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의 부흥운동과 그 특징

웨슬리의 시대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하였던 칼빈의 시기보다 2세기후인 18세기였다. 이때 상황은 종교개혁가들이 주장했던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조금씩 왜곡되어 구원은 이미 받았으니 행동은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도덕 폐기론자들이 득세하고 있었다. 게다가 합리주의와 이신론의 영향으로 성경, 기적, 회심, 기도, 그리스도의 신성,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주에 대한 믿음이 심하게 위협받았다. 그리고 18세기의 영국은 청교도 신앙의 쇠퇴와 산업혁명으로 인한 가치관의 변화 등으로 도덕적 침체를 가져왔다. 강단의 설교는 힘이 없고 맥빠진 도덕적 교훈에 불과하였다. 이 총체적 위기에 진젠도르프의 모라비안 같은 대륙의 경건주의의 영향을 받아 일어난 것이 부흥운동이었고, 그 가운데 웨슬리가 있다.


합리주의의 도전

17세기 중반 ‘이성의 시대’라 불리는 새로운 합리주의 사조가 전 유럽을 풍미(風靡)하고 있었다. 웨슬리는 합리주의와 계몽주의라는 한복판에서 살았다. 존 로크와 임마누엘 칸트 등을 비롯한 저명한 철학자들의 논리 즉 하나님의 주권보다 합리성과 인간의 이성에서 하나님을 보려는 시도속에 하나님의 주권과 성경이 권위가 심하게 위협받았고, 이것은 이신론(理神論)으로 발전하여 살아계시면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부인하기까지 되었다. 이러한 주장은 그 당시 지식층들을 사로잡았으며,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영향을 받아 기독교회에서 떨어져 나갔지만, 교회는 이들에 대항하여 반론을 제기할 영적 힘이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합리주의와 이신론의 영향으로 교회는 믿음의 가치를 도덕 생활이나 윤리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18세기의 영국은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암흑기였다.

이신론의 전형적인 대표자는 프랑스 계몽주의자 볼테르(Voltaire,1694-1778)였다. 그러나 종교를 말살하는 것이 그의 목표는 아니었다. 그는 한 때,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를 발명해 내야 할 필요가 있다고까지 말했다. 그의 표적은 미신에 찌들은 기독교를 제거하고 거기에 인간의 이성에 기반을 둔 합리주의적인 종교를 세우자는 것이었다. 그의 눈에 기독교는 세상을 성직계급의 세력 밑에 묶어두려는 음험한 조직이요, 성경의 계시는 무지한 자들을 착취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고 의식을 갖고 있었던 이신론자들은 볼테르 외에도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1732-1797;미국 초대 대통령)과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1743-1826;독립 선언문 기안자) 등이 포함되어 있다.

사상과 신학의 붕괴는 도덕적 파탄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18세기 전반은 도덕적 무질서의 시기였다. 한마디로 부패 그것이었다. 일반대중은 빈곤하였고 무지하였고 잔인하였다. 문학은 저속하였고 상업은 타락하였다. 거리의 집은 4분의 1이 술집이었고 창녀가 우글거렸다. 감옥은 사형수들로 득실거렸고 길거리에서나 후미진 구석에서는 교수대가 흔하게 보였다. 또한 1770년대까지 무려 30만명의 흑인노예를 미국으로 판매하였다. 웨슬리 부흥운동 이전의 영국의 경제적인 여건은 노예무역과 거품경제로 특징 지워지고 당시 영국의 사회상은 도덕적인 마비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영국사회는 음주와 노름 그리고 “The Gin Age"라 부를 정도로 음주벽은 전염병처럼 번져갔다.

