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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교회론 (1)

기독론·삼위일체론적 관점에서



1. Sola Scriptura: 칼빈 신학에 대한 관점적 접근

소위 칼빈 신학의 중심 주제(the so-called central dogma of Calvin’s theology)에 대한 학자들의 관심을 단순히 현학적인 것으로만 치부(置簿)할 수 없음은

Cf. Ford Lewis Battles, "The Future of Calviniana," in Renaissance, Reformation, Resurgence, ed. Peter De Klerk, presented at Colloquium on Calvin & Calvin Studies in 1976 (Grand Rapids: Calvin Theological Seminary, 1976), 133-173; Charles Partee, "Calvin’s Central Dogma Again," in Calvin Studies III, ed. John H. Leith (Richmond: Union Theological Seminary, 1986), 39-46 Wilhelm Neuser, "The Work of the Calvin Congresses and Their Future Tasks and Goals,"in Calvin Studies V, ed. John H. Leith (Davidson, NC: Davidson College, 1990), 21-27; Richard A. Muller, "Directions in Current Calvin Research," in Calvin Studies IX, ed. John H. Leith and Robert A. Johnson (Davidson, NC: DavidsonCollege & Davidson College Presbyterian Church, 1998),


70-87. 제네바의 성경 교사요 말씀의 수호자인 그는 신학적이거나 철학적인 전제나 논리보다 성경의 가르침 자체에 충실해서 그곳에 기록된 다양하며 역동적인 신학 주제들(loci)을 이성적으로 첨삭하지 않고 모두 다루었으므로 그 정수를 논구하는 것이 그의 신학을 조직적이며 체계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칼빈 신학의 중심 주제로 Calvin’s Calvinism이라고 명명된 예정론과 섭리론이 주로 논해졌다.


칼빈이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 것은 사실이나 루터란들과 카톨릭 신학자들과 더불어서 일부 언약신학자들이 명시적이거나 묵시적으로 주장하듯이 그가 엄격한 하나님의 의지만을 신학의 주제로 삼아서 성경을 편협하게 해석한 것은 아니었다.

칼빈 신학의 중심으로 전체 축자 영감 성경론, 그리스도와의 연합, 그리스도인의 삶, 성령론, 교회론 등이 언급될 수 있을 것이나, 필자는 본고에서도 언급되는 바 칼빈 신학의 요체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의 영으로 중생한 성도가 그의 중보로 그의 의를 전가 받아서 영감된 말씀을 성령으로 조명되어 감화 받은 심령 가운데 믿음으로 받아서 부 요한 신지식에 이르고 또한 전체 구원 과정을 통하여서 처음 언약 가운데 약속 하시고 후속 언약들 가운데 예표하시며 새 언약 가운데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고 부활의 권능을 보이신 영생에 이르는 하나님의 오직 그리고 전적인 은혜와 그로 말미암은 성도의 교회와 사회의 삶’이라고 잠정적으로 정리한다.

이는 필자의 관점에서 칼빈의 기독론적·삼위일체론적 성경 이해를 푼 것에 다름 아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일부 학자들은 칼빈 신학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적 접근(perspectival approach)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Cf. Mary Potter Engel, John Calvin’s Perspectival Anthropology(Atlanta: Scholars Press, 1988), "The ‘Whole Office of the Law’ in the Theology of John Calvin," Journal of Law and Religion 3/1 (1985), 117-139 Philip Walker Butin, Revelation, Redemption, and Response: Calvin’s Trinitarian Understanding of the Divine-Human Relationship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John H. Leith, "Creation and Redemption: Law and Gospel in the Theology of John Calvin," in Marburg Revisited: A Re-examination of Lutheran and Reformed Traditions, ed. Paul C. Empie and James I. McCord (Minneapolis: Augsburg Publication, 1966),


141-152. 주지하는 바와 같이 칼빈 신학의 서론(prolegomena)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이라는 두 관점으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구속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는 두 관점에서,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은 타락 전 하나님 형상과 타락 후 하나님 형상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다시 논해진다.


Cf. Benjamin B. Warfield, Calvin and Augustine (Philadelphia: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1956), 29-130; P. Lobstein, "La Connaissance religieuse d’après Calvin," Revue de théologie et de philosophie religieuses 42(1909), 53-110; Edward Dowey Jr., The Knowledge of God in Calvin’s Theology, rev. ed.(Grand Rapids: Eerdmans, 1993); T. H. L. Parker, The Doctrine of the Knowledge of God, rev. ed.(Grand Rapids: Eerdmans, 1959). Richard A. Muller, "Establishing the Ordo docendi: The Organization of Calvin’s Institutes, 1536-1559," in The Unaccommodated Calvin: Studies in the Foundation of a Theological Traditio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118-139.


