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적 예배의 이해
복음주의 예배의 역사적 배경
1. 구약시대의 배경
모세 이전 시대의 예배에는 예언적, 제사적 요소들이 다같이 나타나고 있다. 예언적 요소는 족장들 각자에게 있어서 하나님께 직접적이고, 개인적 접근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고, 자기의 목적을 계시하셨으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통찰력을 갖도록 해 주셨다. 가장 최초의 집단예배는 가족이나 부족의 대표가 제사장 자격으로 활동했을 것으로 보인다. 기록에 의하면 초기의 예배형태는 어떤 장소에서 우연히 신을 만나는 경험과 함께 재단을 쌓는 것이었는데, 그들이 신을 경험한 장소는 대개 돌이나 나무 또는 샘과 같은 자연물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창세기에서 잘 관찰할 수 있는데, 아브라함의 예배는 항상 나무와 이삭, 이스마엘의 예배는 우물이나 샘, 야곱의 예배는 돌과 관계되고 있다. 모세 시대에 대한 이야기는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문서들에서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제의와 도덕법을 제시함으로써 자신을 나타내셨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모세라는 인물은 제사장으로 등장하고 있는데, 확실하지는 않으나 모세에 의하여 어떤 종류의 일정한 제사장제도가 확립되고, 예배절차가 등장하였던 것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 시대의 최초의 예배는 ‘성막 혹은 회막’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모세 이후 주전 8세기의 대중적인 신앙 형테는 하나님께서 의식을 기뻐하시는 분으로 믿는 것이었다. 그너나 예언자들은 이와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도덕성보다는 의식들을 덜 중요한 것으로 여기신다고 주장하였다. 이 시대에는 바알등 우상에 대한 관심이 강해진 시기로서 백성들의 예배에 대한 의식은 흐려져 있었다. 주전 8세기 예언자 이후 포로시대에는 요시아, 예레미아, 에스겔등과 같은 선지자들의 개혁이 있었다. 타락한 하나님 경배가 갖는 부당함을 고발하는 그들의 개혁 운동은 성결법전의 출현을 가능하게 하였다. 레위기 17장에서 26장등 그 내용이다. 이 법전은 과거의 예배 전통을 다시 구성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성결법전이 현금에 보이는 타락한 예배관행에 대한 개선방향까지 책임지고 있지는 않은 아쉬움이 있다.
포로 후기의 유대교의 경우에 있어서 제사법전의 출현을 이야기할 수 있다. 포로로 잡혀간 율법학자들의 두 번째 노력의 결실로 ‘제사법전’이라 알려진 문서가 나오게 되었다. 이때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를 쉽게 찿을 수 없었다. 이에 대한 결과로 개인의 신앙 생활이 강조되었다. 이 시대에 에스라와 같은 율법학자들은 학생, 교사, 재판관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중요한 한 것은 이러한 율법학자들이 회당제도를 출발 시켰다. 이 당시 회당은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성전 예배를 대신할 장소로 이해되었다. 회당의 중요한 두 가지 면을 살펴보먼, 회당은 예언자적 종교에 절합한 새로운 형테의 예배를 제시하여 주었다. 완전히 의식적인 성전예배와는 달리 회당예배는 직접적, 자발적, 개인적인 예언자적 종교에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연구와 선포를 조화시킨 예배를 이룩하였다. 프리홉의 표현을 비리자면 이것은 “인류가 처음으로 하나님께 드린 민주적이고도, 순수수한 영적 예배였다. 또한 회당은 기독교 교회의 요람이 되었으며 개신교의 시조가 되었다. 회당예배는 대체로 오늘날 개신교에서 드리는 말씀예배와 비슷한 것이었다.