이렇게 영적으로 교회가 타락하자 사회의 도덕적인 상태도 악화되었다. 곳곳에 폭도들이 횡행하여 약탈을 일삼았으며, 날이 어두워지면 무장하지 않고는 밖에 다닐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런던에 있는 집들 중 세 집 건너 한 집은 술집일 정도였고, 거리에는 창녀가 들끓었다. 감옥은 죄수들로 가득 찼고 범죄자들의 사형집행이 잦았는데 심지어 적은 액수의 물건을 훔친 사람조차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성령의 불이 임하지 않았다면, 영국 역시 같은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져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악의 물결이 교회를 이길 만큼 승하게 되면 여호와의 신이 원수를 대항하여 기(旗)를 세우시겠다(사59:19) 는 말씀처럼, 그 뒤를 이어 영적 회복과 부흥을 이 땅에 보내신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세 사람-찰스 웨슬리, 조지 휫필드 특히 존 웨슬리를 통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불을 보내사 타락 일로에 있던 영국을 영적으로 소생시키기로 작정하셨다. 이렇듯 합리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영적 암흑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주권적 섭리 가운데서 친히 강림하사 그 영광의 빛을 드러내셨다. 하나님은 1740년대부터 영국에서 존 웨슬리를 중심으로 ‘복음적 부흥운동’(the Evangelical Revival)을, 북미 영국의 식민지(뉴잉글랜드)에서는 조나단 에드워즈를 중심으로 ‘대각성운동’(the Great Awakening)을 일으켰다. 특히 1726년부터 미국독립전쟁이 시작되던 1776년까지 약 50년 동안의 부흥운동을 일반적으로 제1차 대각성운동이라 부르는데(제2차 대각성운동은 찰스 피니를 중심으로, 1792-1875), 이는 단순히 종교적인 부흥운동을 넘어서서 사회?문화?정치 등에 전반적인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각성’(覺醒)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이다.


웨슬리 부흥운동과 그 특징


웨슬리 부흥운동을 살펴보면 몇 가지의 특징이 나타나는데, 가장 현격한 것이 하나님의 신임재의식이 뚜렷이 나타남과 죄에 대한 뼈저린 인식과 각성이었다.


웨슬리 부흥운동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이지만, 하나님 백성들의 기도와 금식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준비된 사람들을 통하여 부흥을 허락하시며, 웨슬리에게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웨슬리는 1720년 6월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하자, 경건주의자들의 책을 통하여 자신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할 것을 결심하였다. 더 나아가 1729년 11월에 웨슬리 형제는 진심으로 경건한 삶을 갈망하여 옥스퍼드 대학 내의 여러 학생들과 함께 엄한 규칙을 정하고, 그대로 살기 위해 애썼다. 그들은 매일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졌고, 매 주마다 성찬식을 하였으며,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금식했다. 그리고 함께 모여 성경을 연구했으며, 주일에는 경건 서적과 신앙서적을 읽었고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열심히 기도했다. 또 정기적으로 죄수들과 환자들을 방문하여 위로했고, 해마다 연말이 되면 회원들은 자기들이 필요한 것 외에는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줄 정도로 청빈하게 살았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학창시절의 삶에 대해 스스로 평가하기를 나는 옥스퍼드에 있을 때 거의 수도사처럼 생활했다고 말한다.1735년 10월 14일 존과 찰스 웨슬리 두 형제는 더 많은 헌신을 하기 위하여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선교에 몰두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악조건이 겹쳐 결국 3년 만에 영국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1738년 1월 24일 영국으로 귀국하던 그는 실패하고 돌아오는 배 안에서 이렇게 적는다.

“식민지 사람들을 회개시켜 신자가 되도록 만들었지만 나 자신은 결코 한번도 회개한 적이 없지 않았던가! 나는 분명히 그동안 풍성한 신앙을 소유하고 있다고 믿었고, 나의 설교는 사람들을 움직였고 수많은 사람들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나는 어떤 죽음이 온다해도 사도바울처럼 죽는것이 도리어 유익하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내 마음이 온통 부패하고 가증스러운 채였던 것을 미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 자신의 행위나 의나 노력만 가지고는 절대로 하나님께 이를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하나님만 의지하지 않고 나 자신의 행동만 의지하고 있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은 성령께서 친히 증거하실 일이지 내가 스스로 해야할 일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13년 동안 경건한 삶을 갈망하여 드린 존 웨슬리의 기도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셨다. 마침내 1738년 5월 24일 내면의 커다란 고민에 쌓인 웨슬리가 런던의 올더스게이트 거리에서 한 작은 집회에 참석하였다가 획기적인 회심을 체험하게 되었다. 어느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강해서문을 읽고 있을 때였다.

