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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화 속에서 종교다원화

내가 원하던 아니원하던 우리들은 종교다원화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라는 하나님의 계명중에 십계명의 제 일계명으로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종교다원화 상황 가운데서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신앙의 길인가에 대해서 혼란을 경험하지 않을 수없습니다

그중에 가장 무서운 것은 전세계적으로 종교다원주의가 폭넓은 수용적인 가치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며 급속한 세계의 변화와 세속화 경향으로부터 오는 영향과 교회의 내부로 부터오는 도전, 그리고 타종교로부터 오는 영향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세계의 변화와 세속화

시간보다 더 빠르고 급속한 세계의 변화와 세속화 경향으로 부터오는 영향은 크게 보면 지구촌화 (globalization)와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으로의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급격한 기술의 발달로 이제 세계는 하나의 지구촌으로 변하여 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지역을 가르던 시간과 공간의 간격이 거의 없어지게 되었고 서로가 하나의 커다란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체계(systematic)안에 있는 하나의 공동체(community)로 발전해 가고 있으며 따라서 지구촌은 피할 수없이 점차 혼합(mix)된 사회가 되어져 가고 있다.


죤 나이스빗은 『메가트랜즈』에서 지적하기를 "전통사회에서는 어떤 사람이 가진 사상이나, 받아들이는 믿음이나, 감상하는 예술품은 모두 한정된 공간에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 . . 이제는 모든 것이 이용 가능하다. 힌두교의 만트라, 탄트라 경전의 만다라, 일본의 프린트 문양, 아프리카의 조각, 라틴음악과 인도의 라가 등, 이 모두가 서구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실시간'에 서로 어울려 있다."

이러한 사상과 종교의 개방이 사회의 깊은 곳까지라도 공존(coexistence)흐름 가운데서 그 어느 한 종교만의 배타성을 주장하기가 점차 어려워져 가고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던주의 시대가 가지고 있었던 특징인 객관적 이성에 근거한 일원화된 체계와 함리성의 권위가 실추되면서 등장한 사조(trend)인 것입니다

1985년 포스트모더니즘은 연극, 무용, 음악, 예술, 건축, 문학, 철학, 심리학, 자연과학 등의 모든 분야에서 나타났는데 그 특징은 불확실성, 파편성, 표준의 해체, 자아 상실, 기반 상실, 명시할 수없고 다양함등으로 설명되었고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의 흐름에서 종교도 예외일 수가 없었습니다

문화의 전반적 분위기나 종교의 유일성(only) 배타성(exclusive)을 거부하고 종교의 다원화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가게 되었습니다.


2.현대신학의 도전

교회와 신앙의 내부로부터 오는 현대신학 즉 19세기 중엽에 네덜란드에서 일어난 자유주의적 신학. 피어슨(Pierson, A.), 숄텐(Scholten, J. H.), 퀴넨(Künen, A.) 등에 의하여 일어나 뤼첼러(Lützeler, H.), 헤르만(Herman, W.)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었던 신학으로 부터의 도전이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신학자들은 타종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되었고 이것이 선교신학의 한 중요한 과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과제는 전통적인 신학 방법론의 틀을 깨뜨리는 현대적 신학의 신학방법론이 가미되면서 선교 신학에서 타종교에 대한 종교신학적 태도는 크게 종교다원주의와 포괄주의, 배타주의의 세 부류로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중 중교다원주의는 모든 종교의 구원진리 가능성을 인정해주는 것으로 현대적 신약 성서학의 영향, 역사적 상대성에 대한 현대의 문화적 경험, 그리고 보다 넓어진 다른 종교들에 대한 지식등에 근거하여서 등장하게 됩니다