2. 신약시대의 배경(예수시대)
예수 시대에 널리 행해졌던 예배의 형태로는 성전과 회당예배가 있었다. 회당 예배는 세 가지 주요 요소, 즉 경전, 기도, 영적 예배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예수 당시의 예배순서 속에는 특별히 경전의 일부인 예언서의 낭독이 포함되어 있었다. 예배의 중심적 활동은 성경의 낭독과 해석이었으며, 기타 노래와 응답송, 기도 등이 들어 있었다. 법궤는 방 한쪽 구석에 가려져 있었다. 법궤 앞에는 인도자를 위한 좌석과 낭독대를 포함한 강단이 마련되었다. 또한 법궤 속에서 두루마리를 꺼내거나, 두루마리를 둘러싼 천을 벗기는일, 두루마리 경전을 낭독대에 옮겨가는 일, 다시 그것을 법궤로 되돌려 놓는 일 등 많은 순서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많은 성경귀절들이 히브리어를 아는 몇 사람들에 의해 낭독된 후 설교나 해설이 곁들여졌으며, 회중들로부터 질문의 시간이 있었다. 예수 시대의 회당예배에서 사용하던 기도들 중에는 기원과 사회자의 인도에 따라 암송하던 본기도, 특별한 절기에 지도자들이 하는 자유기도, 설교 후에 하는 간단한 기도, 강복선언 등이 있었다. 주기도가 행해졌기는 하나 오늘날 처럼 모든 교회에서 빠짐없이 사용될 것으로 의도된 것은 아니었다. 예수께서 형식적인 예배를 지양하고 영적인 예배를 지향했다는 사실은 성경의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이다.
성전은 정규적인 예배장소이므로 사실 회당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성전이란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연례적인 축제일들을 지키기 위해 모이는 국가적 성소였으며, 특별히 중요한 사업의 성공을 위해 제물을 바치거나 의식적인 부정을 제거하기 위해, 또는 서원을 하여 자기 자신의 몸이나 제물을 바치기 위해서 모이기도 하였다. 성전에서 매일 희생제사가 드려졌는데, 아마 이때 참석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내에 거주하는 유대인들 정도였을 것으로 보인다. 전승에 따르면 로마장군 티투스에 의해 예루살렘이 파괴괴기 직전 그 곳에는 394개내지 480개의 회당이 있어다고 한다. 성전의 희생제사 의식은 각 시대를 통하여 언제나 동일한 방식으로 일정한 절차에 따라 행하여졌다. 또한 예배와 관련한 활동들은 축제나 의식에 따라 다양성을 갖기도 하였다. 예배의 순서에 따라 이루어지는 행위들이 규정된 형식에 따라 정확히 수행되지 못했을 경우, 그들은 그것이 가치를 상실함으로써 예배의 참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겼다. 예수께서 세례와 주의 만찬을 제정하신 것은 성전제사제도를 대체할 뿐 아니라 회당 예베의 미흡한 점을 보충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되고 있다. 예수의 사역에 대한 기록에 있어서 가장 인상적이고 중요한 측면은 그가 예언자적 신앙원리를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예수께서 당시의 회당예배나 성전제사르 모두 인정했다고 말할 수 없다. 그의 예언적인 복음에 비추어 볼 때, 예수께서는 성전제사보다는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개인적이며, 비형식적인 회당예배가 그의 복음에 훨씬 관련이 있었던 것이다.
3. 신약시대의 배경(초대교회시대)
신약 시대의 예배는 보통 세 가지의 형태로 나뉘어질 수 있다. 즉 성전에서 드린 예배와 회당에서 드린 예배,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특수한 모임을 형성하여 가정이나 또는 일정한 장소에서 몇 명씩 드린 거의 사적인 형태의 예배가 그것이다. 누가가 기록한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이 예수의 승천후에 늘 성전에 모여 하나님을 찬송한다하는 기사가 기록되어 있다. 예수가 승천한 후 소위 초대교회 시대에 성전 예배는 보편화된 예배드림의 형식이었다. 그러나 이 성전 예배는 예수 이전의 성전 예배와 구분된다. 예수는 자신이 단번에 하나님의 제단에 드려질 희생양이 되었다. 즉 성전에서의 제사는 예수 이후 폐지되었다. 또한 의식적 율법이 폐지되었다. 예수는 율법을 지키는 것 보다 그 율법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에 더 큰 관심을 기울였다. 초대교회 시기의 성전예배에서 보이는 또 하나의 특징은 제사장 제도의 폐지이다. 베드로의 웅변은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즉, 그리스도인들이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들이라고 말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인들과 회당이 서로 조화가 될 수 있느냐의 문제가 늘 대두 됨에도 불구하고 회당은 초대교회 시대에 드려진 예배의 한 전형을 이루고 있었다. 