“나는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내가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만을 신뢰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분이 나의 죄 심지어 마음의 죄까지도 씻어주시고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건져주셨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 체험은 인간적인 노력의 무참한 실패와 성령의 도우심을 전적으로 입은 대전환이었다. 영원히 기념할 만한 이 날, 그는 그리스도만을 자신의 구주로 신뢰하는 믿음이 생겼고, 예수님이 자신의 죄를 없이 하시고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전의 웨슬리의 사랑관념은 의무적이고 헌신적인 면이 강했다면, 올더스케이트 체험이후부터 웨슬리는 사랑의 기쁨 즉 즐기는 사랑의 관념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이후 두드러진 변화는 이웃사랑에 대한 보다 많은 강조라고 할 수 있다.

1738년부터 시작된 웨슬리의 부흥운동은 이처럼 자신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인식하는데서 출발했다. 이들은 영국국교회의 형식주의와 위선에 대해 초대 교회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비판하였고, 국교회는 이들을 ‘열광주의자’, ‘광신자’라고 비난하며 국교회에서 설교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때 동역자였던 휫필드(George Whitefield, 1714-70)가 웨슬리에게 옥외전도를 하도록 권고하였다. 이 날 이후로 웨슬리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회가 있는대로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다했다. 그는 영국 전 지역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아일랜드, 미국에까지 이르는 전도를 했다. 그는 장소의 제한이나 법률의 장애나 박해와 폭력 그 어느것에도 굴하지 않고 광장, 공장, 탄광, 길거리, 묘지, 선상, 고속도로, 그리고 야외 어디든지 청중이 있는 곳에 찾아가서 전도했다.

수천명 때로는 3만이 넘는 군중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들의 가슴을 후벼팠다. 양복 양장으로 쭉쭉 빼입은 신사 숙녀들이 체면을 불사하고 나뒹굴며 통회했다. 광산노동자들 또한 눈물로 인해 골이진 얼굴로 하나님의 임재속에 기뻐 펄펄 뛰었다. 화장으로 곱게 칠한 숙녀, 잘 차려입은 신사도 밀려오는 하나님의 사랑 앞에 체면을 내려놓고 나뒹굴었다. 강력한 성령의 역사앞에 인간의 자존심, 체면따위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이러한 죄의 찔림으로 인한 통회와 기쁨의 함성이 전 영국, 나아가 대서양을 건너 미국 성결운동의 모체가 되었다.

성령의 역사가 강한만큼 마귀도 활발하게 일했다. 웨슬리는 국교도에 속한 폭도들에 의해 돌에 맞기도 하고 주먹과 몽둥이로 두들겨 맞아 피를 철철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 어떤 핍박도 성령의 불길을 끌수가 없었다. 그는 순회설교자가 되어 평균 하루에 3-4회 설교하며 일생동안 4만여회 설교하였다. 국교회에서 쫓겨난 그는 영국 전역, 아일랜드, 스코틀랜드에서 전도하며 “세계가 나의 교구다”라고 외쳤고 실제로 그렇게 영성적 각성운동은 불길처럼 번져갔다.

이렇게 전도하여 개종(改宗)시키는 일에 대하여 그는 런던의 깁슨주교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 소원은 그들을 어두움에서 빛으로 악마로부터 그리스도에게로, 사탄의 손아귀에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개종하기를 바랄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열정은 곧 주께로부터 온 성령의 감동이며 열심이었으며 이러한 열심은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기 전에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온 세계를 나의 교구로 생각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내가 세계 어느 곳에 가서 있을지라도 구원의 기쁜 소식을 기꺼이 들으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일이 온당하고 정당하며 나에게 허락된 의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 일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셔서 내게 맡기신 일이라는 것을 나는 압니다… 나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명백히 지시하시는대로 종으로서 일할 따름입니다….”(1739년 6월 11일 일기)

그는 1739년 11월 그의 한 친구에게 보낸 서신에 킹스우드에서의 전도의 성과를 다음과 같이 써 보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그들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광경은 이미 바뀌었습니다. 일년 전과 달라서 킹스우드가 이제는 저주와 불경한 소리 때문에 시끄럽지 않습니다. 이제는 술 취함과 더러움과 빈둥거리며 오락이나 즐기는 일 따위는 더 이상 흔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싸움과 다툼과 고함소리와 욕지거리와 분노와 시기같은 것은 없습니다. 거기에는 사랑과 평화가 있습니다. 이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점잖고 상냥하고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큰 소리로 떠들거나 다투지를 않으며… 다만 예외는 그들이 보통 저녁에 한가해질 때 하나님 구세주께 찬양을 드릴 때입니다.”(일기,106-107)

웨슬리는 본래 교회의 권위와 예배의식을 존중하는 고교회(High Church)주의자로서 이런 ‘광신적 흥분’(fanatical excitement) Works, XI, 427-435.

