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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현대적 의미

이상규(고신대학교 신학과 교수)


16세기에 일어난 교회개혁운동을 우리는 흔히 ‘종교개혁’이라고 하지만 ‘교회개혁’이라는 말이 더 정확하

다고 본다. 개혁자들의 가장 큰 관심은 하나님의 교회였고, 하나님의 참된 교회건설은 그들의 일관된 개혁

정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종교개혁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더 리포메이션(The Reformation)을 일본에서 ‘종교개혁’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우리가 이 번역을 따랐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교회사를 가르쳤던 호주출신 선교사 왕길지(G. Engel)는 The Reformation을 ‘교회 갱 정사’로 번역했었다. 또 종교개혁은 단순히 교리적인 개혁운동(Reform)만이 아니라 영적부흥(쇄신)운동( Revival)의 성격이 있었다. 교리적인 개혁이 영적 쇄신운동에 의해서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것은 이념화 혹은 이데올로기화 되기 쉽고, 반대로 영적쇄신운동이 건전한 교리적 기초를 지니지 못하면 신비주의적 혹은 주관주의로 전략할 위험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이상적인 교회개혁은 교리적 개혁과 영적부흥의 성격을 동시에 지녀야 하는데 이런 점에서 종교개혁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종교개혁은 16세기의 ‘역사적 사건’으로만 이해될 수는 없다.

데오도 베자가 말했듯이 “교회는 개혁되었으므로 항상 개혁되어야 한.” 이런 정신이 오늘 한국교회로 하여금 종교개혁의 정신에서 한국교회의 반성적 성찰을 요구한다고 볼 수 있다.


성경중심, 하나님 중심이란?


종교개혁은 오도되고 변질된 신학과 교회로부터 성경 본래의 기독교로의 회복운동이었다. 그 근거와 그 출발점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이었다. 그 동안 인간의 이성과 인간의 권위가 성경의 권위를 대신 했으나 개혁자들은 성경만이 유일한 권위임을 천명했다. 이것이 바로 ‘성경 중심’ 사상이다. 성경 중심이 란 말은 성경 이외의 어떤 것도 권위의 근거나 신학의 원천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혁주의 교회에서는 ‘하나님 중심’이란 말을 하는데 이 말은 인간이 중심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를 16세기 상황에서 보다 분명히 말하면 교황이 중심일 수 없다는 뜻이다. 교황이 지상에서 그리스도를 대신하고, 사죄와 은혜의 수여자라는 당시 교회의 주장에 대한 비판이 바로 하나님 중심사상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권위를 대신할 수 없고, 인간이 영광받아야 할 대상 일일 수 없다. 말하자면 성경의 유일한 그리 고 최종권위의 확인과 함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다 는 사실을 재확인한 것이 교회개혁 운동이 가져온 신학적 성취이다.


구원관에 있어서 자의적 혹은 이교적, 율법적, 그리고 보상적 이해나 주장은 교회역사만큼이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영국의 위대한 칼빈주의 교회사가인 윌리엄 커닝헴(William Cunningham)에 의하면 이미 2 세기를 거쳐가면서 성만찬에 대한 잘못한 견해가 대두됨으로서 구원관의 변질을 보여주는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은총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행위로 얻어지는 공로 의 결과라는 오도되고 변질된 구원관은 기독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을 왜곡시켰고, 하나님의 구원행위를 무력화시켰다.


성속 이원론의 극복


종교개혁은 기독교적 삶의 의미에 대해서도 새로운 빛을 던져주었다. 성속(聖俗)의 이원론적 구분이나 성직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는 길이라는 잘못된 가치를 바로잡아 주었다. 루터는 자신이 수도원의 맹세

를 통해 눈물겹도록 감동하였다고 했지만 후일 그는 "수도원 맹세에 관하여"(De votis monaticis)라는 글 을 통해 수도원적인 삶만이 고상하고 보다 거룩하고 보다 가치 있는 삶이라는 주장을 반박하고, 사람이 무슨 일에 종사하던 다 소중한 것임을 석명함으로서 삶의 의미를 새롭게 조망하였다. 이 점이 그의 직업 에서의 ‘소명론’(召命論)인데, 그에 의하면 모든 직업은 위로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이고, 아래로 이웃을 섬기는 행위로 봄으로서 모든 직업은 다 동등하게 의미를 지닌다.


