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의 시작(3)

화목제의 희생

레 3: 1-5


들어가는 말

지금까지 석주일째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법에 대하여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첫 주일은 번제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번제란 우리의 헌신을 뜻하는 것으로서 모든 제물을 불태워 드리는 것입니다.

둘째 주일은 소제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는데,

소제란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로서 피의 제물이 없기 때문에 이 제물은 다른 피의 제물과 함께 드려야 하며, 소제의 기본 정신은 우리의 노력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과 모든 사람 앞에서 거룩한 생활을 힘써야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오늘은 화목제에 대하여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화목제란 첫 번째로 감사의 제사입니다. 이것을 받은 은혜에 보답하는 수은제라고도 합니다.


"감사와 고마움에서 드리는 제사이기 때문에 자원하는 예물이라고 하였고"(레 7:15-16).


두 번째는 마음에 서원하는 것이 있을 때에도 드리기 때문에 서원제라고도 합니다. 마치 우리가 드리는 감사헌금, 혹은 서원헌금과 같은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특성


이 제사의 제물은 다른 제사와는 좀 특이 한 부분이 있습니다.


첫째, 짐승을 드리는데 암수를 가리지 않고 드리는 것이 특징입니다.


"화목제의 희생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거든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레 3:1).


"만일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는 화목제의 희생이 양이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없는 것으로 드릴찌니"(레 3:6)


"만일 예물이 염소이면 그것을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레 3:13).


하나님께 소나 양이나 염소 등의 짐승으로 제사를 드리는데 번제는 숫컷으로만 드렸으나 화목제는 암수를 구별하지 않고 모두 다 드릴 수 있습니다. 또 번제는 비둘기도 드렸지만 화목제는 비둘기는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면 암수 모두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비둘기는 드릴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에 대하여는 잠시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둘째, 이 제사는 식물성 예물을 함께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레 7:11-14).


식물성 제물의 대표적인 제사는 소제인데 소제의 특성은 절대로 누룩을 넣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화목제일 경우는 누룩이 없는 무교병도, 누룩이 있는 유교병도 다 드릴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은 짐승의 예물이 암수 모두 가능한 것과 같은 맥락인데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에서 자원하여 예물을 드릴 때는 암수의 구별도, 무교병과 유교병의 구별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다만 감사한 마음으로 자원하여 드리면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열납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의 예물은 금하신 것은 감사의 예물이 지나치게 빈약하면 감사의 의미가 축소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비둘기는 금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큰 은혜에 과도히 작은 감사는 은혜를 보답하는 제물로는 합당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 점은 우리도 명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그래서 감사에 인색하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방법


하나님께 제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잘 이해하여야 레위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제사를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사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화제인데 이것은 제물을 불에 태워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번제도 불에 태우고 소제도 불에 태웁니다. 그리고 화목제의 제물 중 짐승의 기름도 화제로 불에 태웁니다. 화제란 불태워 드리는 제사입니다 .


둘째, 거제인데 이것은 제물을 들었다 놓는 제사 방법입니다.


"또 유교병을 화목제의 감사 희생과 함께 그 예물에 드리되 그 전체의 예물 중에서 하나씩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그것을 화목제의 피를 뿌린 제사장들에게 돌릴찌니라"(레 7:13-14).


식물성 제물 중에서 유교병을 가져오면 다만 들었다 놓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이것은 우리의 부패하고 타락한 성품을 멀리 치워버린다는 뜻으로 제물을 들었다 놓는 것입니다.


셋째, 요제가 있습니다. 요제란 흔들어 드리는 제사를 가르치는데 어떤 때에 요제를 드리는지는 오늘의 말씀을 잘 듣고 계시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넷째, 최후로 관제라는 제사 방법도 있습니다. 관제란 피와 같은 제물을 부어 드리는 것으로 대개 제사가 끝날 때 이런 방법으로 드리게 됩니다.


제물의 처리 방법


짐승을 잡고 처리하는 방법도 화목제는 번제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번제는 모든 고기를 다 태워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화목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드리는 부분이 있고 드리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부분은 주로 내장과 콩팥과 그곳에 붙은 기름을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표현하기를 허리 부분의 기름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레 3:4)


"그 기름 곧 미려골에서 벤바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기름과"(레 3:9)


화목제는 내장에 붙은 "기름"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주의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첫 번째는 내장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내장을 요구하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신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무엇이냐 물으면 모두 심장이라든가, 위장이라든가 하는 내장을 지목합니다.

그 이유는 내장이 신체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입니다. 사실 내장이 없는 사람은 살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를 가르쳐 "내 심복"(몬 1:12)이라고 하였습니다. 심복이란 말은 창자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창자가 반란을 일으키면 그 사람은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그래서 심복이란 말과 내장이란 말은 같은 단어로 쓰이는 것입니다. 화목제의 제물로 짐승의 내장을 하나님께 드릴 때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심복이 되었는가? 내가 하나님의 내장처럼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면서 살아 왔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못한 부분이 있으면 이 화목제와 함께 회개하며 사랑을 고백하고 순종을 서약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허리의 비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개선이 먼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내장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짐승의 내장을 드리는 것처럼 하나님께 사랑과 순종을 고백하며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를 개선하도록 하십시다.