을 원치 않아 언제나 차분한 목소리로 설교를 했지만, 하나님의 권능이 임할 때면 언제나 ‘극도의 감정적 흥분’(excessive emotional excitement)이 수반되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의 신비한 현상들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즉 남녀를 막론하고 비명을 지르기도 하였고, 육체적으로 경련을 일으키기도 하며, 의식을 잃고 쓰러지기도 하였다. 설교할 때 성령의 기름부음이 얼마나 강했던지 그가 중단할 수 없었던 때도 여러 번 있었다. 그리고 설교를 중단했어도 곧 다시 설교하게 되는데 그때는 이전보다 더 큰 능력으로 설교하게 되었다. 그러나 종종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며 울부짖는 소리와 죄 용서함을 받고 찬양하는 소리가 어찌나 큰지 설교를 더 계속할 수 없을 때가 많았다

이처럼 웨슬리의 부흥운동에는 몇 가지의 특징이 나타난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책임의 조화를 토대로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의식과 죄에 대한 각성이 그것이다.


B. 웨슬리 부흥운동의 특징


웨슬리 부흥운동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부흥에 양면성이 있다는 것이다. 부흥이 일어나려면 두 가지 필수적인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하는데, 곧 “하나님의 주권과 준비된 사람”(the sovereignty of God and the preparedness of man)이다.


1.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책임의 조화

부흥이란 하나님이 직접 인간에게 임하시는 행위이다. 거기에는 인간적인 요소가 가미될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의 기질적인 열정이나 흥분 등이 만들어낸 열광주의는 오히려 하나님께 도움이 되지 못하고 부흥의 장애 요소가 된다.

웨슬리 신학에서 면면히 흐르고 있는 맥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다.

사람이 받는 모든 축복은 다 하나님의 은혜, 그 부요하심과 사랑에 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은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없음에도 값없이 주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모두가 비록 사람은 그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거저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받는 것입니다. 『표준설교집』(상), 19.


그리고 웨슬리는 자유를 자기결단의 힘 Works, VII, 228-229.

이라고 정의하면서도 그 자유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참된 가치성을 인정하며 선택할 수 있는 능력 또한 하나님의 절대적 은총 속에 있음을 강조한다. “그럴지라도 나를 돕는 하나님의 은총을 통해서만 나는 선택할 능력을 갖고 있으며 악행과 함께 선행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J. L. 니이브, 『기독교교리사』, 서남동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2), 229.

“내 자신의 본성의 부패 때문에 내 마음을 다스릴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지 않다.” Ibid., 221.


부흥이란 하나님이 직접 인간에게 임하시는 행위다. 하나님의 절대주권 하에 이뤄지는 전적 하나님의 사역이다. 영적 각성이나 부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의 절대주권 안에서만 참된 부흥이나 각성운동이 일어남을 인식하는 일이다. 부흥은 전적 하나님의 사역이다. 인간이 조작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역이다.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일시적인 흥분이나 열정은 마귀의 도구로 악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부흥 혹은 각성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주권이지만 인간 편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에드워즈는 이렇게 말한다.

