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의 시작(4)

속죄 제물을 삼아

레 4 : 1-12


속죄제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의 용서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구약성도들이 죄 사함을 받는 방법을 가르친 것이고, 또 우리 죄를 위해 돌아가시는 메시아의 죽음을 동물의 죽음을 통하여 보여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속죄제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도록 해야 합니다.


드리는 때

속죄제는 언제 무엇을 위해 드리는 제사입니까?

"누구든지 여호와의 금령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으되"(레 4:2).

속죄제는 하나님의 금령을 범하되 하나라도 범했을 때, 그리고 그릇 범하였을 때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릇 범한다는 뜻은 고의성이 있는 것이 아니고 연약성을 뜻합니다. 즉 자기의 행동이 죄인 줄 알면서도, 또 범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노력하지만 외부의 압력과 유혹이 너무 강하여 결국 역부족으로 넘어지는 상태를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히 12:4)라고 하였는데, 이런 경우를 그릇 범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나올 때 눈물로 회개하며 나올 것입니다 .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대하는 마음의 자세를 여기서 점검해야 합니다. 즉 그 분은 나의 죄를 위하여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용서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분을 나의 죄를 쓰레기 치우듯 청소나 해 주는 청소부 정도로 생각하고 일주일간 아무 양심의 가책도 없이 죄를 범하다가, 주일에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 도매금으로 회개를 하고 용서를 받았다고 믿는다면 예수의 피를 믿는 성스런 신앙이 아니라 오히려 욕을 돌리고 망령된 행위를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드리는 계층


죄는 계층이나 사회적인 신분을 막론하고 범합니다.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으로 죄 얼을 입게 하였으면"(레 4:3).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란 대제사장을 가르칩니다. 따라서 기름 부음을 받은 대제사장도 죄를 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금령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그 범한 죄를 깨달으면"(레 4:13).

국가적으로나 민족적으로도 죄를 범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들이 그것이 죄인 줄 알지 못하고 지나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족장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금령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레 4:22). 족장이란 왕이나 사회적인 지도자를 가르칩니다.

이런 사람들도 부지중에 범죄 할 수 있습니다.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 범한 죄를 깨우침을 받거든"(레 4:28).


죄란 성전 안에서 하나님께 거룩한 봉사를 하는 대제사장으로부터 사회의 한 복판에서 살기 위해 싸우며 사는 서민들에게 이르기까지 모두 범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범죄에는 특권계급도 성역도 있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죄인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고 하신 말씀이 그래서 진리입니다.


대제사장으로부터


하나님은 사람의 죄를 말씀하실 때 대제사장의 죄에서부터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백성의 어른이고 지도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백성의 어른인즉 스스로 더럽혀 욕되게 하지 말지니라"(레 21:4)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른 된 자의 죄는 그 만큼 무겁고 중합니다.

또 제사장은 하나님의 종이요 영혼을 책임지는 지도자이며 민족의 양심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타락은 민족의 타락이요 국가 양심의 마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대제사장의 범죄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특별 취급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이들의 죄부터 문책하십니까?

그 이유는 그의 실수는 그 자신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실족케 하고 해를 당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 하여 백성으로 죄 얼을 입게 하였으면"(레 4:3)


제사장의 범죄는 자신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까지 해를 깨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죄는 더욱 큽니다.


"저가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 할진대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매이우고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나으니라"(눅 17:2).


영적 지도자의 죄가 그렇게도 크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당시의 영적 지도자는 오늘날의 목사에 해당하는 것이고 이들이 범하는 죄가 하나님 앞에서는 가장 중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목사를 잘 만나야 하겠지만 좋은 목사가 되도록 위하여 기도하고 협력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죄도 말씀하십니다.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금령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그 범한 죄를 깨달으면"(레 4:13).


민족적인 죄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경우 저들이 민족적으로 실수를 하고 잘못하는 것은 잘못된 지도자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죄를 지도자에게만 물으신 것이 아니라 백성들 전체에게 물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외국에 포로가 되고 국가가 패망하게 되는 것은 어느 한 개인의 실수와 범죄가 아니었습니다. 잘못된 지도자들 때문에 민족적으로 하나님을 떠나고 죄를 범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죄의 책임을 지도자에게만 물으신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에게 물었고 모든 백성은 그래서 포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은 지도자를 잘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지도자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출을 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지도자를 잘 선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범죄 유형의 차이


죄란 모든 사람이 다 범하는 것이지만 범죄 유형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로 백성이나 족장 혹은 평민의 경우는 부지중에 죄를 범한다는 팻말이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후에 죄인줄을 깨닫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에게는 부지중이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대제사장 자신이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배우고 아는 성도의 죄는 그 만큼 무겁습니다. 저들은 죄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몰라서 죄를 범하는 것보다 알고 범하는 죄는 더 중합니다. 이 점을 성도는 명심해야 합니다.


백성들이 부지중에 범하였다고 하여 무조건 덮어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경우에도 속죄제물을 드려야 용서를 받습니다. 우리도 과거 믿지 않았을 때 죄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범한 때가 많았습니다.