칼빈이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했을 때, 그 주장은 우리 삶의 의 미를 새롭게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거룩한 성화의 삶은 세속으로부터 격리된 수도원에서의 삶이 아니다.

어쩌면 세속화될 수 있는 위험마저 있지만 이 세상 속에서 악과 불의와 맞서 믿음의 선한 싸움(아곤)을 하는 것이 진정한 거룩임을 일깨워 주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 빛이요, 소금이라”고 했을 때 이 말 은 우리가 이 세상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전재로 한 말이었다. 종교개혁은 교리적 개혁(Reform)만이 아니 라 신자의 삶 전체에 의미를 주는 영적 부흥(Revival)의 성격이 있다.


실로 16세기 개혁은 교회와 신자의 삶에 커다란 변화를 주었다. 예배의식이나 제도는 신학을 반영했으므 로 종교개혁 이후 예배당 양식이 달라졌고, 예배 의식이 달라졌다. 의식 중심의 성찬대가 성당 중심부에 있었으나 개혁교회 예배당에서는 강단이 중심에 위치하게 되었고, 성찬대는 그 밑에 두게 되었다. 말하자 면 의식중심의 중세예배는 말씀중심의 예배로 개편된 것이다. ‘그 개혁’이란 바로 교회의 개혁이었고, 이 개혁은 교회적 삶과 신자의 생활 전반에 있어서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한국교회의 문제


그 동안 한국교회는 ‘성장’이라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국내외적으로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왔으나 우리에게는 개혁되어야 할 점들이 적지 않다. 신앙적 혹은 교회적 삶의 제 영역 가운데 어느 한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그것에 절대적 가치를 두게 되면 다른 측면들은 경시되거나 무시될 수밖에 없다. 절 대적 가치를 두었던 그 한 측면이 바로 수적인 ‘성장’이었다. 그래서 성장 아닌 다른 신앙적 혹은 교회적 가치들은 경시되거나 무시되어 왔다. 그 무시되었던 한 가지가 바로 건실한 신학과 윤리적 측면들이었다.

개혁자들의 주장처럼 신학은 교회를 이끌어 가는 터이자 축이었다. 건실한 신학이 없거나, 신학이 잘못 되면 모든 것이 잘못된다. 한국교회는 신학 그 자체를 무시하거나 경시했다.


또 ‘신학 없는 교회’ 혹은 ‘교회 없는 신학’을 추구하는 양극단이 있어 왔다. 신학없는 교회란 건실한 신학 을 경시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인데, 이럴 경우 교회는 목회자 개인의 주관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이럴 경우 교회가 주관주의에 빠지거나 신비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 더 극단으로 가면 기독교란 이름의 비기독교가 될 위험까지 있다. 이런 교회들은 교회의 전통이나 교회사를 무시한다. 교회성장 만 이루면 되지 신학이 필요 없다는 생각은 아주 위험하다.


또 ‘교회없는 신학’이란 교회를 고려하지 않는 신학운동을 의미하는데, 심지어는 칼 바르트(K. Barth)나 폴 틸리히(P. Tillich) 조차도 신학은 "교회를 위한 학문"으로 이해하였다. 그런데 극단적인 자유주의 신학 은 교회를 고려하지 않는다. 교회 건설의 의지 없는 신학은 철학화되거나 사변화되기 쉽고 교회와 무관한 소위 ‘학문추구’일 위험이 있다. 이런 신학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파괴한다. 오늘 한국교회 에서 회자되고 있는 종교다원주의도 이런 유형의 신학이다. 신학적인 미숙 또한 한국교회의 문제로 남아 있다. 아직까지도 성전, 제단, 제물 등과 같은 용어들이 분별없이 쓰여지고 있다.