“유효한 은혜 안에서는 우리가 단순히 수동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어느 정도는 하시고 나머지는 우리가 하는 그런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시고 또한 우리가 모든 것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산출하시고 우리 또한 모든 것을 행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산출하신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유일한 주체시요 근원이십니다. 우리는 다만 합당한 행동자입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수동적이면서도 전적으로 능동적인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책임감 있게 행해야 할 우리의 의무를 배제하지 않는다. 부흥이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주권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은 부흥을 일으키기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으며 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고 가르치거나 어떤 사람들은 부흥이 15년에 한 번씩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잘못된 견해가 부흥에 큰 장애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웨슬리는 ‘믿음만으로’ ‘은총만으로’ 인간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인간이 응답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즉 인간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응답은 의인의 과정에서나 성화과정에서 필요조건이 된다고 본 것이다. 웨슬리가 주장하는 인간의 응답에 대한 강조는 반 펠라기우수주의(semi-pelagianism) 나 가톨릭의 견해와는 달리 성령의 역사에 주도권을 부여하는 것으로서 복음주의적 성경 안에서 조화를 이룬다.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통해 성화되지만 웨슬리는 여기에 인간의 자유의지와 실천을 중요시하고 있다. 복음주의의 특징인 성경에 대한 절대권위와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구원 과정에서 성령의 사역에 대한 확신은 웨슬리 성화론의 중요한 기초를 이루는 동시에 이와 같은 성령의 주도적인 사역에 부흥하는 인간의 노력과 실천역시 성화과정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로 작용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웨슬리의 “복음적 신인협동설”(福音的 神人協同設, Evangelical Synergism), 선행적 은총, 완전성화를 상기할 수 있다. 부흥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부흥이 일어날 때는 누군가가 반드시 그 조건들을 충족시켰고 그 대가를 치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만일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부흥은 언제든지 임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를 위하여 힘 쓸 필요가 전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웨슬리 부흥운동을 살펴봤듯이 영적인 무관심과 운명론적 자세가 부흥의 장애 요소임을 인식하게 된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오순절 날의 부흥을 경험하기 전에 한자리에 모여 기도에 전념하였던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행1:14).

이와 반대로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한 채 영적인 준비만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것도 위험하다. 마치 언제라도 스위치를 올리면 등에 불이 켜지듯이, 우리들이 그 대가를 치르고 준비만 되어 있다면, 부흥이란 언제나 임할 수 있다고 혹자는 주장한다. 그러나 역사를 운행하시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이요, 인간은 단지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하는 도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부흥을 위해 모든 조건이 다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인간은 그 부흥을 일으키는 원동력을 제공하지 못한다. 부흥은 구원에 있어서처럼 인간의 행위에 근거하지 않으며 인간을 파멸에서 건지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에 기인한다. 물론 부흥이 임하려면 그 선행조건으로 인간의 회개와 믿음의 기도를 필요로 하지만 그 기초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일뿐임을 웨슬리 사상 면면히 보여준다.

이렇듯 웨슬리 부흥운동은 하나님의 주권과 그것에 응답하는 인간의 자발적 의지를 통해 하나님이 일하셨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그래서 다윗은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willingly) 헌신하리니”(시110:3)라고 외쳤던 것이다. 「주의 권능의 날」인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로써 ‘하나님이 정하신 때’(a fixed time,갈6:9)에 임하지만, 성도들이 부흥을 수용할 수 있는 영적 준비가 필요하다. 즉 그 장소와 시기 그리고 방법은 하나님의 주권적 장중 안에 있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통하여 일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하나님이 정하신 디데이(D-day)를 위하여 예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2. 강력한 신 임재의식 동반

물론 부흥에 뜨거운 결단과 신비 체험 등이 따를 수 있지만, 참된 부흥에는 강력한 신 임재의식으로 인한 각성과 회개 그리고 삶의 변화가 따른다. 말씀이 이론이 아닌 생활 현장 구석구석에서 적용되고 체현되어져 먼저 자신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가정, 사회, 국가를 변화시켜 전 세계가 하나님의 임재를 피부 깊숙이 체험하는 것이다. 이것이 웨슬리를 통한 부흥운동이었다.

웨슬리부흥운동 이면에는 강력한 신 임재의식에 대한 체험이 자리한다. 웨슬리는 1726년에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읽고 내적종교 즉 마음의 종교의 본질과 범위가 과거 어느때보다 그에게 더욱 강한 빛으로 부각되어왔다. Works, XI, 366-367.

