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곧 예배인가?
(아타나시우스의 신학과 사상을 중심으로)
윤성열 목사
아타나시우스(St. Athanasius)
4세기 교회를 이끌었던 가장 위대한 지도자를 꼽으라면 아타나시우스(295-373)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아리우스주의에 대항하여 그리스도교 정통신앙을 앞장서서 변호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이집트의 민족지도자요, 교회정치가요, 삼위일체 교리를 정립한 니케아 정통 신학을 수호한 신학자이다. 샤프는 말하기를 “콘스탄틴이 정치계와 속계에 있어서 니케아 시대를 이룩한 중심인물이었다고 하면 아타나시우스는 신학계와 교계에 있어서 중심인물이었다.”고 하였다.
출생과 신앙배경
아타나시우스는 300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양친이 그리스도인인 그는 자연히 그리스도교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철학과 신학교육을 받았다. 게다가 그는 청년시절에 종종 광야로 은둔자들을 찾아가 그들의 경건한 삶을 보며 유익한 말씀도 많이 듣게 되었다. 이로 인해 한층 더 열렬한 신앙을 갖게 되었다. 그가 사막에 거주하는 동안 수도사들로부터 엄격한 규율을 배워 이를 스스로 지켜나갔다. 이러한 엄격성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으며 심지어 일부 적수들로부터도 경탄을 자아냈다.
아리우스파에 대항하는 인물들 가운데 아타나시우스야말로 가장 두려운 존재였다. 그 이유는 그가 치밀한 논리 전개에 통달했다거나, 그의 스타일이 우아했다거나, 혹은 정치적 술수에 능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아리우스파들의 유려한 점이라든가 다른 중요한 교구들의 감독들이 탐닉했던 사치에 빠지는 일없이 자기의 신념과 신앙에 따라 살았던 인물이었다.
그의 철저한 신앙생활, 민중들 속에 뿌리박은 신념, 그의 강력한 의지,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심오한 신앙의 원칙 등이 그를 강력한 존재로 만들었던 것이다.
아타나시우스는 성육신을 마치 황제가 도시를 방문하는 것에 비유하고 잇다. 황제가 이러한 방문을 결정하고 도시 내의 한 집에 거하게 되었다. 그 결과 그 집 뿐만 아니라 전체 도시가 특별한 명예와 보호를 받게 되었다. 이 때문에 산적들도 감히 근접하지 못하였다. 마찬가지로 온 우주의 황제께서 우리들 인간의 도시를 방문하셔서 그 중의 한 집에 사셨으니, 우리들은 이 때문에 사단의 동격들과 침입으로부터 보호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이러한 하나님의 방문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의도하셨던 바 대로 하나님과의 교통 속에 살 수 있게 되었다. 말할 것도 없이 역사 속에 게신 하나님의 임재야말로 아타나시우스의 신앙의 초점을 이루는 것이었다. 반면 아리우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온 존재가 진정한 하나님이 아니라 이보다 낮은 피조물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므로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주의야말로 기독교의 진수를 위협하는 심각한 오류라고 지적하였다.
순결과 덕을 겸비한 알렉산드리아 감독
니케아 회의가 열린 325년에 아타나시우스는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한 젊은 장로였다. 그런데 328년에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알렉산더는 죽으면서 아타나시우스를 자기의 후계자로 추천했다. 그는 비록 젊었지만 동방교회에 있어서 최고의 권위자인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의 지위에 올라 이집트와 리비아의 교회까지도 주관하게 되었다.
그는 46년 동안 감독직에 있으면서 끈기 있게 아리우스 이단과 대항하며 싸웠다. 그는 5번이나 교회로부터 추방당했는데 4번은 아리우스파인 치리자에게, 한번은 배교자 줄리안에 의하여 결국 20년 동안이나 귀양살이를 하였다.
그러니까 5번이나 교회로 다시 불려가서 감독의 직분을 다한 것이다. 그가 일생동안 걱정하고 목적한 바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입증하려던 것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신성이야말로 그리스도교 신앙 체계의 머릿돌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당시 삼위일체론을 거부하는 아리우스파를 그리스도교의 참다운 신앙에 대한 가장 위험한 적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생애의 대부분을 이들과 맹렬한 논쟁을 벌이고 투쟁하는데 보냈다. 그러나 정신적인 무기만을 사용하였지 다른 포악한 행동으로 그들을 제재하지는 않았다. 그는 온갖 핍박과 수모를 당했지만 상대편을 핍박하지는 않았다.
