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론 1-2

성막공부 1. 구조편


■ 고린도전서 3장 16절-17절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예수님의 제자들과 예수님의 성전관이 다른 것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전의 외모의 아름다움을 보고 또 그 웅장함을 보고 심히 존귀히 여겨서 예수님에게 이것을 소개하려고 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너희들이 이 성전에 대해서 이렇게 무식하고 그 실상을 보지 못하느냐 하는데 대해서 책망하시면서 이 성전은 돌 하나도 포개지지 않고 완전히 훼파된다 하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성전이 성전으로서는 도무지 하나님이 둬 둘 수가 없어서 완전히 파멸을 시키실 그 성전인데 제자들은 이 성전을 아주 아름답고 고귀한 거룩한 성전으로 보았습니다. 이렇게 성전관이 정반대의 차이가 있는 것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종교 말년에 된 일인데 신약 교회의 말년에도 사람들의 성전과 이 사람들의 교회관이 이렇게 예수님과 믿는 사람들과의 정반대가 될 만큼 차이 있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가까워 오고 있는 이때에 첫째로 교회관이 발라야 된다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교회는 어떠한 것이 교회며 교회관이 잘못돼서 하나님은 하나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분히 여겨서 다 멸해 버리시는 이 교회를 하나님의 사람들인 목사, 장로, 집사, 평신도 할 것 없이 모든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좋은 교회가 있느냐 그렇게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교회를 보는 것과 주님이 보시는 것이 이렇게 틀려서 주님이 보시는 그대로 교회를 심판하시니까 믿는 사람들이 교회를 평가한 그 평가는 다 헛되고 멸해지는 것을 보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하나님의 교회가 어떠한 것인가 하는 것을 간단하게 증거 할려고 합니다. 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교회란 말이나 성전이란 말이나 같은 말입니다. 에덴 동산이 그 다음에 성막으로 이름이 바꾸어졌고 성막이 성전으로 이름이 또 바꾸어졌고 또 성전이 교회로 이렇게 이름이 바꾸어졌습니다.


그런데 교회라는 것이 성전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사람 모인 것이 교회인 줄로 이렇게 여기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다시 교회와 성전이 같은 말이라는 것을 여기 나타내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교회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이 예배당은 이 예배당이지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모인 것이 교회요 또 이것이 막바로 성전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개인성전, 가정성전, 또 이 사회성전 또 세계성전 역사에 단일성전 에덴동산에서부터 예수님 재림 때까지의 성전은 크게 말하면 하나입니다. 교회는 하나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인 이 교회 안에는

이 시대의 교회도 있고, 저 시대의 교회도 있고, 동양 교회도 있고, 서양 교회도 있고,

이 나라 교회도 있고 저 나라 교회도 있고, 이 사회 교회 저 사회 교회인 부민교회 뭐 영락교회 또 서부교회, 이렇게 이 교회 저 교회 교회가 있고


또 교회들 안에는 이 믿는 가정 저 믿는 가정, 가정교회가 있고

또 가정 교회 안에는 이 사람의 신앙 저 사람의 신앙 개인교회가 있고


이렇게 개인교회, 가정교회 이 서부교회는 하나의 사회에 있는 교회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모여 가지고 된 교회, 사회교회 또 이것은 한국교회가 되겠습니다. 또 동양 교회 서양 교회가 되겠습니다.


또 2000년도에 있는 이 20세기에 있는 교회 또 근 6천년이 다 돼 가는 이 역사교회 그 역사 속에 들어 있는 교회. 이렇게 그 안에 들어 있는 교회는 여렷이지만은 그 교회의 본질과 본성이 하나입니다.


교회는 단일 교회입니다. 마치 한 몸 안에는 여러 지체가 있고 또 한 지체 안에는 여러 세포로 되어 있는 것과 같이 이렇게 교회는 단일 교회입니다.


이런데 이 교회가 저 교회를 헐고, 저 교회가 이 교회를 헐고 하는 것은 이 마귀 장난이지 전부 자기 머리를 자기가 깨어 상하게 하고 자기 손을 자기가 끊고 하는 이런 모순된 일입니다.


구주도 한 분이시요, 나라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시요 또 이치도 하나요, 또 교회도 하나인데, 그 안에 모두다 분자로 지체로 세포로 이렇게 돼 가지고 있는 것인데 인간들의 사욕이라는 옛사람에게 속한 멸망할 이것이 속에 들어 가지고 내 교회, 네 교회, 내 교파, 네 교파, 이래 가지고 멸망하는 그 일, 곧 귀신이 들리면 자기 머리를 자기가 뚜드려 상하게 하는 것처럼 이렇게 하는 이것은 다 악령의 장난이지 성령의 역사는 아닌 것입니다.


너희가 개인이든지 단체든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또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성령은 하나님을 가리켜서 성령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의논해 가지고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시기로 의논했을 때에 그 하나님을 가리켜서 성부라 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람되어 오셨을 때에 그 하나님을 가리켜서 성자라 십자가의 대속을 해 놓으시고 이 구원을 실질적으로 우리 개인 개인에게 이루도록 역사

하시는 그 하나님을 가리켜서 성령이라, 성령이나 성자나 성부나 한 하나님이십니다 한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이 일하시는 일이 다릅니다.


성부에 의해서 일하심이 있고 성자의 의해서 일하심 있고 성령의 의해서 일하심이 있는데 그 삼위라 이라는 것은 실은 그 직위를 가리켜서 말씀한 것이기 때문에 일을 직책이 다르다 그 말입니다.


한 집에서 한 남자가 있는데 남편 노릇할 때에는 남편이라 호주 노릇할 때에는 호주라 또 아버지 노릇할 때에는 아버지라 이렇게 한 사람이지마는 그 직책이 다를 때 이름이 다른 것처럼 이는 다 유한한 것을 가지고 비유하기 때문에 무한함이 맞지 아니하지만은 이와 비슷한 것입니다. 하나님도 한 분이시요, 본체도 하나요, 직위는 셋입니다.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알지 못하느뇨, 하나님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줄 알지 못하느뇨, 이랬는데 여기는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을 성령이라고 말했습니다. 성령이라는 것은 우리의 구원을 지금 책임지시고 계속 이 구원을 이루시느라고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와 같은 그런 사랑을 가지고 전적 희생으로 힘쓰시는 하나님을 가리켜서 성령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성령. 우리의 구원을 힘쓰시는 하나님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알지 못하느뇨 하는 말씀입니다.


17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의 전을 더럽히면" 이 말은 하나님의 성전을 깨트리면 하나님의 성전을 해치면 하나님의 성전을 상하게 하면 하는 말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더럽힌다 그렇게 말했는데 여기 더럽힌다는 것은 해친다 상하게 한다 하는 말입니다.


그 밑에 보면은 아라비아 숫자로 2자 써 놓고 혹은 멸하면 그렇게 그 밑에 해 놓은 것은 이 사본을 기록할 때에 어떨 때는 멸한다고 기록해 가지고 있고 어떤 사본에는 더럽힌다 이렇게 기록했기 때문에 이 번역본 사본에는 더럽힌다고 했기 때문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해치는 것은 더럽히는 것이 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깨트리는 것이 더럽게 하면 그대로 있어도 깨지는 것입니다. 더럽히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인데 우리 하나님의 성전 된 우리를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멸하신다 그 말입니다. 이것을 단단히 들읍시다.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한 것이 하나님의 성전이요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한 것이니 너희들도 거룩해야 된다 너희들이 거룩하지 안하고 더러워지면 성전을 멸하는 것이 되고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 되기 때문에 너희들은 하나님의 성전 된 우리들은 깨끗으로 보존이 되고 더럽히는 것으로 절단 납니다. 하나님이 성전 된 우리는 더럽지만 안 하면 천하 사람이 다 달라 들어도 멸하지 못합니다. 더럽히면 어떤 첩첩 그 인간의 옹호 속에 들어 있다 할지라도 소용없습니다. 멸해집니다.

또 베드로전서 2장 5절 베드로전서 2장 5절에 너희도 산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그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 가고 우리가 지금 하나님의 성전이 자꾸 되어져 가는 것이 지금 우리의 할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법적으로 하나님의 성전이 됐고 예수님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성전이 됐는데 실상은 우리의 마음의 부분이나 지체나 이런 것들이 아직까지 하나님이 그 안에 계실 만한 그런 깨끗한 요소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을 하나씩 둘씩 깨끗하게 해서 하나님의 성전이 점점 지어져 가도록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져 가도록 우리가 힘쓰고 있는 것이 지금인 것입니다.


내 손에도 하나님이 계시고, 내 눈에도 하나님이 계시고, 내 발에도 하나님이 계시고, 내 입술에도 하나님이 계셔서 그것을 하나님이 당신의 것으로 당신이 주관하시도록 이렇게 하는 것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 가느니라. 너희도 산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 가느니라 산 돌은 예수님의 그 인성을 가리켜서 산돌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이 그 전체에 하나님이 내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전체에 내주 하셔서 예수님의 인성 안에는 신성이 전체로 내주 하셔 가지고서 주관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산돌이라 이랬습니다. 예수님 산돌 같이 예수님같이 우리도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점점 거룩한 성전이 되어지고 하는 말입니다.


또 그 다음에 요한계시록11장 1절에 보면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성전 밖마당은 척량 하지 말아라 그는 이방인에게 내줬기 때문에 마흔 두 달 동안 짓밟힌다 마흔 두 달은 삼 년 반입니다.

삼 년 반을 이렇게 상징한 것은 구약 시대를 가리켜서 삼 년 반으로 상징했고 신약시대를 삼년 반으로 상징해서 예언서에는 이렇게 많이 상징해서 말씀한 일이 있습니다. 마흔 두달 동안 짓밟힌다. 삼년 반 동안 짓밟힌다. 신약 교회 시대에 짓밟힌다,


하나님의 교회로서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 경배하는 자 이 셋은 척량하라 이 셋은 하나님이 간섭을 하시지마는 이 셋 외에 다른 것은 하나님이 간섭하시지 안하고 안 믿는 사람들에게 짓밟히게 했다 안 믿는 사람들이 이용물로 주셨다 하는 말입니다.


