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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인생 허무한 삶

불란서의 실존주의 작가였던 앨버트 까뮤는 그가 29세에 썼던 철학적 에세이 “시지프스의 신화에서”라는 글에서 인간의 삶이 허무하고 무가치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그 허무한 삶을 계속해서 붙들고 살아가는 것을 보고 이를 인간의 불합리성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희랍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의 비참한 운명에서 인간의 비극적인 삶의 모습을 발견하고 인간의 삶을 불합리성이라고 함축해서 표현했던 것이다.


희랍신화에 등장하는 시지프스는 권모술수에 능한 고린도 지방의 왕이었는데 신들을 속이고 능멸한 죄로 제우스 신의 노여움을 사 그 형벌로 평생을 거대한 돌을 굴려 높은 언덕 꼭대기에 밀어 올려 놓아야한다는 명령을 받는다. 그때부터 시지프스는 전력을 다해 무거운 돌을 굴려 언덕 정상에 올려놓지만 천신만고 끝에 정상에 올려놓은 무거운 돌은 정상에 도달하자마자 즉시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져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면 다시 이번에는 반드시 돌을 굴려 산 정상에 세워놓고야 말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힘들게 산 정상까지 밀어 올려 보지만 그때마다 돌은 어김없이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그리하여 그는 평생을 무거운 돌을 언덕 위로 굴려 올려야 하는 아무 목적도 가치도 없는 허무한 고통의 작업을 영원히 계속해야 하는 비참한 운명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이다. 까뮤는 허무한 인생을 죽을 때까지 반복하며 살아가는 인간들의 삶이 비참한 시지프스의 운명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 ‘시지프스의 신화’라는 글을 통해 인간 삶의 맹목성과 허무를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인간들은 저마다 행복하고 만족한 삶을 찾겠다고 욕심과 욕망이라는 무거운 돌을 굴리며 평생을 수고하지만 그들의 사회적 성공이나 부와 권력과 명예에 관계없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행복과 만족대신 삶의 공허감과 무가치함인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인간들이 당면하게 되는 가장 심각한 삶의 문제는 이러한 삶에 대한 실망과 허무를 극복할 방법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떤 삶의 목표를 정해 놓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애쓰고 노력할 때는 목표만 성취되면 행복하고 만족한 삶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크게 기대하고 있었는데 막상 원하는 것을 손에 쥐는 순간 그러한 것들이 더 이상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허탈감과 허무감에 빠져버리게 된다. 그리하여 이 번에는 먼저보다 더 높은 목표를 정해놓고 또다시 도전해 보지만 그 역시 목표 달성 후에 찾아오는 것은 행복과 만족이 아니라 더 큰 마음의 공허와 허탈감일 뿐인 것이다. 기대와 실망, 또 다른 기대와 또 다른 실망, 이것이 사람들의 살아가는 일반적인 삶의 모습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자신의 삶을 통하여 위대한 업적을 남겼거나 엄청난 부와 사회적 성공을 거두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들을 통하여 우리가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미국의 억만장자 록펠러는 자신의 그 많은 재산이 자신을 결코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고 1940-50년대에 5백만불이라는 거액의 유산을 남겼던 쟌 에스토라는 갑부는 죽기 직전 자기는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이라고 한탄하며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또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그의 엄청난 사업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했던 가난한 시절을 오히려 그리워했다. 그리고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는 “백만장자는 거의 웃지 않는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또 근대 국제법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휴고 그로티오스는 현대 국제법의 체계를 세운 그의 탁월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생애에서 가치 있는 일이라곤 하나도 이루어 놓은 것이 없다.”고 한탄했으며 미국의 6대 대통령이었던 애덤스 대통령은 그의 탁월한 정치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말년에 자신은 부질없고 헛된 정치적 야망으로 자신의 귀중한 삶을 허비했다고 후회했던 것이다.


또 히말라야의 8000m급 고봉 14개를 완등한 한국이 낳은 세게적인 산악인 엄홍길씨는 이런 말을 하였다.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를 모두 밟아보는 것이 일생의 목표였지요. 그런데 막상 천신만고 끝에 그 어려운 꿈을 성취한 순간, 저는 기쁨보다 허탈감에 빠졌습니다.

마치 더 이상 살아남아 있을 의미가 사라져버린 느낌이었죠. 목표를 지나쳐버린 후의 공허감에 빠져 한동안 깊은 삶의 회의감과 마음의 공허감 때문에 괴로워하며 지냈습니다.” 그는 또 이런 말을 했다. “막상 숨을 헐떡거리며 산에 오르면 빨리 내려가서 쉬고 싶은 생각밖에 없어요. 하지만 산을 내려오면 금방 산을 다시 그리워합니다.”