권고는 할지언정 이것을 억지로 믿게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정통의 원리를 그대로 지켰던 것이다. 샤프는 그에 관하여 말하기를 “그는 교회사에 있어서 가장 순결하고, 가장 정정당당하며, 가장 존경받을 만한 인물 중의 하나”라고 하였다.
또 그레고리 나지안센(Gregory of Nazianzus)은 말하기를 “나는 아타나시우스를 찬양 할 때는 곧 덕을 찬양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인격은 모든 덕으로써 이루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사랑과 빛으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갔던 진정한 하나님의 일꾼이었다.
시대적인 배경과 삼위 일체 논쟁
313년 이후 기독교는 로마제국에서 활개를 펴게 되었다. 황제와 고관대작들이 모두 다 기독교인들이었다. 기독교인이라는 이유하나 때문에 모든 불이익을 당하고 목숨을 걸어야 했던 순교의 열풍은 자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그것은 한편으로는 영적 쇠퇴기를 불러오는 요인이 되었다.
사회적인 기반과 출세를 위해서는 반드시 기독교인이 되어야 할 정도로 사회적 흐름이 뒤바뀌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풀무불 가운데 단련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멈추자 어느새 안일함과 영적태만에 깊이 빠져들어 가고 있었다.
324년에 이르러서는 콘스탄틴이 갈라진 동방과 서방을 하나로 통일하면서 황제로 등극하게 되었다. 콘스탄틴은 그의 황제로서의 장래의 성공은 옛날의 퇴폐적인 이교보다 그리스도교에 달렸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그는 공공연하게 교회에 대하여 호의를 가지고 이를 보호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교회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갖게 되고, 그의 정책도 교회를 중심 삼아 세웠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위대한 잠재력이 로마제국을 다스려 나아가는 데 얼마나 유용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갖은 모양으로 신흥 종교인 그리스도교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힘썼지만 성과는 더디었다.
옛날의 전통과 이교주의, 사교주의가 아직도 로마에서 큰 세력으로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교회 안에서조차도 그리스도의 신성(삼위일체 논쟁)에 대한 상반된 견해로 감독과 감독이 서로 대립하고, 심한 충돌을 빗었다. 기독교 자체도 하나가 아니었던 것이다.
외형상으로 제국은 하나였지만 신학적으로는 둘인 셈이었다. 이러한 문제에 관해서 콘스탄틴은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이 문제를 속히 해결하고 또한 로마 제국을 강화하며 단합시키는 목적을 위해서 교회회의를 소집하였다.
325년 수도 콘스탄티노플 건너편 소아시아의 니케아에서 첫 번째 교회회의가 열렸다. 300여명의 감독들이 전국에서 모였다. 당시의 감독수는 제국 전체에 약 1800명이었다. 그중 헬라 문화권에서 목회하는 이는 1000명 가량이었고, 라틴 문화권에서는 약 800명이 되었다.
이 회의가 직면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아리우스 논쟁이었다. 우선 확신에 찬 소수의 아리우스주의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그 후에 논쟁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니코네디아 감독 유세비우스에 의해 통솔되고 있었다. 그들은 주장하기를 오직 성부만이 영원하다.
성자는 모든 피조물과 같이 창조되었을 뿐, 피조물과 하나님의 중개역할을 하고, 하나님이 그에게 세상을 구원하도록 선택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의 은총을 입어 하나님의 양자로 선백받은 것이다라고 주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엿다.