회당에서 사용한 예배의 형식과 순서를 그리스도교회가 그대로 본땄다고 주장하는 것은 신약시대에 기독교 예배에 대한 문제를 지극히 단순화 시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의 교제를 위한 예배모임은 매우 일찍부터 시작되었다. 이 모임은 비공식적인 것으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자기 동족들의 전통적 예배 형식에 대립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되는 반대와 억압때문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교회르 조직하게 되었고, 거기에 알맞는 예배를 개발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것들 초기 교회의 예배형태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 예배에 포함되어 있는 예배의 요소에는 성경봉독, 찬양, 봉헌, 회중들의 아멘, 신앙고백, 평화의 입맞춤, 기도, 설교, 예배자의 참여, 방언, 세례, 떡을 나눔, 성만찬들이 있다. 그러나 초기 교회의 구성원들이 이와같은 13개의 항목 모두를 예배 가운데 사용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어떤 원칙에 따라 그들이 예배 순서에 이 항목들을 사용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시대의 예배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경직된 예배와 반대되는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예배, 제사제도와 반대되는 기도예배, 제사장 예배와 반대되는 예배들이 참여하는 예배, 의식적 예배와 반대되는 설교예배, 외형적 형식적 예배와 반대되는 영적, 내적인 예배, 복잡하고 ‘신비적인’ 예배와 반대되는 단순하고 직접적인 예배가 그것들이다.
4. 고대 및 중세의 배경
A. D. 1-2세기의 예배를 뒷받침 해주는 다섯가지의 자료를 소개해보면, 로마의 클레맨트가 고린도인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 소아시아에 있는 비티니아의 로마 지방 장관인 플리니 2세가 트라얀 황제에게 보낸편지, 보통 디다케로 불리는 열두 사도의 가르침, 저스틴 마터가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에게 보낸 “변증문” 등이 있다. 고대 및 주엣라는 긴 시간 동에 다음의 두 가지는 언급되어여져야한다. 그 중에 하나는, 예배습은 유동적이라는 사실이다. 기독교 전체가 채택하고 있는 예배의 모범은 없다. 예배를 주제로 하고 있는 근대 문헌의 모든 경향은 현대 예배관습의 표준이 고대의 관습에 그 근거를 두고있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예배절차는 항상 변화하여 왔다. 각 교파마다 자신들의 필요에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예배의식을 채택하려는 실험적 노력이 계속되어져 왔다. 나머지 하나는, 예배에 대한 불만이 종교개혁의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는 사리앋. 족욕핵은 정치, 경제, 사회구조, 교육, 또한 종교등 모든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를 총괄하는 큰 규모의 개혁운동으로 출발하였다는 것이다.
5. 종교개혁시대의 배경(16-17세기)
종교 개혁이 일어난 배경을 두루뭉실하게 묘사해보자면, 아마도 종교개혁 시대 이전에 종교상의 어떤 아쉬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개혁이 필요한 어떤 사실들이 그 배경에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분명이 예배는 그 중 하나이다. 중요한 종교개혁자의 사상을 통해 혹은 어떤 특정한 지역에서의 갱신의 경향을 살펴보는 것은 이 시대의 예배가 지향하고 있던 바를 효과적으로 추적할 수 있다. 그 중 루터는 설교와 성경봉독을 예배 중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하였다. 그는 신약에 나타난 성만찬에서의 제자 개념을 되찾아 보려고 노력했으며, 미사 도중에 교리를 소리내어 말하는 것과 미사를 각 지방의 언어로 진행하느 것, 성만찬을 매일 모든 교회에서 기념할 것을 주장하였다. 루터에 의한 독일에서의 종교개혁과 함께 스위스 쮸리히에서는 쯔빙글리에 의하여 개혁운동이 일어났다. 그는 인문주의적 학문을 통하여 개혁운동을 추진했다는 사실이 루터와 구별되는 것이다. 그는 교황권과 미사, 성인들의 기원, 행위를 통해 인정받음, 금식, 축제, 성지순례, 수도원의 서열제도와 사제권, 귓속말로 고백하는 것, 죄상소멸, 면죄부, 고행, 정죄, 기타 로마 카톨릭 신조와 예배의식에 있어서의 독특한 특징 등 모두를 비난했으며, 쮸리히위원회 선언을 확고히 하여 상징을 사용하는 일과 미사에서 희생제사를 드리는 일을 막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의 일반적인 주일 아침 예배는 성경봉독, 기도, 죄의 고백과 설교로 되어있으며, 성만찬이 있을 경우 설교후 성만찬에 필요한 성찬대를 준비한후 성만찬이 진행된다.
