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40:27-31
주를 앙모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주를 앙모하는 사람들은 예배가 회복된 사람들입니다 주를 앙모하는 사람들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지겹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매일 기도하고 매일 말씀듣고 찬양하며 사는 것이 싫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좀더 새로운 것이 없을까 하고 찾는 사람들이 있거나 지겨워서 그만두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0년을 한결같이 매일 같은 방법으로 주여를 부르며 통성으로 합심하여 기도하자고 강단에서 외쳤습니다
지겹습니다 그리고 조금 쉬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기 보다는 세상으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세상은 늘 새롭습니다 세상은 늘 우리들에게 호기심을 갖게 합니다
그 호기심은 그를 세상가운데로 이끌고 세상에 것을 취하도록 하게 합니다
세상이 주는 호기심은 유혹일진데 그것이 좋기만 하다는 이유로 따라가고 싶어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망해도 좋으니 하고 싶은 것을 하다가 죽고 싶다고 말합니다
굉장히 어리석지요 미련하지요 바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호기심을 갖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하여 나가는 곧 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은 곧 승리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의지하는 하나님은 강하십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땅 끝까지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피곤하지도 않으시고 곤비치도 않으시고 명철이 한이 없으십니다.
앙망, 앙모라고 하는 말은 일상적으로 흔히 쓰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말은 자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뜻을 잠깐 살펴보면 앙망이란 말은 “바라고 기다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앙망한다, 여호와를 앙모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믿고 바란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의지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말씀입니다.
어렵더라도 지겹더라도 괴롭더라도 재미가 없을지라도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 못하였다고 할지라도 끝까자 하나님을 의지하시며 찾으시고 바라보시며 기다리시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앙망하면 성령의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도와주시고 사랑의 영, 은혜의 영, 지혜의 영이 여러분과 함께 하셔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고 주님 앞에 나와서 1년도 아니고 한평생 믿음의 생활하는 것은 배후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자녀를 길러주십니다. 예수를 믿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의 인격과 삶과 이 확실한 우리의 삶은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1-11 말씀하시기를 세상을 경배하고 숭배하러 가는 사람은 마귀에 이끌리어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내가 가서 섬기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에 있는 대로 내가 행하는 것 같지만 마귀에게 끌려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은 마귀에게 끌려가는 삶입니다. 마귀의 종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술집에 도박판에 가는 것 같고 범죄를 내가 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마귀가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 자체는 내 뜻과 내 의지와 관계없이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9장 4절, 신명기 28장 49절에 보면 “독수리가 그 새끼를 기르듯이 보혜사 성령은 우리를 길러주신다.”라고 말씀합니다. 미국에는 독수리 형상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독수리는 새의 왕입니다. 그러나 자기 혼자 왕이 될 수는 없습니다. 자기 힘으로 크는 것이 아닙니다. 어미가 한없는 보살핌과 희생으로 끊임없이 돌보아 독수리를 길러 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를 끊임없이 도와주시고 독수리 같은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를 앙모하는 자 독수리 같이 올라갑니다.
주님을 앙망하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나가는 자에게는 성령께서 도우사 이 악하고 어려운 세상을 살 때에 하나님의 자녀가 유약하고 병들며, 나약한 우리의 다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서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는 실로 강한 것입니다.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능력은 세상적인 육체의 능력이 아닙니다. 성령이 오실 때 주어지는 능력만이 참 능력, 이 세상을 이기는 능력, 오직 하나 성령의 충만함에서 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힘 있는 자가 다 실패해도 성령으로 함께 하는 사람만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스가랴 4장 6절에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어떤 힘으로 해결하고 감당해야겠습니까? 성령의 능력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위대한 인물은 자기가 세상을 이길 수도 있지만 세상으로부터 오는 공격도 잘 받아냅니다. 모세 보십시오. 바로 왕만 이겼습니까? 바로를 이기는 것보다 열배나 더 큰 시련 어려움이 많이 왔습니다. 얼마나 수많은 펀치가 날아와도 모세는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보호만 받았습니까? 다윗이 물맷돌로 골리앗만 때려서 넘어뜨렸습니까? 그것 하나뿐입니까? 자기에게 오는 어려운 물맷돌은 천개, 만개 더 많았습니다. 그래도 다윗은 끝끝내 이겨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기사와 이적과 능력만 행했습니까? 욕이라는 욕은 다 얻어 먹었습니다. 침 맞고 마지막에는 십자가 위에 죽으시기까지 합니다. 다 당하는 것을 잘 당해야 됩니다. 사도 바울도 능력이 물론 많습니다. 바울의 능력은 못한 일이 없지만 바울의 능력에 관한 것은 몇 번 안 나옵니다. 오히려 감옥에 들어가고 환란핍박 당하는 것이 더 많습니다.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습니까? 그러나 어려움을 다 이겨냅니다.