성전 밖마당은 신약 교회 시대에 교회에 껍데기는 세상에게 짓밟히도록 하나님이 하셨다 그 말입니다. 신약 교회 시대에 껍데기교회, 외식교회, 인본교회 믿지마는 세상을 근본으로 삼는 세본(世本)교회, 인본(人本)교회 곧 외식(外式) 교회 이런 교회는 신약교회 시작할 때부터 없는 것이 아니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간섭이 없다 아무리 죄를 지어도 간섭하지 안하고 또 그가 어떻게 한대도 하나님이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이것은 신약교회 내내 세상에게 이용당하고, 세상에게 종 되고, 세상 앞장이가 되어 가지고서 하나님의 참된 교회를 더럽히고, 괴롭히기만 하고 있다 말씀한 것입니다. 짓밟는다 말은 세상에게 이용당한다 그 말입니다. 교회 중에는 세상에게 이용당하는 껍데기교회, 인본교회, 세본교회, 외식교회 이런 교회가 있고 세상에게 이용당하지 않는 알맹이 교회가 있으니 그 알맹이 교회는 성전 제단 그 안에 경배하는 자 이 셋으로 분류를 했습니다.


그러면 이 성전과 밖마당에 그 대속의 양적으로 비교하면은 어찌되느냐 예를 들어서 우리 예배당이 구관 이것을 이 벽을 성전 울타리라 이렇게 말하면 모든 사람들은 이것을 가리켜서 성전이라 그렇게 압니다. 울타리를 쭉 해 놓고 전부 성전 울타리가 있으니까 그 울타리 안에 것은 다 성전이라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 울타리 안에 들어가면 안에 성전이 있는데 그 성전은 울타리 안에 몇 분지 일이나 되느냐 하면은 7분지 1이나 8분지 1정도 된 것이 성전이고 그 나머지를 가리켜서 바깥마당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성전 안에는 바깥마당이 있고 바깥마당 안에 이제 성전이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저기는 다 예수교라, 전도관도 예수교라 또 뭐 이런 교도 저런 교도 다 예수교라, 장로교도, 감리교도, 성결교도, 예수교라 이렇게 다 예수 교회라 이렇게 말하지마는 교회 안에는 성전 밖마당과 그 속에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자들과 이렇게 차이가 있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 윤곽은 한 칠 분지 일이나 팔 분지 일 정도 되지마는 그 안에 경배하는 자, 제단 이것은 더 작습니다.



이러니까 신약 교회 껍데기 교회가 참 교회의 칠 배나 팔 배나 된다 하는 것을 계시록 11장에 말씀해 놨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교회 중에 알맹이 교회는 하나님께서 낱낱히 척량한다, 그 말은 이것을 간섭한다 이것은 길다, 짧다, 넓다, 크다, 작다, 깨끗하지 못하다, 이것은 모가 잘못 졌다, 이렇게 그 척량이라고 표시한 것은 하나님이 당신의 법칙을 가지고서 늘 심사하고 간섭한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의 법칙에 심판 법에 심판 받지 아니하도록 하나님의 법칙에 맞나 안 맞나 이것을 세밀히 주시하시고 간섭하시지마는 참 교회가 아닌 외식교회, 인본교회 세본교회 이것은 하나님이 아무리 해도 간섭하지 아니하는 것은 안 믿는 사람들에게 교회라는 이름은 가지고 있지만은 안 믿는 사람들에게 내줘 버렸다 그래서 마흔 두 달 동안 짓밟힘을 당한다.


예수님의 승천 이후로 재림 때까지 이 교회들은 세상에게 짓밟힌다 그 말은 세상을 능가하지 못하고 세상에게 이용당한다, 참 교회는 모든 걸 다 빼앗겨도 자기의 신앙만큼은 빼앗기지 안 하는데 이것은 오히려 세상에게 피동 되어 가지고 세상에게 이용되는 교회가 된다 이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신약교회 시대는 참 교회의 그 양보다 외식 교회의 분량이 많다 칠 배나 팔 배나 된다. 외식 교회는 무엇을 봐서 아느냐? 하나님의 간섭이 없다. 또 하나는 세상을 따라서 피동 된다. 세상에게 짓밟힘을 당한다. 세상이 밀면 밀리고 당기면 당기고 세상에게 이용된다.


그러나 참 교회는 죽었으면 죽었지 세상에게 이용되지 않는다, 민다고 밀리고 당긴다고 당기고 올린다고 들어 올려가고 밟는다고 밟히고 그렇지 않다 이것을 말씀합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가운데에도 택함을 받지 아니해서 잘 믿는 척하고 목사 노릇까지 하다가도 마지막에 지옥 갈 자가 있습니다. 택함을 받지 안한 자는 천국 못 갑니다. 그런 사람들이 교회 있고 또 택함을 입었지마는 아직까지 하나님이 구원할 시기가 되지 안 했는데 주위 환경에 따라서 메어다 놔서 환경 때문에 억지로 끌려 와 가지고서 교회에 다니기는 다니지 만은 아직까지 하나님이 착수하시지 안한 그런 사람이 있고


또 하나님이 착수하신 사람이 있는데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은 아직까지 그 사람에게 대해서 하나님이 간섭이 없으면 택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부르시지 안 했고 인간으로서 끌어다 놨지 부르시지 안 해서 아직 까지 하나님이 그 사람의 구원을 착수하지 아니한 사람이라 봐야 되겠고 그 사람에게 조금만 잘못해도 무슨 하나님이 징계가 있어서 이런 참 하나님으로 인하여 유익은 보지 못하고 조금만 잘못해도 탈이 털털 나는 그 사람은 하나님이 착수하신 하나님이 우주보다 귀하게 여기는 귀한 사람입니다.


이래서 히브리 12장에는 너희들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없으면 아직 까지도 사사로운 아들이 다 택한 자라도 아직까지 지금 착수하지 안 했는데 너 혼자 하는 것이다 징계가 없으면 사사로운 아들이요 징계가 있는 것은 참 아들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은 하나님의 성전 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멸하시는 것과 또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우리도 거룩해야 된다는 이 세 가지를 우리가 이 성경을 보아서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또 하나는 산돌 처럼 산돌 처럼 우리도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 가고 있습니다. 산돌은 예수님을 가리켜서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의 인성을 예수님의 신성이 전적 주관하심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이 우리의 전체를 전적 주관하시는 이 일을 점점 이루어 가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들입니다.


이것을 또 기억해야 되겠고 또 하나는 신약 교회는 껍데기 교회가 칠,팔배나 크고 알맹이 교회는 그 교회의 칠팔분지 일밖에는 안 된다. 이것을 기억해야 되겠고 알맹이 교회는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이 세 가지로 분류한 이것이 알맹이 교회인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밀히 간섭한다 척량 하신다 세밀히 간섭하신다


그러나 그 외에 성전 밖마당으로 되어 있는 택한 자라도 아직까지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착수하지 안한 사람 또 택함을 받지 안한 사람을 악령이 보내서 온 사람 이것은 다 성전의 밖마당 택한 사람을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착수했지마는 아직까지 회개하지 안 하는 이 사람 이것이 합해서 성전 밖마당인데 하나님이 택한 자는 구원하시기로 시작한 사람은 그 사람이 회개를 안 해도 징계가 있습니다.


뭐 잘 못 하면 징계가 있습니다. 자기가 아! 이것이야말로 하나님 없어도 이것이야 튼튼하다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 없어도 된다 튼튼하다 하고서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간섭 안 해도 된다 하고 보니까 툭 터져 버립니다.


또 자기는 하나님만 생각하고 회개와 조심만 했는데 무엇이 뜻밖에 될 수 있는 그런 희망성에 싹수가 터 나옵니다. 그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간섭이 없는 교인과 하나님의 간섭이 있는 교인이 있으니 그 간섭이 어떤 자에게는 심하면 죽어 버릴 테니까 그렇지 않겠소 아편 맞아서 아편 병든 그 환자를 당장에 아편을 딱 끊어 버리면 죽습니다.


이러니까 아편 주사를 하루 세대 맞던 것을 하루 두 대 그 다음에 하루 한대 그 다음에 이틀만에 한대 그 다음에는 사흘만에 한대, 이제 며칠만에 한 달에 한대 그 다음에는 두 달인대 이러다가 딱 끊는 것처럼 이렇게 하나님의 간섭이 심하면 말라죽을 터이니까 전부 죄만 먹고사는 그걸 딱 죄 짓는다고 징계를 딱 해 버리면 당장에 죽을 것 아닙니까


이러니까 하나님의 간섭이 있되 그 사람에게 깨닫게 해 줘 가지고서 이 모만 간섭하고 저 모는 간섭하지 안하고 또 깨달으면 하나님께서 깨달음의 대가(代價)로서 또 은혜를 주시고 또 저 면을 착수해 가지고서 간섭하시고 이래 가지고 마지막에는 그 사람의 언행심사 전체를 하나님이 간섭해서 털끝마치라도 잘못됨이 있으면 당장 하나님의 징계가 옵니다.


이러니까 꼼짝 못하는 것이라 이것 피할래도 피할 수 없지, 도망 갈래야 도망가지도 못하지, 숨을래야 숨지도 못하지, 이러니까 하나님이 전적 간섭 하에서 이는 뭐 죄는 지을 수 없고 하나님의 뜻대로, 죽어도 의에 길을 걸어가지 안 할 수 없는 이런 사람으로 이제 간섭받게 되어지는 이것이 차차 성전에 성전 중에도 귀한 부분이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오늘 오전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멸하신다는 것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우리도 거룩해야 된다는 것 우리 개인도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내가 내 지체를 더럽히면 하나님은 거기 대해서 징계하셔서 손해를 보입니다. 우리의 전부는 거룩해져야 됩니다. 우리 가정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가정은 하나님의 영감과 진리로 깨끗해져야 됩니다. 깨끗해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감과 진리와 틀리는 것이 없는 것이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감과 진리와 삐뚤어진 그것이 더러운 것입니다. 때가 묻어 더러운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진리와 영감대로 된 우리들인데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 된 우리들인데, 진리와 성령으로 살아난 인격들인데 진리와 성령으로 살아난 가정들인데, 우리 가정을 이렇게 진리와 영감으로 깨끗 하려고 애를 쓰면 모든 것은 하나님이 다 책임지십니다.