그는 영적으로 갈급함을 충족시키고자 독일에 있는 모라비안 교도들(Moravians)을 찾아갔다. 이 단체는 1727년 8월 12일 독일 헤른훗(Herrnhud)에 있는 비교적 작은 무리의 그리스도인들 위에 강력한 성령의 부흥이 임했을 때 형성되었다. 웨슬리는 그곳에서 성령의 임재를 피부로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웨슬리 부흥운동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 옥스포드로 가는 도중 우연치 않게 조나단 에드워즈가 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대한 충실한 서술」을 읽게 되었는데, 웨슬리는 이 소책자를 통하여 미국 노샘프톤(Northampton)의 여러 도시에서 일어난 성령의 역사와 참된 부흥운동의 양상에 대하여 큰 충격을 받고, 자기에게 무엇인가 영적으로 결핍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브루스 셀리, 426.

이것은 그에게 있어서 회심 못지않은 중요한 사건이었다.

웨슬리에게 있어 이런 모든 준비가 끝나고 하나님의 작정하신 때가 찼을 때, 하나님께서는 1739년 1월 1일 새해 첫날 마침내 성령의 불을 폭포수처럼 영국에 쏟아 부어 주시기 시작했다. 이것을 보통 ‘감리교의 오순절’(the Methodist Pentecost)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존 웨슬리는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739년 1월 1일 홀?킨친?임함?휫필드?버친즈 그리고 내동생 찰스 등 여러 사람들이 페터레인(Fetter Lane)에서 약 60명의 형제들과 함께 철야기도회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새벽 3시쯤 계속 기도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 위에 강하게 임하였다(the power of God came mightily upon us). 많은 사람들이 격렬한 기쁨으로 인하여 부르짖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땅에 엎드러졌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두려움과 놀라움으로부터 겨우 회복되었을 때 우리는 한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오, 하나님! 우리가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당신이 주님이심을 압니다.’” John Telford, The life of John Wesley (London: The Epworth Press, 1947), 117.


이 경험은 웨슬리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특기할 만한 사건이었다. 이 날 웨슬리는 하나님의 권능을 경험함과 동시에 예수님이 약속한 ‘위로부터 능력의 입히움’(눅24:49;행1:8)을 받은 것이다. 그 후로 그의 설교와 전도에는 큰 능력이 나타나 대 부흥이 일어났으며 인류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되었다.

“그의 마음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에게로 높이 들리워 있다. 여기는 그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게 상처를 입거나 방해를 받지 않는다. 홀로 있거나 동료와 함께 있거나, 여가를 취하거나 사업을 하거나 또는 대화를 하거나 간에 그의 마음은 늘 주님과 함께 있다. 그가 누워있거나 일어나거나 그의 생각은 하나님으로 가득차있다. 그는 계속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고 자기 영혼의 사랑의 눈동자를 하나님에게 고정시키며 어디서나 보이지 않는 그분을 보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의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한다. 그는 어떤 사람이나 자기의 영혼처럼 사랑한다. 그는 자기의 원수들을 사랑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원수들까지도 사랑한다. 따라서 자기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 자기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므로 비록 그들이 자기의 사랑을 계속 배반하고 심지어는 자기를 모욕적으로 이용하고 박해한다할지라도 그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쉬지 않는다.”(웨슬리논문집,25)

이처럼 ‘성령의 부흥’에는 강력한 신(神) 임재의식이 동반한다. 부흥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당신의 살아 계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흥의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의심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살아 계신 증거가 눈앞에 밝히 보이기 때문이다.

피니는 가는 곳마다 ‘두려움을 일으키게 하는 하나님 임재의식’(an awesome feeling of the presence of God)이 도시나 마을 전체에 임하여 엄숙함과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으로 충만해짐을 자주 경험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두려운 심판에 대한 영적인 무감각 상태에서 살아 움직이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지옥이 현존하는 실체로서 저들에게 다가서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부흥의 계절에는 하나님의 실재를 영과 몸으로 확연하게 느끼는 때인 것이다. 이처럼 성령의 부흥이 임하면 하나님의 임재를 강력히 깨달아 알고 이것은 자연스럽게 죄에 대한 뼈저린 통회로 이어진다.

6 Powerful "I WILL" Promises of Jesus

praying in the spirit Christians are quite familiar with the “I AM” statements in Scripture. They are powerful and share much about the character of Christ. They share God’s will for His son and for 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