가장 중요한 논쟁의 초점은 과연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영원하느냐는 것이었다. 그 후 아리우스파의 모토가 되었던 “그가 존재하지 않을 때가 잇엇다”(There was when he was not)는 구절은 이러한 문제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반면 정통적인 이들은 비록 숫자는 소수였으나 유능하고 영향력이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을 확고하게 붙들고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은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더감독이었다. 말렉산더는 말씀께서 성부와 함께 영원히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반면 아리우스는 말씀이 성부와 함께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언뜻 보기에 이는 별로 큰 차이가 아닌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 말씀의 신성(The divinity of the Word)이 여기에 달려 있었다. 엄밀하게 말해 아리우스는 말씀은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으뜸되는 존재라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아리우스도 말씀의 성육신 이전의 존재를 부인한 것은 아니었다. 말씀의 선재(The preexistence)에 관하여는 양자 모두 동의하고 있다. 아리우스의 이론인즉 이 세상 그 어느 피조물도 창조되기 이전 말씀이 하나님에 의해 먼저 창도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알렉산더는 말씀은 신성을 가지고 계시므로 창조될 수 없고 성부와 함께 영원히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수행원으로 온 아타나시우스는 비록 젊고 어렸지만 통찰력에 있어서 이미 미래의 정통주의 신학자로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약 20명의 감독들은 아리우스의입장을따랐다.
그리고 대다수는 유세비우스의 중도파를 따랐다. 그러나 오랜 논쟁 끝에 아리우스의 주장에 동정을 가졌던 감독들이 거의 다 차츰 대다수인 정통파에 가담하게 되었다. 오
랜 회의끝에 비로소 니케아 회의는 신앙고백을 만들어 냈다. “참 하나님의 하나님, 창조되지 않고 나신 아버지와 동질이시며 그로부터 모든 만물이 만들어진 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여기에서 ‘그가 없었던 때라든가’, ‘그가 나시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성자가 창조되었다든지 변하는 존재라든지 성부와는 다른 질이라든지’ 하는 용어들은 완전히 제거되었다.
아리우스를 비롯한 다섯 명의 대표들은 이 신조에 서명하기를 거절하였지만 그들은 모두다 유형을 당했다. 이제 예수님이 완전히 하나님이심은 공식적으로 선포되었다.
그러나 교회에 평화가 찾아오지는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이 신앙고백이 뜻하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완전히 같은 분인가? 아니면 거의 같은 분인가? 많은 사람들이 이 차이를 애매하게 보았다. 결과적으로 논쟁은 거의 60년을 더 끌었다.
379년에는 신앙심 높은 데오도시우스가 황제가 되었다. 그는 스페인에서 지휘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서방의 교회에서 니케아 신조대로 교육을 받았기에 아리우스의 주장을 용납 할 수 없었다. 그가 황제가 되자 니케아 신조는 로마제국의 신앙고백이 되었다.
그는 381년 콘스탄티 노플회의를 소집하여 니케아 신조를 확실하게 공포하였다. 이 신앙고백이 오늘날 ‘니케아 신조’(Nicene Creed)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전능하신 아버지,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모든 것의 조물주이신 한 하나님을 믿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한 분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나시고 아버지의 질로부터 탄생하신 독생자,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하나님, 빛으로부터 나온 빛, 참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참 하나님, 창조를 받지 아니하시고 나신 분으로서 아버지와 동질이시다.
그로 인하여 하늘에 있고 땅에 있는 만물은 만들어졌다. 그는 우리 인류를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강림하셔서 육신이 되시고, 사람이 되시고, 고난을 당하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에 오르시고,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려고 다시 오시리라, 우리는 성령을 믿는다.” 니케아 신조 원문」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하여
교회는 시초부터 에수 그리스도를 숭배하였다. 그런데 아리우스의 이론에 의하면 교회는 이러한 숭배를 중지해야 하고, 이제까지 피조물에게 에배드려왔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는 교회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므로 결국 아리우스의 이론은 틀린 것이다.
아타나시우스는 하나님을 초월적인 존재로 보았으나, 그렇다고 하나님이 피조세계와 직접적인 관게를 맺을 수 없으시다는 뜩으로 보진 않았다. 비록 하나님은 이 세상과 동떨어지게 위에 계시지만, 창조행위 그 자체 안에서 이미 피조 세게와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시며 지금도 피조세계의 존속을 위해서 끊임없이 접촉을 유지하고 게신다.