이와 같은 다양한 관점에서 성경을 읽음으로써 하나님과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의 파라다임 속에서 구속사(historia salutis, 역사적 구원계시)와 개인의 구원 서정(ordo salutis)을 역동적으로 이해함에 있어서 칼빈은 신학적이며 주해적인 그의 작품들을 통하여서 약속-성취의 유비(promissio-perfectio analogia)와 그림자-실체의 유비(umbra-substantia analogia)를 동시에 고려한다.

약속-성취의 유비가 이미 구약 백성들에게도 계시되었다.

다만 그들은 그림자를 통하여서 실체를 믿었다. 실체가 없다면 그림자는 헛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림자가 있음은 인격(persona)이 위격(hypostasis)으로 존재(subsistentia)함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율법은 그리스도를 표상(repraesentatio)할 뿐만 아니라 그의 현재(praesentia)를 동시에 계시한다.

율법은 규범(praeceptum)과 약속(promissio)의 요소를 포함한다.

율법의 약속의 성취가 복음이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드러남이 이루심의 계시이다. 곧 표상과 현재가 육신 가운데 만남이다. 육신으로 오신 중보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 사건이 없다면 구약의 믿음이 헛되다.


신약 백성들은 육신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한 진리와 은혜를 맛 보았으나(요 1:14, 17) 구약에 계시된 그림자를 통해서 오신 메시아를 확정한다.

"오실 그 이가 당신이오니이까"(마 11:3) 라는 세례 요한의 질문은 약속-성취의 유비와 그림자-실체의 유비의 이중적 관점에서만 온전히 이해된다.

구약은 ‘그 분’을 계시한다.

신약은 ‘그 분’이 ‘이 분’임을 계시한다.

칼빈은 이러한 이해에 기반해서 셀베투스(Michael Servetus)가구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persona)이 그림자(umbra)로 계시되었음을 말하기보다 그림자(umbra)가 인격적으로(personalis) 존재했으며 그것이 단지 여러 형상으로 나타났음을 주장했다고 비판한다.


Cf. 졸고. Byung-Ho Moon, "Lex Dei Regula Vivendi et Vivificandi: Calvin’s Christological Understanding of the Law in the Light of His Concept of Christus Mediator Legis," Ph. D. dissertation, Edinburgh: University of Edinburgh, 2004.

본 논문은 2006년 영국 Paternoster Press에서 출판 예정.

특히 제 5장. 따라서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과 우리의 구원은 다양한 관점에서 동시에 공시적이며(그림자-실체) 통시적인(약속-성취) 신앙의 유비(analogia fidei)로 다루어진다. 칼빈은 로마서 12:6의 "믿음의 분수대로"를 "ad fidei analogiam"으로 번역한다.


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in libros quatuor nunc primum digesta, certisque distincta capitibus, ad aptissimam methodum: aucta etiam tam magna accessione ut propemodum opus novum haberi possit, 1559를 인용함에 있어서 다음 번역본을 참고한다.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ed. John T. McNeill, tr. Ford Lewis Battles, Library of Christian Classics, vols. 20-21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60). 이하 Inst. 권.장.절 순으로 표기. 이하 Ioannis Calvini opera quae supersunt omnia 는 CO로 표기. 특히 "Prefatory Address to King Francis I of France," Inst. 12 (CO 2.12). ‘항상 같으나 시대에 따른 [하나님의 구속 경륜],’ ‘어느 곳에든 계시나 특정한 곳에만 계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재위],’ ‘조건은 있으나 조건적이지 않은 [언약 이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능력이 있으나 선택된 사람에게만 [미치는 복음의 능력],’ ‘즉각적인 그러나 점진적인 [성화],’ ‘명령하시나 스스로 이루시는 [하나님의 의],’ ‘자유하나 매여있는 [성도의 삶]’ 이성적인 측면에서는 역설적이나 신앙적인 측면에서는 은혜 위의 은혜가 되는 성경적 진리 자체(veritas ipsa biblica)를 궁구(窮究)함이 칼빈 신학의 근거요 요체며 목적이라고 할 것이다.


칼빈의 신학에서 다양하게 표출되는 관점적 접근들은 그의 입장이 비학문적이라거나 비논리적이라거나 비신학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가 성경의 자기 계시성(영감성, 충족성, 완전성)에 얼마나 충실했으며 그가 계시와 은혜에 관해서 얼마나 고상한 입장(high view)을 견지하고 있었는가를 잘 대변하고 있다. 칼빈의 신학이 지금도 여전히 회자됨은 그의 신학이 인문주의적 비평이나 심리학적 요소에 경도되어 있기 때문은 아니다.