가정생활에 승리하는 가정은 좋은 일만 있어서 사랑하고 이해하며, 관용하고 먹을 것 입을 것 많으며, 직장 좋고 건강해서 행복합니까?
가정에 오히려 슬픔, 실패, 상처, 아픔, 눈물이 앞을 가리고 걷잡을 수 없는 이 어려움이 오지만 이겨내야 행복한 거지,좋은 일만 있어 성공하려는 사람은 이 지상에는 그런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은 어려움이 훨씬 더 많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는 기사, 이적과 능력을 행하고, 예언하고 방언하며, 병 고치는 이런 은사도 본문에 쭉 있지만 고린도후서 12장 12절에 사도 바울은 무엇이라고 그랬습니까? 고린도후서 12장 12절에“사도의 표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좋은 일만 있겠습니까? 자기의 진실한 모습을 보이면서 거기에 감당해 내어야 가정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교회생활에 은혜만 받고 좋은 일만 있으면, 좋은 소리만 들으려면 그 사람이 교회 생활에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그 사람을 들어 쓰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에 오면 이런일 저런일 있어도 다 이겨내는 성도입니다
모든 영광은 싸움에서 옵니다. 모든 아픔 다 경험하고 온갖 망치로 두들겨 맞으면서 그다음에 영광이 주어지는 것이지,쉽게 올라오는 일은 이 지상에 없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왜 좋습니까? 왜 우리가 성령을 받아야 됩니까? 이 세상에 별의별 어려운 일을 성령 안에서 우리는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권능을 주십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는다.”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의 능력을 주실 것을 약속했습니다. “내가 승천하면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며, 하나님의 능력이 너희에게 임하면 뱀을 집어도 독이 없고, 독을 먹어도 독이 없으며, 귀신을 마귀를 쫓아내고 병을 물리치며...” 이런 사도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사도들은 이 능력으로 뱀의 독을 이길 수 있었고 수많은 전염병을 이길 수 있었으며,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증인의 사명을 끝까지 다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해 여러분도 독을 먹어도 독이 되지 않고, 여러분이 뱀에 물려도 뱀이 여러분을 해치지 못하는, 독이 여러분을 넘어뜨리는 못하는 능력이 있고, 질병도 고치고 저주도 물리치는 능력이 있기를 바랍니다.
출애굽기 14장 15절부터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만나지 않습니까? 홍해를 만났을 때 모든 백성들이 원망합니다. “우리 이제 죽게 되었다. 우리를 애굽에서 죽게 하지 왜 여기 데리고 와서 물에 다 빠져 죽게 하느냐?” 모세를 향하여 온갖 원망을 합니다. 모세는 걷잡지 못합니다. ‘이것 어떻게 해야 될까? 정말 죽게 되었구나.’ 그러나 믿음이 없어 망하는 것이지, 물에 빠져 죽는 일는 절대로 없습니다. 내 앞에 적이 왔다 해서 총칼에 죽는 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믿음을 떠나면 길에서 넘어졌는데 죽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는 우리 앞에 있는 어려움은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때 모세를 보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 왜 내게 부르짖느냐? 내가 너에게 능력을 주었는데. 네가 가진 지팡이를 가지고 바다를 한번 내밀어보라.”고 그랬습니다. 바다에 내미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다가 움직이면서, 바다가 육지같이 갈라지면서 이스라엘 60만이 그 바다를 통과하지 않습니까?
고린도후서 6장 2절에 보면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모든 삶을 끊임없이 도와주십니다. 인도하십니다. 내일 길을 알지도 못하는 분이 앞에 가면서 성령을 도와달라고 하면 우리의 길은 잘못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이여! 나의 길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 앞날을 왜 염려하십니까?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염려, 걱정, 죄악을 버리십시오. 불의에서 떠나가십시오. 성령이 도와주십니다. 거룩한 길로 독수리 같이 힘 있게 날 수 있도록 여러분을 위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젊은 사람들도 지칠 때가 있죠. 혹시 벌써 지치진 않으셨겠죠. 젊은 이라도 넘어지고 지치고 성경에 자빠진다는 말도 있더군요
이사야 40:31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의 내용을 곡조 있는 찬송가로 만든 것입니다. 주님을 앙모하는 자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않고 걸어가도 피곤치 않도록 주님께서 새 힘을 주심을 믿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40장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말씀이 펼쳐집니다. 430년간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을 긍휼이 여기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크신 능력으로 그 백성들을 출애굽하게 하신 역사와 시내광야 사막에서 40년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신 섭리를 독수리의 날개로 업어 하나님의 장소로 이동케 하셨다고 표현하셨습니다(출 19:4).