하나님이 이 세상과 관게를 가지신다는 개념은 말씀이 하나님괴 세상 사이에 중간자로 존재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내용이다. 하나님의 절대적 초월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말씀을 종속적 신앙으로 전환시켜서 절대적 하나님과 무관한(transient) 세상 사이에 있는 중간자로 전락시키곤 한다. 그렇지만 아타나시우스가 이해하는 하나님과 세계 사이의 관계성에 따르면, 말씀 혹은 아들은 참으로 영원하신 하나니이시면서도이 피조세게와 아무런 장애도 받지 않고 관게를 맺으신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적으로 계신다. 아타나시우스는 삼위일체 교리의 발전에 적극적인 공헌을 했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가 아들의 신성을 강조한 것이 삼위일체 교리의 가장 큰 적, 즉 아리우스주의를 결정적으로 무너뜨리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타나시우슨 말하기를 예배는 오로지 하나님에게만 속한 것이지만 인간 예수를 예배드려도 타당하다고 했다. “우리는 피조물에게 예배드리지 않는다. 그런 생각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 그러란 오류는 불신자들이나 또한 아리우스주의자들에게 해당된다. 그러난 우리는 피조세계의 주님이시며,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예배한다, 만일 육신이 본래적으로 피조된 세계의 일부분이라면 하나님의 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몸 그 자체를 말씀과 구분하지 않고 본래대로 예배하며, 우리가 말씀을 예배드리려 할 때도 육신과 분리시켜 놓지는 않는다. 우리는 ”말씀이 육신이 되었음‘을 위에서 말한 대로 알고 있기 때문에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후에도 우리는 말씀을 하나님으로 인정한다.“
하나님의 신성을 나타내는 또다른 확실한 증거는 그가 다른 피조믈이나 천사라 할지라도 가능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에게만 가능한 예배를 받기에 합당한 분으로 간주되었다는 사실이다.(계 19:10) 성경은 그리스도에 관해 증거하기를,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이름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9-11)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천사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께 경배하도록 명하셨다는 사실응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므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지어다”(히 1:6)라는 말씀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요한은 하늘에서의 예배 광경을 잠간 볼 수 있었는데 그는 수천의 천사들과 하늘의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싸고,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계 5:12)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고 “하늘과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5;13) 라고 말하는 것도 들었다.
그리스도가 여기서는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이라고 불리웠다.
그리스도가 성부 하나님께 드려야 할 만물의 예배를 함께 받으심으로서 신성에 있어 성부와 동일하심이 분명하게 증거되었다. 또한 예수님께서 부활 후에 제자들이 자신에게 예배하는 것을 허락하셨다(마 28:17)
삼위 일체 논쟁에 큰 영향력과 감화를 끼쳤던 아타나시우스는 자신의 전 생애를 진리를 바로 세우는데 모든 열정과 힘을 쏟았다. 그는 신학자요 행정가로서 탁월한 인물이기도 했다. 또한 그는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가 종의 형체를 입기까지 성부 하나님께 순종하셨던 그 완전한 겸손을 닮기 원했다. 그는 말한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신처럼 만들기 위해 사람이 되셨다. 그러기 위해서 그리스도는 완전한 신이며 또한 완전한 사람이어야 했던 것이다.” 그의 말년에는 정통 신앙을 위해 처절하게 싸우던 평생과는 다르게 평안하였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단을 반박하는 글을 쓰며 나날을 보냈다. 진정한 기독교 정통 교리의 수호자였던 아타나시우스는 373년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비록 니케아 신조가 완전히 승리를 거두는 것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으나 그는 진정한 승리자였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모든 피조물을 보았고, 신학을 연구하였던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삼위일체. 그것은 영적인 눈으로 바라볼 때만 열리는 영원한 신비다. 그러한 신비를 볼 수 있는 발판을 다진 그의 삶은 신앙고백을 드릴 때마다 우리의 가슴에 생생히 각인 될 것이다.
예수는 에배를 받기에 합당한 분
예수님을 하나님 혹은 주님이라고 부르는 신약의 수많은 구절들과 그를 가리켜 사용한 신성을 나타내는 명칭들, 그리고 오직 하나님에게만 해당되는 에수님의 행동이나 말에 관한 구절들은 모두 에수 그리스도의 절대적이며 온전한 신성을 거듭 확증한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하시고”(골 1;1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다”(골 2:9). 에수님은 참되고 온전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라는 의미의 임마누엘(마 1:23)이라는 그의 이름은 참으로 적합한 이름이다.
예수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시다. (히 1:2-3) 예수 이름에 무릎 꿇는 것만이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에배는 오직 에수 이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어야 한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충만케 하사 예수 이름 앞에 나아가 무릎 꿇게 하신다. 예배는 예수를 경배하며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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