칼빈 신학의 형성을 다룸에 있어서 인문주의의 영향을 강조하는 다음 학자들은 대체로 칼빈의 중생에 큰 가치를 두지 아니하고 그의 초기 인문 교육과 법학 교육이 후기 신학에 미친 영향을 강조한다.


Quirinus Breen, John Calvin: A Study in French Humanism(Grand Rapids: Eerdmans, 1931), 159-164; For Lewis Battles, "The Sources of Calvin’s Seneca Commentary," in Interpreting John Calvin, ed. Robert Benedetto (Grand Rapids: Baker, 1996), 84-85; Basil Hall, "John Calvin, the Jurisconsults and the Ius Civile," in Studies in Church History, vol. 3, ed. G. J. Cuming (Leiden: E. J. Brill, 1966), 202-216; Charles B. Partee, Calvin and Classical Philosophy (Leiden: E. J. Brill, 1977), esp. 13-23 W. Stanford Reid, "John Calvin, Lawyer and Legal Reformer," in Through Christ’s Work: A Festschrift for Dr. Philip E. Hughes, ed. W. Robert Godfrey and Jesse L. Boyd III (Phillipsburg, N.J.: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1985), 149-164; Arvin Vos, "Calvin: The Theology of a Christian Humanist," in Christianity and the Classics: The Acceptance of a Heritage, ed. E. Helleman (Landham: University Press of America, 1990), 109-118 William J. Bouwsma, John Calvin: A Sixteenth Century Portrait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88).


칼빈의 텍스트 자체에 충실한 문자적-역사적-영적(삼위일체론적 그리고 기독론적) 성경 해석이 오늘날 성경 신학자들이나 성경 해석학자들 그리고 설교학자들에게도 하나의 전형이 되는 것은 그의 신학이 sola Scriptura 원리에 입각해서 텍스트 안에서 텍스트 읽기에 충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칼빈 이전의 종교 개혁자들이 지나치게 주제 중심적이었으며 칼빈 이후의 종교 개혁자들은 지나치게 콘텍스트 중심적이었다면,

이와 같은 논지는 루터, 멜랑흐톤, 부써의 주석들의 주제 중심적 접근과 칼빈 이후 콕체우스로부터 개진된 대륙의 언약신학과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칼빈의 율법 이해에 기반한 청교도 신학이 보여주는 토착적 입장을 시사한다.


이 부분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위해서, Jack B. Rogers and Donald K. McKim, The Authority and Interpretation of the Bible (San Francisco: Harper & Row, 1979), 73-261; Richard A. Muller, Post-Reformation Reformed Dogmatics, vol. 2, Holy Scripture: The Cognitive Foundation of Theology (Grand Rapids: Baker, 1993), 62-64.

칼빈이야말로 진정한 sola Scriptura의 원리로 신학한 처음이자 마지막 종교 개혁자였다고 할 것이다.


Cf. Herman Bavinck, Reformed Dogmatics, Volume 1: Prolegomena, ed. John Bolt, tr. John Vriend (Grand Rapids: Baker, 2003), 178, 415, 583-585; Cornelius Van Til, The Protestant Doctrine of Scripture, In Defense of the Faith, vol. 1 (Ripon, CA: Den Dulk Christian Foundation, 1967), 115-121; Kenneth S. Kantzer, "Calvin and the Holy Scriptures," in Inspiration and Interpretation, ed. John F. Walvoord (Grand Rapids: Eerdmans, 1957),


115-155. Abraham Kuyper는 theologia ectypa에 있어서 하나님 아버지의 자기 계시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지식과 성령의 역사를 동시에 다룸으로써 계시의 삼위일체적 이해에 이른다. Principles of Sacred Theology, tr. J. Hendrik De Vries (Grand Rapids: Eerdmans, 1980), 275-299.


칼빈은 말씀이 말씀하심에 따라서 신학했다.

이성적 논리로 하나님의 계시를 확장하거나 이성적 한계로 하나님의 계시를 축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계시하신 것을 신앙으로 수납함을 전제로 신학했다.

성경의 가르침을 좇아 하나님의 절대적인 섭리를 그토록 강조했지만, 하나님의 섭리의 불가해성을 동시에 강조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신학의 중심에 두었지만 하나님은 다만 유모가 아이에게 옹알이 하듯이 우리에게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신다는 맞추심(accommodatio)을 말했다.


