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용어 자료

가경(Apocrypha)

헬라어 '아포크리포스'로 번역하면 '숨긴 것'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가경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책들을 가리킨다. 공개되지 않은 이유는 그 내용에 문제성이 많기 때문이 다. 그 문제성 가운데 그 저작들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과 그 책들의 교훈이 진리에서 이 탈되는 사실이 관계되어 있다.



가현설1, (Docetism, )

영지주의자들 가운데 가현설을 따르는 이가 많다.

가현설은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과 육체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을 부정하거나 또는 그것이 마귀를 속이려는 계책이 있을 뿐이거나 또는 가롯 유다나 구레네 시몬이 실상 대신 죽고 예수님은 죽음을 피하였다고 하였다. 따라서 가현설은 체계 있는 종교사상이 아니고 이러한 영지주의적 경향을 띤 제설을 가리킨다.



가현설2,(Docetism)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물질적인 몸과 인간성을 갖지 않았고 단지 유령의 몸, 즉 인간의 환영만을 가졌다고 가르치는 이단교리이다. 그들은 예수의 모든 인간적인 행위들은 환상이라고 주장한다.

가현설은 영지주의 이론의 당연한 결과였고 마르키온, 마니교, 무하맛 등이 주장 혹은 인정했으나 명확한 사상 체계라기 보다는 하나의 경향으로 구체적인 종파는 없었다.




강해 설교

설교의 한 형태,

성경의 한 책을 처음부터 차례대로 설교해 나감,

본문의 의미를 밝혀주는 주석설교라든지 여러 본문을 택하는 본문설교와는 다르다.

일반적으로 주일저녁이나 수요예배 때에 많이 하고 있음.




개연론(Probabilism)

절대적으로 확실한 지식이 없을 때 확실한 것처럼 보이는 것, 즉 개연성만이 신념이나 행동의 유일한 지침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도덕적으로는 어떤 행위가 올바를 수 있다는 개연적인 의견이 그 행위를 행하기 위한 충분한 동기가 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개편찬송가

1967년 12월 발행된 찬송가.

편집은 한국 찬송위원회가 맡았고 발행처는 대한기독교서회.

예장 통합, 기감, 기성, 기장 4개 교단 대표들이 5년여의 편집 과정을 거쳐서 간행했음.





개혁주의 신학(Reformed theology)

개혁주의 신학은 일명 칼빈주의라고도 하고, 역사적으로는 펠라기우스주의와 반펠라기우스주의에 반대되는 기독교 사상체계로서 아우구스티누스 주의의 부흥이라고도 한다.

제네바의 종교 개혁자 요한 칼빈을 통해서 이해된 성경교리 사상 체계가 개혁파 교회들에 의해서 채택된 공적 신앙고백들과 칼빈을 따르는 대표적 신학자들의 고전적 저서들을 통해서 개혁주의 신학은 발달하였다.

개혁주의 신학 체계의 원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광이다. 이들의 근본사상은 하나님 중심에 있으며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만물을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신다 라고 한다.

개혁주의는 기독교 유신론이며, 가장 순수하고 고상하며, 복음주의 적이다라고 할 수 있다.




개혁파 정통주의(Reformed Orthodoxy)

(1) 개혁파 정통주의는 노르트 공회(Dordt Synod, 1618-1619)이후 알미니안 주의를 배격하고 푸티어스(G . Voetius-1676)고마러스(Francis Gomarus, 1563-1641)등의 억격한 칼빈주의가 정통으로 득세하였다.

신학적인 방법은 루터파 정통신학과 같이 스콜라 신학적 방법을 사용하였으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신학체계 정립에 힘을 썼다.

(2) 화란 개혁교회는 교리적으로는 억격한 칼빈주의를 취하였으나 정부는 여러 가지 자유사 상을 허락하였다. 그 결과 도덕적 엄격주의는 퇴조하고 소수의 무리에 국한되었다.

