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신학으로서의 레위기 이해

김중은 교수(구약학)



오늘날 교회의 예배현장과 교인들의 신앙생활의 현장이 매우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워져 가고 있다. 좀 더 쉽게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서 올바른 예배란 무엇인가 올바른 신앙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배를 통한 신앙과 생활의 조화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라는 물음을 물을 수 있다면 그것은 "신학적인" 물음이며, 이러한 물음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연구하고 대화하며 노력하는 현상을 두고 우리는 "신학을 한다" 또는 "신학이 있다"고 말하게 된다. 그러므로 신학이 없는 목회자는 불행하다. 목회자가 바른 신앙과 신학을 가지고 있을 때, 목회도 올바르게 하고, 교회 성장도 올바르게 이루어질 것이다. 목회자가 신학이 없기 때문에 이를테면, 좋은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세속적인 기준에서 성공적인 목회, 성공적인 교회 성장이라는 잘못된 풍조가 만연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목회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다는 말이 나오게 된다.


올바른 신앙과 신학의 기준은 성경이다. 성경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와 계시의 뜻을 깨달아 알게 된다. 신구약 성경은 크게 그 주제별로 나누어 보면, 삼위일체이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과 세상에 관해 말하고 있으며, 그 세 영역의 올바른 상관관계와 인간과 세상의 바른 존재양식과 삶의 방식을 하나님 나라(왕국)의 역사관을 통해 펼?보이고 있다.


오늘 우리의 신약적인 삶은 천지창조 이래로 종말의 심판 때까지 하나님의 나라 역사에 동참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 동참하는 것은 말을 바꾸어 보면 그의 나라(하나님의 주권)와 그의 의(하나님과의 계약관계의 성실성)를 구하는 것이며, 이것을 다시 한마디로 고백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것 곧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2. 기독교의 핵심은 예배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성경적인 인간의 삶의 최고의 표현은 예배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하였다. 그런데 예배할 때는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함을 본문은 강조하고 있다(요 4:23-24).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요한복음 본문에는 이 질문에 대해 직접 구체적인 설명이 주어져 있지 않다. 여기에 오늘 우리의 예배신학의 과제가 있다.


바울사도가 로마서에서 11장까지 예수 믿는 교리를 자세히 설명한 다음, 그리스도인의 삶의 권면에서 제일 먼저 강조한 것이,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합당한 예배니라"(롬 12:1)고 한 것도 이와 상통하는 내용이다.


몸으로 드리는 "산제사", "합당한 예배"를 오늘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하며 실천에 옮길 수 있을까


먼저 생각할 것은,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도록 드려야 한다는 점이다. 예배 드린다고 하나님이 다 받으시는 것은 아니다. 요즈음 종교다원주의가 들어와서, 기독교가 전파되지 않았거나, 기독교 복음을 듣지 못한 지역의 사람들도 그들의 종교 생활을 통해 똑같이 구원받는다는 주장이 있으나(말 1:10 이하; 마 7:21 이하 참조), 성경은 이방 사람들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들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고전 10:20; 참조. 시 147:19-20; 행 4:12; 요 14:6 등) 어쨌든 잘못된 제사와 예배에 대해서는 예언자들이 그 시정을 촉구하였으며, 특히 주전 8세기 예언자들인 이사야, 아모스, 호세아, 미가에 있어서 예배의 문제는 매우 심각한 양상으로 드러나 있다. 당시 예배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 말씀을 인용해 보자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지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사 1:11-14)


이러한 이스라엘의 예배의 타락상은 구약예언의 후기인 제2성전시대 말라기의 예언에서도 볼 수 있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노라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말 1:7-10)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은 다른 한편 하나님이 올바른 예배를 얼마나 기뻐하시는 가에 대한 반증으로도 해석해 볼 수 있다.