신앙 세계에는 영적인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이 바로 독수리의 힘으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독수리의 힘은 공중의 새들 중에서 제일 강합니다. 갑자기 천기가 험악하여져서 뇌성이 나고 소낙비가 내리게 되면 공중을 날아다니던 모든 새들은 비를 피할 만한 처마와 같은 곳을 찾아 분주하게 피합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오히려 힘찬 날개를 치며 올라 시커먼 먹장구름을 뚫고 창공 위로 날아 빛나는 태양과 화창한 하늘로 나아갑니다.
그렇듯,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능력은 일반 사람들이 갖고 있는 보편적이고 평상적인 능력이 아닌 초자연적인 힘으로 하나님을 앙망하며 믿고 인내하는 자에게 임하게 되는 성령의 능력입니다(고후 4:7-9).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실 때 독수리의 날개로 그 백성들을 업어서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구출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출 19:4).
독수리들은 새끼들을 날게 하기 위하여 새끼들이 어느 정도 자라면 일부러 둥지에서 떨어뜨립니다. 새끼들이 본능적으로 날개 짓을 하다 힘이 부쳐 떨어지게 되면 어미 독수리가 잽싸게 날아와 큰 날개로 새끼들을 받아 안전하게 보호합니다. 그뿐 아니라 새끼들이 오래 졸고 있으면 둥우리를 흔들며 날개로 바람을 일으켜 정신을 차리도록 훈련하며 건강하고 힘센 독수리로 성장토록 수고를 합니다(신 32:11-12)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르게 양육하기 위하여 말씀을 주시고 사랑과 공의를 베풀며 훈련을 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고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을 갖고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하므로 약속의 땅에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하나님을 믿고 앙망하는 자가 되어 우리의 본향인 천국으로 입성하는 자가 되셔야 합니다(신 1:36). 오직 여호와 주님을 앙망하는 자 만이 새 힘을 얻게 되며 승리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시 103:5).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는 안연히 거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망의 골짜기와 험산준령에서 구출하어 쉴만한 물가와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시 23편). 하나님께서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셔서 쉴만한 물가와 푸른 초장에 있게 하셨습니다(사 40:11). 우리가 여호와를 향하여 눈을 들면 창조주의 능력으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의 영혼을 영원까지 지켜주길 것입니다(시 121:7-8).
주를 앙모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첫째, 더 많은 복과 힘을 얻게 됩니다.
마치 독수리가 힘차게 날개 치며 하늘 높이 비상함 같이 주를 앙모하는 자는 올라갑니다. 내려가지 아니합니다. 낙후되지 아니합니다. 퇴보하지 않습니다. 점점 올라갑니다. 하나님이 높여 주십니다. 더 잘 되게 하십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천한 자를 존귀하게, 낮은 자를 높게, 미련한 자를 지혜롭게, 가난한 자를 부요하게, 쓸모없는 자를 쓸모 있게, 죄인을 의인되게 하시며, 죽은 자를 살려내십니다. 점점 잘 되게 높아지게 하시고, 복을 부어 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라.”
영육 간에 복을 주시며 신분을 높여 주시며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이루어 주시는 줄을 믿습니다. 주를 앙모하는 자는 독수리 같이 향상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올라가는 복을 받습니다.
31절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임이요” 여러분! 독수리가 날개치며 창공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저는 노회 목회자 모임에서 철원엘 갔을 때 거기서 독수리가 창공을 향해 올라가는 모습을 본적이 있는데 그때 이 말씀을 실감해 본적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멋지고 힘차던지요! 하나님을 앙모하는 자는 그렇게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는 것 같이 생활이 향상하는 복을 받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사람은 올라가는 힘을 얻습니다. 예를 들면) 세상만 사랑하던 생활을 이기고 의와 진리와 하나님을 구하는 삶으로 올라가고, 명예만 따라다니던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삶으로 올라가고, 받으려고만 하던 생활은 주려고하는 생활로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사람이 달라지는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그렇게 인간의 삶을 위로 끌어올리는 힘이 있습니다.
둘째, 고난과 역경을 이기는 힘이 있습니다.
