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거짓 회개는 어떤 것인가?
거짓 회개, 또는 위선적인 회개는 세상적인 회개, 즉 이 세상을 좇아가는 근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현세의 삶과 관련하여 세상적인 것을 생각하고 염려하는 동기에서 기인하는 죄에 대한 근심이다. 또는 기껏해야 내세에서의 자기 "자신의 행복"을 생각하는 근심으로서, 죄의 본질에 주의를 기울인 올바른 근심은 아니다.
(1) 거짓 회개는 죄에 대한 견해의 변화, 즉 참된 회개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견해의 변화에 토대를 두지 않는다.
거짓 회개는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도, 우리는 죄가 악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로 인하여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한다. 죄악이 자기의 명성에 크게 영향을 끼치리라는 것, 또는 우리의 생활을 위험하게 만들 것임을 안다. 다시 말해서, 만일 우리의 감추어졌던 어떤 행동이 드러난다면 우리 자신이 치욕을 당하게 되리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몹시 두려워하고 괴로워한다. 사람들이 이렇게 세상적인 근심을 하는 것은 그 저변에 세상적인 것을 생각하는 마음이 깔려 있기 때문인데, 우리는 이러한 일을 흔히 볼 수 있다.
(2) 거짓 회개는 이기심에 그 토대를 둔다
사람이 회개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자신이 행한 죄의 악한 결과가 자신에게로 돌아옴을 알게 되거나, 자신이 범한 죄로 인하여 불행해졌기 때문에, 또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는 것이 두려워서, 자기 가족이나 친구들을 상하게 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죄로 인하여 현세에서나 내세에서 어떤 피해를 당할까 두려워서 행하는 일시적인 후회에 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행하는 회개는 아주 이기적이다. 물론 때로 양심의 가책, 비통하고 극심한 가책을 느낄 수도 있지만, 진정으로 회개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양심의 가책은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진노나 지옥의 형벌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나 두려움도 이기심의 발로에 지나지 않는다. 두려워하지만 그 심중에 죄를 미워하는 마음, 혐오하는 마음이 없으며, 죄가 무한히 악한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그 확신에 따라 생활하려는 마음이 없다.
IV. 거짓 회개, 위선적인 회개는 어떻게 식별하는가?
(1) 거짓 회개는 죄에 대한 감정이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있는 상태이다
죄를 향한 성향이 깨지지 않고 정복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다. 죄의 본성에 관한 감정이 변화되지 않을 뿐 아니라, 여전히 죄를 향한 욕망을 느낀다. 이런 사람은 죄를 피하되, 죄를 혐오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2) 거짓 회개는 사망을 초래한다
거짓 회개하면 결국 위선적인 자가 되어 자신의 죄를 은폐하게 된다. 참 회개를 한 사람은 자기가 회개했다는 것, 자기가 죄인이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린다. 거짓 회개한 사람은 변명과 거짓말로 죄를 감추며, 회개한 것을 부끄러워 한다. 그는 속죄를 원하는 사람들이 앉는 앞 좌석으로 나오라고 청함을 받으면, 여러 가지 변명과 구실로 자기의 죄를 감추고 미화시키며 그 흉악함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한다. 지난 날의 행동에 대하여 말할 때면, 듣기 좋은 말로 부드럽게 말하곤 한다. 우리는 이런 사람이 자기의 죄를 계속하여 은폐하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거짓 회개는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다. 이런 식으로 계속 거짓 회개를 하면 결국 하나의 죄를 숨기기 위하여 또 다른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심중에 거리낌이 되고 있는 죄악을 솔직하게 터놓고 꾸밈없이 회개하지 않고, 회개에 어울리는 고백을 그럴듯한 말로 구변이 좋게, 마지못해 점잖을 빼며 말하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전혀 자신의 죄악을 고백하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가? 누군가와 함께 우리의 죄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우리의 근심은 세상적인 근심에 지나지 않으며 죽음을 이루는 근심일 뿐이다. 우리는 죄인들이 자기의 죄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피하는 것을 자주 본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스스로 열렬한 진리 탐구자라 자칭하고, 그러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기대한다. 지옥에서도 그와 같은 종류의 근심을 볼 수 있다. 의심할 여지없이 지옥에 떨어진 불쌍한 영혼들은 모두 하나님의 눈을 피하려고 한다. 천국에 있는 성도들에게서는 그러한 근심을 찾아볼 수 없다. 천국 성도들의 근심은 분명하고 꾸밈이 없으며 충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그러한 근심은 참된 행복을 이루는 것이다. 성도들은 행복으로 충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에 대하여는 깊이, 그리고 공공연하게 근심하며, 이 근심이 용솟음쳐 나온다. 그러나 세상적인 근심은 그 자체를 부끄럽게 여기며, 비천하고 비참한 것으로서 결과적으로는 죽음을 초래한다.