그러나 우리 가정이 돈만 보고 세상 이런 저런 형편과 사정과 그런 자기 욕심만 달성하기 위해서 그것만 보고 자기 가정을 진리로 깨끗하게 하고 성신의 감화로 깨끗하게 하려는 여기에 주력하지 안 하면 아무리 애써도 저만 그저 참 헛된 수고만 하지 효력은 하나도 안 납니다.


우리 00교회도 이것이 한 사회교회인데 00교회가 아무리 전도를 열심히 하고 교인이 많이 모이고 아무리 재산이 부요해 져도 서부 교회가 깨끗해지지 안 하면 헛일입니다. 깨끗해지지 안 하면 언제 멸할지 모릅니다. 한 구역도 그렇습니다. 그 구역도 물론 교인수가 붙는 것 좋지요. 또 재산이 많아지는 것 좋지요 이렇지마는 깨끗을 잊어 버렸으면 그 재산이 들어서 자기에게 화근이 됩니다. 많은 사람의 모인 것이 들어서 도리어 화근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개인도 깨끗해야 되고 시대 교회도 깨끗해야 되기 때문에 한국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기도합니다. 주여 한국교회를 주님이 간섭하시는 이 간섭을 받는 한국교회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 있는 깨끗한 한국 교회가 되게 하시고 안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 앞에 긍휼을 입을 수 있는 깨끗한 나라와 국민이 되어지도록 하시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이북을 이남에 붙일지언정 이남을 이북에 붙이지 말아 주시옵소서.


이북에는 인간 구원 운동이 없는데 이남에는 나이 많은 교인들은 이렇게 시시하지마는 어린 아이 그것들이 얼마나 깨끗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진심으로 배우고 믿고 따라 갈려고 하지 않습니까 이 구원 운동이 어디 이북에 있습니까? 그리 되면 이 운동이 다 없어질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여 이남에 있는 교회를 깨끗하게 해 주시고 불신자들도 주의 긍휼을 입을 수 있는 사람들로 그렇게 변화시켜 주시고 하나님께서 이 민족과 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하는 것을 하나님의 사람들이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우리 개인도 하나님의 성전이 깨끗해야 됩니다. 더럽히면 하나님이 멸하신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가정교회도 깨끗하면 하나님이 멸하시는 반대로 건설하십니다. 더럽히면 멸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이 거룩하니 너희들도 거룩할지어다. 거룩한 개인 거룩한 가정 어떤 면을 보면은 저기 희망이 없다 싶어도 또 어떤 면을 보면은 그 거룩을 이룰라고 진리대로 영감대로 할라고 애를 쓰는 것 보면 또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성전을 더럽히면 멸하신다는 것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거룩해야 성공이 있다는 것, 이 세 가지를 기억하고 우리는 표준이 어디 있는고 산돌 같이 예수님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 가느니라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 가느니라


예수님의 인성을 신성이 전적 주관하셔서 신인 양성 일위가 된 것처럼 우리의 인간이라는 인간과 하나님이라는 주님과 이 둘이 일위는 안되지마는 똘돌 뭉쳐서 주님이 동할 때에 내가 동하고 정할 때에 내가 정하고 내가 동하는 것이 주님이 동하는 것이고 내가 정하는 것이 주님이 정하는 것이라. 주님과 동하고 정하는 것이 하나 되는 이 움직임을 가지도록 지금 이루어 나가는 것이 신령한 집을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신약교회의 그 성전 신약교회는 신약성전은 신약교회들은 알맹이 교회와 껍데기 교회가 있다 알맹이 교회는 그 양이 적고 껍데기 교회는 그 양이 많고 큰데 알맹이 교회는 하나님의 간섭이 있고 척량이 있고, 하나님의 간섭이 있고 껍데기 교회는 하나님의 간섭이 없어서 세상에 짓밟히게 하셨다


세상에 앞잡이가 되어 가지고서 세상 이용을 세상 시키는 대로 세상 하자 하는 대로 세상대로 따라 움직이고 하나님을 따라 움직이지 안하고 하늘나라 따라 움직이지 안하고 그 사람 건설은 세상 건설하고 하늘 건설은 아니하고 그 사람의 피동은 하나님과 진리에 피동 되지 안하고 이 사회나 인간이나 그런 데에 피동 되는 그것을 가리켜서 짓밟힌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것만 이번 시간에 우리가 이제 성경에서 상고해서 기억하고 다음 시간에는 성전 안에 있는 내부를 공부하겠습니다.


성전 울타리 안에 성전 밖마당이 들었고 밖마당 안에 성전이 있고 성전 안에 지성소가 있고 그 안에 법궤도 있고 천사도 있고 속죄소도 있고 금향로도 있고 떡상도 있고 등대도 있고 또 그 앞에 세수통도 있고 또 거기 놋으로 만든 제단도 있고 이런데 거기 대해서 다음 시간에 공부를 하겠습니다.


성전 공부, 성막 공부 이것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은 내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데 하나님의 교회가 되는 데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교훈으로 해 놨기 때문에 좀 어두운 사람들이 기억하기 어렵고 구별하기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전을 우리에게 출애굽기 에 똑똑히 가르쳐 가지고서 신약 교회를 알도록 했습니다.


그러면 내라는 성전 나는 어떠한 인물이 돼야 되느냐 하는 그것을 이제 간단하게 공부하고 우리 가정은 어떻게 된 가정이 돼야 되겠느냐 우리 이 서부교회는 어떠한 교회가 돼야 되겠느냐 하는 거기 대해서 오후에 공부를 하겠습니다.


오전에는 이제 세 가지 기억합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인 것,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멸하십니다. 성전은 거룩하니 하나님의 교회는 신인양성일위 같이 신성(神性) 인성(人性) 이 신인양성이 결합해 가지고서 하나로 움직이는 이 일을 지금 우리가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신약 알맹이 교회는 하나님의 간섭이 세밀하고 껍데기 교회는 세상의 이용물 세상 앞잡이 되어져 있는 것이니까 그래도 잘 사는 것보고 알맹이 교회가 미혹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기 가르친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깨닫고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성경 세 군데에서 상고한 것을 생각하면서 단정을 지웁시다. 확정을 지워야 합니다.



<성막의 구조>


혹 노트가 있는 사람은 그렇게 그려 볼 수 있습니다. 넓이는 좀 좁고 길이는 넓이의 세 배쯤 되도록 네모(직사각형)로 그림을 하나 그려보십시오. 또 그 안에 또 그런 것을 그와 같이 그리는 데 겉에 그린 것보다 칠 팔 분지 일쯤 되도록 작게 하나 그려보십시오.

좀 뒤로 붙여서 안에 그린 것은 삼분지 일은 위로 가도록 하고 삼분지 이가 밑으로 오도록 그것을 가운데를 잘라 보십시오.


그리고 위에 작은 칸에다가 조그만 하게 동그라미를 치든지 네모 입구(口)자를 치든지 조그마한 것 하나 만들어 보십시오. 위에 조그만 칸에다가, 또 밑에 큰 칸에 칸과 칸 사이 앞에 또 동그라미를 하나 쳐보십시오. 또 거기서 오른 편으로 동그라미를 하나 치고 또 왼 편에 동그라미 하나 치십시오. 또 그 칸 밖에 입구 자 같은 두 개밖에 바로 그 앞에 동그라미 하나 쳐보십시오. 또 그 밑에 동그라미 하나 쳐보십시오. 그러면 이제 성전의 그림이 되겠습니다.


제일 처음에 커다란 입 구(口)자 쓴 것이 성전 울타리 안에 든 것입니다. 가에 입구(口)자 쓴 그게 성전 울타리가 되겠습니다. 울타리 안에 커다란 것이 있고 울타리 안에 그건 크고 또 그 안에 그와 같은 기다랗게 네모잡이 하나 있지요.

그것이 성전입니다.

그밖에 기다란 그것은 성전 밖마당이라 하는 것이요. 이방인의 마당이라 그렇게도 말합니다.

그 안에 들어가서 작은 칸, 큰 칸이 있는데 앞에는 큰 칸이고 뒤에는 작은 칸인데 작은 칸을 가리켜서 지성소라 말씀했고 앞에 큰 칸을 가리켜서 성소라. 또 그 뒤에 작은 칸을 가리켜서 지성소라. 또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 둘로 나눈 그 경계선 그것을 가리켜서 휘장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 휘장으로 경계가 되어 가지고 있습니다.


또 지성소라고 하는 그 뒤에 작은 칸에 하나 동그라미 쳐놓은 그것을 법궤(증거궤)라 합니다. 법궤를 둔 자리입니다. 또 법궤 위에는 양쪽에 그룹 천사를 만들어 가지고서 법궤 위에 놨습니다. 천사를 만들어놓은 그 그룹 위에가 속죄소입니다.

속죄소가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 또 그 앞에 작은 칸과 큰 칸 사이에 경계 된 것은 작은 칸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큰 칸에는 제사장들이 있는 곳입니다. 큰 칸과 작은 칸 사이에 그것이 휘장으로 되어 있는데 그 휘장이 하나님과 인간과의 가로막혀 있는 죄를 상징해서 해놓은 것입니다.


그 앞에 휘장 앞에 바로 있는 금향로(분향단)라 하는 금으로 만든 향불 피우는 화로가 있습니다.

또 거기 조금 나와 가지고 오른편으로 진설병을 두는 떡상이 있습니다.

또 그보다 조금 나와서 왼편으로 일곱등대가 있습니다. 일곱 금으로 가지고서 일곱촛대를 만들어서 등불을 켜는 일곱 등대가 있고, 이제 성소 안에는 그것뿐입니다.


