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면서 선하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단 말인가
좋은 것으로 이웃을 섬기며 양보하며 화합하며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선하고 양심적으로 살고 싶고 이왕이면 나누며 살고 받는 것보다 주며 살고 싶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나오라
태어나면서 악하였고 자라면서 기회를 틈틈이 엿보며 조금이라도 내 것을 먼저 취한 뒤 이웃을 것을 생각하면 하였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살지는 않았던 것이 우리들이 아닌가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심각한 문제를 안게 되거나 극심한 고난을 받는 것을 보면 동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소한 마음을 갖는 것은 너나 할 것 없이 인간의 바탕이 그렀다
남의 것을 탐하고 소유의식이 강하여 무엇이든지 내 것일 때는 힘을 다하지만 이것이 아무리 노력해도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판단이 들기만 하면 이내 모든 열정이 식어버리는 것이 인간이다 인류가 시작된 이래 모든 인간의 삶이 아담과 하와의 죄가 유전된 것이 틀림없다
어린아이라고 해서 거짓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장성한 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사기극을 만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죄 아래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선하다고 해 보아여 조금 덜 한다는 것뿐이지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은 끝이 없다
생존이라는 생물학적인 이유로 보면 이해가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살아야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기 위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 모으며 살기 위해서 나부터 먼저라는 생각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무서운 맹수는 일단에 배가 부르면 여유가 있어서 누가 와서 건드려도 소리만 지를 뿐 더 이상에 공격을 하지 않는 것처럼 먹을 것 입을 것 쓸 것이 다 준비된 사람은 여유가 있다 그래서 나누기도 하고 양보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내가 가진 것이 없는데 무엇을 줄꼬 하며 소유의식에 당위성을 주장한다
가진 것 없으나 부요하셨던 예수님은 우리에게 또 다른 것을 보여 주셨다
세상에 먹을 것으로 유혹하였지만 거부하셨고 세상의 명예와 영광으로 유혹하였지만 오히려 사단아 내 곁을 떠나라 하셨음을 보여 주셨다
예수님도 육신을 가지셨던 하나님이시다 육신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음을 보여주셨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은 것이다
예수님은 소유보다는 사랑을 가지셨고 소유하기 보다는 나누는 것을 보여주시며 사랑하는 곳에 내가 있다고 하셨다
선하게 살고 싶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길밖에 다른 길은 없다
나의 노력으로 훈련으로 약간에 유익한 선을 행할 수는 있지만 온전할 수는 없듯이 예수님 안에 들어가 주님 안에 내가 내 안에 주님이 되는 길이 가장 선한 진리의 삶이요 영생할 수 있는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