(3) 정통적 칼빈주의에 대한 하나의 교정적 신학 방법으로 칵시어스(Cocceius 1603-1699)의 "계약 신학" (Covenant theology 또는 Federal theology)이 각광을 받았다.

순수한 성경 신학(Biblical theology)임을 표방하고 나섰다. 그의 주저는 1648년 출간된"계약 교리론"이다(Summa doctrinae de Foedere et Testa mento Dei)영국 청교도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으나, 정통파에게서는 비 정통이라고 비난을 받았다.




경건주의(Pietism)

역사적으로 기독교에 깊은 영향을 끼친 경건주의는 17C독일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데 당시의 독일은 30년 전쟁의 여파로 정통적 교회의 대부분이 그 복음적 생명성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루터교 목사인 스페너는 '경건을 동경함'이라는 책을 통하여 영적 부흥을 일으켰는데, 그는 기도모임과 성경공부를 강조했고, 또한 전통적인 교리와 규정안에서 그리스도인이 순결하게 생활할 것을 강조했다.

이 사상은 벵겔, 칸트, 레씽, 요한 웨슬리, 무디 등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경건주의는 개인의 영적 생활의 내성 체험에 대한 강조는 쉽사리 주관주의, 자유주의, 신비주의에까지 전락케 되는 위험을 주고 있으며, 정치, 사회, 혹은 노동의 분야에 대한 기독교의 막중한 임무를 보지 못하여 이를 등한시한다.



계몽주의의 특색

(1) 교회의 권위에서 벗어난 인간 이성과 경험에 근거한 자율적 세계관과 인생관의 정립과

추구이다. 인간이 가치 측정의 표준을 자기에 두었다. 자율(自律 Autonomy)의 주장이 모든 사상과 활동의 특색이다.

(2) 르네상스 이후 "自我의 발견" 은 이런 방향으로 계속 되였으나 종교개혁, 정통주의, 종

교 전쟁 등으로 각광을 받지 못한 채 저류를 이루어 오다가. 신학적으로 암미니안 주의의 옷으로 바꾸어 입고 나타나다가(제 17세기), 30년 종교 전쟁이 끝나고 상업경제의 발달과 함께 하나의 사상적 체계를 세우고 등장하여 제 18세기는 계몽주의 시대가 되고 말았다.

(3) 이 계몽주의 운동은 나라마다 그 특색이 다르다. 종교개혁과 같은 단일성을 이루지 못하였다. (a)영국의 경험론 (b)독일의 합리주의 -나중에 이상주의(ldealismus) (c)불란서의 자연주의이다. 그러나 다같이 이성을 최고의 규범(Norm)으로 삼고, 모든 인문과학을 자연적 체계로 정비하여, 종교, 도덕, 헌법, 시민법, 경제질서의 근거를 이성 또는 자연법에 두려 하였다





계시(Revelation)

계시란 하나님의 역사 속에 활동하시며, 그의 백성들에게 자신을 인격적으로 나타내시고, 그들에게 구원의 의지, 목적 그리고 그들의 삶에 대한 요구 등을 전달하시는 과정을 말한다. 그러므로 계시는 하나님의 행위와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말씀을 총 망라하는 것이며, 본질적으로 인격적이며 제안적인 것이다. 계시는 하나님의 원천적 행위, 자아 현현, 교통하심을 언급하는 것이다.




계약(Covenant)

계약은 두 당사자가 서로를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하기로 한 구속력을 가진 약속이다.

심학적인(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 사용되는) 계약이란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특히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서 이 약속 안에 포함된 의무들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체결하신 은혜로운 약속이다.



계약파(Covenanters)

(1) 16세기, 17세기 스콧트란드 장노교인들로서 종교적, 정치적 맹세로 결속하여 그들의 종교적이상을 성취하려하였다.

