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교회 김종대목사
베드로전서 1:13~17
베드로전서는 당시 로마가 주는 무서운 핍박속에 죽음을 언제 당할지 모르는 성도들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을 섬겨도 성도에게 고난이 오고 핍박이 오는데 이 모든 것을 예수님을 바라보는 산소망으로 이기고, 기쁨으로 이기며, 또한 예수님과 날마다 문자와 핸드폰으로 커뮤니케이션 하면서 사랑으로 이기라고 12절까지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핍박을 당하고 있는 크리스찬들은 상당한 오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성찬예식을 하지 않았습니까? 이 성찬식을 당시의 세상 사람들은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 그러니까 이걸 오해 해가지고 기독교인들을 사람잡아 피, 살먹는 식인종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당시에 꽤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크리스찬들은 잡아서 때리고 죽여도 괜찮다 이런 생각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마치 이런 것입니다 여행에서 만난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아냐고 물어보면...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이 어디에 붙었는지도 모르지만 한국에 대해서 외국인들이 한가지는 안답니다. 뭘까요? "개고기를 먹는 나라." 고로 야만국가 - 한국인 =개고기
마찬가지로 당시 로마인들에게 있어 기독교인들은 식인종과 비슷한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사람들,, 이 정도로 여겨졌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죠~ 교회다닌다 하면 많은 사람들이,, 교회 다니는 인간들은 자기 밖에 모른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하더라,,,, 이런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가운데서 당시의 성도들에게 베드로 사도는 어떻게 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까? 15" " 예~ 거룩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거룩.. 여러분 거룩이 무슨 뜻입니까? "거룩이란 구별된다, 다르다" 이런 뜻입니다. 즉 세상과 세상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과 구별되게, 좀 차원이 다르게 사는 것 이것이 거룩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애기가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 한 분이 사자에게 쫓기고 있었습니다. 이 긴박한 상황에서 그 목사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으나 사자를 따돌리기가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게다가 앞은 막다른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 하나님 아버지 저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저를 쫓아오는 사자를 크리스천으로 바꿔 주십시오'
그러자 이게 웬일입니까? 달려오던 사자가 갑자기 멈췄섰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이제 살았구나 비로소 한숨을 쉬며 주여~ 감사 합니다 하고 있을 때, 사자는 점잖게 목사님 쪽으로 다가와 하늘에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물론 웃자고 한 애기입니다. 믿지 않는 이들은 어려울 때 당황하고 이리 저리 뛰어다니지만 원망하고 불평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존재이기에 세상과는 다른,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성도라는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거룩한 성,, 무리~ 도" 즉 세상의 사람들과는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이란 뜻입니다. 교회는 성전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 세상의 다른 건물과는 구별된 건물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성경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세상의 다른 책과는 구별된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거룩이란 세상과 구별됨을 가리킵니다. 다름을 가리킵니다. 왜 베드로 사도가 성도들에게 거룩하게, 다르게, 틀리게 살라고 그럽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거룩하게, 세상과는 차원이 다르게 살므로 말미암아 세상 사람들이 성도들을 가리켜 무슨 식인종이니, 이기적이니 하는 오해를 깨끗이 불식시키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두 가지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도 예외가 없는데 하나는 쫓겨다니는 인생이요, 또 하나는 부름 받은 인생입니다.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이유도 모르는 채 어떤 목표와 목적을 향해 쫓기고 있는 쫓겨다니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쫓겨다니는 인생을 살기 쉬운데 그 증상은 무엇입니까?
1) 먼저 쫓겨 다니는 사람은 오직 성취함으로써만 만족을 얻습니다! 즉 이런 사람은 성취를 통해서 쾌감을 얻으며 오직 목표달성을 해야만 다름 사람의 칭찬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과정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목표, 결과, 성취가 중요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서울을 가는데 있어서도 과정보다는 오직 모로 가도 서울만 일찍가는 데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서울을 가는데 있어서 아름다운 산과 강을 구경하며, 맑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에 여유를 갖는 것을 이런 사람들은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오직 도착만이 전부일 뿐 여행자체는 무의미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2) 두번째로 쫓겨 다니는 사람은 항상 남의 평판에 집착을 하게 됩니다. 즉 쫓겨다니는 사람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누가 알아줄까~ 또 어떻게 하면 자기 분야의 높은 사람들과 눈에 들 수 있을까 하는데 관심을 둡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이기 위해서 옷이나, 행동이나, 자기 위치를 아주 민감하게 표현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나라의 사람들이 차 크기에 그렇게 민감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남의 눈에 쫓기는 사람이기에 그렇습니다.
외국 사람들이 우리 한국의 대학에 놀러오면 기절할려고 한답니다. 왜냐하면 한국 여학생들의 대부분의 옷차림이나 화장으로 중무장한 얼굴을 보면 학생이 아니라 결혼식을 앞둔 신부의 모습이기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교회 여학생들은 안그러지만 왜 그럽니까? 남의 눈과 평판에 쫓기는 인생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3) 세번째로 쫓겨 다니는 사람은 절제되지 않은 팽창욕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런 사람들은 자기가 이루어 놓은 일에 대해서 전혀 만족함이 없습니다 자기의 성취를 기뻐할 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목표로 금새 다시 끌려다닙니다.