Cf. Ford Lewis Battles, "God Was Accommodating Himself to Human Capacity," Interpretation 31/1 (1977), 19-38 David F. Wright "Accommodation and Barbarity in John Calvin’s Old Testament Commentaries," in Understanding Poets and Prophets: Essays in Honour of George Wishart Anderson, ed. A. Graeme Auld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Series, 1993), 412-426, and "Calvin’s Accommodating God," in Calvinus Sincerioris Religionis Vindex: Calvin as Protector of the Purer Religion, ed. Wilhelm H. Neuser and Brian G. Armstrong (Kirksville, Mo.: Sixteenth Century Essays & Studies, 1997), 3-19 Richard C. Gamble, "Calvin as Theologian and Exegete: Is There Anything New?" CTJ 23 (1998), 182-183; David L. Puckett, John Calvin’s Exegesis of the Old Testament (Louisville: Westminster/John Knox, 1995), 112 Olivier Millet, Calvin et la dynamique de la Parole: Etude de rhétorique réformée (Genève: Editions Slatkine, 1992),


97. 이상에서 학자들은 수사학적 맞추심에 주로 문의하는데 필자는 하나님이 성도들을 높이시고 그 높이신 수준으로 맞추어 주심으로 그 인격과 행위를 의롭다 하시는 이중적 전가(duplex imputatio)와 관련해서 신학적 맞추심을 제안한다.


보이지 않는 첫 번째 손(manus invisibilis)으로서 하나님의 오직 그리고 전적인 은혜에 따른 섭리를 가르치면서 보이는 이차적 손으로서 인간의 책임을 동시에 강조했다.


Cf. Inst. 1.17.2 (CO 2.156); John Calvin, "OnHow We Ought to Understand the Providence of God by which He Does Everything, and How the Libertines Confound It All When Speaking of It: The First Consequence of the Preceding Article," in John Calvin: Treatises against the Anabaptists and against the Libertines, tr. and ed. Benjamin W. Farley (Grand Rapids: Baker, 1982), 243-247 (CO7.186-190).


칼빈은 어떤 교리적 논리(ratio)나 서정(ordo)보다 성경의 가르침 자체에 충실했다. 그리하여 일반계시와 특별계시(구원계시)를 동시에 강조하고, 율법과 복음의 실체적 일치성과 경륜적 차이성을 논하고, 구원사(historia salutis)와 개인 구원서정(ordo salutis)의 역동적 관계에 부착했으며,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미래를 묵상하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인의 종 된 삶으로 묘사하고, 칭의와 성화의 관계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의의 즉각적 그리고 계속적인 전가(imputatio)를 강조했다.

그리고 동시에 가시적 교회와 비가시적 교회를 강조했다.


2. 교회: 말씀 가운데 그리스도와의 연합체

말씀의 완전 축자 영감(the verbal and plenary inspiration of the Word)에 대한 칼빈의 이해는 지체(membra)된 성도들의 머리(caput)이신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unio mystica cum Christo)에 기초하고 있다.

이 연합을 통하여서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사람은 영감(inspiratio)된 하나님의 말씀을 그 영의 조명(illuminatio)으로 말미암아 감화(persuasio)된 심령으로 믿음으로 온전하게 수납한다. 오직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만이 말씀을 받아들인다.

하나님의 말씀의 객관성은 하나님은 성경에서 인격 가운데 그의 입술로(ore) 말씀하신다는 사실에 있다.

이와 같은 성경 이해에 기반하여 칼빈은 설교를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성례적인 임재라고 본다.


Cf. Ronald S. Wallace, Calvin’s Doctrine of the Word and Sacrament (Edinburgh: Oliver and Boyd, 1953), 84-85; John H. Leith, "Calvin’s Doctrine of the Proclamation of the Word and Its Significance for Today," in Timothy George, ed., John Calvin & the Church: A Prism of Reform (Louisville: Westminster/John Knox, 1990),


211-212. 성경의 권위(auctoritas)는 그 저자(auctor)가 하나님이라는 사실로부터 나온다 이 사실은 성령의 은밀한 증거(arcanum testimonium)에 의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백성들에게만 확정된다(Inst. 1.7.1-5, CO 2.56-61). 그리스도는 성경의 권위는 교회의 해석이나 승인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중보자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의 영을 받아서 그를 앎으로써 심령 가운데 인쳐진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중보자로서 구원주 이시며 내적 교사(interior magister) 이시다(Inst. 3.1.2, 4, CO 2.394-395, 396-397).