1556에서 1562사이에 수많은 계약이 이루어지고, 1638년 찰스일세에 대항하여 맺은 국민계약(the National Covenant), 1643년 신성동맹 및 계약(the Solemn League and Covenant)을 정점으로 계약을 종교 및 정치투쟁의 방법으로 사용하였으나, 그 이후에는 계약파사이에 분열이 일어났다. 1661-1688년사이에 또 다시 장노교회가 핍박을 받을 때 새로운 계약이 생겨 났고, 명예혁명으로 장노주의의 승리로 계약목적이 이루어졌다.

(2) 그 이후에 일부의 과격파는 1690년의 장노교회설립에 불만을 가지고 "개혁 증노교회 교인" (Reformed Preabyterians)이 되었으며, 계속 "계약파" 전통을 이어왔다. 그후에 스콧트란드 장노교회에서 분리한 "자유교회" (Free Church, 1876)에 합세하였다.

(3) 리차드 카메룬(Rechard Cameron, ?-d. 1680)은 과격파의 대표이며, 1661-1688년 왕성복구시대에 찰스이세에 대한 무력항쟁을 펴고, 국교회에 동조하는 동족에 대해서도 공격을 엄추지 않았다. 그는 열혈설교가이며 스콧트란드교회와 국가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가 1680

년에 국왕의 군대와 교전 중 전사하였다.

그를 따르는 과격한 계약파를 "카메루니안"(Cameronians)라 부른다.

지금도 미국에 개혁 장노파가 있다.



고려파 운동

신사참배 반대 투쟁의 중심이 된 출옥 성도들이 벌인 회개, 경건운동.

'예수교 장로회 고려파'라는 새로운 장로 교단을 형성시켰음



고신대학교

신사참배 반대 투쟁의 선봉에 섰던 출옥 성도들이 해방 후 별도의 신학교육 기관 설립을 목표로 추진 함.

1946년 박윤선 목사가 주도한 진해 성경 강좌가 모태가 됨.



공관복음서

신약성경의 첫 세 권을 지칭함. (마태, 마가, 누가복음)

거의 내용이 유사하고 동일한 관점에서 쓰여졌다 하여 붙여진 말.

18세기 후반부터 학문적 용어가 되었음.



공동번역 성서

세계성서공동연합회와 로마 교황청 성서위원회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짐.

한국에서는 1968년 1월 공동번역위원회가 조직되어 1971년 4월에 신약이 출판되었고 ,

완간이 된 것은 1977년 4월 부활절 때 임.

구약1997 페이지, 신약 505 페이지, 외경 328 페이지, 총합 2420 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의 번역을 완료하여 '공동번역성서'라는 이름으로 출간.

'하느님' 칭호와 교리 및 해석학의 관점에서 보수 진영의 반감을 삼.



공동서신

야고보서,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 요한일, 이, 삼서, 유다서 등 신약의 일곱 권을 가리키는 명칭.

바울과 흐름을 달리하는 기독교 사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중시 됨.



공산주의

사유 제산제 폐지, 생산 수단 및 그 생산물의 공동 소유, 평등한 소비를 목적으로 함,

공산주의의 근간인 마르크스주의의 이론 철학상으로는 사적 유물론, 경제학상으로는

자본주의 붕괴, 정치학상으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론, 반기독교, 반하나님, 반성서의 거대한 거짓 메시아 집단임.




관주성경

성경의 중요한 내용이나 용어 중에서 같은 것, 유사한 것, 인용되거나 비교할 만한 사항등을 다른 본문에서 찾아 볼 수 있도록 표시한 성경,

한국 최초의 관주성경은 '부표관주신약전서'(1910년 선교사 카우만이 상해에서 출판함) 임.




과학 만능주의

과학을 통하여 우주 일체의 현상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주의,

하나님의 자리를 인간의 지혜로 대처하는 불경건한 성향임.




교단(敎團)

종교 단체라는 의미,

공통된 신앙과 교리를 가진 신도들로 조직 됨.

일본 기독교회들이 먼저 사용함.




교리문답1,

기독교의 교리를 문답식으로 가르치는 형태나, 책.

구약시대에도 이 방법을 썼으며 종교개혁 시대에 이르러 교리문답이 갑자기 발전됨,

모든 교리 문답의 기본 내용은 사도신경과 십계명, 주기도문임.

