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교회는 안과 밖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먼저 안으로는 선교 1백년이라는 짧은 역사 속에서 한국교회는 '메머드(Mammoth)'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낼만큼 급성장 하였다. 그러나 1999년에 출판된 '한국 개신교인의 교회 활동 및 신앙의식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개신교 증가율은 1980년대 이후 크게 둔화되어 1990년 초에는 급기야 1퍼센트 이하까지 떨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밖으로는 우리 사회가 1970∼80년대 근대화의 영향으로 경제적인 성장은 이뤘으나 그것에 걸 맞는 정신 문화의 내적 성숙을 이뤄내지 못함으로 사회 곳곳에서 도덕과 윤리가 붕괴되어가고, 인간이 지녀야할 본질과 인간성 상실이 극에 달하고 있다.
이는 실로 한국 교회의 위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별히 종교라는 것이 한 나라의 문화 속에서 꽃피는 것을 볼 때, 한국 사회가 직면한 위기적 요소는 교회와 절대적으로 무관할 수 없다. 따라서 한국교회가 처한 위기 국면을 전환할 새로운 그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고, 필자는 그 대안으로 성령운동(聖靈運動)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지금 한국교회가 직면한 문제를 진단하고, 방향을 제시하여 지금의 위기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함이 마땅하다고 본다.
1907년에 시작된 성령운동은 극도의 사회 혼란 속에서도 한국교회의 신앙형태와 교회성장의 기틀을 마련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짧은 선교 역사 속에서도 초유의 성장을 이룩하게 했다. 그러므로 본 논문에서는 성령운동의 한 모형으로써 1907년의 부흥운동이 한국교회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와 성령운동이 교회성장에 미치는 구체적인 영향과 상관관계를 살펴보면서 한국교회의 바람직한 교회성장의 상(像)을 연구해 보고자 한다.
초대교회의 형성은 성령에 의하여 시작되었으며, 성령에 의해 이루어진다. 역사를 단순히 인간의 과거 이야기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사건으로 보려는 기독교적 사관에 입각하여 생각할 때, 서구 기독교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기독교 역사에도 불가시적인 거룩한 힘, 즉 성령의 개입에 의해 선교 1백여 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급성장이라는 선교의 열매를 맺었다. 또한 한국의 기독교 선교는 성령운동에 의해 정적이고 피동적인 한국 사회와 민족을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자극하여 활력을 불어넣는 많은 운동들을 일으킴으로써 한국 사회를 능동적인 사회로 변화시키데 일조했다.
한국교회에 있어 성령운동은 유교적 전통에 입각한 부성적(父性的) 성령운동과 무교적 전통에 입각한 모성적(母性的) 성령운동의 특성을 나타냈다. 먼저 전자의 특징은 율법주의적 엄격성과 보수적 근본주의, 외향적 사회참여와 교조주의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망국 전후의 위기에 처한 한국의 지도자들이 지녔던 사회 치리를 기초이념으로 하는 유교적 전통과 초기 선교사들이 가지고 온 근본주의 신앙이 합쳐진데서 생긴 신앙 운동의 유형이다. 후자의 특징은 개인주의적이며 내향적인 신앙형태로 성령과의 직접 교류를 갖는 신비주의적 현상 속에서 시간을 초월한 원초로의 복귀현상을 가졌다. 3·1운동이 있은 후 일제의 탄압으로 좌절되었던 민중과 교회는 30년을 전후하여 무교적 모성적 성령운동으로 급진전하게 되었다. 사회와 정치적으로 나갈 길이 막혀 버린 현실 속에서 민중은 자연히 개인의 심령이 위안을 얻는 내향적 신비주의로 기울게 되었던 것이다
성령의 이해는 그 당시 교회가 처한 국가의 민족적·사회적 상황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이해되고 또 변천되어 왔다. 1907년을 전후하여 한국교회는 처음으로 성령의 역사를 실재의 생활에서 체험하고 확인하면서 성령이 개인의 신앙생활과 교회 부흥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30년대는 한국 교회의 침체기로, 당시 한국교회는 신사참배 강요와 현실 참여에 따른 많은 고난과 희생 때문에 이 시대에 성령의 이해는 묵시문학적이며 내세적인 신인합일의 은사와 병을 고치거나 고난을 견디는 능력으로 이해되었다. 1950년대의 성령 운동은 해방의 기쁨과 함께 찾아온 혼란과 교단의 분열 그리고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서 진행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처해 있었던 극한 상황에서의 기적과 같은 구원을 체험하고, 민족의 구원은 하나님의 강한 능력의 손으로만 가능하다는 확신을 가지게 됨으로써 성령을 위기 속에서 또는 죽음에서 해방자로 이해하게 되었다. 1970년대를 전후로 조국 근대화의 기치 아래 사회가 급속한 산업화됨에 따라 신앙에도 물질에 대한 축복이 감미 되면서 성령이해는 구원보다는 능력을 강조하는 경향을 띠며 이원론적으로 이해하였다.