성서신학적으로, 제사 예배 주제에 관한 성경 본문은 레위기와 시편 그리고 신약의 히브리서(7-13장)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레위기는 원리적인 면에서 야훼 하나님을 섬기는 도리와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예배(제사)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시편은 그와 상응하여 예배하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의 "예배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레위기와 시편을 함께 읽는 것이 예배 공동체에 유익하다는 말은 옳다. 히브리서에서는 구약의 율법에서 말하는 예배를 기독교적으로 재해석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히브리서는 아론의 반차가 아닌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권(히 7:11-28)을 내세우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한 "단번에 영원한 속죄"의 효력을 분명히 하고 다음과 같이 신약시대의 예배의 이해를 정리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 9:11-14)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 드리는 것이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의 제사를 폐하는 것은(히 10:8-9), 그 제도적인 것과 형식적인 것이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배하는 예배의 원리와 예배 그 자체를 폐하려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마 5:17; 롬 3:31 참조) 교회사를 통해 볼 때 예배의 외형적 방법과 제도는 어느 정도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지만,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의 본질은 변함이 없다. 예수님도 모세가 명한 레위기의 율법을 존중하셨으며(마 8:4 참조), 예수님의 부모도 레위 제사법대로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다(눅 2:22-24).


예언자들도 잘못된 예배를 공격한 것이지, 예배 그 자체를 부정한 것이 결코 아니다(욘 2:9; 말 3:3-4; 비교. 시 4:5; 27:6; 50:5 등).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의의 제사",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이해하기 위해서 레위기를 공부하는 것이 유익하며 꼭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3. 레위기의 구성과 내용


레위기는 27장 859절로 이루어진 5경에서 가장 짧은 분량의 책이지만, 토라의 중앙에 위치한 핵심적인 책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창 1-11장은 태초역사, 창 12-50장은 족장역사 이야기로서 이스라엘 역사의 전사를 취급하고, 출 1장부터 신 34장까지는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사를 다루고 있다.


출애굽 사건을 통해 지도자 모세와 그의 형 아론이 속한 레위지파의 족보가 소개되면서(출 6:14-27 참조), 야훼 하나님은 레위지파를 택하여 이스라엘 가정의 모든 첫 아들을 대신하여 제사장 나라의 섬기는 직분을 대신 맡기셨다(출 32:26-29; 민 3:5-13 참조), 그러나 대제사장과 제사장의 직무는 아론과 그의 직계 아들들이 세습토록 하였다(출 40:12-15). 레위기의 히브리어 명칭은 그 첫 단어를 따라서 "와이크라"(그리고 그가[하나님이] 부르셨다)라고 하며, 레위기라는 명칭은 칠십인역에서 유래하여 불가타와 영어성경역본들을 통해 전해진 이름이다. 그런데 레위기에는 레위 또는 레위인들이란 명칭이 250회 나오는데 비해 "제사장"은 730회가 사용된다. 레위기라는 명칭만 보아서는, 이 책이 레위인들이나 레위지파 중에서도 아론과 그 직계자손의 제사장 직무와 관련된 특별한 전문서적이라는 인상을 받기 쉽지만, 사실은 히브리어의 명칭에 나타난 대로 레위기는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레 1:1)로 시작하여 마지막에 "이상은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이니라"(레 27:34)로 마침으로써, 레위기의 내용이 어떤 성직 계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모든 이스라엘 자손에게 연관된 것을 알 수 있다.


레위기는 27장 중 절반 이상 되는 17장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로 시작되는 것이 특징이며, 레위기 전체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했다는 점이 무려 56회나 반복 언급되는데, 이러한 사실은 레위기 내용이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달하는 사명을 나타내는 시내산계약 전통을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이다(출 20:18-21; 참조. 레 7:38; 25:1; 26:46).


이스라엘 민족 형성사는 출애굽에서 가나안땅 정복 직전 모세의 죽음까지 약 400년간 다음과 같이 다섯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⑴약 400년 동안 애굽에서의 종살이를 통한 이스라엘의 히브리 민족 형성을 배경으


로 한 출애굽사건(출 1-13)


⑵홍해를 건너 시내산까지(출 14-18)


⑶시내산 진영에서 시내산 계약과 성막 건립과 예배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의 자기


정체성 확립(출 19-민 10)


⑷시내산 진영 출발로부터 광야 생활을 거쳐 요단 동편 모압평지까지(민 10-36)