루터의 대소요리 문답, 칼빈의 대소요리 문답, 웨스터민스터의 소요리 문답 등이 유명.




교리문답2,(Catechism)

원어의 '응답한다'라는 말이 '가르친다'라는 말로 발전하여 생겨났다. 교리 문답은 기독교교리를 요약하여 초신자들에게 기독교의 가초적인 신앙을 학습시키고, 신앙의 체계를 배울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소요리문답, 제네바 요리 문답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등이 있다.




교리사

역사신학 또는 교회사의 한 분야이며 기독교 교리의 형성과 발전의 역사적 과정을 연구함.

기독교 신앙의 역사적 형태를 밝히는 데에 비중을 둠.

'랑게'에 의해 체계화되고, '하르낙'이 새로운 장을 열었음.



교부(敎父)

초기 기독교회의 저술가, 학자들에게 붙여진 칭호,

'증거자'라는 의미에서 감독들에게만 적용되다가 4세기 말 부터는 교리적인 면에서 중요한 문헌을 남긴 저술가들을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음.

정통교리를 가르치고 거룩한 생활을 하며 교회의 인정을 받던 고대의 인물들.

그리스 교부(저스틴, 클레멘트, 오리겐, 그레고리)와 라틴 교부(터툴리안, 키푸리안, 암부로스, 어거스틴)로 나눔.



교의(敎義)

권위에 의해서 확립된 것으로 간주되는 견해 혹은 정설.

헬라어의 의미는 칙령, 법령, 명령, 교리, 교의 등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 말씀에서 깨달은 영감적 교리를 보편적 교회가 인정하고 권위를 확립함.



교의학(敎義學)

학립된 기독교적 진리에 대한 학문적 진술.

교의의 형태로 교회에 존재하는 모든 기독교 진리가 그 대상이 되며, 18세기 초반 후에 생성됨.



교파(敎派)

종교상의 한 파. 본래 기호명칭을 뜻함.

기독교에서는 특수한 종교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단체와 파를 가리킴,

유럽 대륙과 영국에서는 국교회에서 이탈한 종파로 보고 경시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

미국의 교회들은 교파주의 교회여서 교파가 경시되지 않고, 다만 역사성이 약한 '분파'와 구별짓고 있음.

한국교회의 교파 형성은 미국교회를 중심으로한 교파형 교회가 들어 왔음으로 필연적이었음.



교황 무 오류성(Papal Infallibility)

교회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그 권위를 교황에게 부여하면서 교황 무 오류설을 주장함. 계시된 진리를 가르침에 있어서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말



교회사

기독교의 기원 및 발전 과정을 역사적으로 서술하는 것.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활대속과 부활, 오순절의 역사에 기점을 두고 있음.

평이한 구분은 초대교회사, 중세교회사, 종교개혁사, 근세교회사, 현대교회사 등 5 단계.

현대교회사는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교회 역사임.



구속(Redemption)

구속이라 함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죄인에 대한 율법의 모든 요구를 지불하시고 율법의 저주와 속박에서 해방시키는 하나님의 행동을 말한다.




구약신학

구약에 있는 신학을 탐구하는 학문.

'가블러'가 독립된 학문으로 개척했으며, 고고학적 발굴로 근래 들어 괄목할만한 진척을 보이고 있음.



구약학

구약을 총체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구약언어학, 구약사, 구약개론, 구약주석학, 구약신학 등이 이 학문의 분야를 형성하고 있음.

구약의 연구 분야와 방법 등을 학문적으로 추정하는 작업.




구원사(Heilsgeschichte)

'구원역사'란 그리스도의 죽음과 구원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님의 구원 행동사를 가리키는데 성경은 단순한 말씀이나 추상적 진리를 담은 것이 아니고 '창조'라는 큰 역사적 사건을 시발점으로 하여 재창조의 반성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신의 일련의 행동사.