그럴 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도, 성도의 교제도, 원만하게 이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왜 기름을 드리라고 하셨을까요?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라"(레 3:16-1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름이란 그 짐승의 가장 좋은 부분, 알맹이를 뜻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에게 먼저 가장 좋고 귀한 것을 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먼저 좋은 것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 제일주의의 신앙생활입니다.

제사란 하나님 제일주의의 신앙행위입니다.

이런 마음이 없는 제사는 의식이요 이런 마음이 없는 예배나 감사 헌금은 형식에 불과 한 것입니다.


남은 부분의 처리 방법


화복제는 제사를 드리고 남은 부분을 처리하는 방법도 특이합니다.


첫 번째로 제물의 남은 것 중에서 가슴과 우편 뒷다리는 제사장에게 가져옵니다(레 7:30-34). 그러면 제사장들은 이것을 요제로 드립니다. 요제란 제물을 흔들어 드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제물은 제사장이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감사의 예물 중 가슴고기와 오른편 뒷다리 부분은 제사장에게 드리는데 이 것은 영적으로 복을 빌어준 은혜에 보답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과 세상 사람들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세상 사람들은 자기 노력으로 무엇이든지 하고 성공하는 줄 알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공을 하면 교만하고 자만해 지기 일수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성공은 하나님의 축복으로만 가능한 것을 알고 믿고 있습니다.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법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3서 2).


그래서 하나님의 종의 축복기도를 사모하는 것이 성도의 삶의 일면입니다. 그리고 저들이 열심히 노력하여 잘되고 형통하였을 때, 첫째로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인 것을 알고 화목제인 감사의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며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종에게 가슴 고기를 드리면서 사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제이고 수은제 입니다.


두 번째로 그래도 제물이 남는데 그 남은 것은 어떻게 합니까? 그것은 가족과 친구, 그리고 제사를 드리는 이웃과 더불어 여호와 앞에서 먹습니다(레 7:15-16). 이때 여호와 앞에서 제물을 먹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는 성도의 교제를 뜻합니다.

그런데 성도의 교제에는 원칙이 있습니다. 이것을 화목제의 원리에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그에게 먼저 예물을 드린 후에 가져야 하고, 2) 하나님의 제사장에게 감사하며 가슴의 고기와 오른편 뒷다리를 드린 후에야 하며, 3) 그리고 나서 성도의 교제를 가지는데 그것도 하나님 앞에서 제물을 먹는 것입니다.


이때 먹는 제물의 의미는 첫째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 6:55)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성도의 교제는 예수의 피와 살을 먹고 마시는 교제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예수님의 몸으로 상징된 제물의 고기를 먹었고, 우리는 신령하게 예수님의 피와 몸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제물은 반드시 여호와 앞에서 먹고 마셔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 먹고 마시는 것은 아무리 분위기가 좋고 화기애애하여도 그 모임은 단순한 세속적인 교제, 이웃간의 회식은 되나 성도의 교제는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교제라야 참 성도의 교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십니다. 감사한 일이 있으면 나 혼자서만 감사하고 기뻐하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종과 온 성도들과 함께 그 감사와 기쁨을 나누도록 하십니다.


신앙생활이 감사와 즐거움과 기쁨이 넘치도록 해야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구속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입니다.

즉 예수님으로 인하여 구속을 받고 주안에서 기뻐하며 즐거움에 참여하여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과 같은 신앙생활입니다.


기독교는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 올 때 슬퍼하고 고민하고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진리를 깨닫고 그의 은혜를 받고 나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할렐루야로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것이 기독교의 기본 진리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오늘 화목제를 통하여 주님과 함께 감사와 환희로 먹고 마시는 잔치에 참여하는 것을 배우도록 하십시다.

이 기쁨의 교제는 주님과만이 아니라 성도 상호간의 사랑의 교제로 이어져 성도와 성도와의 사이에도 교제의 기쁨을 가지도록 하여야 합니다.


영영한 규례


"이는 너희 모든 처소에서 대대로 영원한 규례니라"(레 3:17)고 하셨습니다. 대대로 영원한 규례란 무엇을 뜻하는 말씀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어 십자가를 지심으로 영원한 제사를 드렸고 그후에는 구약의 성도들처럼 소나 양이나 염소를 잡아 드리는 제사 제물은 드리지 아니하지만 그러나 화목제에 포함되어 있는 정신은 지금 우리에게도 해당되고 또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한 마음이 솟구치면 구약의 성도들처럼 소나 양이나 염소로는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지만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심할 것은 비둘기와 같이 매우 작은 짐승으로 드리면 아무리 마음으로 드린다고 하여도 감사의 의미가 소멸되거나 위축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의 예물은 항상 넉넉한 마음과 물질로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가는 말


화목제를 드릴 때는 짐승을 잡아 피를 흘려 속죄의 표시를 삼고, 기름을 하나님께 드리며 먼저 감사하고, 짐승의 가슴과 오른편 뒷다리를 제사장에게 드리며 영적 축복에 감사하고, 나머지는 식구들과 이웃과 친지들이 함께 앉아 여호와 앞에서 먹음으로 성도의 교제를 돈독히 해야 합니다. 이것은 영원한 규례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과거, 미래, 현재에 걸쳐 언제나 지켜져야 하는 규례입니다.


이 규례를 지키어 하나님께는 감사와 성도상호간에는 아름다운 교제가 있어 신앙생활에 기쁨과 환희가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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