선교 초기 교회 성장은 부진했으나 1895년부터 1907년까지 교인수는 5백30명에서 2만6천57명으로 급증하였다. 성서의 보급도 급증하여 1904년 성서공회는 14만4천6백57부 성서를 발행하였다. 이처럼 초기 한국교회가 급성장하게 된 것은 사회적인 것과 교회의 정황 때문이었다. 전자의 경우, 첫째 당시 강력한 국교가 없음으로 국내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었다는 점, 둘째 국왕이 공개적으로 기독교에 대해 호의를 보인 점, 셋째 민중들이 서구 종교에 대한 큰 반감이 없었다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첫째 모국어로 된 성경 보급, 둘째 선교사들의 기도회와 사경회가 열리면서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강력한 성령 체험과 함께 성도들로 하여금 내적인 자기 성찰을 갖게 하고 민족의 해방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만 달려있다는 믿음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백만명 구령 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켰다.
결과적으로 첫째 1907년 부흥운동은 한국기독교인들에게 섭리적 신앙, 즉 개인과 민족의 질고와 영광 안에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가 내재해 있다는 새로운 역사관을 갖게 했다. 둘째 1907년의 부흥운동은 향후 한국교회의 신학, 즉 기독교 진리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한국 교회의 토착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셋째 성도의 증가와 기독교의 사회적 영향으로 국가에 하나의 지배력을 가지고 민중을 지도하게 되었다.
1907년의 성령운동은 회개의 강조와 중생, 성령의 강권적인 체험과 개인의 변화, 사회의 정신적 수준의 성숙 등을 가져온 이상적 모델로서의 성령운동이었다.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성장이란 에베소서 4장16절과 골로새서 2장19절에서 발견되는'아우크세시스'이다. 이것은 동·식물 또는 사람의 성장처럼 내부로부터의 성장에 관하여 사용되고 있다. 또한 성장의 개념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바울에 의하면 모든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 몸의 지체들로서 각 지체들의 성장은 몸의 성장 즉, 교회의 성장을 말했다.
맥가브란은 그의 저서인 '교회성장이해(Understanding Church Growth)'에서 선교는 인간주도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 일을 담당하시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고 주장한다. 선교의 문제들은 계시된 하나님이 빛 가운데서 관철되어야만 하는데 하나님 자신을 그리스도 안에서 보여주심으로 그가 무엇을 원하시는지 분명하게 알게되었다고 말하면서 그것이 바로 근본적이며 신학적인 선교의 의미라고 한다.
초대교회는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시작되었다. 이것은 성령을 분리한 체 교회에 대한 이해가 있을 수 없음을 뜻한다. 교회의 시작에는 성령이 계셨으며 성령의 주도적인 역사에 의해 교회는 확장되었다. 특별히 초대 교회에서 성령의 역사는 각가지 은사를 통해 나타났다. 초대교회에 성도들은 성령의 카리스마 운동을 통해 새로운 자유와 사랑, 내적인 해방감, 넘치는 기쁨과 평안, 하나님의 실제에 대한 강한 인식, 사랑의 교제, 선교에 대한 불타는 열정 등을 경험했다. 그 결과 교회가 내적으로는 질적인 성장을, 외적으로는 복음의 확산을 가져왔다. 따라서 교회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성령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교회 성장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성장은 성령의 역사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 성장사를 시대 구분에 따라 5기로 나눌 수 있다. 제1기는 1897년경으로 동학혁명, 청·일전쟁, 갑오경장을 비롯한 개화운동이 시작되었던 때로, 기독교는 교육, 의료, 사회, 독립운동에 참여함으로써 정당한 종교로서 공적 위치 확보와 교회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제2기는 1905년 을사보호조약으로 민족적 위기와 노·일전쟁으로 인한 혼란, 한일합병의 민족적 암울함에서 해방시키고자 했던 구령운동의 불씨가 교회 성장을 촉진케 하였다. 제3기는 3·1운동을 계기로 성장한 시기이다. 1911년부터 한국교회는 '1백만 구령운동'을 전개하여 영적인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렇게 시작된 성장은 3·1운동 및 그 이후의 정치와 사회적 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통해서 기독교가 주체적 역할을 감당함으로써 결실해 나갔다. 제4기는 8·15 해방과 6·25전쟁을 계기로 성장한 시기로, 민족사의 어두운 수난에 교회는 신앙의 지조를 끝까지 지켜나갔으며, 전쟁이후 교회 재정비를 통해 수적 증가를 이뤄냈다. 제5기는 1960∼70년대 이후부터 급격한 사회변동, 즉 근대화에 의한 성장으로 한국교회는 1978년부터 매해 평균 약 1백만 명씩 증가하는 급성장을 이룩했다.