지금도 그런 경우가 있고 후에 그것이 죄인줄 알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일지라도 속죄제를 드린 것처럼 우리도 회개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어야 용서를 받게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제물의 특성


제물의 내용은 죄의 경중에 따라 각기 다릅니다.

대제사장이 속죄제를 드리는 경우는 "수송아지로 제물"(레 4:4)을 삼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속죄제를 드리는 경우도"수송아지로 제물"(레 4:14)을 삼아야 합니다. 그러나 족장은 "수염소"(레 4:23)로, 평민은 "암염소"(레4:28)나 혹은 "어린양"(레 4:32)으로 제물을 삼습니다.


이상의 말씀들을 보면 대제사장의 죄를 위한 제물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죄에 해당하는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대제사장의 죄가 이스라엘 전체의 죄와 맞먹을 정도로 무겁고 중하다는 뜻입니다.

목사의 죄, 종교 지도자의 죄, 성도의 죄는 그렇게 무거운 것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드리는 제물에도 차이가 있지만 제물을 죽이는 방법도 특이합니다.


첫 번째, 짐승의 머리에 안수하는 것은 번제와 화목제와 공통입니다.


두 번째, 피는 번제나 화목제일 때는 번제단 밑에 부었으나 속죄제일 때는 다릅니다. 속죄제의 피는 세 곳에 뿌리는데 1)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곳인 "여호와 앞 곧 성소의 휘장 앞에 일곱번 뿌려야"(레 4:6)하고, 2) "여호와 앞 곧 회막 향단 뿔에 발라야"(레 4:7)하고, 3) 나머지 "피 전부를 회막문 앞 번제단 밑에 쏟아야"(레 4:6)합니다. 이렇게 뿌려야 하나님과 죄인이 교통할 수 있는 길이 트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서에 들러갈 담력을 얻었나니 이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히10: 19).


세 번째, 기름은 화목제를 드릴 때처럼 하나님께 드립니다.


기름은 짐승에 있어서 가장 귀한 부분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하나님께 속죄제를 드리면서도 가장 귀한 부분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부분은 그를 향한 우리의 사랑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속죄제를 드리면서 아울러 드리는 헌물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예물입니다 .


네 번째, 속죄제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제물의 나머지 고기를 처리하는 방법입니다.

번제는 모든 고기를 제단에 태웠습니다. 화목제는 남은 고기를 제사장에게 일부를 돌리고 남은 것은 이웃과 함께 회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속죄제의 제물은 진 밖의 재버리는 곳까지 가지고 가서 그곳에서 태워 없애야 합니다. 재 버리는 곳은 회막 바로 옆에 있은 것이 아닙니다. 약 10 마일에서 12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완전히 이스라엘의 진영밖에 있습니다.

이곳까지 가지고 가서 버려야 합니다.


죄란 더러운 것입니다. 추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죄를 짊어진 제물의 몸은 더러운 것입니다. 이것을 태우는 냄새는 하나님 앞에 향기가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고기 타는 냄새는 같을 것 같지만 하나님께는 인간의 추악한 죄가 타기 때문에 향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동이 서에서 먼 것과 같이 멀리 멀리 아주 멀리 버려야 합니다.


이 사실을 히브리서 저자는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히13:12)고 하였습니다. 즉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문 밖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바로 속죄제 제물을 영 밖으로 가져다 태우는 것과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는 진영 밖은 지옥을 상징합니다. 예루살렘 성밖에는 "힌놈의 골짜기"가 있습니다. 이곳에는 도벳의 신당이 있어 몰록을 섬기며 자기 어린 아들을 제물로 바치던 곳입니다.

이곳을 요사아 왕은 더럽게 하여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모든 쓰레기나 동물 혹은 사람의 시체까지도 버리는 곳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이후 이곳은 지옥을 상징하는 장소(하데스)가되었습니다.

따라서 짐승의 육체를 영 밖으로 가져다가 불태워 버리는 것은 우리의 죄의 육체를 지옥에 던져 버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맺는 말


이상의 속죄제물은 예수 그리스의 모형입니다.

모형에서 빠지기 쉬운 것은 생명입니다. 그러면 속죄제의 생명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기름진 짐승으로 제물로 삼을지라도 제물은 의미가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약의 성도들은 어떻게 믿었고 우리는 어떻게 믿어야 하는 것입니까?


구약의 성도들은 짐승에게 안수하면서, 죽이면서, 피를 뿌리면서, 육체를 진밖으로 끌어내면서, 그리고 태우면서 이 짐승은 앞으로 나를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시어 십자가를 지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었습니다.

이런 믿음이 있을 때 용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미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시절 이스라엘의 죄를 지고 죽어 간 짐승들처럼 골고다 언덕에서 희생하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 믿음이 없으면 구약의 성도들도 우리도 죄는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려도 이 믿음이 없으면 사죄는 불가합니다.

이런 믿음을 소유하여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6 Powerful "I WILL" Promises of Jesus

praying in the spirit Christians are quite familiar with the “I AM” statements in Scripture. They are powerful and share much about the character of Christ. They share God’s will for His son and for 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