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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 소고

한국........신광교회 (작은사람)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Nyskc Movement에서 주장하는 것과는 조금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한 글이라 올려보았습니다


1. 들어가는 말

개혁주의신학에서 성경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창조, 타락, 구원(구속). 현대신학에 와서는 여기에 한 가지를 첨부하여 창조, 타락, 구속 그리고 완성이라 한다. 이런 성경 해석 방법은 소위 구속사(救贖史)라고도 하고 구원역사라고도 말한다.


구원역사란, 아담이 타락한 이후에 이 세상 시간 속에서 하나님께서 창조의 목적대로 하나님나라를 세워 가시는 일하심의 역사이다. 하나님이 세워 가실 하나님나라는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제 몫을 하면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드러나는 세상을 뜻한다.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이 완성될 하나님나라의 모습이다. 성경은 타락한 세상의 시간 속에서 인류를 통해 어떻게 구원을 완성해 가시는지에 대한 역사기록이다. 여기에는 구약과 신약이라는 긴 시간대가 놓인다.


2. 구약과 신약

1) 구약

구약은 옛언약의 시대를 뜻한다. 옛언약(구약(舊約-Old covenant)이란, 옛계약이다. 계약은 성경에서 중요한 요소다. 가장 처음 나오는 계약(언약)은 아담과의 계약이다.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서 맺은 계약은 불순종함으로 깨졌고 하나님의 뜻은 무너졌다. 그 다음 나오는 계약이 노아의 계약이고 그 다음이 아브라함과의 계약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와 계약을 맺었다. 짐승을 쪼개 놓고 그 사이를 지나가시면서 하나님이 계약하셨다(창15장). 그 결과 이삭이 태어났고 야곱이 태어났고 열두 아들이 애굽에서 수백만 명으로 늘었다. 하나님은 드디어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끄신다.

그들이 광야 시내산에 이르렀을 때 소를 잡아 피의 계약을 맺었다. 이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나라가 된 것이다.


출애굽기는 하나님나라의 조직에 관한 내용들이다.

이 때 하나님이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들여 십계명과 모든 율법을 하사하셨다(출20장). 하나님나라(여호와의 왕국)가 된 이스라엘이 지킬 규칙과 법들이다. 이것을 모세의 율법이라 부른다. 이를 신학에서는 옛계약의 법이라고도 한다.

이스라엘은 가나안땅에서 살아가면서 절대적으로 이 법을 지키고 살아야 한다. 이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이 법대로 살아감이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구원된 백성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는 그리스도가 오심을 위해 마련하신 발판으로서 가치가 있다. 그리스도께서 오심이 없으면 이 구약시대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


2) 신약

때가 되매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새로운 왕국(마태복음은 천국)을 세우시면 새계약이 주어진다. 새계약은 신약(新約-New covenant))이다.

하나님과의 계약을 통해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으니 새 계약법이 주어진다.

신약은 구약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지만 전혀 다른 계약의 법이다. 약혼 위에 결혼이 이루어지지만 결혼은 약혼과 전혀 다른 관계와 마찬가지다.


이 새계약을 통한 하나님나라는 옛계약백성인 이스라엘과 상관이 없이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나오는 자들의 몫이다.

옛계약에는 이스라엘만 참여했으나 새계약에는 온 천하만국 백성 중에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반응하여 거듭 난 자들에게 해당하는 계약이다.

오순절로부터 전파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들어 온 자들이 교회를 이루고 교회는 이 새계약백성이 되며 새 계약의 법을 따른다.


새로운 하나님나라를 세우시기 위해 오신 다윗의 아들 예수님은 천국(하나님나라)을 선언하시고 세워 가시는 일에 대해 기록한 마태복음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옛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해서 우리 조상들이 지키고 살았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시고 팔복과 더불어 산상수훈을 말씀하신다.


새 나라를 세우는 왕으로서 모세보다 큰 권위를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로서(히브리서3장) 새 법을 선포하셨다. 거기에 보면 십계명 중에서 두어 개 그리고 유대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기도와 구제, 맹세, 금식에 관해서 말씀하셨다.

