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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의 항구를 향해서 달려갑니다

11월 1일 월삭예배로 소원의 항구까지 라는 말씀을 열어 은혜를 나누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시107:23"선척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영업하는 자는 여호와의 행사와 그 기사를 바다에서 보나니

여호와께서 명하신즉 광풍이 일어나서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저희가 하늘에 올랐다가 깊은 곳에 내리니 그 위험을 인하여 그 영혼이 녹는도다

저희가 이리 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지각이 혼돈하도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평정히 하사 물결로 잔잔케 하시는도다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찌로다

백성의 회에서 저를 높이며 장로들의 자리에서 저를 찬송할찌로다

여호와께서는 강을 변하여 광야가 되게 하시며 샘으로 마른 땅이 되게 하시며 그 거민의 악을 인하여 옥토로 염밭이 되게 하시며 또 광야를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마른 땅으로 샘물이 되게 하시고"


30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개인이나, 가정, 국가는 그 나름대로 다 소원을 가지고 그 목적에 이르기를 원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소원의 항구는 바벨론에서 해방되어서 본국인 이스라엘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소원의 항구에 도달하기 위해서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1. 인생은 항해와 같습니다. 23절에서, “인생은 바다에 뜬 배”라 했고, “큰 물에서 영업하는 자”라 했습니다. 26절에서는 “광풍에 시달리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고, 27절에는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며 지각이 혼돈 된 방향 감각을 잃은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인생이든 인생은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기에 항상 풍랑이 일어납니다. 풍랑이 일어나지 않는 바다는 바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일어나는 풍랑을 어떤 사람들은 즐기면서 항해하는 인생도 있는가 하면 풍랑에 허덕이면서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살아가는 인생도 있습니다. 2. 소원의 항구를 향해서 달려갑니다. 본문의 시인의 소원은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서 이스라엘에 귀환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은 어떤 소원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시편 84:5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고 했고, 왕하 4:38절에는 엘리사가 흉년에 생도들(신학생)을 위하여 “큰 솥을 걸고 선지자의 생도를 위하여 국을 끓이라”고 했습니다. 기왕에 선택한 소원이라면 크게, 넓게, 높게, 깊게 가지는 것이 하나님이 뜻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면서도 이런 꿈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꿈의 최종 목적지는 땅위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삶이고, 하늘나라에서는 하나님 품에 드는 것입니다.

3. 선장을 누구로 삼고 항해할 것입니까? 소원을 가지고 목표를 향해 바다를 항해할 때 선장을 잘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선장이 자신이든, 타인이든 하나님이든 3자 중에 한 분이 선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스스로가 운전하기에는 너무나 무능하고, 타인이 키를 잡기에는 너무나 불안합니다. 나의 형편을 가장 잘 알고 나의 소원의 항구에 인도하실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에도 보시면 알겠지만 여행자가 바다에서 죽을 위기 상황일 때 28절에 보면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인도하여 내시고”라고 하고 있고 30절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맡길 때 그 풍랑 속에서도 구원해 주시고 소원의 항구까지 안전하게 인도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인생의 항해에 어떤 풍랑이 일고 있습니까? 주님을 선장으로 해서 소원의 항구로 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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