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의 당위성

A. 안식일의 올바른 개념과 주일예배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첫 사람 아담과 하와를 창조 하시되 영원히 그리고 행복하게 살게 하도록 창조를 하셨다. 그 에덴동산에서는 “칠일 중 하루”가 아니라 매일 매일이 행복한 안식의 연속이었으며 그것이 하나님이 인생에게 허락하신 올바른 “안식일의 개념”이며 하나님의 참 뜻이다. 그리고 그것이 원 하나님의 창조 목적일 것이다. 창세기를 읽어보면 에덴동산에는 안식일이 따로 없었음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은 한사람으로 말미암는 죄로 인하여 참된 안식에서 멀어져 죄 가운데 유리하며 고통 중에 있게 된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회복, 즉 사람의 타락으로 회손 된 원 창조의 목적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출애굽을 시키시고 7일중 하루의 안식을 강제적으로 지키게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7일중 하루의 안식을 주신 것은 사람으로 7일중 하루만 안식하게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염려와 재리로 쉬지도 못하고 하나님도 바라보지 못하는 인생들에게 이 제 7일 안식일을 통하여 영원한 참 안식, 즉 첫 창조인 에덴동산을 바라보며 소망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매일 매일을 온전히 주안의 안식을 누리기를 진심으로 원하시고 계신다. 그러므로 십계명의 제 7 일의 이 안식일은 완전한 의미의 안식일이라기보다는 완전한 안식을 바라보게 하는 돌 판에 새겨진 모세의 율법인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의 개념이 “안식일은 칠일 중의 하나이다”라고 보기보다는 “매일 매일을 주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은혜시대의 참된 안식일은 7일 모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첫 창조(창세기의 에덴동산) => 타락 => 회복(계시록: 새 하늘과 새 땅 즉 덴동산의 회복)으로 성경을 보는 맥락에서 “에덴동산의 회복”은 참된 안식일의 완성이며 이것은 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성취된 것이다.


[개역한자]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被造物)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은 “생명의 회복”이요 “첫 사람 아담으로 인한 타락으로 부터의 회복” 인 것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주안에서 새로운 아담 새로운 하와가 되었으므로 안식일이 7일 중 어느 한날로 따로 제한되어져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은혜의 시대,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율법이 완성된 이 시대에서 참 안식 가운데 드려지는 주일“예배”의 개념은 구약의 모세의 율법에 따르는 안식일 “제사”의 개념과는 다른 것이다.


첫 에덴동산(창세기) => 날마다 계속되는 영원한 안식 => 타락 => 십계명(제7일 안식일) => 그리스도의 오심, 죽으심, 그리고 부활(신약복음) => 에덴동산의 회복(계시록) => 매일 매일 영원한 참 안식의 회복(에덴동산의 회복).

B. 폐하여지는 율법의 안식일과 주일 예배

지금까지 우리는 안식일의 의미와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뜻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이제 구약 시대의 안식일(토요일)이 분명 있음에도 주일(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이유에 대하여 최소한 한 가지 배경은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민수기 28 : 9 “안식일에는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둘과 고운 가루 에바 십분지 이에 기름 섞은 소제와 그 전제를 드릴 것이니”

구약에는 절기와 월삭과 상번제 그리고 여기에서 다루는 안식일에 대해서 나옵니다. 그러나 이 안식일과 월삭과 상번제 등등은 다음 구절을 통해 폐하여지게 된다.


호세아 2 :11 “내가 그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미완료: 미래형)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과 음란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안식일과 월삭과 명절 등이 오히려 그들의 음란과 부패의 온상이 되었음으로 인생들의 내적인 진실한 제사를, 거룩한 산 제사를, 중심을 원하시던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하여 그 모든 것 즉 희락, 절기, 월삭, 안식일, 등을 주님의 오심과 단번의 죽으심으로 또 부활하심으로 모두 폐하게 될 것(미래형)을 예언하신다.


[레위기 16:23~24] “아론은 회막에 들어가서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 입었던 세마포 옷을 벗어 거기 두고 거룩한 곳에서 물로 몸을 씻고 자기 옷을 입고 나와서 자기의 번제와 백성의 번제를 드려 자기와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속죄제 희생의 기름을 단에 불사를 것이요”


레위기에 의하면 구약의 제사(예배)는 속죄를 하는 의식이었음으로 연장선인 현제의 예배의 요소에도 반드시 회개가 있어야 할 것인데, 신약에 들어와서 이 속죄를 위한 이 모임, 곧 안식일 제사는 곧 주일예배로 바뀌게 되었다.


1. 행20:7 - “안식 후 첫날(주일)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유두고의 떨어짐.

2. ‘주일’이라는 단어는 계시록 1:10절에 나와 있음...

3. 고전 16:1~2 - “1)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2) 매주일 첫날(주일)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4. 히7:27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 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5.히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9:26~28절, 히10:10절, 히브리서 7장 ~ 10 장 (등 그 외에 여러 곳).


이제 그리스도 우리주님의 단번의 제사로 호세아의 예언은 이루어 졌다. 그 단번의 제사는 이미 드려졌으므로 매주 드리는 모세의 율법적인 안식일 개념의 "제사"는 당연히 폐하여 졌다. 그로인해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또 참된 안식 가운데에서 주일에 드려지는 예배에는 아무런 율법적인 오류가 없을 뿐 아니라 폐하여 진 것은 오히려 예언의 성취인 것이다

C. 주일은 율법적으로 꼭 지켜야만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주일은 구약의 안식일과 같이 꼭 율법적으로 지켜져야 하는가?

공관 복음에 보면 주님과 함께하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을 까불어 먹음으로 바리세인들이 주님에게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을 범한다, 하며 논쟁해 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에 대한 주님의 대답이 마 12: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여기에서 '인자' ( o` ui`o.j)는 분명히 예수님을 지칭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12:8에서의 안식일의 참의미는 그 아들로 인한 십자가로 구원을 받는 다는 것, 그 정신이 이 말씀의 초점인 것이다.