십계명 중에서 대표적으로 하신 6,7계명을 보자. 옛사람 모세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을 때 어떤 사람이든지 죽이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이방인은 죽여야 하고 같은 이스라엘민족 중에서도 하나님을 모독한다든지 안식일을 범한다든지 아니면 부모를 때리는 자와 간음하다가 들킨 자를 죽여도 좋다고 되어 있다.

죽일만한 이유가 있으면 죽이라는 이야기이고 그런 정신을 대표한 말이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라는 동해(同害)보복법이다.


그러나 주님은 새 계명을 강론하시면서 ‘나는 너희에게 이른다. 형제에게 화를 내도 심판을 받고 미련한 놈이라고 말해도 심판을 받게 된다.’하셨다. 미워하지 말아야 함은 물론 원수도 사랑하고 용서하라고 가르치신다, 엄청난 차이점을 가르치셨다.

간음에 대해서도 옛사람 모세는 간음하지 말라는 것에 대해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 것을 요구했지만 처녀나 과부는 얼마든지 아내로 맞아들이도록 허용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간통했다가 혼이 났지만 솔로몬은 천명의 아내를 거느려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주님께서 산상수훈에서 가르치시기를 간음한 연고 외에 아내를 버림이 마땅하지 않고 다른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기만 해도이미 간음하였다 하셨다.

전혀 다른 법이 적용되게 하신 것이다. 옛 율법과 새 율법의 차이가 이렇게 크다.


3.모세 율법과 새 율법(자유케 하는 율법)

복음서나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에서 말하는 율법은 모두 모세가 받아 내린 시내산율법을 뜻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새언약백성에게 내리신 율법은 새 율법 자유케 하는 율법이라고 구분지어 부른다(야고보서1:25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 신학에서는 그냥 ‘복음’이라고 일반적으로 부르기도 한다.


1) 모세의 율법

율법(모세율법을 지칭함)이란 무엇인가? 왜 하나님이 이스라엘 옛계약백성에게 이 율법을 주셨고 그 기능은 무엇인가? 갈라디아서를 보자. 초대교회 당시 바울이 전도하여 세운 교회에 유대기독교인들이 찾아다니면서 바울의 가르침이 다 맞는 게 아니라 하면서 조상들이 지킨 율법도 따라야 한다고 가르쳤다(사도행전15:5-바리새파의 동조).

즉 할례도 받고 안식일을 지켜야 하고 요즘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목사가 제사장 노릇도 해야 맞고 십일조도 해야 맞다고 가르친 것 같다.


이 모든 것들의 대표가 할례이기 때문에 할례당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할례당들은 옛계약의 법인 율법의 연속선상에서 개혁자 마르틴 루터처럼 제사는 완성이 되었지만 나머지는 그대로 이어져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할례당들은 구약에서 조금 진보된 정도의 수준에서 율법을 지키는 가운데 예수만 덧 믿으면 되는 것으로 알았다.


이는 구약과 신약의 차이점과 단절성(불연속성)을 모른 까닭이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이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취하면서 그것은 복음도 아니고 복음을 무너뜨리는 것이라 화를 내면서 우리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천사라도 저주를 받으라고 이야기했다(갈1:8). 천사가 율법을 전해 주었기 때문에 천사를 들먹인다(사도행전7:53).


그러면서 과연 율법이 무엇이냐? 질문하고서 대답하기를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만 있을 것이라”(갈라디아서3:19)했다. 온 천하백성이 믿음으로 의롭다함 얻고 구원을 얻는 시대가 오기까지 천사를 통해 임시적이고 한시적으로 주신 법이 율법(律法)이라는 것이다.

왜냐?

이스라엘이 비록 하나님의 부름을 얻고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계약되어 온 자들이지만 아직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前)이기 때문에 그들은 여전히 아담 안에서 죄인들이며 휘장 밖에 있는 자들인 까닭이라는 것이다.


(만약 무지하게도 구약시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겨 천국에 갔다고 말한다면 그리스도는 그들의 땅에 오시지 않아도 무관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없이도 얼마든지 하나님 섬기다가 천당에 갈 수 있으니까)

이스라엘이 아무리 율법을 잘 지키고 거룩하게 살지라도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의 죄 아래 있는 자들일 뿐이다.


이스라엘이 율법 아래 있을 동안에는 사망의 질서 아래에 묶여 있다. 율법은 죄의 법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좀 더 쉽게 접근하도록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몽학(蒙學)선생 운운한다.