국제교회협의회(Church councils):I.C.C.C.

국제 기독교협의회는 1948년 암스텔담에서 29개국의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창설되었다. I.C.C.C.는 강한 근본주의 신학에 기초한 전투적인 연합 운동으로서 W.C.C와 공산주의를 대항해서 전통적인 기독교를 수호하기 위해 ,성경 장로교회의 설립자이며 또한 미국 FCC를 대항해서 1941년 성경 장로 교회를 주축으로 구성된 미국 기독교 협의회의 창설자이기도 한 맥킨 타이어 박사에 의해 제창됨.




근본주의1,(根本主義)

20세기 초에 생겨난 보수주의 신학운동.

자유주의 신학에 반동으로 생김.

필라델피아에서 '세계 기독교 근본주의협회'가 결성되면서 조직화되었음(1919년)

성경의 무류성, 동정녀 탄생, 대속적 죽음, 육체의 부활, 그리스도의 재림 등, 다섯 가지 근본 교리를 주장함. 한국에 있는 밥존스신학교가 여기에 속함.




근본주의2,(Fundamintalism)

근본주의는 기독교의 근본원리(성경의 영감설과 무오설, 삼위일체, 그리스도의 신성과 동정녀 탄생, 인간창조와 타락, 그리스도의 대속, 그리스도의 육제 부활과 승천, 부활과 재림 등)을 파수하고 소위 현대주의라 불리우는 위험한 신학에 대응하기 위하여 최 근래에 생겨난 신학운동이다. 이 교의는 어떤 특정한 개신교단의 원리가 아니며 개혁주의 노선을 따르는 모든 교파가 지향하는 기독교 복음진리를 포괄한다.




글리온(Glion) 선언(1988년)

1988년 11.23-25까지 스위스 글리온에서 캐나다, 미국, 프랑스, 서독, 소련, 영국, 일본, 체코, 화란의 교회 대표들과 조선 기독교 연맹 대표 7명과 한국 기독교 교회 협의회 대표11명이 참석하여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와 평화를 구축하고 한민족의 통일을 평화적으로 이룩하는 과업에 대한 세계교회의 역할에 대하여 협의하였는데 이때 한민족의 평화와 통일이 이룩되기 위해서 여러 원칙들을 재확인하고 몇 가지 실천적 과제들을 위해서 공동으로 노력할 것에 합의했다.




기독교 강요1,

칼빈의 주요저서.

1536년 바젤에서 라틴어 초판 간행(6장).

1559년에 80장으로 개정된 개정 증보판이 나왔음.

종교개혁 시대에 가장 체계적인 신학서.

개신교 신학사상의 고전이며 개혁파 교리의 출발점이 됨. 기독교 신앙의 대요를 정리한 책.




기독교 강요2,

⑴ 칼빈이 26세 때 쓰고 다음 해 1536년 3월 스위스 바젤에서 초판이 익명으로 출간되었다. 8절판 520페이지의 라틴어 판이었고 목적은 ①변증과 ②교육이었다. 모두 6장으로 되었는데 ①법(십계명) ②사도신경 ③ 주기도문 ④성례(세례와 성찬) ⑤잘못된 5성례 ⑥그리스도인의 자유. 이 순서는 루터의 요리문답서를 닮았다. 이 책은 즉각적인 성공이었고 곧 매진되었다. 재판이 요구되자 개정판을 내기로 하였다. 이때 벌써 국제적 명망을 얻게 되었다.

⑵ 1539년에 스트라스부르그에서 라틴어 개정판을 출간하였다. 모두 11장이었고 그 중에 "하나님에 대한 지식", "신구약 비교", "예정과 섭리", "그리스도인의 생활"등 세 장이 들어가고 여기 부서의 영향이 크게 보인다. 특히 "그리스도인의 생활"장은 부서의 "영혼의 참된 치유"(The True cure of Souls)의 영향을 입었다.

⑶ 1541년 불란서어 판이 나오다. 불란서어 문장에 큰 영향을 끼침.

