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금요 예배 가운데 들려지는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는 음성....
고통 속에서 아버지를 찾는 세미한 음성...
죄인들을 살리시기 위하여 가차없이 버리신 아버지의 마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 말씀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갈보리 산상의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그 고통 중에 일곱 마디 하신 말씀 가운데 가장 깊은 고통의 심연에서 부르짖는 소리입니다.
예수의 모든 생각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했으며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에 합한 일 뿐이었고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셨습니다. 이 부르짖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지극한 절정에서의 부르짖음인 것입니다.
버림받는 것보다 더 슬픈 사실이었습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모든 친구들로부터 버림을 받아서 외톨박이가 됐다고 합시다.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이 아프겠습니까 여기 한 아내가 병들고 가난하여 도울 자가 하나도 없는데 그 남편이 아내를 버려두고 영영히 떠나가 버렸다고 한다면 아내의 모습이 얼마나 불쌍하겠습니까
예수님은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았고 동네사람들에게도 버림받았으나 하나님만은 결코 예수님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수의 생애에서 매 순간마다 접촉하고 교제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의 고난 받는 순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가 아니라 죄인으로서 버리심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고통이기 때문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 외친 것입니다.
1.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싫어하지만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몸에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버린바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큰 사랑입니 다. 요 15:13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는 저울이 있는데 한편에서는 세상을 달고 한편에서는 독자를 달고 저울질을 하시는데 이들 둘 중에 어느 것을 버리고 어느 것을 구할까, 어느 하나를 버리지 않으면 하나도 구할 수 없는 이 고충의 씨름이 4,000년간 하나님 가슴 속에서 저울질되어 왔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판결은 내렸습니다. 독자를 버리고 세상을 구하기로 한 것입니다.
요 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의 대답이 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공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 시기 때문에 죄를 그대로 두고 보실 수가 없으므로 그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까지 하시면서 죄를 처리하신 공의의 하나님이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는데 믿고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무서운 공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이 음성 속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공의의 하나님이며 무서운 하나님이신가를 알아야 합니다.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고 차마 볼 수 없으셨기에 독생자까지 십자가에 처형하시면서 죄를 처리하셨겠습니까 사람은 반드시 한번 죽습니다. 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날에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받지 않는 자들은 공의의 심판을 받아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발견했을 때에 남의 죄를 대신 져 주신 예수님도 아끼지 않고 형벌하셨거늘 다른 사람들의 죄야 말할 것 있겠습니까 사람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여러분! 하나님 만날 준비를 언제든지 해 두십시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우리는 힘써서 구원 얻지 못한 영혼들을 구원해야 할 것입니다. 중국에 해군 총독 「첸」이라는 사람이 켄톤이라는 곳에서 한 부흥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는 거기서 설교에 큰 감명을 받고 예수를 믿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나눠주는 결신 신자카드에 이름을 적어내려고 했습니다.
그 옆에 있던 한 보좌관이 “왜 그렇게 급하십니까 나중에 천천히 적어내시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첸 제독은 그 말을 뿌리치고 얼른 연필을 꺼내어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셔들입니다」라고 쓴 결신카드에 주소와 성명을 쓰고 싸인을 했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그 부흥회 장소에서 나오는데 악당이 숨어 있다가 암살을 기도하여 총을 쏴 첸 총독은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맙니다. 첸 총독은 그때밖에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사람의 권고를 뿌리치고 예수를 모셨기 때문에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라. 오라. 사랑으로 부르실 때에 응답하지 않으면 죄의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합니다. 그때의 형벌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3. 죄의 값을 대신 지신 것입니다 죄의 값은 무겁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 말씀은 시 22장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사 53:5에 “저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저가 형벌을 받는 것은 우리로 화평을 얻게 함이요 저가 채찍에 맞은 것은 우리 병을 고침이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대신 고통을 당하지 아니하시면 그 고통을 우리가 당하여야 하겠고, 저가 고통을 당하심으로 우리는 평안을 누리게 되었으니 이것이 우리의 고통을 대신하신 부르짖음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우리 고통을 짊어지시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우리는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으로 고생할 것입니다.
4.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 위에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붙어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좌우에 강도 두 사람이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여기에 지나가는 사람이 저주스런 말로 모욕, 바리새인, 서기관들도 같이 희롱했습니다. 갑자기 제 육시(12시)에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 구시(3시)까지 어두웠습니다. 제 구시 쯤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길,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절규하시더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크게 소리지르고 영혼이 떠나셨습니다.
가장 고독하시고 가장 고통이 컸던 순간! 하나님께 기도하시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고난주간 가운데 그 고통과 은혜에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이 순간은 하나님께 버림받는 순간이었습니다.
잠시 어둠의 권세가 이기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오후 3시에 돌아가시기까지 어두움이 온 땅에 임했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사단, 마귀들이승리의 개선가를 부르기 위해 갈보리 언덕으로 총집합했습니다. 그러나 악은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리셔서 인간의 죄에 대해 물으시긴 했지만 이를 통해 정확하게 물으시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담을 헐으셨습니다.
마땅히 저주와 심판을 받아야할 인간에 대해 정확히 예수 그리스도께 물으시고 책임지게 만드신 다음,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성소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휘장은 튼튼한 곳입니다. 잘 짖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구원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버림받은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부림이 나타납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기에 하나님께서 버림받을 수 밖에 없음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주권으로 구원 받을 수 있음도 알려줍니다. 공이 바닥을 쳐야 위로 크게 튀어오르듯이 인간의 죽고 살고, 고통가운데 있고 행복해하는 생사화복이 바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죽는 것까지 예수님은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끝까지 충성하시므로 인간의 극단적 고통을 참고 인내하시며 순종하셨습니다.
이사야 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우리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러기에 옷을 다 벗기고 채찍으로 때리고 못을 손과 발에 박히셨습니다. 그러기에 아픔을 알고, 저주와 모욕도 당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당하셨느냐! 우리의 죄를 감당하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이 죄에 대한 모든 대가를 치루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 대가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치루시고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통해 물으셨던 죄의 문제가 해결되자 나타난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천만번 이야기해도 비웃던 자들의 입을 막고 스스로 하나님 아들을 고백하게 되는 모습입니다. 도리어 모든 것을 부정했던 사람들이 스스로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는 복이 있도다.” (요한복음 20:2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보아서 믿으시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보아서 믿으시겠습니까?
보지 못하고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 금요예배를 드리시 여러분은 축복의 그리스도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주님의 사랑 따라 가려고 하오니 우리를 축복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