몽학선생은 유치원 가정교사이다. 로마시대 시민권을 가진 부자가 어린 아들을 정규학교에 들여보내기 전에 임시적으로 가정교사를 채용하는데 그 교사는 아주 어린아이에게 맞는 교육방식을 가지고 가르칠 것이다.


그림을 그리게 하고 말하는 법, 인사하는 법, 글씨 쓰는 법 등을 가르친다. 그런데 어린아이를 대학생 다루듯이 했다가는 아이만 버릴 뿐 교사는 당장에 쫓겨나는 신세가 될 것이 뻔하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가지 이스라엘을 교육시키는 유치원가정교사가 율법이다. 아주 수준이 낮은 법이다. 그러므로 율법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을 바울은 ‘천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비꼰다(갈라디아서4:3,9).


바울사도는 로마서에서는 율법을 이렇게 정의한다. ‘죄와 사망의 법’(로마서8장) 죄인들이 지켜야 하는(언약백성성인 이스라엘이) 죄에 조절된 수준 낮은 법이 율법이다(갈라디아서3:19). 그것을 아무리 잘 지켜도 신약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도무지 의롭지 못하고 생명을 얻지도 못할 수준이 낮은 법이 율법임을 강조한다.


2) 온전한 새 율법

하나님의 아들이 그리스도로 오셔서 새 나라를 창설하셨다.

이제 천하만국에서 새로운 백성들을 복음으로 불러들이시고 새계약을 맺는 시대(신약)에는 죄에 조절된 수준 낮은 법이 아닌 온전한 새 율법을 주셨다.


영원한 천국에서 지키고 살 새 법을 이 땅의 교회에 양심의 법으로 내리셨다. 산상수훈이 대표적인 예이다. 교회는 반드시 이것을 지켜야 한다.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의 법으로 주셨기 때문이다. 출애굽기나 신명기에서처럼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적어서 가르치신 것이 신약성경에 없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율법을 잘 알고 있었고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새로운 것이 어떤 정신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세히 기록해 주지 않았을 분이다.(교회에서 이런 착오들이 생길 줄 알았더라면 아마도 적어 남겼을 것이다)


*신약의 교회가 여전히 죄의 법이며 사망의 법인 구약의 율법을 자꾸 지키려 하는 이유 무엇인가? 구약과 신약의 차이점을 모르기 때문이다. 단순히 구약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의 시대이고 신약은 예수님이 오신 이후의 시대구분만 따르기 때문이다. 유일신관과 심위일체신관을 혼동한다.


구약과 신약의 혼동에는 천국에 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 하나님나라 곧 천국이 구약시대 이스라엘을 토대(土臺)로 이 땅과 이 시대에 주어진 사실을 알지 못해서이다. 천국은 이 땅이 아닌 저 멀리 우주 너머에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곳에 가려면 죽어야 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죽지 않고서는 육신을 가지고는 갈 수 없는 곳이 천국이라고 여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저 어딘가 천국이라는 곳에만 계시기 때문이다. 그 하나님은 항상 한 분이시고 변함이 없으시고 항상 초월적이신 분으로 이해된다. 그 하나님이 창조 때부터 이 땅에 내리신 하나님의 계명은 단 하나 율법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 법은 영원한 법으로 통한다. 바뀌면 안 된다.


그래서 율법주의가 지속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항상 태초부터 이 땅에 자기백성과 함께 계셨다. 구약시대에는 유일신으로만 알리셨지만 신약시대에는 삼위 하나님으로 자기를 계시하신다(요한복음).

항상 동일하신 하나님, 구약과 신약이 별다르게 차이점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런 신학관념에 젖어 있는 사람에게 구약과 신약이 확연히 다름을 이야기하면 이해하지 못한다.


더욱이 신앙에 가장 중요한 율법의 폐지를 이야기하면 무율법주의자가 되고 만다. 세계약과 더불어 법이 바뀌었다고 아무리 말해도 그 사람은 무율법자가 되고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가 되고 마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고 그 나라의 법으로 자유케 하는 새로운 율법을 주셨는데, 그 이전(以前)에 이런 세상이 올 수 있도록 아브라함의 자손들인 이스라엘로 가나안땅에서 하나님나라(여호와의 왕국)를 경영해 보셨고 그들에게는 모세의 율법을 내리셨다.