한국교회의 성장요인은 1960년대를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1960년대 이전의 성장에 대표적인 요인들로, 첫째 네비우스 선교정책을 수립했다는 것이다. 둘째, 민족적 수난사를 겪으면서 불거졌던 갖가지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기독교가 제공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개화기 이후 정치와 사회 엘리트들 가운데 기독교인이 많아 그 영향력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셋째 은사 형태로 나타난 강력한 성령의 역사와 체험이었다.
1907년을 전후하여 한국교회는 처음으로 성령의 역사를 실제 생활에서 체험하고 확인하면서, 성령이 개인의 신앙 생활과 교회의 발전과 부흥에 있어서 기본이 되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1960년대 이후 근대화의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때에는 도시화에 의한 성장, 급격한 사회변동으로 인한 사회불안의 팽배 속에서 위기를 통한 성장, 각 교단의 경쟁에 의한 성장,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하고 헌신적인 목회자들의 지도력에 의한 성장이었다.
1990년대 들어서 한국교회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세계 경제 성장 둔화에 따른 장기간 경기 침체와 정치적 불안, 민족적 주체성을 상실한 체 무분별하게 타문화를 개방한 부작용과 도덕성의 추락 등이 사회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한국교회는 '메머드화'는 이룩했지만 이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로서 올바른 좌표를 제시하는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는 점이 사회의 큰 불안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한국교회가 지향해야 할 과제는 성령운동이다. 한국교회가 양과 질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과거 한국교회에 일어났던 성령운동이 우리의 시대에도 펼쳐져야 한다.
1900년전 펜테코스트(Pentecost)에 완성된 기독교는 로마에서 교권중심으로 출발하여 중세 암흑의 골짜기로 내려갔다가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에 의하여 성경중심으로 흥했던 기독교가 비로소 이 땅에 와서 성령중심의 제 3전기를 맞이하여 한국교회는 성령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사도들의 행전은 이미 끝났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며 끝이 없다. 그러므로 성령은 한국교회가 성령의 행전을 시대의 아픔 속에서도 계속 기록하기를 요청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성령운동에 대한 신학적인 정립이 필요하다. 즉 서구 신학이 치중해온 개인주의적, 내면적, 정신적 현상으로서의 성령 이해나 경험이 어떻게 한국적인 신학으로서 집단적, 사회적, 역사적으로 수용되고 행동화 할 수 있느냐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둘째, 각성운동(覺醒運動)이 일어나야 한다. 1907년의 성령운동은 시대적 상황이 암울한 시대에 일어난 운동으로 교회가 정치적으로 집단적인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회개(Repentance)운동을 통하여 내적 성숙을 이룩하였다. 이처럼 오늘날 한국교회도 이 사회가 직면한 문제에 대하여 정치적인 해결보다는 신앙적인 해결 즉, 성령의 역사하심을 간구하여야 한다.
셋째, 헌신적인 사랑의 실천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성령은 주님과 이웃을 위하여 스스로를 희생하는 사랑의 실재이며 그 사랑의 자체이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고난을 통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빛 아래에서만 올바르게 이해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현존이며, 권능이시며, 사랑이시다. 우리나라의 성령운동은 바울이 권면하고 사역한대로 사랑의 빛 아래서 세상을 향한 고통과 고난에 참여하는 운동으로 발전할 때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현하는 하나님의 선교로 새로운 힘을 얻을 것이다.
양원용/ 목사 · 과주 남문교회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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