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의 갱신과 주의 만찬

기독교대한성결교

목사 박찬희


오늘날 서방교회의 한 줄기인 개신교에서 일고있는 가장 활발한 운동을 찾으라 하면 예배갱신운동이라 할 수 있다. 이 예배갱신운동은 크게 두 흐름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그것은 예전적 갱신운동과 은사운동이라 할 수 있다. 전자는 지나온 교회 역사를 통시적(通示的)으로 관찰하면서 초대교회의 예배 형식과 그 예배의 정신을 회복하려는 예전적 운동이고 후자는 이와는 정 반대로 예배에서의 형식파괴 즉 은사중심의 비 예전적 운동이라 할 수 있다.

교회 역사를 통하여 면면히 이어져 온 예배의 큰 줄기는 "모임, 말씀, 떡을 뗌, 흩어짐" 이라는 네 개의 구조를 큰 틀로 삼아 때론 상징적 언어로, 때론 수사학적 표현으로, 때론 직접적 고백의 형태로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종교개혁기에 이르러 이러한 예전적 예배는 큰 변화를 겪게되었는데 이는 단순화된 언어사용과 상징의 배제, 말씀(설교)의 강조와 성만찬의 제한적 실행이라는 당시의 급진적 계열 즉 쯔빙글리와 재세례파 그리고 회중교회, 퀘이커 등의 영향이 그것이었다.


사실 개혁의 시발점인 루터가 성만찬을 매우 중요한 예배의 핵심으로 여긴 것은 물론 제네바의 칼빈도 성만찬을 중요시 여겨 1215년에 있은 제4차 라테란공의회에서 재확인된 고해성사를 인정하고 매주 모일 때마다 고해성사와 함께 성만찬을 행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웨슬레는 성만찬을 자주 거행할 것을 독려하면서 일주일에 최소한 두 번은 성만찬을 행할 것을 역설하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한국의 교회들은 신학적 사조는 각기 칼빈, 웨슬리를 따르면서도 유독 예배 예전에서는 쯔빙글리의 입장에 동정적이다. 예배의 형식은 물론 성만찬에 대한 신학적 이해와 그 횟수 등에서 각기 칼빈이나 웨슬리의 입장이 아닌 쯔빙글리의 입장에 더 가까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미연합감리교회, 미국 장로교회를 위시한 많은 교단들이 예전적 교회갱신운동에 노력을 기울여 예배에서 성만찬을 회복하고, 그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도 예배의 4가지 큰 줄기를 회복하고 있다.


두 번째 운동이라 할 수 있는 것은 19세기 초 프론티어 전통과 은사운동계열의 예배이다. 프론티어 전통은 애팔레치아 산맥 건너 무교회 지역에 전도하던 전통이다. 광활한 대륙을 무대로 전도자들의 발길이 종횡무진할 당시 그들의 모임은 필연적으로 전통적 예배로서가 아닌 전도집회의 형식을 가질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성만찬을 집례할 주교 혹은 사제(목사)가 턱없이 부족한데서 연유하였다. 그리하여 예배는 단순화되었고 성만찬은 사제(목사)가 교구에 순례하는 시점 즉 일년에 4번 정도 실행되는 기현상이 속출하였다. 이런 영향하에 다분히 쯔빙글리의 '기념설'이 은연 중 그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던 바 교회와 예배에서 상징은 점차 사라졌으며, 성만찬은 예배를 구성하는 요소의 뒷전으로 밀려나거나 혹은 역설적으로 지나치게 조심스럽거나 신비적 예전으로 실행되게 되었다. 여기에 20세기 초에 발전하기 시작한 오순절 전통의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의 실재 즉 성령의 은사들을 강조하는 운동은 전통적인 예전중심의 예배 틀을 조금씩 걷어내기 시작하였다.


이런 예전파괴의 흐름은 현대에 와서 미국의 일부 교회들에게서 더욱 두드러졌다. 엄밀히 말하여 예배라고 할 수 없는 '경배와 찬양' 운동, 윌로우크릭 교회 등의 구도자예배, 빈야드 등의 은사운동 등은 모인 회중에게 말씀이 선포되고, 떡을 떼고 나누며, 흩어져 성만찬으로 경험된 성령임재의 삶을 몸으로 살아내는 예배의 신학을 벗어 던짐으로서 참여적 공동체의 예배라는 예배 정신은 퇴보하고 개인적 체험과 고백이라는 수동적이고 개인적인 예배로 변하게 되었다.


필자는 앞에서 예배 갱신운동에 있어서 두 흐름을 간략히 소개하였지만 엄밀히 말하여 교회사와 예배학에서 말하는 예배 갱신운동은 전자의 예전적 예배갱신 즉, 초대교회 예배의 발견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이어져 온 예배들을 연구함으로써 수천년의 시간을 하나로 꿰는 하나의 예배, 같은 고백이 가능해졌으며, 세계의 모든 지역이 그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어 공통의 기도와 말씀의 나눔과 성만찬을 경험하게 되는 '우주적 예배'라는 예배신학을 낳게 된 것이다.


우리가 성만찬을 어떻게 이해하든 간에,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주의 만찬'은 '세례'와 함께 성례로 받아들여진다(동방교회나, 카톨릭, 성공회는 이 두 가지 외에 5개의 성례를 더 인정하고 있다). 이 공통된 성례 즉 성만찬의 회복은 예배가 그리스도 중심의 예배이어야 함을 상기시킨다. 주일이 '주님의 날'이듯 '성만찬'은 주님께서 친히 우리를 위해 제정하시고 모일 때마다 행하라고 하신 '주님의 만찬'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에서 '주의 만찬'을 회복하는 것은 예배에 참여하는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다시 오실 그 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전능하신 일을 오늘의 시점에서 재현하며 그 사건의 본질을 기념하며 그리스도의 희생과 더불어 예배자 자신을 거룩하고 산 희생의 제물로 드리는 헌신을 회복하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2세기 속사도교부인 이그나티우스가 에베소에 보낸 그의 편지에서 말한 성만찬에 대한 언급은 상징이 사라져가는 즉자적 시대에 깊이 숙고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하겠다.


"불사의 명약이며, 죽음을 물리치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영원한 생명을 낳는 해독제이다"(Ignatius. Ephesians, 20.)




기독교대한성결 목사 박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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