이는 principia theologiae로서 논해진다. Cf. Bavinck, Reformed Dogmatics I, 89, 207 ff.; Kuyper, Principles of Sacred Theology, 341 ff. 그리스도는 "중보자 혹은 사역자의 인격으로 (in mediatoris vel ministry persona)" 오직 아버지께 받은 것을 말씀하신다. Comm. Jn. 17:8 (2.139-140, CO 47:379). 이하 칼빈의 구약 주석은 The Commentaries of John Calvin, 46 vols., Calvin Translation Society Edition (Grand Rapids: Eerdmans, 1948-1950) 사용 (vols.1-15). 그리고 신약 주석은John Calvin, New Testament Commentaries, ed., D. W. Torrance and T. F. Torrance (Grand Rapids: Eerdmans, 1960-1972)을 사용. 주석 표기는 전체적으로 Comm. 성경 장.절로 표기.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상호 그의 띠로 묶인 자들이 말씀의 확실성과 성령의 확실성에 대한 믿음을 가진다(Inst. 1.9.3, CO 2.71). "Mutuo enim quodam nexu Dominus verbi spiritusque sui certitudinem inter se copulavit; . . ." 그리스도와 성경의 권위에 관해서, John Murray, Calvin on Scripture and Divine Sovereignty (Grand Rapids: Baker, 1960),


35-51. 이 신비한 연합체가 교회이다.

교회론은 이러한 sola Scriptura 원리로 개진되며 그로부터 기원한다.


Cf. Van Til, The Protestant Doctrine of Scripture, 29-30; Kuyper, Principles of Sacred Theology, 280-289. 성경과 교회의 전통에 관한 종교개혁자들과 카톨릭의 이해에 관해서, Heiko A. Oberman, "Quo Vadis, Petre? Tradition from Irenaeus to Humani Generis," in The Dawn of the Reformation (Grand Rapids: Eerdmans, 1986), 269-296.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한 인식 없이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으며 구원도 없다. 오직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해서만 구원을 온전히 이루며(화해의 중보자: mediator reconciliationis),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으며(중재의 중보자: mediator patrocinii),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부요함에 이를 수 있다(가르침의 중보자: mediator doctrinae). 그리스도의 중보는 성도의 구원의 총체적 양상을 반영한다.

그것으로부터 sola Scriptura 원리의 적합성과 개인 구원 서정의 교회론적 의미가 확증된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의 영을 받아서 그의 의를 전가 받음으로써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고 그를 아는 지식의 온전함에 이르며, 의롭게 되며, 거룩하게 되며, 영화롭게 되는 지체된 성도들의 모임이다.


Cf. Moon, "Lex Dei Regula Vivendi et Vivificandi," 4장. 그리스도의 계속적 중보와 그와의 연합을 통한 의의 전가에 대해서 다음 본문에 대한 칼빈의 주석과 설교를 참조: 롬 8:15; 8:17; 갈 4:7; 엡 3:6; 히 1:4; 1:12; 3:1-6; 빌 1:29.


2.1.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Christus caput ecclesiae)

칼빈의 교회관의 기초는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선택에 있다.


Cf. David N. Wiley, "The Church as the Elect in the Theology of Calvin," in Timothy George, ed., John Calvin & the Church: A Prism of Reform (Louisville: Westminster/John Knox, 1990), 96-117. 1536년 기독교 강요에서 사도신경의 "credo sanctam ecclesiam catholicam(나는 거룩한 공교회를 믿습니다)"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우리는 선택된 자들 전체의 수로 이루어진 거룩한 공교회가 . . . 한 교회이며 공동체이고 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믿는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 전체를 하나님의 왕국으로 모으시기 위해서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그의 은혜로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심으로써(엡 1:4) 이 백성 가운데서 우리의 주님 그리스도는 지도자며 통치자, 이른바 몸의 머리가 된다.

그런데 교회가 둘 혹은 셋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이 공동체는 보편적, 즉 우주적이다.