⑸지도자 모세의 고별 권면과 죽음, 그리고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의 등장(신 1-34)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레위기의 내용은 시내산계약 전통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이미 출애굽기 36장에서 시작하여 출애굽한 지 제2년째 정월 초일일(출 40:1-17) 시내산 진영에서 세운 "성막"(곧 "회막") 건립에 따른 계속된 계시의 역사적 사건 진행의 논리적인 연속성을 보여준다. 민수기 10장 11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한 지 제2년 2월 20일에 시내광야를 떠나게 되는데, 그렇다면 레위기의 내용은 성막 건립부터 시내산 진영을 떠날 때까지 약 50일 동안 야웨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알려주신 규례와 법도와 계명을 정리한 것이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묄러(W. Möller)는 레위기의 전체 내용이 출애굽기 19:5-6의 시내산 계약의 약속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출애굽신학, 즉 출애굽을 통한 야웨 하나님의 구원과 해방의 의미는 한마디로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 7:16; 8:1; 8:20; 9:1; 10:3)에 집약될 수 있다.


이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계약을 통해 야웨 하나님의 백성"이며", 또 그 백성이 "되는" 자유와 해방과 구원을 맛보게 되었는데, 그 구원 내용의 핵심은 역시 야웨 하나님을 올바로 "섬김"()에 있다. 시내산계약에서 야웨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일은 곧 하나님이 "소유"()가 됨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약속의 실현은 ⑴"제사장 나라"( )와 ⑵"거룩한 백성"( )으로 가시화된다.


그러므로 레위기는 전체적 구조에서 보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의 제사예식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법도를 가르치는 "예배의 책"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은 야웨 하나님만을 예배함으로써 그의 "소유"가 되는 은혜의 선물을 받게 되고(Gabe), 나아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은 이제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서 살아가야 할 책임과 사명(Aufgabe)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해리슨(R. K. Harrison)은 레위기가 이사야나 다니엘서와 같이 그 내용상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는 구조가 유사함을 지적하면서, ⑴레위기 1-16장은 하나님의 소유된 제사장 나라 백성의 죄와 더러움을 제거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한 것이 그 주된 내용이며, ⑵레위기 17-27장은 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백성의 삶의 내용과 지표를 제시한 것이 그 주된 내용이라고 분석하였는데, 묄러는 전자(레 1-17)를 제사장 나라가 되는 길로, 후자(레 18-27)는 거룩한 백성이 되는 길로 파악하였으며, 이러한 이중적 구조는 십계명의 두 돌판과도 구조적으로 상응하는 것이다.


웬햄(G. J. Wenham)도 레위기 내용의 논리적으로 질서정연한 구조를 지적하면서, 그 두 핵심주제는 역시 출애굽기 19:6의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라는 데 동의하며, 전자는 하나님과의 접촉의 친밀성, 후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증거의 삶에 그 초점이 있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웬햄은 레위기 내용을, ⑴제사를 통한 예배의 원리와 실제를 가르치는 제사법(1:1-7:38) ⑵제사에는 중보자로서의 제사장이 필요하다는 원리를 가르치는 제사장 제도(8:1-10:20) ⑶영육간에 죄와 더러운 것을 정결케 하는 제사원리를 가르치는 정결규정(11-16) ⑷거룩한 백성의 생활신조와 행동강령을 가르치는 성결규정(17:1-27:34)으로 크게 네 구분하였다.


그러므로 레위기는 제사장 나라의 거룩한 백성들의 구체적인 삶을 지도하는 교육 교과서라고 볼 수 있다. 야웨 하나님의 백성이 그 하나님과의 시내산계약 관계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도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오직 제사예배를 통해서라는 점에 우리는 놀라움과 함께 각별히 주목해야 하며, 레위기는 그 제사예배의 올바른 원리와 실천을 가르쳐 준다.