종교적 권위주의 또한 한국교회의 커다란 문제점이다. 교회 변질의 시작은 직분의 계급화였고, 인간중심 의 고위성직 개념의 출현이었다. 커닝햄이 말했듯이 본래 섬김과 봉사의 직분이 인간중심의 다스림의 직분으로 오인되면서 교회는 급속히 계급 구조로 변질되었다. 교회 구조는 권력구조로 개편되었고, 성직자 들은 이권에 탐닉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교회와 교회 구조를 세속화시켰고, 나그네 공동체인 에클레시아는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안주 공동체로 변질되었다.


교회의 부패와 타락 혹은 세속화를 가져온 두 가지 근본적 원인은 첫째는 교회와 교회지도자들의 권력과 의 야합, 곧 권력에 대한 지나친 야망이었고, 다른 하나는 물질에 대한 지나친 탐욕이었다. 오늘 한국에도 노회, 총회가 지나치게 권력구조로 화해졌고, 세속 정치계와 방불할 정도의 권력 구조가 엽관제도화( spoil system)되어 가고 있다. 우리는 노회장, 총회장이라 하여 ‘장’이라는 교회 직분의 ‘수위성’을 말하지 만 영어에서는 그냥 중재하는 사람(moderator)라고 부르고 있을 뿐이다. 교회 조직의 불의, 교회 문제를 처리하는 치리회의 불의하고 부당한 처리가 우리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성경 말씀처럼 중세교회는 물욕 때문에 영적 눈이 어두워졌다.

루이스 스피츠에 의하면 16세기 유럽 토지의 3분지 1은 교회의 소유이거나 교회의 통제하에 있었다고 한다. 즉 교회는 많은 토지를 소유했을 뿐만 아니라 각종의 헌금제도로 수입을 올렸고, 돈과 권력 때문에 8

살, 11살짜리 아이가 추기경이 되기도 했다.한사람이 4개 도시의 대주교직을 독점하기도 했다. 소위 ‘겸직 제도’와 ‘부재직임제’(absenteeism)가 정당시되고 합법화되어 성직자들의 사치와 탐욕이 가중되었다.


‘유럽의 양심’이라고 불린 성 버나드(St. Bernard)는 교회나 성직자가 부를 통제할 신앙적 자제력이 없으면 차라리 가난해 지는 것이 낮다고 말하고 당시 교회는 그런 영적 통제력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 “교회는 가난해야 한다”고 말했다. 루터는 부(소유)는 분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핍절된 이웃을 위해 분배되지 않는 제물은 ‘소유의 본질’(nature of possession)을 상실한 것들로 규정했다.


결론을 대신하여


결론적으로 말하면 교회의 부패는 성경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 혹은 초기교회의 생활방식이었던 ‘ 나그네성(性)’ 혹은 ‘나그네 의식’의 상실이었다. 중세교회의 문제란 바로 나그네적 공동체여야 할 교회가 안주 집단으로 변질된 결과였다. 교회가 이 역사현실 속에 안주하려고 할 때 세속 권력과 야합하고, 불의 와 타협하고, 신앙적 가치를 무시하게 된다. 한 때 막스주의자였던 폴란드 출신의 망명철학자 레젝 콜라 콥스키는 오늘의 서구사회의 세속화는 기독교가 너무 쉽게 그 고유한 가치를 포기해 버린 결과라고 지적 한 바가 있다. 나그네의식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삶 속에 새겨준 삶의 방식이었다.


이것이 히브리인들의 역사였다.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계속적인 이민과 이동을 통해 이 땅에서는 나그네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줌으로써 보다 나은 본향을 사모하도록 하셨던 것이다. 이 세상이 우리의 영원한 삶의 터전이라고 믿고 살아갈 때, 즉 ‘안주의식’은 개혁을 불가능하게 한다. 히브리서 기자(11:13-16 )는 열조들, 구약의 위대한 믿음의 사람을 소개한 후 ‘저들은 더 낳은 본향을 사모하였다’라고 하였다.

오늘 우리가 이 땅에서는 나그네라는 믿음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지금 한국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교회 공동체에 마땅히 있어야 하는 영적 권위를 회복하는 일이고,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자성(自省)운동이다. 중세말기 성직자의 타락, 그 영적 폐허의 현장에서 나온 경구는 “성직자의 삶은 평신도의 복음이다”(Vita clerici est evangelium laice)는 말이었다. 오늘 우리가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드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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