참으로, 이와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된 자들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되고 일치되어서(엡 1:22-23) 한 머리에 의지함으로써 한 몸으로 자라가고 그 몸의 지체로서 서로 연합하고 함께 지어져 간다(엡 4:16). 그들은 진실로 한 믿음, 소망, 사랑 가운데서 하나가 되며 같은 하나님의 영 가운데서 영생의 유업을 위해서 부름 받는다(롬 12:5; 고전 10:17, 12:12, 27). 또한 이 공동체는 거룩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원한 섭리에 의해서 선택된 사람들의 수만큼 교회의 지체들로 받아들여지며, 그들은 모두 주님에 의해서 거룩해 지기 때문이다(요 17:17-19; 엡 5:25-32) (1536 Inst. CO 2.72-73). ". . credimus sanctam ecclesiam catholicam, hoc est universum electorum numerum . . . unam esse ecclesiam ac societatem et unum Dei populum cuius Christus, Dominus noster, dux sit et princes, actanquam unius corporis caput; prout in ipso divina bonitate electi sunt, ante mundi constitutionem, ut in regnum Dei omnes aggregarentur. Haec autem societas catholica est, id est, universalis, quia non duas aut tres invenire liceat, verum electi Dei sic omnes in Christo uniuntur ac coadunantur (cf. Eph. 1:22-23), ut, quemadmodum ab uno capito pendent, ita in unum velut corpus coalescant; ea inter se compositione cohaerentes, qua eiusdem corporis membra (cf. Eph. 4:16); vere unum facti, qui in una fide, spe, caritate, eodem Dei spiritu, simul vivant, in eandem vitae aeternae haereditatem vocati (Rom. 12, I Cor. 10 et 12. Eph. 4). Sancta etiam est, quia quotquot aeterna Dei providentia electi sunt, ut in ecclesiae membra cooptarentur, a Domino omnes sanctificantur (Ioan 17, Eph. 5)."


1559년 기독교 강요에서는 이를 다시 확인하면서, 하나님의 선택에 기초를 둔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지식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하며(Inst. 4.1.2. CO 2.747, cf. 3.24.6, 3.21.1), ". . . soli Deo permittenda est cognitio suae Ecclesiae cuius fundamentum est arcana illius election." 사도 신경에서 우리가 믿는다고 고백하는 교회는 가시적 교회 일뿐 아니라 죽은 사람들의 수도 포함하는 하나님의 택함 받은 전체 백성들을 포함한다는 사실(Inst. 4.1.2, CO 2.746) ". . . non solum ad visibilem . . . sed ad omnes quoque electos Dei in quorum numero comprehenduntur etiam qui morte defuncti sunt." 을 적시한다.


이런 관점에서 교회를 하나님의 은밀한 손인 섭리의 극장(theatrum providentiae divinae)이라고 부른다(cf. Inst. 1.16.1-9).

칼빈 교회론의 두 가지 특징적인 양상은 그가 교회를 구원 받은 개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은총의 혜택을 누리는 방편이 되는 것으로 본 것과, 그가 후기의 작품으로 갈수록 가시적 교회(ecclesia visibilis)를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밀한 섭리에 기반한 비가시적 교회(ecclesia invisibilis)를 믿음이 뿌리 박고 자라야 할 기초로 보았다는 사실에 있다.


교회는 구원의 연속이며 혜택이고 하나님과 그의 택한 백성이 인격적인 연합을 이루는 곳이다. 곧 교회는 하나님과 사람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비한 연합(unio mystica)이다.

칼빈은 제 1차 신앙 교육서에서도 교회의 보편성과 거룩성을 성도들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찾으면서 특히 교회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의 공동체(societas)이자 교제의 연합체(communio)로서 주님의 영으로 자라감을 강조하며 이로부터 교회의 직분론을 전개한다.


Catechism or Institution of the Christian Religion, tr. Ford Lewis Battles(from Latin), in I. John Hesselink, Calvin’s First Catechism: A Commentary (Louisville: Westminster/John Knox, 1997, hereafter First Catechism), 25-26, 35-26 (CO 5.341-342, 351-352).


칼빈은 오시안더(Andrea Osiander)의 왜곡된 중보자 기독론을 비판하면서 그가 진실로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으며, 그럼으로써 그리스도가 교회에 은총을 주시는 신비한 연합에 대해서는("de mystica unione qua ecclesiam dignatus est") 무지했음을 지적한다(Inst. 2.12.7, CO 2.346-347).


칼빈은 오시안더가 주장하는 "본질적 의(iustitia essentialis)"와 "그리스도의 본질적인 내주(habitatio essentialis Christi)"라는 개념을 비판하면서 그리스도가 머리로서 지체된 우리의 마음에 내주하심이 성도와 그리스도의 신비한 연합이며 이것이 구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점이라고 말한다(Inst. 3.11.10, CO 2.540).