이들의 주장은 몇가지 다른 방향에서 이루어지는데 죤 힉은 모든 종교의 배후에 하나의 실재가 존재하나 역사와 문화의 특수성 때문에 여러 종교가 생겼다고 보며 레이몬드 파니카는 우주적 그리스도론을 주장하며 범 우주적인 신(gods)인 양성적 실재로서의 그리스도는 나사렛 예수 안에서 성육신 되었으나 그것은 모든 역사적 형태를 뛰어넘는 것이기에 모든 종교는 일정한 방식으로 이러한 그리스도를 인식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사마르타라는 신학자도 역사적 상대성에 기초하여 어떤 종교나 종교인물도 신의 전적인 신비 앞에서 자신을 궁극적인 말, 충한한 의미로 말할 수없기에 하나의 종교는 자신의 추종자에게 결정적임을 주장할 수는 있으나 어느 종교도 모든 것에 결정적임을 주장할 수없다고 말합니다


또 가톨릭 신학 사조의 하나로서 1960년대 말기에 일어난 것으로, 교회는 억압받는 자의 해방을 위하여 혁명 운동에 적극 참여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해방신학 혹은 정치신학은 윤리적 실천을 진술의 진위를 가리는 판단기준으로 삼고 전통적 그리스도론이 세계의 역사에서 비도덕적 태도, 우월성, 불관용, 몰지각한 판단을 유발시켰음으로 그것을 철저히 재평가하고 파라다임 전환을 해야 한다고 하며 죤 힉의 신중심적 다원주의에서 해결책을 찾으려는 시도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포괄주의도 배타주의와 달리 성서만을 유일한 규범의 근원으로 보지않고 다양한 신앙전통을 용납하는 카톨릭이나 정교회등에서 볼 수있는데 이들은 타종교안에 있는 자연계시를 인정해주며 강조합니다

또 일부 제삼세계 신학자들도 이 포괄주의의 입장에서 타종교들 안에 존재한 보편적 구원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교회와 신앙 내부의 종교다원주의나 포괄주의적 입장이 지금가지 오직 유일신을 믿고 주장하는 신학자나 혹은 신자들에게 더 커다란 도전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3.타종교로부터 오는 도전

타종교로부터 오는 도전은 어쩌면 종교전쟁이라고 할많큼의 무서운 앞날을 예측하게 됩니다 즉 현대세계에서 여러 종교인들은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한 배타적 주장이 여러 종교들이 공존하고 있는 현대의 종교 다원화 세계속에서 서로간의 평화로운 공존을 깨뜨리는 비윤리적인 독선이라고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도전은 비그리스도인들에게는 상당한 호소력을 가지게 되며 이러한 입장을 철저히 지지하게 되므로서 점점 종교다원주의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앞으로 주님을 믿는 것이 어렵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종교다원주의 사회로 변화되어가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존재방식이랄까 혹은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길은 어떤 것일까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이슈(issue)가 아닐 수 없습니다


4.종교다원주의 상활에서 그리스도인

이러한 종교다원화 상황하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오히려 진리가 그곳에 있지나 않을까 하며 관심을 기울렸고 더 나아가서는 새로운 것이 없을까 하는 Newageism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지나간 것들은 다 필요없는 것이요 구시대적이라고 몰아붙이며 무조건적인 전통주의의 배격이 구약적 성경의 말씀까지 무시하는데 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세 가지 부류의 입장들이 제시되어는데 종교다원주의와 포괄주의, 그리고 배타주의인 것입니다