개혁된 예배에 관한 일중 가장 중요한 몇 가지의 일들이 일어난 곳은 스트라스부르그였다. 첫번째 개혁안이 디볼트 쉬바트쯔에 의해 만들어졌다. 예복, 무릎을 꿇음, 사제의 손씻기, 기타 예배의식 등은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이 그의 개혁안의 특징이다. 그러나 미사를 희생적인 것으로 지칭하는 모든 것과 성자와 성모 마리아에 대한 기원을 없애버리고, 미사곡을 소리내어 부를 수 있도록 했으며, 그 외에 여러 가지르 바꾸도록 하였다. 1530년 마틴 부처가 감독이 되 후 그 개혁의 진도는 더 앞으로 나아갔다. 부처 이후 예배의식에 관한 용어들은 과거 로마식 표현과는 다른 새로운 용어로 바뀌어 지게 되었다. 가령 미사라는 말 대신에 주의 만찬 또는 성스런 식탁으로, 사제 대신에 목사로 바꾸어 부르게 된 것이다. 칼빈 또는 다른 종교개혁자들은 종래의 예배의식에서 의식적인 행사, 창화의 단구, 한두 번의 응답, 성가대가 하는 수차례의 응답송, 수차례의 성구집 낭송 등을 제외시키고, 봉헌기도만큼이나 짧게 하도록 하는 등, 기도의 종류와 수를 줄이고, 예배의식의 기본적 요소를 모수 살리면서도 짧고 간단한 예배의식을 만들 수 있었다. 주의 만찬에 관한 한 칼빈과 루터의 의견은 일치되지 않는다. 종교 개혁의 결과로 영국 국교회에의 예배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여러 변화가 있었지만 그 실제 형식에 있어서는 개혁된 교회와 로마 교회 예배의 중간적인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영구 국교의 입장은 중간적인 것이었도, 또한 이것은 그들이 의도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그들의 예배는 개신교도들보다는 루터주의와 비슷하며, 주의 만찬에 대한 해설은 쯔빙글리파와 보다 가까왔고, 심지어는 성만찬의 포두주와 빵이 그리스도의 피와 살로 변화된다는 교리와 성찬중시주의도 거부하였다. 그들은 또한 성만찬을 단순히 객관적인 것으로 보다는 예배 참석자가 자신을 드리는 주관적 희생의 의미로서의 개념을 보유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축성기도는 그대로 실행하는 한편, 봉헌기도를 종교개혁자들이 사용하던 의미에 맞도록 바꾸었다.
6. 종교개혁시대의 배경(18세기-현재)
19세기 후반 부터 기독교 전체가 예배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교회의 이름이나 종파와 관계없이 모두 이 영향을 받았다. 예배의식의 회복을 위한 갱신의 움직임은 성소의 배치를 변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술과 상징으로 성찬대를 장식했으며, 주의 만찬에 대한 의식이 바뀌기 시작하였다. 거의 예외없이 모든 종파에서 예전의 복고를 주장했던 이들은 주의 만찬을 매주 예배에서 행하는 데 동의하였다. 주의 만찬 외의 모든 순서는 단지 주의 만찬을 준비하는 것으로 의미지어졌고, 이를 위한 다소 길고 고정된 예배의식이 제시되었다.여기서는 성체 성사, 기도의 내용과 성찬 봉납, 회상, 축성에 중점을 두었다. 예배의 순서는 기도문, 설교 전의 기도, 기타 여러 종류의 인쇄된 기도, 여러 형태의 창화와 응답, 성구집 낭독 등 복잡한 순서가 많았고, 예배의 각 부분의 기도, 축복, 송영 등으로 따로 틀을 만듦으로써 길어지게 되었다. 목사의 기능과 목회의 이해에 변화가 생김에 따라 목회자의 의상이나 치장이 다양해지기 시작했으나 종교개혁이 그 절정에 다다랐을 19세기에 중세의 예배로 돌아가자는 목소리는 역사의 역전을 말하는 것인가하는 질문이 제기되었다.