한편, 레위기의 내용은 거의 모두 제사와 예식관계의 사항들을 취급하지만, 후반부의 18장 이하 19장은 성결규정의 틀에서 "이웃윤리"를 강조하고 있음이 두드러져 보인다. 특히 19:18절의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는 말씀은 예수께서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을 말씀하실때(마 22:39) 인용하신 구절로 유명하다(비교. 마 19:19; 막 12:31; 눅 10:27; 롬 13:9; 갈 5:14). 따라서 레위기는 단순히 제사예식규정집이 아니라, 윤리적 내용을 강조하며, 어떤 이방종교들의 경우처럼 마술적-주술적인 힘에 그 근거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레위기의 제사예식행위는 하나님의 백성의 일상생활의 "도덕적 근거"(a moral basis)와 밀접히 연관을 가지는 것에 주목해 보아야 하는데, 레위기 16장의 "속죄일"과 레위기 25장의 "희년"이 그 윤리 도덕성의 관련에서 레위기를 대표하는 특별개념들이라고 볼 수 있다(레 18:1-5!).


내용적으로 레위기를 대표하는 신학적 핵심용어는 "거룩"이며, 레위기의 거룩성은 구체적으로 제사의 대속(substitution)원리를 통해 죄를 제거함으로 정결(purity)케 되는 내용과, 정결할 뿐만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의 소유로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의 올바른 삶을 통한 온전성(wholeness)이 중요시된다(비교. 마 5:48).


이상에서 논의된 레위기의 내용과 구조를 전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도표로서 간단히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야웨 하나님의 소유 이스라엘 : 예배 공동체

레 1-27


거룩(聖化)


제사장나라

레 1-17


거룩한 백성

레 18-27

제사법(신앙 :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

윤리법(생활 :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보편성 특수성 보편성 특수성


평신도규범 1-5

정결규정 11-15

평신도규범 18-20

절기규정 23-25

제사장규범 6-10

속죄일과 대속 16-17

제사장규범 21-22

계약과 서원 26-27


4. 레위기의 형성사


문학비평의 문제는 레위기 저자에 관한 물음이며, 단일 저자인 경우 통일된 문맥을 확인하려는 작업이다. 말을 바꾸어 보면, 레위기 문서의 형성사를 연구하여, 레위기 문서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어떤 목적으로, 누구를 위해, 어떻게 기록되었는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소위 비평학자들은 19세기 후반 벨하우젠(J. Wellhausen, 1844-1918)의 」이스라엘 역사 서설(Prolegomena zur Geschichte Israels, 1878, 영역판 1885) 발표를 통한 5경문서 형성사의 J-E-D-P 문서 가설 확립 이후 대부분 레위기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 주전 5세기 중엽 에스겔 예언자의 제사신학(겔 44장 참조)의 영향을 받고, 철저히 "P"문서(the Priestly Code) 기자에 의해 문서화된 단일자료(a single source)로 평가되어 왔다. 한마디로, 벨하우젠학파에서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모세율법이 주전 8세기의 윤리적 유일신 사상으로 대변되는 예언신학 이후에 생겨난 구약의 율법신학은 자연적인 히브리 종교의 화석화 과정의 산물로서, 특히 모세5경의 중핵을 이루고 있는 레위기를 포함한 제사법전(P)의 내용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 제2성전신학을 위한 신학적 허구(fiction)로서, 저러한 레위기의 역사적 배경인 모세시대의 시내산 성막이나 정교한 제사 제도로서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베스터만(C. Westermann)은 5경에 명시된 법전 내용(Gesetzescorpora)을 다섯가지로 시대별로 정리하여 소개하면서, ⑴십계명(출 20)을 이스라엘 역사의 초기시대 산물로 보고, ⑵계약의 책(출 21-23)은 사사시대, ⑶신명기법전(신 12-26)은 주전 7세기 요시아 시대 이전, ⑷소위 "성결법전"(레 17-26)은 주전 6세기, 그리고 ⑸제사법전(출 25-민 10)은 마지막으로 주전 6세기에서 5세기 어간에 비로소 형성된 것으로 보고, 성결법전(Das Heiligkeitsgesetz)과 함께 레위기 1-7장의 제사법과 레위기 11-15장의 정결법도 각각 독립된 단위로 전승되던 것이 P문서 편집자에 의해 최종적으로 제사법전에 통일된 문맥으로 함께 편집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베스터만의 이해도 벨하우젠학파의 진화론적인 이스라엘 종교역사 이해에 따른 결과이며, 이러한 설명은 거짓말은 아니라 하더라도 상당히 잘못된 견해일 가능성이 크다.