막2:27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 2:27에서도 즉 27절의 전반부는 후반부 '이러므로'이하를 이끌어 내기 위한 것으로서 안식일이 누구를 위하여 있느냐가 초점이 아니라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성경은 말씀하려고 하는 것이다. 즉 이 말씀은 안식일을 율법적으로 지키거나 지키지 않는 것에 말씀의 주안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혹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임으로 사람이 안식일에 제한을 받는 것이 옳다거나 혹은 그르다거나 하는 등의 말씀 역시 아닌 것이다. 그러한 것은 그 말씀의 그림자 같은 것일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주신 것은 앞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당연히 사람을 위한 것이요 사람으로 하여금 참 안식을 누리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뜻일 것이다. 이러한 사람을 위한 율법의 적용에 대해서는 구약 삼상 21:3 이하 에 잘 나타나는데, 삼상 21장에서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으로 부터 진설병을 취하게 되는 상황은 신약에서 주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 것과 사람을 위한 율법, 율법보다 앞서는 사람의 생명이라는 점에서 매우 병행한다. 이것은 율법이 어떻게 우리 생활에 적용되어 져야 하는지에 대해 교훈을 삼을 수 있으며 마 12:11 말씀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마 12:1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율법의 근본적 목적은 이와 같이 '사람을 위한 것'이지 결코 사람의 고통이나 위험을 조장하거나 혹은 방치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이와 같이 율법을 반드시 지켜야 하되 사람의 목슴을 위하여는 예외적 상황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신약의 주일은 구약의 안식일은 아니지만 안식일의 정신을

이어 받아 더욱 완숙된 안식의 의미 속에서 발견된다. 그러므로 신약의 주일이 옛 계명에 얽매인 구약의 안식일 율법에 얽매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이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기 때문에 주일은 사람의 마음대로 사람이 사용하기 편리한데로 일하여 돈을 모으며, 또 구약의 안식일의 정신을 열망하지 않음으로 세상에서 성도로서의 구별된 삶을 살지 않아도 좋다"라고 하는 말씀은 결코 될 수 없다. 우리나라 사회의 보편적인 인식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이 지키는 “주일성수”가 가지는 위치는 “십일조”와 더불어 기독교 신앙인과 비신앙인의 구별(구분)점 같은 것 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주일 성수는 이 사회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성도로서 당연히 가져야 하는 거룩성이라 하겠다.


D.요약, 결론 및 제시

그리스도인으로써 세상의 어떤 관점보다도 먼저 선교의 관점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라고 한다면 주일 성수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십일조를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과연 어떤 것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합당한 것일까?

너무 당연한 것들을 제가 여기에 적고 있지만 현대는 좀 더 건전하고 참신한 ‘주일 관’을 요구한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입장에서 최대한 인생을 사랑으로 감싸시려는 그 심중의 사랑의 의도를, 그 계시를 사람이 사람의 입장에서 사람의 편리대로 해석하려 한다면 그러한 개인이나 단체는 지나온 교회사 속에서 정죄된 이단들의 길을 밟게 될 것이다.


앞에서 열거한 행 20:7, 고전 16:1~2 등 신약의 구절들로만으로 인하여 주일날 예배를 드리는 것이 합당 하게 되는 주된 이유라고 보고 싶지는 않다. 이미 위에서 안식일의 의미에 대해서 충분히 말한바 주의 크신 은혜 아래에서 기뻐하며 예배함에 있어 어찌 시간이나 환경이 거치는 것이 될 수 있겠는가? 그날이 토요일 이든 주일이든 그것이 어찌 하나님의 구속의 사역보다 더 우선순위에서 다루어 질 수 있을 것인가?


이제 주님의 은혜아래에서 새 언약의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 로마서, 고린도서신등 모든 성경의 말하는바 대로 먹든지 마시든지 모든 것이 주를 위해 행하여야 함이 은혜 아래에 있는 신약을 사는 모든 신앙인의 행위에 기본 출발점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약의 안식일의 개념에서 볼 때 대 예배의 날자가 토요일에서 주일로 바뀌었다는 것이, 결코 구약 안식일의 의미에 위배되거나 거슬리는 것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참되며 온전한 안식 개념 안에서 주님이 말씀 하신바대로 '물에 빠진 양을 구원하기' 위한 그분의 섭리요 인도하심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나아가 그것이 더욱 성경적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예배와 전도와 선교를 위해 주일날에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배신하는 것이 되며 비 성경적이라고 말 할 수 있겠는가.... 토요안식일을 준수하는것, 그리고 주일을 성수한다는 것, 이것이 구원의 척도가 될 만큼 중요 할 것인가? 만약 어떠한 한쪽을 선택하여야 한다면 어떤 것이 혹은 어떠한 성경관이 먼저 말씀을 받은 우리에게 요구 되는가? 과연 어떤 생각이 하나님의 나라와 전도와 선교의 열매를 맺기에 더 합당하게 보여야 하겠는가 토요일만이 안식일이며 또한 토요일 안식일 제사만이 참다운 예배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도 성경적이지도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6 Powerful "I WILL" Promises of Jesus

praying in the spirit Christians are quite familiar with the “I AM” statements in Scripture. They are powerful and share much about the character of Christ. They share God’s will for His son and for 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