Ⅱ. 복음주의 예배의 발전과정
7. 복음주의 예배의식의 본질
복음주의적 예배란 신약성경에서 발견된 복음과 똑같이 합치되는 예배를 의미한다. 물론 개혁단체들 몇몇은 복음주의 예배는 세밀한 순서에 이르기까지 신약성경과 분명히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복음주의적 예배가 신약성경과 똑같은 형식의 예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복음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목적과 특서에 조화되는 예배로서 이해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과 특성의 현시는 예수의 탄생에서 시작되어 기독교 교회가 세워지고,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며, 성령의 모습으로 늘 힘이 되어주심을 확실히 믿을 때 완성되었다. 즉 복음주의적 예배는 하나님에 대한 총체적인 가르침에 기초를 두고 있다. 우리는 복음주의적 예배가 갖추어야하는 중요한 특징들을 살펴보아야한다. 그것의 첫번째는 성숙한 방법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또한 영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이고, 교훈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예배는 분명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예배이어야한다.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예배의 목적은 그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삶의 변화를 동반한다. 힘있는 예배는 그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의 심정을 늘 예배하는 분위기로 이끄는 것이다. 복음적 예배는 개인적인 예배드림을 요구한다. 공동체의 형식으로 예배를 드리지만 그 예배 속에서는 예배드리는 각 개인과 하나님의 만남의 사건이 들어있다. 각 개인과 하나님과 만남의 사건이 들어있지 않는 예배는 지양되어야한다. 복음적 예배란 신령한 예배이다. 복음적 예배는 복음을 증거하는 예배이고 윤리적인 예배이다. 개인과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예배인 동시에 이 예배는 공동으로 드리는 예배이다. 복음적 예배는 인간으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하고, 예배할 때 온 생각과 마음을 다 드리도록 하며, 도덕적인 면에서의 하나님을 의식하도록 한다.
8. 예배의식과 주의 만찬(해석)
복음적 예배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중 하나는 예배 가운데 존재하는 주의 만찬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어느 한 곳에 지정하는 일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며, 그분을사물의 본질이 무엇이든 관계없이 어떤 사물에 있는 것으로 지정하는 일은 마술과 같은 종류의 생각이다. 성물에 있는 그리스도의 임재를 반물질적인 것이라고 할 때, 이런 생각도 이교사상에 빠져들 위험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 개념을 그대로 두어야하는가? 왜 인격적이고 영적인 임재로서의 한 분인 그리스도에 대한 개념을 에배에서 하나로 통일시키지 못하는가? 만일 이것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에 대한 진실로 복음주의적인 해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며 그는 믿는 자가 성령의 영감에 의해 그의 실재를 인식하고, 믿음으로 그의 은총을 받아들일수 있는 곳이면 어느 곳에서든지 인격적으로 또는 영적으로 임재한다. 이 말은 결코 에배의 신비적 요소를 잃게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인간의 정신, 생명, 우주, 기도, 하나님과 인간의 신비한 영적 관계, 우리 마음 속에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 그리스도의 죽음, 이 모든 것들이 다 신비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임재를 ‘영적’이라고 말할 경우 성만찬의 모든 신비와 성스러운 것에 대한 경외의 의미가 사라지게 된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성만찬을 반물질적인 방법이 아닌 영적인 방법으로 해석하는 것은 생각보다 급진적인 방법은 아니라고 본다.