성소 바로 입구에 거기 세수통(물두멍)이 있습니다. 물을 담아 놓은 세수통이 있습니다.

또 그 앞에 놋쇠로 만든 제단이 있습니다.


<지성소 구조 보충설명>


1, 지성소에는 법궤와 속죄소와 그룹이 있다.

구조는 법궤 위에 속죄소가 있고 속죄소 위에 그룹이 있다.


1) 법궤(증거궤)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출25:21)]


① 궤의 크기는 장이 2.5규빗(약114센티)이며, 광과 고가 1.5규빗(약68센티)이다.

② 법궤는 조각목으로 모양을 만들고 안팎 모두 정금으로 쌌다.

③ 윗 가로 돌아가며 금테가 둘러져 있고 금고리 넷이 있다.

④ 법궤를 나르는 채는 조각목을 금으로 싸서 만들었다.

⑤ 법궤위에 속죄소가 있다.

⑥ 속죄소 위에 그룹이 있는데 그룹은 금을 쳐서 만든 것이다.

⑦ 두 그룹의 날개는 속죄소를 덮도록 하였다.

법궤는 두 그룹만 정금이고 나머지는 조각목을 금으로 싼 궤다.


2) 속죄소

속죄소는 정금으로 만들어졌으며

법궤의 크기에 맞추어 만들어진 법궤의 덮게이었다(17,21절).

이 속죄소 위에 대제사장이 피를 뿌렸다.

속죄소의 크기는 장이 2.5규빗(114cm)이며, 광이 1.5규빗(약68cm)이다.


3) 법궤 위 그룹

법궤 위에는 속죄소가 있고 속죄소위에는 두 그룹이 서 있다.

속죄소 좌우에 두 그룹이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고 있으며 속죄소를 향한 상태로 얼굴을 서로 마주 대하고 있다.

① 날개를 높이 펴 있는 모습이다.

② 속죄소를 덮고 있다.

③ 속죄소를 향하고 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성막을 지을 때에 이렇게 지어라 도면을 주셨고 또 이대로 성막을 지었을 때에 하나님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성전이 이렇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거기다가 축복을 해서 이스라엘이 그때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때에 이 성막 지은 그 도면대로 그 후에 성전을 지을 때도 그렇게 성전을 지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주후 70년에 로마 병정들에게 다 훼파를 당하고 난 그 후에는 다시는 성전을 짓지를 못하고 성전 지은 일이 없었습니다.


그것으로서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전이 다 절단 나버렸고 절단 난 그때부터 신약교회가 시작하게 됐는데 그때부터 성전을 이제는 따로 그렇게 구별되게 짓지 아니 하고 신약 교회를 가리켜서 성전이라 이렇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 마태복음24:1-2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마태복음 24장 1절 이하에 성전에 대한 말씀을 하시고 이어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땅위에 있는 교회가 어찌 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 있는 이 말씀은 종말론이라 그렇게 할 수 있는 성경입니다.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실 때에 세상 끝 날에 될 일을 예수님이 말씀해 주신 것이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 이하에는 우리를 가리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자는 하나님이 멸하신다."

이 말씀과, 마태복음 24장에 이스라엘 종말에 하나님의 성전의 그 외모들을 보고 모든 사람들은 다 크게 여겼고 또 성전으로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아름답게 지어놓은 훌륭한 성전이 있으니까 이 성전 안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능히 보호하시리라 이렇게들 안심하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보시는 것이 정반대였습니다. "너희들 보기에는 이 성전 외모를 보고 깨끗하다고 의지도 하고 바라보기도 하지만 실은 이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첩 놓이지 않고 다 무너뜨리움을 받을 만치 벌써 성전은 변질이 됐다" 하는 것을 말씀하시고 그 후 한 사십 년 지낸 뒤에 이 성전은 완전히 말씀하신 대로 훼파 됐습니다.


이 말씀들을 연결해 보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도 성전관이, 성전관이라면 교회관인데 성전을 보는 것이 껍데기만 보고 알맹이를 보지 아니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 멸망되지 않느냐 하는 것이 우리에게 염려가 되고 두려움이 됩니다.


그때도 성전의 외모를 보고 아름답게만 여겼지 성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역사들을 완전히 동결돼 있었으나 그 면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지 못하는 고로 영육이 다 실패를 당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도 교회관이라 하는 것은 볼 관(觀)자 교회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교회관이, 다시 말하면 성전관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 관이, 이것이 잘못되면 실패됩니다. 개인 교회나 가정 교회나 사회 교회나 이 세계 교회가 그 양이 많고 적은 것만 다르지 그 요소나 구비는 꼭 같은 것입니다.


그때에 외모만 사람들이 치중한 것처럼 오늘도 우리가 외모만 치중하기 쉽습니다. 물론 외모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내부가 충실치 못하면 그 외부도 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내부가 충실한 이후에 그 외모라 하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인 줄 압니다.


'그 교파가 심히 양이 많다 그 교파의 교회수가 많다.' 이것도 외모가 되겠습니다.

또 '그 교회는 교인 숫자가 많다' 이것도 외모가 되겠습니다. '그 교회는 아주 예배당이 잘 지어져 훌륭하다.' 이것도 외모가 되겠습니다. '그 교파나 교회는 인물들이 다 유력한 그 유지의 인물들이 많이 있다' 이것도 외모가 되겠습니다. 또 '그 교파 그 교회는 모든 재정들이 넉넉하다' 하는 이것도 외모가 되겠습니다. 또 '이런 사업 저런 사업, 무슨 문화사업, 교육사업, 자선 사업, 계몽사업, 무슨 온갖 그 사업이 많다.' 하는 그것도 외모가 되겠습니다. '그 교회와 그 교파가 이 세상에서 높이 평가받고 인정받고 또 대단히 권위가 있다 유명하다' 하는 그것도 외모가 되겠습니다.


이런 외모가 다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하나님의 성전은, 신약 성경에서는 이치를 가지고 우리에게 말씀을 했기 때문에 그 이치는 종합해서 깨닫기가 그렇게 쉽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신령한 이 진리로 된 이 하나님의 성전을 어렸을 때에 한 모형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에 와서는 말씀으로 가르쳐 놓은 이 도리를 보고 하나님의 성전은 어떠한 것인가 하는 것이 깨닫는 것이 그것이 우리 시대에 있어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깨닫지 못할 때에는 구약을 찾아가 가지고서 구약에 말씀하신 것과 또 모형으로 해 놓으신 그것을 보고 우리가 깨닫게도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에서 가르치는 이 도리만으로 깨닫지 못할 때에는 구약에서 어렸을 때에 가르친 그 도리를 찾아가서 깨달을 수가 있고 또 구약도리를 어렸을 때에만 말씀한 그 몽학 선생과 같기 때문에 그것으로 알지 못하는 것은 신약 성경을 가지고서 거기 있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구약은 신약으로 깨닫게 되고 신약은 구약으로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이 특별 계시인 성경과 영감은 이 자연계시인 하나님의 창조와 모든 섭리와 인간의 마음의 구조 이런 모든 자연들을 가지고서 깨달을 수가 있다 그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수차(數次) 성전에 대해서 또 듣고 배웠습니다. 오늘은 간추려서 하나님의 성전에는 특별히 네 가지 구별과 열 가지 요소적 작용이 있는 것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네 가지 구별이라 말은 네 가지 거룩이라 말인데 우리 개인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셨는데 하나님의 성전 된 우리들은 네 가지 거룩이 있어야 하고 열 가지 요소의 작용이 있어야 합니다.


또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가정이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면 그 가정에는 반드시 네 가지 거룩이 있어야 하고 열 가지 요소의 작용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교회가 되어 있는 우리 00교회도 사회 교회 중에 하나요 전체 교회의 속한 한 분자라 할 수 있는데 우리 서부교회도 역연 개인 교회보다 양이 많은 것뿐이지 딴 것이 아니니까 00교회도 네 가지 거룩이 있고 열 가지 요소가 작용이 있어야 됩니다.


조금 전에 외모를 여러 가지로 말을 했습니다. 여러 가지로 말을 한 그 외모가 아무리 좋고 휼륭하다 할지라도 네 가지 거룩과 열 가지 이 작용이 없으면 그 개인 성전은, 그 가정 성전은, 사회 성전은 교회 성전은, 교파 성전은 다 변질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것을 다 깨뜨리고 무너뜨립니다.


세계가 울렁거려서 모든 그 분요가 일어나는데 그 분주한 그것이 부딪히는 종말에 가서 당할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교회들입니다. 뭐 공산주의가 와 봤자 불택자들은 그들이 얼마든지 세뇌할 수도 있고 또 변질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공산주의자들이 불신자에 대해서는 저희들과 별로 이질적인 것이라고 생각지 않기 때문에 대적시 하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택자들은 그 속에 중생된 하나님의 영이 계시기 때문에 그들이 많은 경험 속에서 아무리 변질을 시킬라고 해도 아무리 머리를 씻어서 바꿀라고 해도 안 된다는 것을 그들이 경험 가운데서 단정짓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종말은 그 모든 박해가 믿는 사람들에게 와서 부딪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모든 이방 운동들을 교회는 어떻게 보라고 했느냐 하면 교회가 하나님 앞에 매 맞을 맷정을 쓰니까 하나님께서 교회를 깨뜨릴려고 이방들을 몸둥이로 채찍으로 삼아서 그것을 보이면서 매를 맞지 아니하고 상하지 아니하고 돌이키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신다." 그 말은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있는 기독자, 구속받은 자기를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멸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에 정반대는 구속받은 하나님의 성전인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성전을 깨끗케 하면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그를 보호하시기 때문에 악한 자가 만지지도 가까이 오지도 못한다고 또 성경에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성전이 더러워지고 깨끗해지는 데에서 성전이 멸해지고 또 그대로 존속되어지는 그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기독자들은 이 열네 가지가 작용하면 깨끗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현재에 다 되지 못했을지라도 차차 되어져 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책임지시고 전능한 능력이 보호하실 것이오. 이 열네 가지의 작용이 없으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는 이방이 멸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것을 멸하시기 때문에 이방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멸하는 몽둥이로 이용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공부했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전인 이 자체들이 더러워졌다가 돌이켜서 하나님의 깨끗한 성전이 되어졌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적을 단 시일에 물리치고 세계는 하나님의 성전인 하나님의 백성들을 경외했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거울이 되는 것을 집회 때에 공부를 했습니다.