1) 종교다원주의는 모든 종교의 구원진리 가능성을 인정해주는 것으로 현대적 신약학의 영향, 역사적 상대성에 대한 현대의 문화적 경험, 그리고 보다 넓어진 다른 종교들에 대한 지식 등에 근거하여서 등장하게 됩니다. 이들의 주장은 몇 가지 다른 방향에서 이루어지는데 '모든 종교의 배후에 하나의 실재가 존재하나 역사와 문화의 특수성 때문에 여러 종교가 생겼다'고 보는 신학자가 있는가 하면 레이몬드 파니카는 우주적 그리스도론을 주장하며 '범 우주적인 신-인 양성적 실재로서의 그리스도는 나사렛 예수 안에서 성육신 되었으나 그것은 모든 역사적 형태를 뛰어넘는 것이기에 모든 종교는 일정한 방식으로 이러한 그리스도를 인식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 어떤 신학자는 역사적 상대성에 기초하여 '어떤 종교나 종교인물도 신의 전적인 신비 앞에서 자신을 궁극적인 말, 충만한 의미로 말할 수 없기에 하나의 종교는 자신의 추종자에게 결정적임을 주장할 수는 있으나 어느 종교인에게도 결정적임을 주장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해방신학 혹은 정치신학은 윤리적 실천을 진술의 진위를 가리는 판단기준으로 삼고 전통적 그리스도론이 세계의 역사에서 비도덕적 태도, 우월성, 불관용, 몰지각한 판단을 유발시켰음으로 그것을 철저히 재평가하고 패러다임 전환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2) 포괄주의는 성경만을 유일한 진리나 규범의 근원으로 보지 않고 다양한 신앙전통을 용납하는 가톨릭이나 정교회의 교리를 들고 나오며 이들 포괄주의를 엄밀하게 말한다면 종교다원주의와 전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들 주장 가운데 교회 밖의 타종교인에게도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능력이 미친 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주장은 타종교를 통해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러나 교회밖에도 구원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 속에 무서운 것은 그리스도의 개념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자시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 주시기 위하여 아버지의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영원하신 구세주인데 이들은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분리되어진 그리스도의 개념인 것입니다 이 견해를 신학적으로는 종교다원주의와 배타주의라고 말합니다

저들의 주장은 성경에 그리스도 없이는 구원이 없다고 하지만 그것은 기독교 신학자들의 개념적 주장이고 실제적으로타종교인은 그리스도라는 이름도 모르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으로 종교다원주의와 실천적인 면에서 별 차이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들테면 구원이라는 목적지를 가기 위한 길은 크게 말할 때 Highway도 있고 localway도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주장입니다

가톨릭(Catholic) 안에서 한스 큉과 같은 사람들은 이런 그리스도의 이름만을 이용하는 것에 반대하며 아예 기독교밖에 구원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3) 배타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근거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사건 이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음을 주장합니다

이 주장은 성경 계시의 절대성과 무오성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8-9).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게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1:12)

단순히 성경에 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성경은 타종교와는 분명하게 구분이 되는 구원 사건의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그리스도시며 인류의 죄를 대속하여 주셨습니다

이것은 어느 종교에서도 볼 수 없는 유일한 구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타종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성경의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을 전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의 부활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다시 생명으로 돌아오신 것은 역사적 사실 일뿐 아니라 분명 그것은 성경 안에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지금까지 많은 신앙의 선진들이 증거하고 변증했던 사실(fact)인 것이며 또한 부활의 사건으로 인하여면 내세와 영혼에 대한 주장은 절대적으로 진리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구원만이 유일한 진리라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여러 면에서 크레머라는 신학자는 타종교 내에 일반적 진리라 할 수 있는 피조물세계에서 나타나는 통계적인 사실은 존재할 수 있지만 이것은 그리스도의 특별 계시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불연속성(discontinuity)이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세상이 변하고 세속화되어갈지라도 진리는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라는 것은 영원에서 영원까지 변할 수 없는 완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원에서 영원까지라는 뜻은 우리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라고 말할 수도 있고 또 주님의 나라가 임하는 날까지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현대의 사회와 문화가 다원화 상황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할지라도 구원의 진리를 양보한다면 기독교는 그 존재 의미 자체를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WCC 종교다원주의적 견해를 받아들이면서 선교사의 숫자가 급감했으며 실제적으로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오히려 종교의 다원화로 변질되었습니다

종교다원주의 상황에서 어떻게 '종교간 윤리'를 만들어낼 것인가하는 문제를 제기하며 타종교와의 관계을 형성하고자 하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대화'(dialogue)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연합적 사업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1948년에 기독교의 교파와 교회를 초월하여 하나로 통합하려는 세계 교회주의 및 그 운동이었으며 이를 실천하기 위한 세계교회운동은 여러 가지 형태로 전대되어 왔던 에큐메니칼(ecumenical)운동이었습니다