에이라는 목표를 달성했으면 금새 다시 비를 달성하러 가야합니다. 다시 시, 디,, 그는 결코 만족하는 법이 없이 더 능률적인 방법, 더 좋은 결과, 더 깊은 영적체험들을 추구하면서 끊임없이 긴장하고 계속 조바심 내는 가운데 인생을 끌려다니는 것입니다
4) 네번째로 쫓겨 다니는 사람은 전인적인 인격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성공이나 성취에 너무 몰입해 있기 때문에 이를 멈추고 잠깐이나 자기 내면의 인격이 과연 지금 자기가 하는 일과 호흡과 보조를 맞추고 있는지를 스스로 물어볼 시간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내면의 인격과 자기 외면의 활동간에 점점 간격이 벌어져 감으로써 나중에는 남을 속일 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속이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성공의 지름길이라면 자기의 양심을 속이는 일에도 무감각해지고, 윤리적 타락도 감수하면서 결국에는 무서운 현실주의자기 되는 것입니다.,
몇 일전부터 서울대교구 재직중인 천주교의 허근 신부(52)가 평화신문’에 ‘허근 신부의 알코올 탈출기’연재를 시작해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 글에서 그는 고백하기를 1980년 사제서품을 받은 뒤 추기경 비서와 서울 상계동, 면목동 등의 주임신부로 활동해왔습니다. 그러나 그가 느끼는 날마다의 감정은 ‘절대고독….이었습니다.
성직자로서 남에게 말하지 못할 고독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목사이기에 아내에게,, 사랑하는 가족에게서 어느정도 그런면을 해소합니다. 아이들 재롱(피로 풀림 -고독하여 날마다 베개 작살내고 있는 사람덜 얼른 결혼덜),,
그러나 독신이었던 허 신부님이 절대고독을 이기기 위해서 택한 방법은 술이었습니다. 그는 고백하기를 “한때 술을 먹으면 앉은 자리에서 소주 8명, 맥주 24병을 위에 쏟아 부어넣곤 했다. 그리고 그 술은 이슬비가 몸을 적시듯 서서히 나의 몸을 파괴했고, 결국에는 영혼까지 무너뜨렸다”고 고백했습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그는 고독을 해소하기 위한 목표를 위해서 자기 내면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고독을 달래기 위해 목표라면 성직자임에도 양심과 인격의 소리에도 무감각해지도록 술에 끌려 다녔다는 것입니다.
5)다섯번째로 쫓겨 다니는 사람은 사람을 다루는 기술이 서툴고 미숙하다는 것입니다. 왜요? 선천적으로 사람과 원만히 지내는데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항상 사람보다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자기 목표에 별로 도움이 안된다 싶으면 주위의 사람들에게 매우 무관심할 뿐 아니라, 그들을 장애물로 여겨 버립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쫓겨다니는 사람들을 이렇게 평가하면서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떠나게 됩니다 "이 사람과 일하기란 참으로 비참한 일이지만 이 사람은 틀림없이 그 일을 해내고 말거야" 그러면서 "나쁜놈 하며" ~ 이를 갈고 떠나요~
여러분 주위에 혹시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반감을 품고 떠나는 일이 잦습니까? 바로 내가 쫓기는 사람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럼으로 여러분 작은 이익보다는 사람을 택하십시오. 주님께서도 온 천하보다 한 생명이 한사람이 귀중하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6) 쫓겨 다니는 사람은 아주 경쟁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을 자기 라이벌로 보고 자신이 상대방을 꼭 이겨야 하고 유능해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7) 쫓겨 다니는 사람은 반대나 불신에 부딪히면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격렬한 분노를 품고 있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이 자기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거나, 개선안을 내거나, 비판의 빛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무섭게 분노를 폭발시키는 사람입니다.
8) 마지막으로 쫓겨다니는 사람은 비정상적으로 바쁘다는 것입니다 늘 바뻐요. 항상 바뻐 가지고 가족관계, 친구 관계 같은 일상적인 관계, 그리고 심지어는 하나님과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그들 자신과의 관계마저 돌볼 겨를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쫓겨 다니는 사람들은 항상 뭔가를 계속 성취해야 하니까 계속 바쁘게 돌아다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힙니다. 그래서 자신의 꽉 짜인 스케줄표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인상적으로 보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최대의관심사에는 하나도 안바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속해 있는 20대에 제일 관심이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성입니다. 남자 얘기, 여자 애기 결혼 얘기 하면 눈이 동그래집니다. 30대는 직장이나 이런 것 관심이 있고 40대가 되면 먹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밤낮 먹는 얘기를 합니다. 어디 가서 뭐 먹을까…… 먹기 위해서 목포까지,여수까지 성지순례를 갑니다. 세발낙지, 뱀탕 먹으러 갑니다. 오십대쯤 되면 명예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회장, 원장…… 명함이 시끌벅적합니다. 명예에 의해서 움직입니다.