오늘도 열네 가지, 네 가지 거룩을 가져야 됩니다.



1, 이방과 성전 : 불신자와 신자의 구별

2, 성전 밖마당 : 신자와 신자의 구별

3, 성소 : 하나님의 참 일꾼과 거짓 일꾼의 구별

4, 지성소(법궤와 속죄소) : 진리와 성령의 구별


1, 이방과 성전 : 불신자와 신자의 구별


하나님의 이 성전에 대해서 성전이라 하는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구별한, 구별된 집이라 그 말입니다. 전이라 말은 집 전(殿)자인데 거룩 성(聖)자는 구별 구별한 집이다. 구별된 집이라 하는 것입니다.


성전을 보면 제일 처음에는 모든 이 이방의 이 가옥들이 있고 집들이 있고 사회가 있고 모든 이런 조직들이 있는데 거기에 이 커다란 울타리를 해 가지고서 그 밖마당까지 그 안에 다 들었습니다. 이것은 성전이라 이랬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과 교회를 구별해야 됩니다. 세상과 교회를 일차적으로 구별해야 됩니다. 세상과 교회를 일차적으로 구별을 하고 그 다음에는 이방의 마당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모든 안 믿는 사람들을 접촉해 가지고 사는데 안 믿는 사람과 믿는 사람 자기와의 또 구별을 해야 됩니다. 제일 처음에는 세상과 교회를 구별하는 그것이 세상 속에 성전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안 믿는 사람보다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깨끗해야 됩니다.

안 믿는 사람들보다 우리는 깨끗해야 된다는 것을 원하고 힘쓰고 또 깨끗해야 합니다. 이것이 첫째 거룩입니다.


깨끗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이 바르고 참되다는 말입니다. 변질되지 아니하고 감염되지 아니하고 본질 본성 그대로 있는 것이 깨끗한 것입니다. 우리는 안 믿는 사람보다 깨끗해야 될 사람들인데 우리가 깨끗해지기를 원해야 하고 또 깨끗 하려고 노력을 해야하고 또 실지로 그 결과가 깨끗해져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전 된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거룩 중에 제일 외부적 거룩입니다. 이것이 있어야 됩니다.


2, 성전 밖마당 : 신자와 신자의 구별


교회라는 이 교회 안에 그 안에 이방인의 마당이 있습니다. 이 교회 안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저는 이방인이다 저는 믿는 신자다' 이래 교회 안에서 예수 믿는 사람 중에 우리는 구별하는 구별성이 있어야 합니다. '저 사람은 교회 나오지만 아직까지는 믿음이 전혀 없다. 믿음이 어리다 저 사람은 택한 사람인지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만 교회 나오기는 나오지만 아직도 택한 사람이라든지 믿는 사람이라든지 그런 아무런 표적은 보이지 않는다.' 세상과 교회를 구별해야 되고 교회 안에서 믿는 사람과 믿는 사람을 구별해야 됩니다.


믿는 사람과 믿는 사람을 구별하는 것이 그것이 이방인의 마당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성전이라 합니다.


신자가 같은 신자가 아니고 좀더 깨끗하고, 좀더 덜 더럽고 이렇게 두 가지 종류의 신자가 있는데 언제나 자기는 모든 사람보다 자기가 깨끗해야 될 의무와 책임이 있는 줄 알고 주님의 구속을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의 더러운 것을, 부족한 것을 보고 위로를 받을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먼저 내가 깨끗해야 될 것을 깨닫고 다른 사람보다 더 깨끗해지기를 원하고 깨끗해지도록 노력을 하고, 또 결과적으로 깨끗해져야 합니다. 이 작용이 있어야 됩니다. 이 거룩이 있어야 됩니다.


'뭐 사람은 같은 사람인데 제가 그렇게 하니 내가 그렇게 할 게 뭐이냐, 아무 것이도 그래 믿는데 내가 별나게 그렇게 뭐 있겠느냐?' 다른 사람이야 어쨌든지 내가 먼저 다른 사람보다 깨끗해야 될 그 의무와 책임을 가진 줄 알고 믿는 사람가운데 내가 먼저 깨끗해져야 되겠다. 이것을 원하고 그 사람보고 더러워질 게 아니라 내가 먼저 깨끗하기를 노력을 해야 됩니다. 또 실상 깨끗해져야 합니다. 이것이 둘째의 거룩입니다.


3, 성소 : 하나님의 참 일꾼과 거짓 일꾼의 구별


그 다음에 구별할 것은 성소를 구별해야 됩니다. 성소에는 제사장들이 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믿는 사람과 믿는 사람을 구별해야 되고 그 다음에 그 안에 들어가서 구별할 것은 신앙 지도자와 지도자를 구별해야 됩니다. 신앙 지도자를 구별해야 합니다.


이는 참 제사장인지, 이것은 제사장이 아닌 것인지 제사장과 제사장 아닌 것을 구별해야 됩니다. 물론 택함을 받아서 믿는 사람이지만 누구나 다 제사장 되는 것이 아니고 신앙 지도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 지도자는 나기 전부터 벌써 하나님께서 구별해서 지은 그것이 나와 가지고서 신앙 지도자가 된다고 성경에 말씀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인지 지도자가 아닌지 그것을 구별하는 것이 이제 인간으로서는 최고의 구별을 다 했습니다.


그 안에 들어가서는 무엇을 구별합니까? 성소. 성소에는 누구든지 출입하는 것이 아니고 제사장이라야 출입합니다. 제사장 구별입니다. 성소에서는 제사장 구별. 그 안에서는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종을 우리는 구별해야 합니다.

이 사람이 내 신앙 지도를 신앙 교훈을 하는데 이게 참 양의 목자인지 양의 껍질을 입고 속에는 양을 삼키는 이리인지 껍데기는 목자지만 속에는 도적이요 강도인지 신앙지도에 대해서 구별을 해야 됩니다. 이러면 인간 구별은 다 했습니다. 여기서 인간 구별은 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종들 가운데에도 '아, 누구의 가르치는 길이 더 바르고 옳다. 어디 은혜가 더 있다.' 하나님의 종들과 종들을 구별해서 더 바로 지도하는 것을 받기를 원하고 더 바른 지도를 받도록 노력을 하고 바른 지도를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한자리에서 예배를 봐도 '아, 여기서 나는 누구보다도 은혜를 더 입어 은혜 생활을 해야 될 사람이다. 주님이 내게 대해서 큰 구속을 주셨으니 다른 사람은 자면서 은혜 받는데 나도 자며 예배보면 되지 않느냐 내가 하나님의 도리를 배우는 데에 누구보다도 앞서야 되겠다.' 하나님의 도리를 자기가 배워 깨닫는 데에 자기가 먼저 앞서야 할 이 의무와 책임이 있는 줄 알고 앞서기를 원하고 앞서기를 노력하고 앞서서 다른 사람보다 자기가 먼저 깨닫고 먼저 은혜를 받는 이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이러면 한사람이 되면 그 다음에 두 사람되고 세 사람되고 차차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되고 은혜를 입게 됩니다 이것이 셋째의 거룩입니다.


4,지성소(법궤와 속죄소) : 진리와 성령의 구별


그 다음에는 이제 지성소입니다. 성소를 지나서 지성소입니다. 지성소, 지극히 구별할 곳. 지극히 구별할 것은 무엇인고 하니 법궤와 또 그룹과 속죄소에 계시는 하나님, 이제 진리와 하나님. 진리와 하나님을 구별해야 됩니다. 진리와 하나님을 구별하는 것이 지성소 안에 구별입니다.


지성소에서는 무엇을 구별하는가? 법궤와 천사 옹호 위에 예수님의 세 가지 속죄로 된 속죄소 하나님과의 모든 삐뚤어진 것이 다 해결이 되고 하나님과 결합이 된 그것이 속죄소입니다. 거기 법궤는 진리를 상징했고 속죄소는 하나님을 상징했습니다.


그 진리와 하나님 영감과 진리를 구별할 것, 성경 말씀과 영감을 구별해야 됩니다. 이것이 최고의 구별입니다. 지성소의 구별입니다. 이 이상은 구별이 없습니다.

여기서 최상의 구별을 했습니다.


지성소가 최고의 높은 제일 높은 삼단입니다. 여기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자기와의 사귐 하나님과 자기와의 맺는 언약 하나님을 자기 안에 모시는 그 위치 여기에는 아무리 위대한 성도의 사귐이라도 이 안에는 들어오면 안됩니다. 이 안에는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자기의 제일 중심인 그 보호자, 자기의 제일 높은 그 위치의 보호자 여기는 하나님만이 모셔야 합니다. 이는 아무리 성도와 성도끼리 어떠한 그 성경대로의 결탁이 있고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협동을 하고 어떤 역사를 한다고 해도 그 역사를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끼여 놓으면 안됩니다.


하나님과 자기와에 그 관계는 그는 언제든지 그대로 보존하고 의지해서 내 마음을 줘도 제일 높은 하나님 모신 그 마음은 아무 것에게도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환영하고 좋아해도 내가 하나님을 환영하고 좋아하는 그 위치에는 어떤 성자라도 용납해서 안됩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고 부러워하고 사모하고 존대한다 할지라도 그를 내가 하나님을 존대하고 사모하고 앙모하고 섬기는 그 위치에 올려놓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인 그 위치가 내 마음 안에도 있고 내 행동 안에도 있고 내 인격 안에도 있고 거기는 아무 것도 용납지 않은 이것이 밀실이요 골방입니다. 이것이 지성소입니다. 자기에게 자기 생활에도 지성소가 있고 자기 인격에도 지성소가 있어 지성소에는 그 성소가 용납지를 않습니다.