덴마크가 낳은 유명한 실존주의 철학자, 키엘코을은 그의 책 ‘유혹자의 일기’에서 이런 말을 했다. “결혼을 해라. 그리하면 당신은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그러면 결혼을 하지 말아라. 그래도 당신은 후회한다. 연애를 해라. 당신은 반드시 후회한다. 그러면 연애를 하지 말아라. 그래도 역시 당신은 후회할 것이다.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다.”라고.


산악인 엄홍길씨가 산의 정상에서 느끼는 공허감이나 사람들이 부와 명예와 출세와 인기의 정상에서 느끼게 되는 공허감은 서로 같은 것이다. 목표를 달성했으면 즐겁고 행복해야 될텐데 실상은 정반대인 것이다.

경제적으로 쪼들리고 어려울 때는 돈만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것 같았는데 막상 충분히 먹고 살고도 남을 만큼의 큰돈이 생기니까 돈이 더 이상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비로서 깨닫게 되는 것이다.


돈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권력과 출세와 명예와 인기가 모두 다 공허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결국 만족과 보람과 기쁨이 아닌 공허감을 얻기 위하여 그 긴 세월을 비지땀과 피눈물을 흘리며 맹목적인 욕망의 노예가 되어 정신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비참한 삶의 실상을 받아드리고 인정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 니지만 우리는 이러한 인생의 실상을 사실대로 인정하고 받아드려야 한다. 왜냐하면 삶의 실상을 바로 알아야 올바른 삶의 길이 보이기 때문이다.


삶의 실상을 알면 세상의 부귀영화에 대한 강한 집착과 미련도,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과 욕심도,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고 무시하는 교만한 태도도, 남을 이기고 앞서 가려는 경쟁심도, 사람들의 평가를 의식한 체면치례와 자존심도, 사람의 부러움과 질투심을 불러일으켜 자신의 우수성을 과시해 보려는 허영심도 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불필요한 행동을 자제할 수 있어 매사에 무리하지 않고 겸손한 자세로 보다 안전하고 평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세상에서의 삶의 실상을 모르기 때문에 잘못된 기대감과 잘못된 삶의 전제를 가지고 욕심과 허영의 무거운 돌덩어리를 산 정상에 올려놓기 위한 인생경주에 뛰어드는 것이다. 그들이 그 힘든 작업을 즐겨 시작하는 것은 그 무거운 욕망의 돌을 산 정상에 올려놓기만 하면 만족스럽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란 가정과 기대감 때문이다. 그들은 산 정상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행복과 만족이 아니라 허무와 실망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잘못된 삶의 전제와 착각 속에 평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삶의 실상에 대한 무지가 인생의 정상에 올라 실상을 확인하게 될 때까지는 행복과 만족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삶의 의욕과 활력을 북돋아 주지만 그들은 머지않아 자신들의 기대와 삶의 전제가 사실이 아닌 거짓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고통스러운 순간과 맞부디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허무한 삶의 실상을 인정하고 받아드리지 않고 자신의 허무감을 극복시켜줄 것이라고 생각되는 또 다른 목표를 세워놓고 목표달성을 위하여 고달픈 삶의 역정을 다시 시작해 보지만 그 때마다 그들은 똑같은 삶의 허무와 무가치함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만족과 행복을 찾겠다고 욕망과 허영이라는 삶의 게임을 반복하는 동안 사람들은 빠르게 움직이는 세월의 흐름에 떠밀려 어느덧 인생의 종착지에 도달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자신의 헛수고를 한탄하며 당황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들의 허무의 경험은 이미 3000년 전에 세상 부귀영화를 다 경험해 보았던 솔로몬 왕이 쓴 성경 전도서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내용들이다.


솔로몬 왕은 3000년 전에 이미 세상만사가 구름과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다 허무한 것이라는 사실을 그의 경험을 통하여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가 쓴 전도서에서 “태어난 날보다 죽는 날이 더 좋은 것이다.” “성공과 출세와 축제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보다 장레식에 대하여 보다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훨씬 유익한 것이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허무한 욕망이 우리 속에서 꿈틀거릴 때마다 인간이 언젠가는 죽느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헛된 욕망의 희생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많이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참된 삶, 진실한 삶은 사실을 사실대로 이해하고 인정하는데서 시작된다. 인생에 대한 올바른 사실을 우리가 바로 깨닫게 될 때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 많이 있는데