(3) 거짓 회개하면 행동이 부분적으로만 변화된다.
세상적인 근심으로 인하여 행한 회개에 따른 행동의 변화는 오직 그 사람의 깊이 뉘우친 부분에 한해서만 이루어진다. 아직 그 심령이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이 깊이 뉘우쳤던 중요한 죄들만 피하려고 애쓸 뿐이다.
이제 막 개심한 개종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만일 그가 미혹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행동의 변화는 부분적인 것에 그칠 것이다. 물론 어떤 면에 있어서는 변화되었지만, 이직 그릇 행하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이런 사람과 사귀면, 그가 죄를 민감하게 의식하며 전율하고, 복음의 정신에 위배되는 모든 일 안에서 죄의 정체를 재빠르게 감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는 어떤 일에 관해서는 엄격하고 재빠르게 감지하지만 다른 일에 대해서는 그 행동이 흐트러져 있고 견해 또한 애매하며, 모든 죄에 관하여 그리스도의 정신을 전혀 나타내지 못하는 것도 발견하게 될 것이다.
(4) 거짓 근심에서 나온 변화는 일시적이어서, 옛 상태로 되돌아가곤 한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옛 죄 속으로 계속하여 다시 빠져들어 간다. 그 이유는 죄를 향하는 성향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다만 두려움으로 인하여 죄가 억제되고 저지되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소망을 품고 교회 안에 들어가면, 그의 두려움은 감소된다. 그리고 점차 이 억제의 생활이 싫증나서 머지않아 과거의 죄악된 생활로 돌아가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겪었던 어려움도 바로 이런 것이었다. 그들이 끊임없이 우상숭배를 비롯한 여러가지 죄로 되돌아갔던 것은 바로 이런 경향 때문이었다. 그들의 근심은 세상적인 것에 불과했다. 지금도 교회 어디에나 이런 세상적인 근심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개심하여 교인이 되어 신앙생활을 하지만 곧 다시 과거의 생활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그들은 그러한 상태를 믿음이 식었다거나 배교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과거나 현재나 죄를 사랑하고 있으며, 기회만 주어지면 다시 죄 속으로 되돌아간다. 돼지가 더러운 돼지 우리에서 뒹구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이 점을 철저하게 인식해야 한다. 기독교 신앙에서 중요하게 여겨야 할 모든 준비와 출발점은 여기에 그 토대로 두고 있다. 사람들은 죄에서 깨어나서 뉘우친다. 그리고 점차 소망을 갖게 되고 차츰 거짓된 안심에 빠지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아주 죄에 빠져 멀어져 버린다. 그들은 교회에서 낙오되지 않으려고 대단히 조심하였을 것이나 죄의 근원들이 깨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옛 생활 방식, 즉 죄 속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사치한 치장을 좋아했던 여자들이 회개한 후에도 여전히 그것을 사랑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여자들은 차츰 리본이나 외양을 화려하게 꾸며주는 허영으로 되돌아간다. 돈을 사랑했던 남자가 회개하고서도 여전히 돈을 사랑한다면, 그는 곧 옛 생활로 되돌아간다. 그래서 회개한 뒤에도 교인이 되기 전에 하던 대로 사업에 몰두하고 세상적인 것들은 아주 탐욕적으로 추구한다.
사회의 각 분야를 두루 살펴 완전히 회개한 개종자들을 찾아 보라. 개심하기 전에 그들을 괴롭히던 죄들이 그들과 거리가 아주 멀어졌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진정으로 개심한 사람은 옛날에 괴롭히던 죄에 다시 빠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죄를 매우 미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미혹되어 있고 세상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항상 같은 죄로 돌아갈 것이다. 사치한 치장을 사랑하던 여자는 다시 온통 화려하게 치장하고 과거에 하던 생활 속으로 단숨에 빠져든다. 죄의 근원이 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법을 마음으로부터 완전히 몰아내기 않았기 때문이며, 마음 속으로는 항상 불법과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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