성도와 성도와의 서로 관계를 가지고 협동을 하고 어떤 그 존경이나 사모나 닮는 것이나 이렇게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인 그 위치를 내어 줘서는 안됩니다. 거기에 용납을 시키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자기의 인격에 제일 높은 자리, 자기의 마음에 제일 높은 자리, 자기의 생명, 자기 행위에 제일 최고의 그 위치 거기는 하나님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하나님을 모셔야 합니다.


넷째의 거룩은

최종 최고의 거룩인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이 생활에 성령님이 인정하고 성령님이 함께 해 주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대로 사는 그 생활에 성령님이 동행해서 감화해 주시는 진리 말씀대로 사는 그 생활에 성신의 감화가 함께 하여 주시기를 원하는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됩니다.


거룩은 무슨 거룩을?

이방인과 교회를 구별하고 교회 안에서 다른 사람과 자기와 구별할 뿐 아니라 자기와도 구별해서 교회 안에서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옛사람과 새사람 이것을 구별하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나니 다른 이 음성을 듣지 않는다." 이것이 구별인데 자기의 교훈이나 신앙 지도에 있어서 이것이 바른 것인지 삐뚤어진 것인지 그것을 구별할 것.

그것이 인간으로는 최고의 구별입니다.


이것 구별하고 난 다음에는 지성소에 들어갈 것. 예수님의 대속을 힘입어 깨끗이 죄를 자기가 아는 대로 깨끗이 정리하면 하나님과 자기에게 가려진 것이 틔어져서 자기 심령이 밝아지고 밝아지면 진리를 보고 알게 되고, 진리를 알면 진리가 자기를 자유케 진리대로 살게 만들어 버려요. 참 알면.


그러기에 성경학자라고 해도 율법으로만 알고 복음으로 받지 못한 사람 있습니다.

그 진리를 자기가 인간 지식처럼 알았지 그 진리가 전능의 능력을 가진 진리인줄은 모른다 그 말이요. 그 진리가 능히 자기를 어디서든지 보호하고 세울 수 있는 이런 권위를 가진 진리로는 모르니까 그 진리의 외형만 알았지 진리의 권위는 그 사람이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지성소에 들어가면 진리를 알게 되고 진리를 알고 나면 천사보다 탁월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래서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간다. 착한 양심은 무엇이 착한 양심인데.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마음이니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에게 찾아간다 그 말 입니 다.


이것이 네 가지 거룩입니다. 이것이 윤곽적 성전입니다.




그 다음에 열 가지 요소적 작용이 있어야 하는 것은


1, 제단(놋제단) : 대속을 입은 자가 또 전하려는 노력

2, 세수통(물두멍) : 언행심사의 깨끗케 하려는 노력

3, 등대(일곱등대) : 모든 사람에게 옳은 행실로 감화를 주는 노력

4, 떡상(진설병상) : 하나님을 힘입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노력

5, 금향로(분향단) :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를 하는 명상과 기도의 노력

6, 휘장 :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가루는 죄를 찾아 회개하려는 노력

7, 법궤(증거궤) : 성경을 통해서 알고 그 효력의 결과를 입으려는 노력

8, 그룹 : 천사의 옹호 받는 데까지 나아가도록 노력

9, 속죄소 : 대속을 입고 자기로서 다하였을 때 하나님과 문제가 완전 해결

10, 속죄소 위 하나님 : 하나님과 동행 이상의 노력이 우리의 전인격과 생활에 있어야 깨끗한 성전이 되는 것이다.


1, 제단(출27:1-8) : 대속을 입은 자가 또 전하려는 노력


또 성전 안에는 제단이 있는 것입니다. 제단이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잘못 된 것을 용서받는 그 제사 드리는 것이 제단입니다. 하나님 앞에 잘못 된 것을 용서받고 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잘못된 것, 하나님의 은혜. 이것을 이루는 것이 제단인데 개인이나 교회나 가정이나 거기서 하나님 앞에 자기 잘못된 것을 반성하면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겠다. 하나님 앞에 거리끼는 것을 해결하고 축복을 받아야 되겠다' 하는 이것이 잘난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 것 같지만 이것이 없으면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다 소용 없습니다. 아무리 번들번들하게 좋지마는 돌 위에 돌 하나도 첩 놓이지 아니하고 다 절단 납니다.


그러기에 그 개인도 보면 무엇인가 항상 자기의 잘못한 것을 하나님 앞에서 찾아서 회개하려고 용서받으려고 애를 쓰고 또 자기 하는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하나님이 축복을 해 주셔야 되지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안 된다는 이것을 깨달아서 거저 하나님 앞에 어쨌든지 하나님이 돌봐 주시기를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기를 벌벌 떨면서 기다리는 이것이 못난 사람 같지만 이것이 있어야 기독자로서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사회 교회가 유지가 되지 그렇지 않으면 다 파멸이 되는 것입니다.


성전 안에 놋쇠로 만든 주석으로 만든 제단이 있었습니다. 이 제단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완성을 했는데 대속으로 완성한 이 구속을 우리가 입은 신앙 생활을 할 때에 우리 생활에 사용하는 이 제단을 가져야 됩니다. 이 제단에서는 죄와 허물을 하나님 앞에 용서받는 이 제단이요 또 하나님과 서로 멀어진 그것을 다시 고쳐서 화합하는 이 제단이요 하나님 앞에 자기를 바쳐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이 이 제단이요 자기의 모든 소유를 하나님에게 바치는 것이 이것이 제단입니다. 이 제단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안에는 우리 마음 안에는 우리 생활 안에는 우리 인격 안에는 우리의 속성 사상 안에는 하나님의 이 제단이 있어야 됩니다. 제단 있어야 되는 것은 성전 된 우리에게는 항상 하나님 앞에 내가 모르고 실수한 사소한 이런 것도 하나님 앞에 고해 가지고 하나님에게 용서받는 일이 있어야 됩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사람으로 인한 잘못이든지 물질로 인한 잘못이든지 사상으로 인한 잘못이든지 행동으로 인한 잘못이든지 하나님의 법도에 삐뚤어진 그것을 찾아 가지고 하나님 앞에 항상 용서를 구하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있어야 성전이 더러워진 것 아닙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잘 믿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가 하나님 앞에 실수한 것이 없는가 그것을 찾아서 하나님 앞에 용서를 받는 것 자기가 현저히 하나님 앞에 뚜렷이 잘못된 죄가 없는가 이것을 찾아서 하나님 앞에 용서받는 것 내가 하나님을 멀리한 것이 없는가 이것을 찾아서 하나님과 가까이 하려고 하는 노력하는 것,


내가 하나님이 구속으로서 하나님의 것이 된 것인데 혹 내가 하나님의 것인 것을 잊어버리고 망령 되게 나는 내 것이라고 생각해서 사는 이런 일이 없었는가 자기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다시 인식하고 인식해서 하는 이것이 있어야 되고,


자기의 모든 소유 이것도 이것을 내 것이라고 혹 가지지 않는가 내 것이니까 내 마음대로 한다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 이것이 하나님의 것이라 하나님의 것이니까 내가 보관하고 있는 것이 암만 내가 번 돈이라도 그것이 구속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을 보관하고 있으니 이것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인 것을 깨닫고


이것을 사용할 때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되지 이것을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가 없다는 자기 소유물도 하나님에게 바쳐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할 것 하나님이 옷 사 입으라면 옷 사 입고, 떡 사 먹으라면 떡 사 먹고, 자녀 교육을 시키라면 교육비로 교육을 시키고, 여행가라면 여비를 삼고 또 가난한 사람 구제하라면 구제하고, 예배당 지을 때 연보 하라면 연보도 하고, 또 이 주일학생들을 이렇게 인도하는 데에 그 차비로 이렇게 도우라면 돕고


어쨌든지 성경 말씀대로 자기 양심에 깨달아지는 대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하나님의 것인 것을 알아 하나님의 뜻대로 이것을 사용할라고 '아! 내가 이 떡 한 개는 사 먹으면 되느냐 아이가 이건 너무 사치다 하나님이 사 먹는 것을 금한다 아! 이것 사먹을 수 있다 아! 오늘은 내가 지금 아주 불고기를 한번 해 먹어야 되겠는데 불고기 해 먹는 게 어떠노 아! 하나님이 해 먹어라 하신다' 해 먹을 수 있소, 해 먹어야 되요. 아! 이것 오늘 불고기 해 먹는 것 틀렸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겠다 그것 못해 먹는다 말이요. 예를 들면은 이렇게 해서 이것을 하는 것이 제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으로 더럽히지 안 하는 것은 우리 속에 이것이 있어야 됩니다. 그 주석으로 만든 제단이 우리 속에 있어야 됩니다. 우리가 성경에 가르치지 만은 성경에 가르친 그것 가지고는 잘 모르니까 하나님이 그 모양을 만들어 가지고서 형상을 만들어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친 것이 성전이요 성막입니다.

이래서 구약 교회는 어린 영적으로 아직 어릴 때이기 때문에 그렇게 그 형상을 가지고서 가르쳤고 신약 시대는 그 형상이 없이 우리를 성전이라 했습니다.