첫째는 자신을 실제보다 부풀려 과장하고 교만해지기 쉬운 우리가 우리의 연약함과 한계를 알아 겸손해 진다는 사실이다. 주변사람들을 의식하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하여 쓸데없이 자신을 과시하고 과장하며 자랑하는 것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인간의 자존심과 교만과 체면의식은 인생의 실상을 바로 알지 못하는 무지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유익한 점은 인간의 위험한 욕심과 허영심에서 자유로워짐으로 인하여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나갈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필요 이상으로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발버둥치지 않게 되고 필요 이상 높이 올라가려고 애쓰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분수 안에서 감사하며 자족할 줄 알고 늘 마음의 평안과 여유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을 의식하고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하여 무리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어리석은 삶의 태도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사람을 의식하고 사람들의 기대에 자신의 삶의 수준을 맞추어 살아가려는 것이 얼마나 사람들을 피곤하고 힘들게 만드는지를 당신은 과거의 경험을 통하여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유로운 삶은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분수와 능력의 범위 내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내가 정직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만 있다면 잠시 스쳐 지나가는 나그네 인생길에 타고 다니는 차가 좀 낡고 녹이 슨 헌 차면 어떻고 사는 집이 20평짜리 작은 집이면 어떻단 말인가? 사는 것이 다소 불편하드라도 빚이 없고 마음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이 체면 때문에 빚을 내어 좋은 차, 좋은 집에 살면서 늘 경제적으로 스트레스 받으며 살아가는 것보다 훨씬 지혜로운 삶이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의식과 경쟁의식이 사람을 초조하고 조급하게 만드는 것인데 이러한 출세와 성공에 대한 조바심이 인간의 뼈를 녹인다고 성경 잠언서는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다. 인생의 실상을 잘 깨달아 자신의 능력과 분수 안에서 무리하지 않는 삶을 통하여 자신의 삶을 잘 관리하고 안전하게 지켜가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의 삶은 성공여부에 관계없이 헛되고 허무한 것이다.


참된 만족과 가치있는 삶, 그리고 인간들이 그렇게도 갖기를 열망하는 참된 행복은 우주만물과 인간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의로우신 생각과 뜻에 따라 정직하고 정의로운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의로운 삶의 보상으로 우리의 심령 속에 부어주심으로서 비로서 우리가 소유하게 되는 생명의 감정임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경주에서 결승지점을 정해 주시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정해야 한다. 어느 정도 우리가 정해 놓은 목표지점에 이르면 우리 스스로가 판단하여 “That's it. That's enough." (이제 이만하면 됐어.) 하고 스스로 치열한 삶의 경쟁에서 물러나와 휴식과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그 동안 자기만을 위해서 살아온 이기적 삶에서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봉사하는 이타적 삶으로 삶의 축을 바꾸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하나님으로 오셔서 구체적인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섬김의 삶을 본받아 자신이 가진 것을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나누며 남을 섬기는 종의 삶을 살아갈 때 그것이 곧 천국생활인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솔로몬 왕도 그가 쓴 전도서의 마지막 결론으로 “항상 창조주 하나님을 의식하고 그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라.


이것이 피조물 인간의 본분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인간들이 남몰래 행한 행위까지 포함하여 인간의 모든 행위를 선악을 가려 심판하시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말씀했던 것이다. 우리 인간은 언젠가 한 번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들이 살아온 삶의 내용 전부에 대하여 평가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으로 살았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생각,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말은 이 세상에서 인간과 삶에 대한 실상을 가장 정확하고 완벽하게 가르쳐주고 있는 책이 성경 이외에는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함을 통하여 인간을 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이해하고 올바른 삶의 지혜를 터득하게 될 때 불확실하고 위험한 세상에서 우리는 비로서 가치있고 보람있는 만족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창조주 되시는 선하신 하나님이시여, 나로 하여금 내 삶의 끝과 내 인생의 남 은 날이 얼마 되지 않은 것을 알게 하시어 내가 참으로 연약한 존재인 것을 깨닫고 겸손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게 도와 주소서.


하나님께서 나의 일생을 손 한 뼘 길이밖에 안되게 짧게 만드셨으니 인생이란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요? 인생살이가 살아있을 때에는 천년만년 살 수 있을 것 같이 보여도 실상은 잠시 있다 이내 사라져버리는 봄 아지랑이 같이 한 순간인 것을, 그야말로 한 낱 그림자에 불과한 것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인간들이 저마다 잘살아 보겠다고 이른 아침부터 저녘 늦게까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분주히 애써 보았자 결국은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죽음 앞에 모두가 덧없는 것 일뿐입니다. 열심히 일해 많은 재산을 쌓아두었다 해도 누가 그것을 차지할지 도무지 알 수 없나이다.

겸손하며 너그 러운 마음을 가지고 올바른 삶을 살아가겠습다.” (시편 3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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