그 바탕 위에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거기서 새로운 시대를 여셨다(“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셨다.

이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라디아서 4:4-5).


3) 율법을 폐하심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분이시다(에베소서2:15 딤후1:10 히브리서7:18-19). 율법을 폐하셨다니까 율법을 없애버리셨다고 이해하기 쉬운데 아니다,

과거의 율법, 죄의 법으로 주셨던 모세의 율법을 폐기처분하고 새 것을 주셨다는 뜻이다.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히브리서10:9) 왜냐하면 새로운 시대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마태복음이 말하는 천국이다. 자유케 하는 온전한 율법 즉 산상수훈에서 집약적으로 이야기하신 수준 높은 영원한 법, 성령의 법을 새롭게 주신 것이다.


4) 제사직분이 바뀜(히브리서7:12)

구약시대의 제사는 레위지파를 통해 이루어졌다. 열두지파 중에서 제사장지파로 구별된 레위지파는 가나안땅의 기업(企業)이 없다.

대신에 다른 지파 사람들이 일 년 수익의 십분의 일을 세금(稅金)으로 내면 그것을 가지고 연명하면서 백성들을 지도했다.

그들도 십일조를 내면 예루살렘성전을 봉사하는 제사장들이 필요에 따라 사용했다.


성전과 레위지파와 십일조는 함께 간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성전의 휘장이 찢어져 내리고 더 이상 성전과 제사는 불필요해졌다. 짐승을 죽여 드리는 성전제사가 폐하여졌는데 더 이상 제사장은 필요 없어졌다(히브리서9:11-28).

따라서 십일조제도도 사라짐이 마땅하다.

대신에 더 크고 온전한 방식이 도입되었다.

하늘성소에 주님이 계시고 거기서 영원한 대제사장 직무를 수행하신다.

(히브리서9:23-25)


우리에게는 그리스도 외에는 제사장이 없다.

그는 죽음을 이기신 분으로 직분이 갈리지도 않는다(히브리서7:24-25).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드릴 뿐이다.

구약시대에 10분의 1을 드리던 것을 온전히 드림으로 바뀌었다. 성전도 폐하여지고 제사와 제사장도 폐하여지고 그리스도로 대체 되었는데 어찌 십일조만 남겨 두었을까?


십일조방식도 새로운 것으로 바뀌는데 제사장을 위해서는 십일조였지만 영원한 대제사장을 위해서는 전체를 드림이 마땅하다.

첫 것인 하나가 아닌 전체를 드림의 정신이 신약의 헌금정신이다.


5) 첫 것과 전체(一과 多) 그리고 십일조(十一條)

구약의 이스라엘에게는 율법을 통해 제시한 법칙이 있다. 항상 처음 것 즉 대표적인 것을 드림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하심이다.

인류의 대표인 아담, 온 민족의 대표인 이스라엘, 일 년의 첫 달(출12:2), 일주일의 하루 안식일, 한 달의 첫 날 월삭, 무교절의 첫 날, 일 년 중 대속죄일, 농사의 첫 열매(출23:15), 소득의 십분의 일, 장자와 첫 새끼는 하나님의 것, 열두 지파 중에서 레위지파는 제사장 지파로 구별함, 제사장들 중에서도 대제사장을 세움 등이다.


율법 제도 가운데서 항상 첫 것을 하나님께 드리면 나머지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으신다.

처음 것만 하나님의 것이라고 못을 박기 때문이다(출23:19).

유월절 사건을 통해 장자(長子)는 다 하나님의 것이니 속전을 드려야 하는 것도 첫 대표를 드림이다.

이 제도는 상당히 강제적이다.


자의(自意)로 선택해서 하든지 안 하든지의 문제가 아니다.

나라를 운영하기 위해서 반드시 지킬 규범으로 주셨다.

이에 대해서 바울은 율법은 ‘종의 멍에’라고 지적한다.(갈라디아서5:1) 구약시대 이스라엘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신약백성에 비해 종의 기준으로 다루시기 때문이다.

물론 신약백성은 자유자요 자녀로 대우하신다(요한복음·1:12 갈라디아서3: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메인바 되고 게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러한 이유는 아직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모든 것을 구속하시고 온전하게 헌신할 수 있기까지 예표적인 관점에서 시행하신 까닭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첫 것이나 대표격만 드림이 아니라 전 체가 드려져야 하는 시대가 온다. 물론 자유함과 기쁨으로 하게 된다.