비평학자 마틴 노트(M. Noth)도 레위기 문학비평에서 레위기 내용의 표면적-역사적 상황의 통일성과 제사 예식 규정에 관한 강도 높은 집중도에도 불구하고, 레위기는 단번에(in einem Zuge) 쓰여진 것이 아니라 오래 계속된 형성과정의 전역사(Vorgeschichte)를 전제한다고 보고, 레위기의 대부분 법규정 양식 문체에서 벗어나는 레위기 9장의 첫 성막제사 거행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레위기 문서형성과정의 재구를 시도한다.


노트에 의하면, 레위기 9장의 첫 성막 제사 거행 이야기의 이해를 돕기위해 8장의 제사장 임직법과 10장의 제사장 나답과 아비후의 사망 사건 이야기가 함께 전승 맥락으로 형성되었고, 이어서 1-7장의 제사법이 그 앞에 놓이게 되었다고 본다. 또한 속죄일 규정인 16장도 내용적으로 8-10장에 연관된 부분인데, 아마도 일찍부터 9장과 연결되었던 것으로서 후에 11-15장의 개인의 정결예식규정을 16장의 정결예식의 절정인 속죄일 앞에 놓음으로써 그 효과를 높이려 했다고 본다. 17-25장은 26장의 계약규정 준수 여부에 따른 축복과 저주의 결론과 함께 본래는 일반적인 계약규정 준수 여부에 따른 축복과 저주의 결론과 함께 본래는 일반적인 제사예식규정으로서 소위 "성결법전"으로 독립적으로 존재했던 것이, 성막 건립 이야기 → 제사규정 → 첫 성막 제사 예식 거행 이야기에 뒤따라 첨가되었다고 보며, 마지막 27장은 부록의 성격으로 5경의 각 책이 구분된 후 레위기 권말에 수록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레위기에서 8-10장의 성막제사 거행 이야기 외에 다른 법규정 자료들은 5경의 기본문서 자료들과는 상관없이 독자적인 전승을 가지고 존재했다고 보고, 여기서 노트는 다시 레위기의 독립 자료들이 생겨난 출처에 관해 전승사적 물음을 제기한다. 노트는 다시 레위기의 독립자료들이 생겨난 출처에 관해 전승사적 물음을 제기한다. 노트는 레위기의 제례예식에 관한 독립자료들은 구전단계를 거쳐 오랜 전승을 거쳤다고 보지만, 제례 전승의 관습과 언행은 그 성격상 정치-역사적 상황 변천에 대해 상당히 보수적이기 때문에, 그 정확한 변천과정의 추정이 실제로 불가능할 때가 많음을 시인하면서, 레위기의 제례법 규정자료들의 전승사적 마지막 정착은 추측컨대 남왕국 유다 멸망의 직전이나 직후로 추정되며, 그 후에 차례로 오늘날의 레위기와 5경의 "P"문서의 틀 속에 삽입되고 편집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노트 역시 왜 성막에서의 첫제사 거행 이야기가 반드시 레위기 문서 형성사의 단초를 여는 시발점이 되어야 하는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설명이나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미 언급한 대로 제사 관계 자료의 다루기 어려운 보수적 성격 때문에 어떤 가설이든지 유보적으로만 설명이 가능할 뿐임을 시인하고 있다.