“주를 앙모하는 자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라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즉 고난을 이기는 힘이 있다는 겁니다. 역경을 당하고 핍박받는 등 상황에 따른 극한 환경 속에서도 지치거나 넘어지지 않습니다. 실망하거나 낙담하지 않습니다. 실패를 거듭할지라도 망하지 않습니다. 독을 마실지라도 화를 입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역경을 순경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고난과 시험이 크면 큰 만큼 축복도 큽니다. 욥기의 교훈처럼 고난이 축복이 되는 전화위복이 있습니다. 주를 앙모하는 자가 결국 승리합니다. 주를 앙모하는 자는 새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달음박질 하여도 피곤하거나 지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새 힘을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① 먼저 생존 경쟁으로 혼신의 노력을 하며 살아가는 상황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말 우리 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너나없이 무한경쟁의 시대에 던져져 있습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얘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직장인들 역시 무한 경쟁의 현장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구하고 변화하고 노력하지 아니하면 남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현대인들은 끝없이 긴장하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입니다. 그러므로 고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피곤하고 때로 지칠 때가 있는 것입니다.
② 뜻하지 않게 당하는 고난과 역경이 그런 상황입니다. 인생은 때로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사고를 만나야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또 어떤 때에는 질병이 닥쳐서 몸이 아픈것도 문제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물질을 감내해야나는 어려운 일을 당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숨가쁘게 뛰어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때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먼저 이런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고 겸손하게 살아야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항력적으로 이런 형편을 만날 때는 최선을 다해서 잘 극복해야합니다
그러므로 불평, 원망, 염려를 조심해야 합니다. 곤고한 상항을 만나면 자동장치가 작동되듯이 이런 것들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는데 이 마음을 잘 극복해야 합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앙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 어려운 때에 정신을차리고 믿음으로 그렇게 주를 앙모하면 주께서 새로운 권능을 주시는데, 그 모든 시련을 이기고 승리하는 권능을 주십니다. 사 43:2말씀과 같이 강을 건널 때에도 물이 침몰치 못하게 하여주시고, 불을 건널 때에도 불꽃이 사르지 못하게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시고 함께하시므로 모든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달음박질 할 때도 힘을 주셔서 곤비치 않게 하는 것은 신앙 생활을 통해서만 받을 수 있는 복입니다.
셋째, 주를 앙모하는 자는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습니다.
반복되는 일상생활 속에서 지루하지도 짜증나지도 아니하고 늘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집안에서 주부들의 반복되는 삶, 날마다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일. 한편 생각하면 얼마나 싫증나고 짜증스럽겠습니까? 이런 답답함이 심각해지면 우울증에 걸리기도 합니다. 직장인들의 매일 반복되는 삶, 과중되는 업무와 어려운 문제들, 상사의 잔소리 등이 얼마나 고달프고 짜증스럽고 힘들겠습니까!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을 겁니다.
그러나 주님을 앙모하는 자는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합니다” 지루한 일상성에서도 행복한 마음으로 충실히 감당할 힘을 얻는 것입니다. 일을 할 때에 감사가 나오고, 가사 일을 할 때도 찬송이 나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보람을 느끼고, 무슨 일을 하든지 하루하루를 충만하게 살고 만족하게 살면서 천국의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어떤 형편이든지 지금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내는 영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 좋은 조건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사람이 받는 고귀한 복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소망하며 의지할 때 주께로부터 이런 은총을 공급받는것입니다.
그러나 주를 앙모하는 자들은 반복되는 삶 속에서도 감사와 생기가 넘치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보혜사 성령,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늘 함께하시고 새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결코 추상이 아닙니다. 관념이 아닙니다. 그것은 복된 생활이고 능력이고 축복입니다. 설 믿어서 그렇지 온전히 주님을 앙망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그런 복을 받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모두에게 이 같은 은혜가 있으시기 바랍니다. 매일 삶 속에서 행복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달음박질하여도 지치지 않는 새 힘, 어떠한 고난과 어려운 환경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힘입으시기 바랍니다. 독수리같이 높이 비상할 수 있는 꿈과 희망이 넘치며 날로 향상하는 축복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를 앙모하는 자는 이 같은 축복을 받을 거라고 하신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Nyskcian들이여 어느 때인들 우리가 하나님 앙모하는 생활을 소홀히 하겠습니가 마는 이와 같은 때에 더욱 주님을 앙망해야 하겠습니다. 예배 드리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영적 독서를 하면서 주님을 앙망합시다. 독수리의 올라감 같이 올라갈 것이요, 달음박질해도 곤비치 아니할 것이요,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