이제 신약시대(새계약시대)의 하나님나라에서는 일주일의 하루만 헌신함이 통하지 않는다.

구약시대처럼 안식일만 잘 지키면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시대가 아니다.


주일만 거룩한 것이 아니라 일주일 내내 하나님나라의 거룩한 백성으로 바르게 헌신하며 살아야 한다.

그렇다고 교회에서만 사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내가 있는 모든 곳이 거룩한 성전이며 영광의 보좌 앞임을 인식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몸의 헌신과 더불어 예물을 드림도 마찬가지이다.


십일조만 드리고 나머지는 내 것인 양 사는 방식은 구약시대의 유물이다.

십일조(일부)를 드리고서 다 드렸다는 생각은 신약시대에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처럼 주님께 사기를 치는 일이다.

그러면 내가 가진 소유를 하나도 남김없이 다 드려야 하는가?

내 가족의 의식주를 위한 것도 주님의 일이고 주의 교회의 필요와 형제를 섬기는 일 모두가 주님께 헌신하는 것이니 따로 구별할 이유는 없다. 분명한 것은 항상 전체가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을 위해서 쓰여 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십일조를 강조하면 할수록 나머지는 내 것이고 첫 것만 드리면 다 되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아직 어린아이의 시대이기 때문에 그 만큼만 가지고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라고 제한하신 제도이다.

분명한 것은 십일조제도는 구약시대의 유물(遺物)이며 성전제사가 유효할 때 사용되던 것이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한복음1:17)


이제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새로운 나라가 나타났으니 새 시대를 사는 자들은 새로운 기준 즉 온전한 율법의 기준에 맞게 살아야 한다.

죄인들로 구성된 이스라엘백성이 지키던 수준 낮은 전체의 일부만 드려도 오케이 하던 시대의 것을 지금도 불변의 법칙인양 고수한다면 교회를 자꾸 어린아이로 만들어 가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얻을 게 없다.

대학생 아들이 초등학교 때 전교 수석을 했다고 그 아들을 자꾸 초등학교적 모습으로 살라고 할 것인가?


교회의 전통도 중요하지만 그 전통이 성경과 위배되는 초등학문적인 율법에 관한 것이라면 단호히 버려야 한다. 교회 헌금 안 나올까 봐 십일조를 고수해야 한다는 주장은 주님 앞에서 할 말이 아니다.


5) 하나님나라와 연보 그리고 축복

이런 율법과 복음의 이해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하나님나라(천국)의 오해로부터 비롯되어짐이 분명하다. 하나님나라가 이 땅의 타락한 인간들 시간 속에서 하나님이 점진적(漸進的)으로 이루어 가심을 이해하지 못함에서부터 이런 오해가 나타남을 알아야 한다.

즉 새하늘과 새 땅으로 완성되어질 하나님의 나라가 올 수 있도록 먼저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을 통하여 가나안땅에서 왕국을 이루시고 그 다음에 그 바탕을 통해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때가 차매 오셔서(갈라디아서4:4) 그 위에 하나님나라를 시작하셨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행전1:8) 하심으로 천하만민 중에서 자기백성을 부르심으로 드디어 나타났음을 아는 게 필요하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미 도래(渡來)한 하나님의 나라가 마태복음이 말하는 천국이다(마태복음3:1-2 4:17).


그러나 작금 헬라철학의 영향을 받은 교회가 천국은 하늘 저쪽 어딘가에 영원 전부터 있다고 믿고 그러므로 구약시대이든지 신약시대이든지 간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잘 섬기면 들어가는 곳으로 이해하는데서 부터 구약과 신약이 무슨 차이가 있는지를 모른다.

성경의 역사를 수평선상에 놓고 항상 동일한 법칙이 작용한다고 보는 사람의 눈에는 구약과 신약이 차이가 없다.


만약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나 동일하시고 변함이 없으시며 사람도 항상 같은 인간일 뿐이며 구원도 구약시대든지 신약시대든지 하나님을 잘 섬기다가 죽어서 천당에 가야하는 항상 동일한 구원관이라면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이신칭의) 절대 진리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구약 때는 오실 메시아를 믿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설득할 것인가? 바울이 말한 대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이 복음을 듣고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어찌 설명할 것인가?