이런데는 안 바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를 비롯해서 자기의 관심사가 아닌 모든 인간관계에는 바뻐지는 것,, 쫓겨다니는 사람의 특징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그토록 집요하게 목표를 향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뛰니까 외면적으론 성공한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그런데 쫓겨다니는 사람들은 내부적으로는 모든 것을 다 잃어가고 있습니다. 쫓겨다니는 그들은 위기가 닥치면 와창창 무너지는 인생이 됩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의 첫 번째왕 사울입니다. 사울은 젊은 나이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의 뛰어난 외모와 가정의 환경은 그가 일찍 성공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울은 왕이 된 이후로는 그 왕이라는 자리에 쫓기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 왕위 유지에 방해되면 그가 사위라도 창으로 찔러 죽이려고 합니다. 마음이 조급해지니다. 분노를 폭발합니다. 그리고 말년엔 원수를 찾느라 숲속을 해메는 자제력을 상실한 인간이 되고 결국에는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말았습니다. 왜입니까? 그는 왕이 되었지만 한번도 자기의 내면세계, 자기의 영적인 삶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번도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게 자기를 정리하고 되돌아볼 시간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쫓겨다니는 사람의 반대편에 누가 있습니까? 바로 부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부름받은 사람의 대표적인 모델은 세레 요한입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예수님을 소개하던 세례요한에게서 우리는 부름받은 사람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먼저 부름 받은 사람은 자신이 청지기임을 의식한다는 것입니다, 즉 쫓기는 사람은 뭔가를 소유하려고 발버둥치지만 부름받은 사람은 소유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것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쫓기는 자는 뭔가를 소유하면 그것을 지킬려고 발버둥치지만 부름받은 사람은 자기가 소유한 것을 잃더라도 내면세계는 더 강해진다는 사실입니다. 대신에 쫓겨다니는 사람들은 자기가 애착을 느끼는 것들을 잃으면 절망합니다.
2) 부름 받은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인 알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자기는 따르는 사람들에게 자기는 메시야가 아니라고 분명히 몇 번이나 말했습니다. 그럼 세례 요한은 누구라고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오빠부대들이 자기 이름을 연호하며 따르더라도 자기는 예수님을 소개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런데 쫓기는 자들은 자기가 누구이냐와 무엇을 하고 있느냐를 구분하지 못함니다 그래서 쫓기는 사람들은 인기가 올라가고 자기 목표를 달성하면 자기가 누구인줄을 잊어버리고 예수님의 자리에 설려고 합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자기가 누구인줄을 알았습니다. 어떻게 세례요한은 항상 자기가 누구인줄 평생 잊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이 상황을 표현하기를 "군중이 울리는 박수갈채보다 그의 내면을 울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더 컷을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날마다 문자 주고 받는 인생, 전화통화 하는 인생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고 자기의 위치를 지키게 됩니다.
3) 마지막으로 부름 받은 사람은 요동치지 않는 목적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즉 세례요한은 자기의 역할을 세상에서 잊어본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쫓기는 사람들은 자기가 주인공이 될려고 발버둥치지만 세례요한은 자기가 예수님의 들러리라고 하는 사실을 결코 잊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소개한 뒤로는 조용히 기꺼이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고 있음을 보게됩니다. 쫓기는 사람 같으면 자기가 인기가 좋으니 자기가 메시야가 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자기의 목적이 "예수님은 흥하게 하고 자기는 망하는 것"임을 알았고 살면서 끝까지 그 자세를 견지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과연 어느 쪽입니까? 쫓기는 인생입니까? 아니면 부름 받은 인생입니까? 다음의 질문에 스스로 한번 답해보시면 내가 어느 부류에 속하는지 금새 알 수 있습니다 " 무엇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쉬지 않고 움직이게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왜 그 모든 일들을 하고 있습니까?" 그 일을 통해서 과연 무엇을 얻기 원하십니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빼앗기면 여러분은 어찌 반응 하시겠습니까?"
여러분~ 성경은 부름받은 인생을 사는 사람을 거룩한 인생, 거룩한 삶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부름받은 인생, 거룩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의 성취나 직업상의 안정과는 무관한 평안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세상의 사람들이 직업을 잃고, 자기의 성취한 것을 잃으면 정신적 전신불구자가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직업을 잃었다고 절망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다고 자살하고,,,, 왜입니까? 그 이유는 그들이 자기의 영적인 내면이 아니라 일, 보이는 현상이라는 기반위에 그들의 삶을 쌓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쫓기는 인생이 아니라 거룩한 인생, 부름받은 인생을 살아가길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대부분은 쫓기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쫓기는 인생이 아니라 부름받은 인생을 살 수 있습니까? 날마다 하나님께 시간을 내어드리십시오, 그리고 외부의 여러 활동으로 헝클어진 여러분의 내면세계를 정돈하십시오, 기도로 정돈하고, 말씀으로 정돈하고 그리고 예배로 정돈하기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쫓기는 인생이 아니라 날마다 기도로 말씀으로 자기의 내면세계를 돌아봄으로 부름받은 인생, 거룩한 인생을 살아가는 귀한 주님의 종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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