9. 예배의식과 주의 만찬(평가)
올바르게 집례된 주의 만찬의식은 그것이 상징하는 바 중요한 의미를 더욱 뜻깊은 것이 되게 한다. 주의 만찬의식은 객관적인 교훈인 동시에 극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주의 만찬의식은 예수께서 믿는 이들에게 하신 일을 인상적인 방법으로입증한다. 하나님은 성만찬 의식을 통해 믿는 이들을 격려하고, 어떤 일을 위해서 노력하도록 하며, 쯔빙글리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의 버팀목”이 되어 주신다. 성만찬 자체를 모든 공도예배의 목적이며 종결로 만드는 것, 예배를 집전하는 사람의 모든 능력과 힘을 성만찬 의식에만 중점을 두는 것, 사랆들의 관심을 성만찬의 형식에만 집중시켜서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목적이 단지 예배의식을 이룩하는 데 있었던 것처럼 만드는 일을 그리스도의 근본 목적과 어긋나는 일이다. 올바른 성만찬의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예수 자신이 이미 반대하고 폐지시켰던 율법적, 의식적, 희생적 형식을 대신할 새로운 형식이 만들어져야 한다. 성만찬 의식의 절차는 그리스도와 신약시대 교회와 가티 간단해야 한다. 성만찬 의식이 기독교 예배의 목적이나 기타 요소를 밀어 내거나 흐리게 해서는 안 된다. 또한 성만찬 의식이 복음 자체의 내용인 것처럼 취급해서도 안 된다. 마치 기독교 교회의 기본적인 기능이 성만찬을 행하며 다른 이들에게도 이를 지키도록 설득하는 것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기독교 교회가 성만찬의 본래적 의미와 목적, 이를 처음 만드신 이의 정신에 맞게 행하려면 기독교 예식을 지키기 위한 중대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독교 자체를 그 본질에 있어서 철저하게 복음주의적이도록 지킬 수 있는 것이다.
10. 예배의식과 상징
상징은 내용자체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상징을 통해 내용에 접근할 수 있다. 예배 가운데 보여지는 많은 상징이 예배자의 마음자체를 나타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예배자는 여러 상징들을 통해 예배자의 심정을 구체화 한다. 성단소 배치의 분석을 통해 예배자의 심정을 표현하는 내용을 알아볼수 있다. 설교단 중심의 배치 원칙은 예배하는 곳은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데 그 중요성이 강조되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교회의 앞면에는 약간 높은 단이 있고 그 위에는 성경을 펼쳐 놓는다. 그리고 성찬대는 설교단 바로 앞 회중들과 같은 높이에 놓는다. 교회 앞면의 단은 어느 한쪽 또는 양쪽에 계단을 두어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러 배치 방법은 분명히 어떤 근본적인 복음주의 신앙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맨 중앙에 성경이 펼쳐 놓아져 있는 설교단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믿음의 중심이며 원천임을 나타내고 있으며, 예배의 교훈적 요소가 가장 중요하고 선포된 말씀과 기록된 말씀은 하나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성찬대 중심의 배치는 흔히 “분리된 성단소”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배치는 설교와 말씀을 성례전에 부수되는 것으로 본다. 교회 내부를 두 부분으로 구분하고, 예배 또한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성단소와 예배가 하나로 되는 것을 어렵게 한다. 이 사실들을 고려해 볼때 우리는 성찬대 중심으로 배치된 성단소가 복음주의적 상징을 지키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기타 예전에 사용되는 상징들로서 감각적인 상징들이 있으며 상징적인 행위, 내면적 상징들, 제의 등이 있다. 복음주의적 기독교 정신의 본질을 고려하여 예배에서 상징을 사용하려면 예배를 계획하기 전부터 예배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일단 방향을 정한 후에는 예배하는 이들을 그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방법과 물건들을 고려해야 한다.
11. 예배의식과 예배요소
예배에서 성경이 차지하는 비중은 개신교 정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성경이 예배에 사용되고 있는 형식을 본다면 예배에의 부름, 성경봉독, 교독문, 봉헌에의 초대, 성귀들의 활용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기도는 어느 시대에서나 인간이 하나님께 도달하는 중요한 방법이였다. 그 기도를 내용에 따라 분류해 보면, 경배, 감사, 고백, 간구, 중재의 기도로 나뉜다. 형태에라 분류하는 공중기도로서 축문이 있으며, 설교전의 기도, 년도, 화살기도, 창화의 단구 등이 있다. 또한 예배 순서의 위치에 따른 분류로서는 기원, 목회기도, 봉헌기도, 고정된 기도, 강복선언 등이 있다. 유형에 따라 분류한 공중기도로서는 고정된 기도, 자발적인 기도 등이 있다. 이러한 공중기도는 회중의 참여, 기도의 길이 등을 적절히 고려해야 한다.
