 구성원의 힘과 노력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거였다. 학부모와 교사의 대화는 늘 열려 있고, 학생, 학부모, 교사와의 관계 또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 있었다.
국가는 행정적 지원만 하되 학교나 교사에게 간섭하지 않으며 자율을 보장해 주고 있었다. 대한민국처럼 교사를 잠재적인 범죄 집단(전교조 탄압, 스승의 날 휴교 등)으로 몰고 가는 일은 핀란드에선 있을 수도 상상할 수도 없었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경쟁이 없는 교육 현장인 핀란드에서 우리 교육을 생각하다, 2부는 핀란드 학교 탐방 이야기인 교육 천국 핀란드의 학교를 가다, 3부는 사회 문화적으로 바라본 핀란드 교육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나, 4부는 신뢰와 돌봄, 통합, 자율의 핀란드 교육 성공법을 다루었다.
어쩌면 한국의 교육 전문가들의 시각에서 바라본 핀란드의 교육 혁명에 관한 책은 이 책이 유일할 것이다. 그만큼 내용이 충실하다. 읽다 보면 학부모나 교사 모두 "그래, 이거야" 하고 공감하는 부분도 크다. 교육 당국이나 국가도 핀란드의 교육 혁명을 우리의 교육 정책에 접목시켜 볼 것도 많다.
아이의 교육을 모두 책임지는 나라 핀란드
이제 대한민국의 교육도 배울 것은 배우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 문제는 실천이지 학습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실천의 의지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들 말하지만 대한민국의 교육 정책은 늘 하루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제도들로 채워졌다.
대한민국도 때때로 교육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높았다. 이명박 정부 들어 생겨난 교육 정책들은 경쟁 교육의 극치를 보여 주었고, 과거 퇴행적인 정책들뿐이었다. 학생들은 미래를 향해 걸어가는데 정책은 과거로 돌아가고 있었다. 교육을 정치로 풀려는 권력형 교육자들이 이룩한 업적들이다.
아이의 교육에 관한 한 국가가 모두 책임지는 나라 핀란드. 그러나 핀란드의 교육은 통제나 간섭이 없다. 그러니 권력이 필요치 않다. 그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학교와 학생들에 대한 지원과 서비스밖에 없다. 경쟁은 스포츠에만 있다는 핀란드의 교육이 시사하는 바가 큰 이유가 거기에 있다.
태어난 지 두 달이 지나면 아기를 한겨울에도 한뎃잠을 재우는 핀란드 어머니들의 가정 교육 방법. 경쟁보다 협력을 가르치는 학교와 교사들의 교육법. 모두가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우는 핀란드의 교육 정책이 이 책에 다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