어쨌든, 벨하우젠 학파의 이스라엘 역사 이해의 열쇠라고 할 수 있는 주전 8세기 히브리 예언자들에 의한 구약의 윤리적 유일신 사상의 확립 가설은 일찍이 올브라이트(W. F. Albright)에 의해 모세시대의 유일신관(monotheism)의 역사적 가능성이 고대 중동의 종교-문화적 환경에 대한 폭넓은 역사-고고학적 비교 연구 결과를 토대로 제시됨으로써 극복되기 시작했고 출애굽과 시내산계약으로 연결되는 5경의 모세 전통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소위 알트-노트 학파(The School of Alt and Noth)의 역사적 "허무주의"(nihilism)도 브라이트(J. Bright)에 의해 충분치는 못하나 그 역사성이 어느 정도 극복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브라이트는 또한 이미 정통적 벨하우젠사상(orthodox Wellhausenism)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너무나 많은 수정들이 가해졌기 때문에 더 이상 그 순수한 주장을 찾기 어려움을 지적했으며, 무엇보다 벨하우젠의 」이스라엘 역사 서설이 출간된지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인 1978년에 즈음하여 히브리 대학 구약교수인 모세 바인펠트(Moshe Weinfeld)가 벨하우젠의 5경 문서 가설을 뒷받침했던 논증들은 편견에 근거한 잘못이며, 소위 "p" 문서는 "D" 문서보다 오히려 시대적으로 앞선 것으로 주장한 것은 놀랄 만한 변화이다. 웬햄(G. J. Wenham)은 예언자 에스겔이 레위기를 상당히 인용한 것으로 보며(레 10:10 // 겔 22:26; 레 18:5 // 겔 20:11; 레 26 // 겔 34 등) P문서의 어휘가 바벨론 포로기 이후의 히브리어를 닮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역시 레위기를 포함한 P문서의 후기 편집 가설은 인정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미 주전 2천년대에 수메르(Sumerian) 전통의 메소포타미아의 종교 문서나 애굽의 피라밋 문서들, 그리고 주전 14세기경의 가나안 종교 문서인 우가릿(Ugarit)문서 등에서도 제사직과 제사장과 제례규정에 관한 오랜 기록 전통의 자료가 있었음을 참작하고, 레위기에는 출애굽기에서와 같이 모세의 기록 활동(출 17:14; 24:4; 34:27)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으나 레위기 원문에 야웨 하나님이 "모세의 손으로" (, 레 8:36; 26:46 등) 명하신 모든 말씀이라고 한 뜻은 모세의 문사 활동까지 함의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으며, 또한 레위기에 56회에 걸쳐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 명하셨다는 말씀을 강조한 것, 그리고 그 시내산 성막의 역사적 배경 상황으로 볼 때, 구약 전통에 따라 모세 자신이 아론과 그 제사장 아들들의 도움으로 레위기의 문서화와 편집을 시작했을 가능성이 오히려 크다고 하겠으며, 이렇게 시작된 레위기의 서전(書傳)은 구전(口傳)과 함께 후대로 오면서 솔로몬 성전의 제사 예식 거행 역사와 함께 일찍부터 레위기 문맥으로 정리되면서, 오늘의 5경 문맥에서 레위기의 모습은 제2성전 시대에 가령 에스라와 같은(6:18; 7:10 참조) 편집자에 의해 최종적으로 정착되었을 가능성이 더욱 큰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신중하고 보다 타당한 견해라고 여겨진다.


물론 신약 문맥에서도 레위기를 인용할 때 모세 전통의 역사성을 의심치 않았으며, 예수께서 문둥병자의 정결규정을 레위기 14:2 이하에서 인용 언급하실 때에도 역시 모세율법의 역사 전통을 무시하지 않으셨다는 점(마 8:4; 막 1:44; 눅 5:14; 17:14)은 오늘 레위기를 연구하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롬 15:4 참조).


5. 레위기 신학과 레위기 연구의 의의


레위기는 단순히 이스라엘 민족 형성사의 일부이거나, 히브리 종교의 고대 제사 예식 자료가 아니라, 야웨 하나님께서 그의 계명의 말씀을 자기 백성에게 계시하시는 진리의 내용이다. 레위기신학은 모세 5경의 전체적 틀에서 보아야 하며, 특히 출애굽신학과 민수기신학의 전후 맥락과 임접한 상관관계에서 파악해야 하고, 이때 출애굽신학의 시내산계약과 성막건립은 레위기신학의 역사적 기초가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웬햄(G. J. Wenham)이 레위기신학의 주제를, ⑴하나님의 임재(the presence of God) ⑵거룩(holiness), ⑶제사의 역할(the role of sacrifice), 그리고 ⑷시내산계약(the Sinai Covenant)으로 정리해 보려는 시도는 정당하며 유익한 것이다.