음악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예배를 구성하는 중요한 구성요소 였다. 음악은 예배하는 이의 이해의 범위를 벗어나서는 안되며 특히 교회음악은 복음주의적 신앙을 전달하고 발전시키며 표현하는 매개물이여야 한다. 악기 사용과 성가대 운용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적합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설교는 하나님과 말씀을 듣는 사람 사이의 개인적 만남을 가져다 주는 것이므로 “말씀의 성례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간이 하나님과 영적인 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이 곧 교제이며 예배이다. 설교는 가장 높은 단계의 영적인 예배이다. 설교에 의해서 하나님이 인간의 생각과 마음과 의식 속에 직접 들어오시기 때문이다. 설교자를 통해서 그는 인간이 그 영혼의 가장 높은 속성에 도달하도록 자극하고 요구하신다. 따라서 설교는 성숙한 예배에 필수불가결한 요건이 된다. 기타 예배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서 침묵, 헌금, 상징적 행위 등이 있다.
12. 예배 의식과 예배순서
전체의 예배 순서를 통해서 요구되는 내용들은 분류자가 분류하는 방법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난다. 윌라드 스페리는 그 내용으로서 찬양, 회개와 용서의 확신, 감사, 간구, 중보의 기도, 교도, 성령의 감화, 헌신, 축복등을 지시한다. 알버트 팔머는 공동의 종교적 요구, 영적인 기쁨을 얻고자 함, 깊은 통찰력의 탐구, 믿음과 견해를 새롭게 함, 위로를 갈망함, 고백과 면죄를 원함, 하나님과 자신의 일의 헌신 또는 재헌신 하려는 충동 등으로 분류한다. 이러한 분류들을 기초로 현재의 우리의 목적에 필요한 목록을 작성해 보면 하나님의 바람 : 숭배, 그의 존재하심을 느낌/ 고백 : 겸손, 참회, 통회함, 회개/ 용서 : 구원, 해방, 깨끗케 함, 용서의 확신/ 감사와 찬양/ 기쁨 : 위로, 고양됨, 환희/ 친교 : 공동 또는 연합체임을 느낌/ 교훈 : 설명, 통찰/ 헌신 : 희생, 제물/ 사명 : 윤리적 요구, 영감, 행동을 촉구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예배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특질은 통일성, 교체, 균형, 단순성, 이동, 절정 등이다. 예배를 기획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심되는 문제는 어떻게 복음적인 예배를 만들며, 그것을 유지하는 가에 있다. 우리는 복음주의 예배를 위하여 교육해야 하며 목회자는 복음주의적 책임을져야 한다.
Ⅲ. 결 론
13. 복음주의 기독교의 예배와 미래
오늘날 예배의 위기를 말하는 목회자들이 많다. 고전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무턱대고 고전적인 형식을 선택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현대의 예배복고 운동은 상실되어간 에배의 기본정신을 회복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지 개신교 예배를 중세주의로 되돌려 놓는 것이 아니님을 알아야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복음주의적 예배를 만들고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몇 가지 내용으로 요약해볼 수 있다. 제단 및 제단과 관련있는 것들을 제거하는 일, 주의 만찬에서 미신적인 개념을 분리시키는 일, 예배에 사용되는 시각적 사징들의 수를 줄이는 일, 중세신학을 표현하는 어휘를 제거하는 일, 적합한 예배 장소를 확보하는 일, 복음주의적 예배 순서를 구성하는 일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예배의 갱신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것을 추진하고 이끌고 나갈 지도자가 필요하며 그 지도자는 필히 복음주의적 이어야한다. 역사적인 전환기를 맞고 있는 복음주의 기독교는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이 충성”이라는 성서의 권위있는 가르침에 의지하여 이 시대에 가장 적합하며 그 내용이 변치않는 기독교와 그 예배의 확립에 중대한 사명이 있음을 자각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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