그러면 성경을 보고서 깨닫지 못하는 자는 이 성전 도면을 가서 찾아 가지고서 성전에 어떻게 했는가? 성전 지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해서 짓게 했는가? 성전에 가 가지고서 거기는 제단이 있으니 이 제단은 뭐 하는 곳인가


제단은 자기가 모르고 진 사소한 잘못 또 죄는 뚜렷한 죄 또 자기가 하나님과 사람 앞 에 불목 된 것 또 하나님의 것인 것을 이해 못하고 저는 제 것인 줄 알고 소유도 제 것인 줄 알고 날뛰었던 이것 잘못 이런 것을 고치는 이것이 우리 속에 있는 것이 주석으로 놋쇠로 만든 그 형식 성전 안에 있는 주석 제단과 같은 그 주석 제단이 그 사람 속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주석 제단이 있어야 우리 제단이 우리 성전이 더러워지지 안 하는 것이요, 주석 제단이 있어서 내가 잘못을 하나님 앞에 용서받아야 되고 이것을 고쳐야 되고 뚜렷한 죄를 용서받아야 되고 고쳐야 되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불목한 이것을 용서받아야 되고 고쳐야 되고 하나님의 것인 것을 잊어버린 이것을 용서받아야 되고 하나님의 것인 것을 재인식해서 고쳐야 되겠고 하는 이것을 지식으로 알고 있다 할지라도 이것은 제단만 있었지 제단 행사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제단이 없어서 성전이 절단 난 것 아닙니다. 제단은 있었지만 제단이 제단답게 제사를 드리지 못하는 여기서 더러워져서 절단 났던 것입니다. 우리 속에 지식적으로 우리가 잘못을 하나님 앞에 용서받고 고쳐야 된다 뚜렷한 죄를 우리가 용서받고 고쳐야 된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불목 한 이것을 하나님 앞에 용서받고 고쳐야 된다


하나님의 것인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내 것인 줄 알고 내 자체가 내 것인 줄 알고 소유가 내 것인 줄 알고 내 맘대로 썼던 이것을 용서받고 이것을 고쳐서 이제 내 내 몸도, 나도 하나님의 것이요 내 소유도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대로 나는 행동하고 그대로 사용해야 된다 하는 이것을 지식적으로 알고 있다 할지라도 이 행사를 하지 안 할 때 이것은 성전은 벌써 파괴된 것이고 더러워진 것이고


이렇게 한다 할지라도 자기가 입술로는 하나님 앞에 용서해 주십시요 이렇게 하고 진정으로 자기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자기 마음 가운데에 그 자기 인격이 여기 대해서 가책을 느끼고 감동을 받으면서 참 자기의 인격이라는 그 성질이나 마음이나 감정이나 이것이 다 합해져서 이 허물을 이 죄를 불목을 하나님이 주인인데 그 주인을 바꿨던 이것을 마음 아피 이렇게 느끼면서 하나님 앞에 매일 고치는 이것이 있어야 깨끗한 성전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괴로운게 아니고 여기에서 하나님의 전능의 보호를 내가 입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적 도우심의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책임지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잊어버리고 다른 무엇을 제가 전력을 기울려서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지 안 하니 우리의 원수는 천천이요 만만입니다. 그 속에 마귀가 들어 있는 사람은 전부 우리에게 말하자면 암 병과 같습니다. 전부 우리를 망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막아서 그렇지 이러니까 하나님이 돕지 안 하니 모든 외래적인 해를 우리가 방어할 힘이 없고 또 하나님이 우리를 멸하시니 우리가 어떻게 서겠습니까 이런고로 이런 어리석은 일은 하지말고 우리가 성전 깨끗히 하는 일을 해야 됩니다.


놋제단 이 제단이 있으니 제단 행사를 못해서 이스라엘이 멸망 받았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우리는 일으켜야 될 사람으로 제단 생활을 해야 될 사람으로 우리는 제단 생활을 해야 될 사람으로 알고만 있어도 제단 생활 안 하면 이는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책임 안 집니다. 제단 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입술로만 형식으로만 하지 그 인격이 거기 기울이지지 안 하면 소용없습니다. 더럽고 가증스러운 제물입니다.


네가 더러운 제물을 내 마당만 밟지 말아라 그 제물을 내가 기뻐하지 않는다 그 제물은 가증스러운 것이라고 이사야 1장에 말씀했습니다.


제단은 크게 말해서 7가지 해결 짓는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번제, 소제, 요제, 전제를 드리는 것이 이것이 제단입니다.


소제, 요제, 전제는 자기의 소유를 하나님에게 받은 것이라는 것 그것을 표시하는 제사입니다. 또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자기가 다시 인식하고 하나님의 것으로 자기가 가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그것은 자기가 처리할 수 있는 이것을 새롭게 하는 것이 세 가지 제사입니다. 이것이 믿는 사람 속에 언제든지 있어야 합니다.


주여! 내 제물 이건 당신의 것입니다. 이 집은 당신의 것입니다. 이 회사는 당신 것입니다. 이것은 당신의 것입니다. 겉만 당신이 지으셨을 뿐만 아니라 나를 피로 값 주고 사 가지고서 당신 것이 된 이것을 가지고 소유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것 당신 것이 아닙니까? 당신 것인 것을 자꾸 해석합니다.


당신 것으로 보관하여 있어 당신 것을 당신의 뜻대로 써야 될 터인데 내가 도적질해 쓴 것입니다. 그것을 해결 짓는 것이 제단입니다. 이런 생활이 매일 우리에게 있어야 이것이 소제 요제 전제를 드리는 심령이요 그 인격입니다. 그 생애입니다.


또 속건제는 자기가 모르고 지은 죄, 안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고의적이 아니고 무지 무능해서 실수해서 된 것 이런 것을 죄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대속해 주신 이 피 공로를 의지해서 이것을 주님이 이것을 대신 하신 것을 자기가 고난으로 대신한 것을 새겨 깨달으면서 이것으로 하나님의 노를 풀고 이것을 다시 용서함을 받는 이것이 속건제요


속죄제는 자기가 지은 뚜렷한 죄를 예수님이 대속해 주신 피 공로에 속량 함을 받는 것이 속죄제요.


<속량>

*본래 토지나 노예나 포로를 값으로 사서 놓아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 대가에는 금전뿐만 아니라 대신 일을 하거나 생명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에게 대한 범죄를 없애기 위해 송아지와 양을 잡아 그 피를 제단에 뿌리고 그 고기를 불살라 댓가로 지불했다(출29:1-28, 레4:20-35).

*신약의 예수님은 많은 사람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서 희생제물로 자기의 생명을 주려고 오셨다.(막10:45). (눅1:68).


속죄제 속건제는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을 없애는 것이 속건제 속죄제입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몸으로, 생명으로서 속건제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당신이 죽으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조그만 잘못, 많이 잘못 이것을 다 없애기 위해서 죽으신 것이요. 또 하나님과 원수 되어 있는 이것을 하나님하고 화평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 당신이 죽으셔서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어떤 이유로 불목 됐든지 불목 된 그것을 예수님의 공로로 하나님의 법에서 용서를 받고 자기가 힘써 하나님과 사람과의 화목을 다시 일으키도록 화목을 다시 재계하도록 이것을 위해서 노력하는 이 노력


번제는 자기 몸과 생명 자체를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재인식하고, 재인식하고 하나님에게 다 드려 하나님이 내 전부를 자유 자제하실 수 있도록 이 일이 하나님이 내 전심 전체에게 자유 하실 수 있도록 나는 거기 자유 하는 것을 다 이제 대속의 공로를 인해서 하나님에게 내어놓았소, 나는 내게 대해서 자유가 완전히 박탈되어져 버리고 하나님이 내 자유 하도록 이렇게 하는 이 깨달음의 역사 새김질의 역사 이 생애가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역사하고 있어야 이것이 성전입니다. 이것이 더럽지 안한 성전입니다.


번제는 우리가 하나님께 다 맡겨 놓고 살고, 하나님 섬기는 것으로만 사는 것, 이 사람 만들기 위해서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또 부활하시고 하신 것입니다.


제단 생활이 우리에게 있어야 됩니다. 제단은 하나님과의 잘못된 문제 해결하는 것인데 자기와 하나님과의 문제, 다른 사람과 하나님과의 문제에 있어서 희생하는 이 희생이 우리가 있어야 됩니다.


주님이 제단에서 제물되어서 우리는 대속한 것처럼 자기가 하나님과의 관계점을 위해서 자기가 희생할 줄을 알아야 되고 먼저 희생하기를 원하고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 하나님과 모든 형제들과의 관계, 하나님과 가족들과의 관계,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 이 관계를 인하여 자기가 희생할 정신이 있어야 되고, 희생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 줄 알고 희생하기를 원하고, 희생하기를 노력하고, 또 실제로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남 모르게 자기가 물질적 희생이나, 정력적 희생이나, 시간적 희생이나, 정신적 희생이나, 뭐 기도로 하든지 무엇으로 하든지 자기가 희생할 의무가 있는 줄 알고 하나님과 인간이, 자기도 인간 중에 하나인데 하나님과 인간 관계의 이 문제 때문에 자기가 희생해 가지고 이 일을 바로 해보겠다는 이 의무와 책임이 있는 줄 알고 희생을 원하고, 노력하고, 희생이 실지로 이루워져야 합니다. 그러기에 첫째가 희생 작용입니다. 열가지 작용 중에 첫째 순서가 희생작용 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시작이 안됩니다. 희생 작용이 있어야 됩니다.


2, 세수통(물두멍:출30:17-21) : 언행심사의 깨끗케 하려는 노력


물두멍: 물을 길어 놓고 쓰는 큰 가마


그 다음에는 세수통이 있습니다. 씻어서 깨끗게 하는 물통이 있습니다.

이것이야 상징적으로 해 놓은 것인데 우리는 항상 자기가 활동한 이 활동 손으로 활동했든지 발로 활동했든지 입으로 활동했든지 어떻게 자기는 언행심사의 활동을 했든지 이 활동한 이것을 항상 다시 생각하고 생각해서 씻어서 깨끗이 하는 이것을 하나님 앞에서 깨끗이 하는 이 운동이 언제나 있어야 됩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아내가 오늘 누구누구를 만나 가지고서 서로 교제하는 것은 그게 부정이 없나 말에 실수가 없었나? 내가 하는 행동이 하나님과 사람에게 거리끼지 안 했나? 혹 성령을 근심되게 하지 안 했나? 내가 기뻐한 기쁨이 내가 근심한 근심이, 내가 웃음이, 내가 노함이, 이것 잘못됨이 없나? 그것을 마치 물로 더러운 것을 씻는 것과 같이 자기의 신앙 양심으로 그것을 다시 생각하고 생각해서 깨끗이 양심으로 씻고, 말씀으로 씻고, 영감으로 씻어서 깨끗이 하려는 이 작용이 우리 인격 속에 우리 사상 속에 우리의 정신 속에 있어야 합니다. 이래야 산 성전이요 하나님이 같이 할 수 있는 성전인 것입니다.