"Coniunctio igitur illa capitis et membrorum, habitatio Christi in cordibus nostris, mystica denique unio a nobis in summon gradu statuitur." 오시안더는 작은 책자 An filius Dei fuerit incarnandus . . .에서 인류는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지어졌으며 따라서 타락이 없더라도 성육신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오시안더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모범일 뿐만 아니라 인류가 그와 함께 신화될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그에 의하면 전적 타락이나 전적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 교리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 교리도 부인된다. 주입된 은혜(gratia infusa)가 전가된 은혜(gratia imputata)를 대체하는 곳에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근거가 사라진다. Cf. Inst. 1.15.3 (CO 2.136-138); Inst. 3.11.5, 10 (CO2.536-537, 540-541); Contra Osiandrum (CO 10/1.166). 이로써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범신론적 신교(神交)나 신화(神化)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의 교제(communio)와 교통(communicatio)에 기반한 것으로서 구속사적이며 구원론적인 의미를 동시에 갖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스도가 머리 되시고 성도는 그 지체됨을 칼빈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연합으로 설명한다. 특히 결혼으로서 표현된 이 연합을 성례적 연합으로 다루며 이로써 성도에게 있어서의 그리스도의 영의 내주와 그의 의와의 교통을 설명한다. Comm. Eph. 5:28-33 (208-211, CO 51.225-228). 연합된 성도들이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로 자라가는 것이 교회를 세움(aedificatio)이다. Comm. Eph. 4:15-16 (184-185, CO 51.202-203).


2.2. 신자들의 어머니로서 교회(ecclesia mater)

칼빈은 기독교 강요 제 4권에서 시민 정부에 관한 마지막 장을 제외하고 모든 부분을 교회론에 할애했다.

이것은 전체 기독교 강요의 삼분의 일에 거의 육박한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공동체로 우리를 부르시고 그 안에서 지키시는 외부적인 방편과 도움에 관해서(De externis mediis vel adminiculis quibus Deus in Christi societatem nos invitat et in ea retinet)" 라는 제 4권의 제목은 교회론이 이차적인 교리임을 시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 3권 구원론의 마지막 부분인 기도, 예정, 그리고 성도의 부활 교리와 제 4권의 후미에 다루어지는 성찬 교리 사이에 참교회의 표지, 직분론, 입법권, 그리고 권징을 다룸으로써 자신의 교회론이 기독론에 터 잡고 있는 구원론의 연장선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기독교 교리를 전체적으로 죄(guilt)와 은혜(grace)와 감사(gratitude)의 세 부분으로 본다면 기도와 예정과 성례론은 교회론과 함께 감사에 속한다고 볼 것이다.


Cf. Donald J. Bruggink, ed., Guilt, Grace and Gratitude: A Commentary on the Heidelberg Catechism Commemorating Its 400th Anniversary (New York: Half Moon, 1963),


1-19. 이와 같은 이해 가운데 칼빈은 어거스틴, 루터와 마찬가지로 키프리안의 전통을 따라서 교회를 경건한 사람들의 오직 한 분 뿐인 어머니라고 보았다. Cyprian, De catholicae ecclesiae unitae, 6, M. L., 4.519 Epist., 73.22, ed. Bayard, 2.275; Augustine, Sermons, M. L., 39.1512; De baptismo, 4.17, 24, M. L., 43.170; Luther, Great Catechism, 3. 인용, François Wendel, Calvin: The Origins and Development of His Religious Thought, tr. Philip Mairet (London: Collins,1973), 294.


이미 본 바와 같이 칼빈은 credo ecclesiam에서 가시적 교회와 비가시적 교회를 동시에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의 교회론에 나타나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비한 연합체로서의 교회는 단지 "하나님의 제정명령이라는 성격을 가지지 않은 순수한 사람들의 교제(a pure communion of persons which has nothing of the character of an institution about it)"가 아니다. Emil Brunner, The Misunderstanding of the Church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53),


17. 그것은 플라톤식 철학적 연합이 아니라 성경적인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연합에 기반한다. Wilhelm Niesel, The Theology of Calvin, tr. Harold Knight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56), 192.

기독교 강요의 초판 이후 칼빈의 가시적 교회에 대한 관심은 점점 더 증폭되었다. 칼빈의 초기 교회관에 대해서는Alexandre Ganoczy, Calvin, Théolotien de L’église et du ministère (Paris: Les Editions du Cerf, 1964), 184 ff. 참조. 1559년 강요에서도 여전히 "교회의 기초는 하나님의 은밀한 선택"에 있다는 사실이 강조되나(Inst. 4.1.2, 7, CO 2.746-747, 752-753)’ 이곳에서 칼빈은 가시적 교회의 표지, 권위, 사역, 구조와 교회 입법과 사법에 주된 관심을 쏟는다.