먼저 5경의 신학적 틀을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다. 즉, 창세기신학은 하나님나라 건설을 위한 야웨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 질서로부터 범죄로 인해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죽음"을 초래했고, 이후 인간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별 수 없는" 존재라는 이해이다. 창세기신학은 한 마디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실패를 확인한다. 그러나 인간의 실패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야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구원하심으로써 인간은 죄와 실패와 사망으로 표상되어지는 애굽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되어 야웨 하나님을 섬기는 참 자유와 참 생명의 구원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 진리를 출애굽신학은 전개한다. 출애굽의 하나님의 성호 야웨는 무엇보다 "구원"을 강조하는 이름의 계시이며(출3:14; 6:3; 요 18:26 비교), 출애굽사건은 인간의 실패의 역사를 구원과 호복의 역사로 바꾸시는 야웨 하나님의 재창조의 신학이다. 출애굽을 통해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어린 아들"(호 11:1; 출 4:22-23 비교)에 비유된다. 이제 야웨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아 새 생명 얻은 어린 아들을 돌보시며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숙된 삶으로 자라가게 하기 위해 레위기신학을 주신다. 이러한 의미에서 레위기신학은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레 19:2)고 요구하시는 성화의 신학이다. 말을 바꾸어 보면, 레위기신학은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법과 윤리-도덕적 생활을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를테면 신앙과 생활이 조화된 성숙한 인간성을 도모하는 성숙한 신학이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예배 공동체의 집단이나 개인을 막론하고 저러한 레위신학적으로 성숙된 인간상의 제시는 이미 출애굽 직후의 시내산계약의 약속 내용인 "야웨 하나님의 소유, 즉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출 19:5-6)의 구체적 실현이다.


오늘날 한국의 개신교는 제 2세기의 문턱에 들어서면서, 가공할만한 세속화 신앙과 생활의 이율배반적인 괴리 현상으로 병들어 가고 있다. 신학적으로 진단해 본다면, 구원받았다는 출애굽신학은 있는데(종종 출애굽의 해방과 자유의 진정한 의미도 세속화되고 이데올로기로 변질되고 있지만), 이제 장성한 사람으로 자라가야 할 책임과 사명의 레위기적인 성화의 신학이 제대로 제때에 연결되지 못하는데서 오는 부작용이 아닐까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원로목사인 임택진 목사가 1988년 참 목회자상을 위한 신학강좌에서 레위기를 강해한 것은 그러므로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며, 그 강해 서설에서 "특별한 흥미와 감동으로 출애굽기를 읽은 독자라도 레위기는 어지간한 인내력이 없이는 통독하기 어려운 만큼 무미건조한 율법책이다. 그러나 레위기는 모세 오경의 셋째 책으로 그 위치가 중간에 있어서가 아니라 모세 오경의 중심이요 구약성경의 중심되는 진리를 기록한 책이다"라고 설파한 것은 우리 시대 신학 상황에서 귀담아들어야 할 탁견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개신교에서는 레위기를 잘 공부하지 않는 경향이었지만, 정작 유대교에서는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 디아스포라시대에도 레위기가 특별한 숭앙(in particular reverence)을 받아 왔고, 유대교 어린이들이 히브리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할 때 제일 먼저 읽는 책은 창세기가 아니라 레위기라고 한다. 성화를 통한 온전성을 추구하는 레위기신학 뒤에 따라오는 민수기신학은 이를테면 광야의 신학인데, 그 주제는 놀랍게도 하나님의 백성의 "불평과 원망"(민 14장 참조)으로 나타난다. 레위기신학의 성숙과 온전성은 인내를 필요로 하며, 시내산계약 신앙의 수호를 전제함에도 불구하고, 시내산을 떠나 가나안땅으로 출발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40년 가까이 유리하면서 "목이 곧은" 출애굽한 제1세대는 다 죽고, 결국은 새로운 제2세대가 훈련되고 조직되어 여호수아의 인도 아래 약속의 땅을 밟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민수기신학은 광야교회를 통한 반성과 훈련(discipline)의 신학으로 정리할 수 있다. 앞으로 한국교회는 레위기신학의 다음 단계로서 교회의 권징과 치리권을 바로 행사할 수 있는 민수기신학에도 마땅히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겠는가 훈련의 신학으로서 민수기신학은 다시 한번 오직 한 분이신 야웨 하나님만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신명기신학으로 재정리되어야 한다(신 6:4 이하 참조).