가정 교회나 개인 교회나 사회 교회나 교회는 날마다 씻어서 깨끗하게 하는 역사가 속에 있어야 되지 이 역사가 없으면 껍데기 허우대가 아무리 좋다 할지라도 그것은 멸망을 받습니다. 개인도, 그 사람이 뭐 지위, 학식, 권세, 재물 모든 세상 온갖 것이 다 구비하다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깨끗이 하려는 그것이 그 속에서 쉬지 않고 역사를 해야 그 개인이 안 망하지 이것이 없으면 망하고 또 가정도 그러합니다.


가정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이, 이것만 구비하고 넉넉하면 가정이 될 줄로 알지만 우리 믿는 사람의 가정은 가정 교회인데 그 가정이 어떻게 하든지 이모저모로 그 가정이 하나님 앞에서 깨끗해지려는 요 깨끗해지려는 성결 노력이 있어야 되지 그것이 없으면 그 가정도 세상 사람 보기에는 암만 크고 아름답다 해도 그것 소용없습니다.


이 단체의 사회 교회인 우리 서부교회도 사람도 많이 모이고 이름도 나고 했지만 이 서부교회의 내부가 어쨌든지 회개해서 깨끗하게 하려는 이 결례통, 씻는 통 깨끗하게 씻어서 깨끗해지려는 이것이 교회에 이 운동이 역사하지 않으면 그 교회도 다 파멸입니다.


세수통은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는 것인데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또 이웃의 여론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가지고 영감을 가지고 자기를 깨끗게 해야 될 줄 알고 깨끗해지기를 원하고 깨끗하기를 노력하고 또 깨끗해 져야 합니다. 마치 더러운 것을 물로 씻어서 깨끗하게 한 것처럼 이 세수통은 수족을 씻는 것이 됩니다.


이러기에 자기의 매일매일 그 생활을 자기가 살피면서 깨끗해져야 할 그것이 자기 의무인줄 알고 깨끗게 하려는 이 작용이 있어야 성전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성전입니다. 말에나 마음에나 생각에나 생활에나 경제면이나 활동면이나 대인 관계나 명예 관계나 무엇이든지 권세든지 직장이든지 어디든지 모든 면으로 깨끗해야 될 줄 알고 깨끗지 안 하면 버림당할 줄 알고 깨끗해질 이 의무가 있는 줄 알아서 깨끗해지려고 하는 이 작용이 우리 속에 있어야 합니다.


3, 등대(출25:31-39) : 모든 사람에게 옳은 행실로 감화를 주는 노력


다음에는 일곱 등대, 등대 일곱 촛대를 둬 뒀습니다.

이것은 우리는 어디 가든지 직장에 가든지 가정에서든지 혼자 있든지 둘이 있든지 자기는 하나님의 중심의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있어야 됩니다. 아! 이 사람은 돈 중심도 아니고, 자기 중심도 아니고, 가정 중심도 아니고, 목숨이 살기 위한 생명 중심도 아니고, 사회 중심도 아니고, 민족 중심도 아니고, 국가 중심도 아니고, 하나님 중심으로 애국도 하고 애민족도 하고 애가정도 하고 애자기(愛自己)도 하고 모든 업도 사랑하고 이 사람의 모든 하는 일은 하나님 중심으로 움직이는구나 하는 이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이것이 빛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선이라, 자비라, 도덕이라 하는 그런 것이 빛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전이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중심에 움직임, 하나님 중심에서 움직인다는 이 움직임을 세상에게 보여주려는 이 노력이 우리에게 있어야 되고 또 세상에게 보여주는 이 결실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등대가 있는 성전입니다. 이것이 등대가 있는 기독자인 것입니다.


교회란 것이 이런 것이고, 또 교회 안에는 등대가 있습니다.

등대가 있어서 환하게 비추는 등대가 있는데 거저 개인도 '아! 내가 이래가지고 남에게 덕이 안되지, 남에게 빛을 보여야지 남에게 덕이 안 돼, 다른 사람이 이걸 보고 혹 넘어지고 시험에 들라' 이래서 다른 사람 앞에 자기는 덕을 세워야 되고 감화를 주어야 될 텐데 '혹 다른 사람에게 부덕(不德)스런 일이 될까, 빛이 되지 못할까'하는 이 염려의 작용이 그 인품 속에 인격 속에 그 활동 속에 역사 해야 되지


이것이 그 개인에게든지 가정에든지, 뭐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이것이 심덕에 걸린다, 다른 사람에게 빛이 안될라, 다른 사람이 이것을 보고 손해 볼라' 이렇게 염려하는 이 등대 생활이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가 있어야 되지 이것 없이 껍데기만 암만 꾸며도 소용이 없습니다.


일곱 등대 , 일곱 촛대가 있습니다. 이것은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빛을 발하는데 성경에 "너희들이 사람 앞에서 착한 행실을 해서 세상에 빛의 직책을 다하라" 하는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게 보여 주는 것.


세상이 어두운데 우리는 세상에게 밝은 것을 보여 줘야 할 의무가 있는 줄 알고 밝은 것을 보여 주도록 노력하는 노력이 있어야 되고 또 결과가 맺어야 됩니다.


그러면 밝은 것이 어떤 것이 밝은 것인가? 세상에는 돈 중심으로 사는 사람, 또 명예 중심으로 자기 직장 중심으로 물질 중심으로 민족 중심으로 국가 중심으로 사회 중심으로 문화 중심으로 가족 중심으로 자아 중심으로 별 중심들이 많은데 그것은 다 어두워진 것입니다.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시는데 그 분을 배반하고 그것이 하나님이 아닌데 그것 중심으로 해 가지고야 하나님이 섭섭해 여기시니까 그것 되겠습니까? 온 세상은 그런 세상인데 우리들이 모든 생활에서 '아, 저 사람도 보자. 저 사람이 이제는 보자. 돈 중심인가 하나님 중심인가 보자.' 할 때에 그때 뚜렷이 우리는 '아, 저 사람은 돈 중심의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중심의 사람이로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보여줘야 할 사람들입니다. 어떤 때는 명예 그런 것도 있고 어떤 때는 생사 문제가 있습니다.


'아, 저 사람도 죽음을 피하고 살기 위한 생명 중심의 사람이라' 다른 사람이 그렇게 볼 수 있는 그때에도 우리는 죽음을 피하고 사는 것이 중심이 아니라 거기서 하나님 중심으로 산다는 것,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같은 그런 사람들과 같이 '저 사람은 죽음에서도 하나님 중심, 물질 앞에서도, 명예 앞에서도, 감정 앞에서도, 말할 수 없는 수치와 모욕 앞에서도 저 사람은 참 하나님 중심으로 산다'는 이 빛을 발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우리들인 줄 알고 이 빛으로 살기를 원하고 노력하고 또 빛으로 산 그 결과를 세상에게 보여 줘야 큰 빛이 되든지 작은 빛이 되든지 빛으로 보여 줘야 되는 이 빛의 작용이 있어야 됩니다. 크든지 작든지 이 운동이 있고 이것이 안 되는 데에서 애타 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4, 떡상(출25:23:30) : 하나님을 힘입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노력


<진설병>

지성소에 진설하는 떡, 괴어 놓는 떡.(출25:30). 진설하는 떡은 12개로 되어 있으며, 누룩 없는 떡을 매주 안식일마다 새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레24:5-9, 대하2:4).


다음에는 떡상이 있습니다.

거기 진설 된 그 떡은 하나님의 식물입니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그렇게 형상을 해 가지고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를 보여주기 위해서 했습니다.


거기 진설병의 떡상은 그것은 하나님의 잡수실 음식이라는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이 그 잡수시지 안 했습니다. 이것은 참된 성전을 가르치기 위해서 외형으로 구별해서 알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 한 것이요. 차차 성령의 감동으로 자라 가면 구약 성도들도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모르는 자는 모르고 외식으로 지나갔고 하나님의 식물은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이룰 때에 이룰 때 그것이 하나님에게는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어떤 일이든지 그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시작하여 뜻대로 진행하고 뜻대로 완성을 할 때에 하나님에게는 그것이 양식이 됩니다. 하나님은 완전자기 때문에 하나님은 완전자시기 때문에 그것만이 당신에게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되고 당신의 것이 되지 딴 것은 안됩니다.


또 하나님의 떡이며 제사장들의 떡입니다. 제사장들이 먹기는 제사장들이 먹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게 잡수시고 제사장들과 그 식구들은 볼 수 있게 먹습니다.



성막공부2,(재료편)


■ 출25: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 오라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예물은 상대방을 대접하는 성격인데 장삿속으로 갚는 것이나 도와주는 것이 아니고, 받은 은혜에 대하여 기쁘고 즐겁고 감사하는 사례의 성격으로 드리는 것인데 하나님께 드릴 때에는 이런 예물적 성격으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법으로 드릴 것이 아니고 감사할 큰 일에 있어 이 감사를 갚을 수가 없어 기쁘고 즐거운 감사에 대한 사례, 사은에 대한 감사의 예물로 드려야 합니다. 받은 바 은혜를 연구함으로 감사가 나오고 감사하는 표로 드리고, 드린 당신의 것 가지고 자기 것 만들 것입니다. 성전은 나의 몸, 행동 전부가 하나님의 성전이니 이것 전부를 하나님에게 예물로 드린 후 하나님의 것 가지고 나의 이것, 저것을 만들 것입니다.


예를 들면 결심도 나의 것으로 만들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 예물로 드린 후 나의 것으로 만들 것이요, 사은의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드릴 것이요, 감사해서 드리는 이것은 정서면이요, 율법면으로는 이미 구속을 인하여 당신의 것이요, 정서적으로 감사해서 드리는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롬12:1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예물은 감사해서 사은으로 드려야 합니다. 믿는 자는 법적인 구속으로 당신의 것인데 자원해서 드릴 때에 하나님

6 Powerful "I WILL" Promises of Jesus

praying in the spirit Christians are quite familiar with the “I AM” statements in Scripture. They are powerful and share much about the character of Christ. They share God’s will for His son and for 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