가시적 교회를 칭하면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교회는 어머니가 된다고 말한다("quibus ipse[Deus] est pater, ecclesia etiam mater sit") (Inst. 4.1.1, CO 2.746). 믿음의 목표에 이를 때까지 성도들은 아이들과 같아서 어머니의 돌봄이 필요하다(Inst. 4.1.1, CO 2.746).". . . in cuius sinum aggregari vult Deus filios suos, non modo ut eius opera et ministerio aluntur quamdiu infantes sunt ac pueri, sed cura etiam materna regantur donec adolescant, ac tandem perveniant ad fidei metam." 어머니인 교회의 품에서 양육받지 않고 "학교(schola)"인 교회에서 배우지 않는다면 진정한 구원에 이를 수 없다. 어머니의 가슴이 아니면 죄사함과 구원의 소망이 없다(Inst. 4.1.4, CO 2.749). ". . . quando non alius est in vitam ingressus nisi nos ipsa concipiat in utero, nisi pariat, nisi nos alat suis uberibus, denique sub custodia et gubernatione sua nos tueatur, donec exuti carne mortali similes erimus angelis. Neque enim patitur nostra infirmitas a schola nos dimitti, donec toto vitae cursu discipuli fuerimus. Adde quod extra eius gremium nulla est speranda peccatorum remissio, nec ulla salus teste Iesaia (37:32) et Ioele (3:5)."


교회의 어머니 되심은 성도들이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자라감으로 설명된다. 곧 성도와 교회를 세우는 것(aedificatio)으로 특징적으로 표현된다.


칼빈은 이러한 교회의 특성을 그리스도의 계속적 중보를 통한 돌보심으로 이해한다. 이하 칼빈의 설교에서 우리는 그가 어떻게 the so-called extra Calvinisticum을 그리스도의 계속적 중보를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The so-called extra Calvinisticum은 개혁주의 신학자들과 루터란들의 성찬 교리에 대한 논쟁으로부터 생겨난 개념이다. 루터란들은 칼빈의 성찬 교리가 그리스도의 영적인 임재를 육체적인 임재와 동일시 함으로써 자신들의 속성 교통(communicatio idiomatum)에 관한 이론과 배치(背馳)됨을 지적하면서 이를 "extra Calvinisticum"이라고 폄하하였다.

The so-called extra Calvinisticum은 이와 같은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extra Calvinisticum"이 칼빈의 신학, 특히 기독론과 관련하여 체계화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이론이다.

The so-called extra Calvinisticum은 칼빈이 성찬 교리를 전개하고 승천 후에도 계속되는 그리스도의 양성적 중보를 설명하면서 etiam extra carnem(순전히 초육체적인) 영역에 영적이나 실제적인(spiritualis sed realis) 임재를 신학적으로 적용한다는 측면에서 그 정당성이 인정되어 왔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부족한 것들을 나눠주실 수 있도록 간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가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너희를 위하는 나의 몸이니라. 이것은 너희들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흘리는 바 나의 피니라." 주님께서 이를 행하심은 그가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 안에 거하심을 알게 하려 하심이다.

우리가 그 자신의 실체로 살게 하려 하심이다.

몸의 연합이 그로부터 나오고(la liaison du corps procede de luy), 그는 우리의 양식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다.

우리의 영적인 삶에 있어서 은혜와 은사가 부족할 때 우리가 우물되신 그리스도로부터 물을 긷게 하려 하심이다.

우리가 복음이 가르쳐 준 믿음으로 인내하며 그에게 의지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점점 더 강해지고 이러한 모든 은혜에 대한 믿음을 점점 더 확고하게 갖게 됨을 느끼게 된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불완전함과 연약함이 다 사라져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의 영광을 즐거워할 때까지 계속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John Calvin, Sermons onthe Epistle to the Ephesians, tr. Arthur Golding (London, 1577), rev. tr. Leslie Rawlinson and S. M. Houghton (Edinburgh: Banner of Truth, 1973), Eph. 4:15-16 (404, CO 51.592). 이하 설교는 Serm. 성경 장.절로 표기.


그러므로 비록 위선자들과 흠과 연약한 부분들이 있는 사람들이 많을지라도 우리는 교회를 통한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연합에 지고한 가치를 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가르침과 다스림을 거역하는 사람은 곧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운 사역자의 가르침을 거역하는 자는 그의 가르침에 나타난 하나님의 얼굴을 지워 버리는 것과 다름 없다. 왜냐하면 교회의 가르침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 감(in aedificationem corporis Christi)"이며 이 가르침에 순종함으로써 성도는 "교회의 머리인 그리스도에게로 날마다 자라가야 하기(adolescamus in illum per omnia, qui est caput, nempe Christum)" 때문이다(Inst. 4.3.1, CO 2.776-778). 그러므로 교회에서 "복음의 사역보다(ministerio evangelii)" 더 귀하고 영광스러운 것은 없다(Inst. 4.3.3., CO 2.779). "교회론을 다룸에 있어서 칼빈만큼 그리스도 아래에서의 사역을 고상하게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Geddes MacGregor, Corpus Christi: The Nature of the Church according to the Reformed Tradition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58),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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