그런데 우리는 5경의 구속사신학에서 히브리 성경의 토라 마지막이 신명기 34장의 모세의 죽음으로 마감됨으로써,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5경 구속사의 성취감을 맛볼 수 없는 아쉬움을 가지게 된다. 5경의 구속사신학을 완결하는 가나안땅 정복은 모세의 후계자로서 "지혜의 신"(신 34:9)이 충만한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 여호수아서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완결된 구속사신학의 맥락을 위해 우리는 5경신학이 아닌, 6경(Hexateuch)신학을 말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레위기신학은 무엇보다 출애굽신학의 연속이고, 구체적으로는 시내산계약의 계승 발전이다(출 19:5-6!). 레위기의 제사신학은 특히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이스라엘 백성의 거룩성의 회복에는 무엇보다 엄밀한 의미에서 "희생 제사의 피"(the sacrificial blood)가 부정한 것과 죄를 깨끗케 하고 나아가 성결케 하는 대속의 원리(레 17:11)임을 강조하고 있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조지 나이트(George A. F. Knight)는 레위기신학이 "십자가의 신학"(a theology of the cross)이라고까지 부르고 있다. 우리는 이미 구약의 예언자들, 이를테면 미가(6:6-8; 비교. 시 50:10-15)나 신약의 히브리서 기자(히 8-10장)가 레위기의 제사 제도에 의문을 던진 것을 잘 기억하고 있다. 히브리서 10장 4절은 황소나 염소의 피가 죄를 없이하는 것은 불가능함을 지적한다. 그러나 예표론(typology)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무엇보다 레위기 신학과의 예표론적 해석(typological interpretation)의 관계를 맺고 있음이 사실이며, 이것은 기독교 성서해석학의 올바른 입장이다.


이상의 논의를 전제로 다시 한번 시내산계약신학의 맥락에서 레위기의 오늘의 신학적 의의를 정리해 보면, 웬햄(G. J. Wenham)이 올바로 지적한 대로, 레위기의 제반 제사 예식법 규정은 역사적인 구원 사건(출애굽)이 선행된 후 후속조치로서 따라오는 은혜의 선물로서 주어진 것이다. 즉 레위기신학에서도 구원(복음)이 선행하고 율법(계명)은 후속된다. 또한 출애굽 해방은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고 시행할 수 있는 자유 즉 "방종"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과 계명에 순종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하며, 죄와 부정 부패의 삶을 떠나 하나님께 순종함이 곧 거룩한 자유요 진정한 생명임을 레위기는 밝혀 준다. 그러므로 계약 백성이 불순종할 때는 그 계약 때문에 마땅한 심판이 경고된다(레 26:24-28; 비교. 신 28; 암 3:2 등). 또한 야웨 하나님과 그 백성의 계약은 영원하다. 계속되는 하나님 백성의 불순종은 계속된 심판을 초래하지만, 결코 계약의 전면 취소나 무효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레 26:44). 계약은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족장들과 맺은 계약을 기억하고 그 약속을 지키시는 시내산계약의 성실하심으로 인해, 새 계약(렘 31:31)을 세우시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새 계약의 실현과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다(겔 20:10-12; 느 9:29-31; 눅 22:20; 요 14:15; 10:28). 시내산 성막에 임재하신 야웨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하심으로 우리 가운데 장막 성소로 함께 임재하신다(요 1:14; 마 28:20).


레위기는 단순히 제사 예식을 담당하는 공식 직무 수행을 위한 특수 성직계층으로서의 제사장들만의 규정집은 아니다. 왜냐하면 시내산계약을 통해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자가 제사장 나라의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본래 레위기신학의 기본 사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레위기신학에 기초하여 사도 베드로는 새 계약 백성이요 새 이스라엘인 오늘 우리에게 베드로전서 2장 1-5절의 말씀을 통하여 적절히 일깨워 주고 있다.

6 Powerful "I WILL" Promises of Jesus

praying in the spirit Christians are quite familiar with the “I AM” statements in Scripture. They are powerful and share much about the character of Christ. They share God’s will for His son and for 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