(로마서1:16-17) 유일신교리만 믿는 유대교 안에 이미 삼위일체를 미리 앞당겨 깨닫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를 폐기해야 맞는가? 만약 그렇다면 구약과 신약을 구분을 성경에서 빼내야 한다.

그리스도가 오셔서 참 하나님 나라를 세우실 토대를 위해 미리 이스라엘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그 나라를 섬기도록 하셨다. 땅에 세운 나라이므로 땅의 것들을 드려 물질로 섬기도록 했다. 성전제도와 더불어 제사제도 제사장 그리고 십일조제도는 그 중 하나다.


대신에 제대로 열심히 그 법대로 충성하면 땅의 것인 물질의 축복을 약속하신 것이다(말라기3:10). 신명기의 축복이 다 이에 해당한다(신명기14:22-29).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세운 나라는 하늘의 나라이다. 하늘에서 오신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나라이고 하늘 보좌에서 다스리시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어느 한정된 지역(가나안 혹은 팔레스타인)이 아닌 우주적인 모든 인류를 계약백성으로 부르심으로 세우신 나라이기에 천국(kingdom of heaven)이라고 부른다.


이 하나님의 나라도 지구를 떠난 우주 어디에서가 아닌 바로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에서 시작되고 완성되어지기 때문에 이 나라를 섬기는데도 여전히 물질은 필요하다.

그래서 신약교회의 구성원들이 자기의 소유 중에서 섬기도록 하신다.

주님을 섬기고 나라를 세워가고 교회를 일으키며 형제를 섬긴다.

대신에 구약의 십일조방식이 아닌 더 낫고 더 좋은 온전한 방식을 주신 것이 전체를 드림이다.


돈을 버는 대로 자기의 것은 하나도 남김이 없이 다 내어 놓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나라가 필요할 때 딱 정해진 십분의 일만아 아니라 전체라도 드려 온전히 헌신함을 주님이 원하신다.

이 원리 속에서 항상 구약의 백성들보다 더 풍성히 그러나 억지로나 인색함으로가 아닌 자유함으로 충분히 드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도록 내 자신을 드림이 연보(捐補)의 방식이다.


어린 자녀는 맛있는 것을 먹다가 엄마가 좀 먹자고 하면 요만큼만 먹으라고 선을 긋는다. 그러고도 굉장히 엄마를 사랑한다고 생색을 낸다.

그러나 다 자란 자녀는 엄마가 달라고 하기 전에 알아서 다 드리고 자기는 먹지 않아도 됨을 안다.

기쁨으로 감당하는 것이다. 구약과 신약시대의 삶이 이처럼 대비된다. 그래서 바나바가 자신의 모든 소유를 감사함으로 드림으로 하나님나라가 풍성하게 되어 가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삶이 신약성도의 삶이기 때문에 십일조제도를 폐기한 것이다.


이처럼 기쁨과 자유함과 온 맘을 다해 섬기는 자에게는 땅의 축복의 약속인 신명기의 방식대로 땅의 축복이 아닌 하늘의 상급으로 베푸실 것이다.

그 상급은 완성될 새하늘과 새땅을 기업으로 주심이다(마태5:5 행20:32 엡1:18 5:5 히9:15 벧전1:54).


(결론)

구약시대 모세율법의 십일조(十一條)가 그리스도로 온전하게 하나님나라가 나타난 시대에는 그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주님과 주님의 나라와 그 안에 함께 형제 된 자들을 섬김에 있어서 강제성을 띄지도 않는 대신에 전체를 헌신하는 마음과 자세가 요구된다. 십일조 폐지가 헌금을 안 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부분적으로가 아니라 더 많이 더 온전하게 전체를 드려야 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처럼 육체의 구원이 아니라 전인적인 구원, 아들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구원을 얻었기 때문이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십일조를 억지로라도 해야 했지만 지금은 전체를 기쁨과 자원함으로 하기를 원한다. 억지나 인색함은 죄를 짓는 일임을 신약의 모든 교회에 경고하기 위해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를 일벌백계(一罰百戒)로 죽이셨던 것이다(사도행전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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