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선언(3-6장)
앞에서 이스라엘의 죄악상을 지적하고 나서 아모스는 그것을 다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3-5장은 마치 법정에서 고소하는 형식으로 이스라엘의 죄악이 진술되고 있다.
각 장들은 "이 말씀을 들으라"는 말로 시작되고 있으며, 이어서 수신자의 이름이 열거되고 있다. 그리고 그 뒤에 그들이 범한 죄를 고발하고, 이에 합당한 심판이 선고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는 말로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증하고 있다.
2-1. 아모스를 부르심(3:1-8)
아모스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을 쳐서 이르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외치고 있다. 하나님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온 족속"을 쳐서 말씀하셨다(1).
이는 이 권고가 북 이스라엘 뿐 아니라, 남 유다 백성들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다"고 선언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신 후에 언약을 통해서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다.
여기에서 '알았다'는 말(야다)은 '친밀한 인격적인 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특별히 선택했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다(창 18:19).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소유로서(출 19:5; 말 3:17), 제사장 나라이며(출 19:6), 여호와의 백성(삿 5:11;삼하 14:13)과 거룩한 백성(신 7:6;14:2,21)이 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본분에 맞는 삶을 살지 못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떠나 범죄하였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내가 그들을 징계하겠다"고 선언하셨다(2).
아모스는 잠시 심판에 대한 선언을 중단하고 이스라엘을 향해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가 던진 첫 번째 질문은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느냐?"는 것이었다(4(상)). 아모스는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고 어떻게 함께 동행할 수 있겠느냐?고 묻고 있다.
아모스는 하나님의 파트너가 되어 그 뜻을 전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아모스가 전하는 말씀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의 예언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했다.
아모스가 던진 두 번째 질문은 "사자가 움킨 것이 없고야 어찌 수풀에서 부르짖겠느냐?"는 것이었다(4(하)). 사자가 부르짖는 것은 그가 먹이를 움켜 잡았기 때문이다. 아모스가 예언하는 것도 명백한 이유와 근거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범죄를 보고 아모스를 통해 그들의 심판을 선언하신 것이다.
아모스가 던진 세 번째 질문은 "창애를 땅에 베풀지 아니하고야 새가 어찌 거기 치이겠으며, 아무 잡힌 것이 없고야 창애가 어찌 땅에서 뛰겠느냐?"는 것이었다(5). 첫 번째 '창애'로 번역된 말은 히브리어 '파흐'이고, 두 번째 창애로 번역된 말은 히브리어로 '모케쉬'라는 말이다. '파흐'는 새를 잡기 위해 땅에 놓은 덫을 의미하고, '모케쉬'는 미끼, 또는 함정을 의미한다(BDB).
새가 덫에 걸리는 것은 사냥꾼이 그 곳에 미리 덫을 놓았기 때문이며, 덫이 흔들리는 것은 짐승이 그 돛에 걸려서 몸부림을 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아모스가 이스라엘의 심판을 선언하는 것도 분명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모스가 던진 네 번째 질문은 "성읍에서 나팔을 불게 되면 어찌 백성이 두려워하지 않겠으며, 여호와의 시키심이 아니고야 어찌 재앙이 성읍에 임하겠느냐?"는 것이었다(6).
파수꾼은 보초를 서다가 적군이 공격해 오면 성읍 거민들을 위해 경고의 나팔을 불었다. 이러한 경고의 나팔이 울려퍼지면 백성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마련이다.
아모스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것을 미리 예고받았다. 그러므로 그는 이스라엘을 향해 경고의 메시지를 전할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예언을 듣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만 한다.
아모스는 네 가지 질문을 통해 자기의 예언의 신실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이렇게 선언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7)."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자신이 하실 일을 미리 알려주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말씀하실 때에 선지자를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심판하시기 전에 먼저 그 일을 예고하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 하나님은 결코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사람들을 심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노아 때에 인류를 홍수로 심판하시기 전에도 미리 예고해 주셨으며(창 6:13-21),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에도 미리 말씀해 주셨다(창 18:17-21; 19:12-13).
그러므로 심판의 경고를 들은 사람들은 신속하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결국 그 예고대로 심판을 받고 멸망하게 될 것이다. 아모스는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고 질문하고 있다(8(상)). 하나님께서 심판을 선언하실 때에 그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을 자는 아무도 없다.
또 아모스는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않겠느냐?"고 외친다(8(하)). 아모스에게 메시지를 주신 분은 여호와였다. 그러므로 아모스는 그 말씀을 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면, 그것을 받은 사람은 당연히 그 말씀을 전해야만 한다.
2-2. 심판의 이유(3:9-6:14)
이제 아모스는 본격적으로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하기 시작한다.
하나님은 아모스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스돗의 궁들과 애굽 땅의 궁들을 향해 사마리아의 산들에 모여서 그 성 중에서 얼마나 큰 요란함과 학대가 있는 지 보라!(9)" 하나님은 블레셋의 성읍인 아스돗과, 애굽인들을 향해서 이스라엘(사마리아는 이스라엘의 수도였다)의 죄가 얼마나 큰 지 한 번 와서 보라고 초청하셨다.
이스라엘 죄는 이방인들도 놀랄만큼 크고 중대했다.
가. 부자들이 사치를 위해 가난한 자들을 핍박함(3:9-4:13)
가) 궁궐에서 포학과 겁탈이 자행되고 있음(3:10-12)
하나님은 "사마리아의 궁궐에서 포학과 겁탈을 쌓는 자들이 바른 일 행할 줄을 모른다"고 고발하셨다(10). '포학'(하마스)는 잘못이나 폭력을 의미하는 말로서, 불의나 무법한 행동을 의미한다. 그리고 '겁탈'(쇼드)은 파괴, 살상의 의미를 가진 말로서, 잔인무도한 죄악을 의미한다.
사마리아의 궁궐에서는 불의와 잔인무도한 일들이 자행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이 바른 일 행할 줄을 모른다고 말씀하고 책망하셨다. 이로 인해 여호와께서는 다음과 같이 심판을 선언하셨다.
"이 땅 사면에 대적이 있어 네 힘을 쇠하게 하며, 네 궁궐을 약탈할 것이라!(11)" 장차 이스라엘은 그죄로 인해 사방에서 공격을 받게 될 것이며, 결국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힘을 잃고 궁궐이 약탈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예언은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 3세의 길르앗과 갈릴리 침략과(주전 733년),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살만에셀 5세를 통해서(주전 722년) 성취되었다.
그러나 아모스는 심판을 선언하는 때에도 일말의 소망을 제시하고 있다. 아모스는 그때에 "목자가 사자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을 건져내는 것처럼, 사마리아 침상 모퉁이와 걸상의 비단 방석에 앉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건져냄을 받을 것이라!"고 예고했다(12).
목자는 자기가 치던 양을 잃어버리면 자신이 그 양을 훔치지 않았다는 증거를 제시하기 위해서, 그 양을 찾든지 아니면 그 양이 야수에게 잡혀먹고 남은 시체의 일부를 제시해야 했다(출 22:13).
장차 이스라엘은 사자와 같은 앗수르게 잡혀 먹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때에 죽은 시체의 일부분을 찾는 것처럼, 그들 중에 일부만이 겨우 남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멸망을 당할 것이나, 완전히 진멸되지는 않고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