⑷ 1543년에는 전 21장으로 증보함, 1545년 재간, 1550, 1553, 1554 수정판(1545, 1551 불란서어판)

⑸ 1559년 최종 라틴어판, 전 4권이며 사도신경의 순서를 따랐다.

①성부 ②성자 ③성령 ④거룩한 공회

⑹ 성격 : 성경의 진리를 단순(Simplicity) 명료(Clarity) 조직(System)적으로 설명하려 하였 으며 여러 차례의 개정판을 내었으나 근본적 원리는 변치 않았다.

목적 : 신학생들에게 성경공부를 위한 준비를 시키려함.

(to prepare students of theology for the reading of the Divine Word) 이 책은 칼빈 자신의 친구보다 책을 통해 전세계에 더 많은 친구를 만들어 내었고 개신교의 신학 교과서 로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총론(Summa Theologica)에 비견되며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에서 100년간 신학 교과서로서 쓰였다.



기독교 논쟁(Christological controversy)

그리스어 사용권의 형이상학적, 플라톤주의적 사고형을 가진 알렉산드리아학파, 로마 사람들의 정치적, 법률적 사고형을 가진 라틴학파, 그리고 히브리적 사고를 가진 안디옥 학파가 있었는데, 이 세 학파의 알력, 충돌, 대화 속에서 기독론 논쟁이 생겨나게 되었다.

고대 기독론 논쟁이 본격적으로 벌어진 것은 안디옥학파와 알렉산드리아 학파와의 사이에 학파적 대립을 근거로 하여 안디옥의 총주교와 알렉산드리아 총주교 사이에 대립, 알력이 벌어짐으로 서이다.

그것은 알렉산드리아가 예수 그리스도에 있어서 로고스로서의 존재를 더 확고히 견지하는데 반해서 안디옥에서는 그의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애매하게 만들지 않고, 그와 하나님과의 관계도 역시 흐리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와같은 관심의 차이가 결국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보아야 하는가,'사람의 어머니'로 보아야 하는가의 논쟁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기독교 사회주의(Christian socialism)

기독교의 사회적 원리들을 구조적으로 사회에 적용할 것을 주장하는 여러 다양한 교리들과 운동들을 지칭하는 말. 근대에 이르러서는 사회주의의 기본적 목적과 기독교의 신앙적 윤리적 확신을 통합하려는 시도를 지칭하는데 사용.




기독교 인문주의(Christian Humanism)(서영호)

초기에 이태리 인문주의자들은 기독교에 대하여 적대적이었고 이교적 사상에 젖었다.

로렌티우스 발라(Laurentius Valla 1405-1457)는 "콘스탄틴 황제의 하사" 문서(the Donation of Constantine)가 가짜임을 밝히고 사도신경이 12제자의 저작이 아님을 밝힘으로 교회를 비판하고 벌켓트역(Vulgate) 라틴성경에 오류가 많은 것을 지적하고 희랍, 히브리 등 고전어 연구를 주장하였다.

한편 15세기 후반-16세기 초의 북구의 기독교인들이 인문주의를 받아들였다.

이태리의 미란돌라(Mirandola 1463-1494),

불란서의 자크 레페브르(Jacques Lefevre d' Etaples C. 1455-1536),

독일의 아그리콜라(Rudolf Agricola 1443-1485), 로이클린(Johann Reuchlin 1455-1522),

영국의 콜레트(John Colet C. 1467-1519)와 토마스 모어(Thomas More 1478-1535),

그리고 화란의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C. 1466-1536)가 대표자이다.

이들의 특색은

(1) 성경 연구에서 원천으로 돌아가자 (Ad fonte)

(2) 그리스도 사도들의 신앙을 찾으려 하였으나 윤리적 합리적 신앙에 역점을 두고 그리 스도를 도덕의 표본으로 삼았다. 이들은 성서원전을 연구하고 원어를 연구하여 순수한 복음, 순전한 신앙을 추구하였으나 실제 종교개혁과는 거리가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