이들은 성경으로 본질을 찾는 것은 시대적 역행이라고 말합니다

다변화되고 다원화된 세상에서 어느 하나만을 주장하는 것은 편협적이며 잘못된 신앙관이라고 말합니다

종교는 인간을 위해서 있고 세상의 주인은 인간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성경이 있는 것처럼 모든 종교에는 경이 있으며 교리가 있으니 그들 모두가 연합하여 함께 손에 손을 잡고 인류를 아름답게 꾸미며 서로돕고 복지국가를 창설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것은 종교라는 태둘이에서 이해할 수 밖에 없고 또 종교라는 말이 옳지마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결코 종교와 함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인류를 창조하신 분은 한 분이시오 피조물을 피조물일뿐 결코 인류를 구원할 구원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성경으로 돌아가서 한 부자와 율법사가 영생의 문제로 주님과의 대화를 하고 있는 내용을 봅시다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마 19:16)하였습니다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막 10:17)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입니다

종교와 신앙이 다른 점은 바로 이런 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받는 줄을 아는 것이 종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이미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 자신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선한 일을 하였고 이웃들을 도왔으며 지금도 부지런히 선한 일을 찾아 열심을 다한다고 할지라도 결코 우리의 죄의 값을 갚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죽을 운명에서 스스로를 건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5.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엡 2:8,9)하셨습니다

결코 우리가 하나님께 어떤 공로를 행하였다고 해서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그리고 만세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구원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자랑하지 못하게 하여고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피조물인 사람이 어찌 자기를 구원할 수 있다는 주님의 완전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모리아 산으로 제사하러 올라가던 아브라함은 번제할 예물이 어디있느냐고 묻는 아들 이삭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창 22:7-8)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신 것입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요 8:56)하셨습니다 또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다 앞에서 추격하는 애굽 군대를 두려워 할 때 모세가 이렇게 말합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 14:13, 14)하였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신 목적은“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고 말씀하였습니다(행 4:12)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시 태어나는 체험이요 경험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3)


여기서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말씀은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부터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할 때, 즉시 마음 안에 성령이 임재하십니다(요 7:38, 39; 행 2:38)

성경은 이러한 상태를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고 말합니다. 이렇게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것을 가리켜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말합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요 7:38, 39)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 2:38)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구원이 이르렀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눅 19:9)

그리고 구원의 완성은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 1:6)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종교가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것인가 하는 것은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변증에 변증 증거에 증거 증인에 증인이라고 하는 계속적인 확신에 찬 말씀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인간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위하여 살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영원한 세계를 가기 위하여 이땅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으며 또한 천국에 이르기까지 이땅에서 천국의 훈련을 받기 위하여 살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이루기 위한 일꾼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과 종교는 완전히 다른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과 피조물이 다른 것처럼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른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인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자기 몸에 자그마한 종기 하나도 암세포하나도 극복할 수 없는 무능하는 존재이며 또한 아무리 선한 일을 하여도 선할 수 없는 죄성을 가진 부패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이 사람의 손을 잡는다고 해서 평화가 올 수없습니다


물론 인간적인 평화와 정의가 세워질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그러나 인류가 생긴이래 지금까지 그 일은 반복적으로 계속되어 왔고 많은 종교지도자나 철학자들이 그 뒤를 이어 왔으며 수많은 교육방법들이 개발되었고 실천에 옮겨보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오히려 타락과 세속을 불러 일으켰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구원이 어디 있느냐 하는 무신론자이면서도 휴먼이즘에 빠진 자들이 더욱 소리를 높이고 있음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종교다원주의는 우리의 신앙에 최대의 적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모든 종교는 손을 잡을 수 있으며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누가나 입이 있으니 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알곡을 추리시기 위한 가라지의 분리라고 생각합니다

Nyskcism은 예배회복의 사상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신앙관입니다

오직 예수님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다는 신앙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다는 것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종교의 시작이 세속이었으며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었다는 것은 성경이 증거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을 신앙하고 경배하며 찬미하는 사람들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구원의 길은 이 한 길 밖에 없다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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