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말하는 여성문제

세계의 역사가 위기에 직면하고, 기독교 가정의 기틀이 신앙부족, 자기중심, 그리고 부도덕이라는 철추 아래 막 산산이 부서져 버릴 것만같은 이때에, 어머니라는 주제를 가지고 잠깐 생각해 본다는 것은 커다란 의의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위대한 인물은 위대한 어머니가 낳는 법입니다.

John Quincy Adams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의 모든 것은 나의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것이다." 에이브라함 링컨은 '나의 모든 것과, 나의 존재 전부는 나의 천사인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여인됨의 존엄함과 성스러움을 존경합니다. 그대 여인들이 의식하든지 의식하지 못하든지간에 그대들이 지닌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요한 1:3, 히1:2 참조 )오직 기독교만이 여인들을 남자와 평등한 위치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아직도 세계의 여러 곳에서는 여자들을 마치 짐이나 지는 짐승처럼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여자들의 위치를 높여주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 여인들은 이세상을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하여 헌신했으며 하나님의 나라의 진전을 위하여 힘껏 도왔습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후에 여인들을 이끌고 기쁨에 넘쳐서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라"(출 15:21)하고 노래한 것은 미리암이었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의지하고 마침내 다윗왕의 증조할머니가 된 룻이었습니다 (룻 1:16,4:17).


능력있는 사내들이 없을 때 이스라엘을 지도한 것은 드보라였습니다(삿 4:4- 5:31).

기도로 얻는 사랑하는 아들을 "하나님께 맡긴" 사람은 한나였습니다(삼상 1:1-28).

최후를 맞게 된 동포를 구하기 위하여 생명을 걸고서 용감히 나선 사람은 에스더였습니다. 선지자 엘리야를 봉양하여 '통의 가루가 다 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게" 만든 것은 가련한 과부의 자비심이었습니다(왕상 17:9-16).


예수께서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을 때 육신의 병을 치료받고, 영혼까지도 구원을 얻은 것은 주님의 옷자락을 잠깐 만졌던 소심한 여인의 믿음이었습니다 (마 9:22).

값비싼 향유가 든 옥합을 깨뜨리게 한 것은 한 여인의 감격어린 사랑 이었습니다 (막 14:3).

눈물로 주님의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그 발을 씻은 것은 한 여인의 애통하는 마음씨였습니다 (눅 7:38).


예수님으로 하여금 "이 가난한 과부는 모든 사람이 연보궤에다 넣은 것보다 더 많이 넣었도다."라고 말씀하시게 한 것은 과부의 동전 두푼이었습니다 (막 12:43).

왕중의 왕, 주님중의 주님 되시는 예수께 생을 주신 분은 여인들 중에서 축복을 받은 마리아였습니다 (눅 1:26-56).

봉사한 것은 마르다였고 주님의 발 밑에 앉아 있었던 것은 마리아였습니다 (눅 10:38-42).

부활하신 주님을제일 먼저 만나보고 "가서 알리라"는 첫번 부탁을 받은 자는 주님의 시체에 바르려고 향유를 갖고 갔던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요20:17-18,막 16:9)


바울의 전도여행시 "두아디라성의 자주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여...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행 16:14) 구라파의 첫 신자가 된 것은 루디아 였습니다.

항상 선행을 힘썼고 그의 이름이 오늘날까지 구제란 단어의 동의어로 남아있는 사람은 도르가입니다 (행 9:36).

뵈뵈는 "교회의 일군"이라고 일컬어졌고, 브리스길라는 "그리스도의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라고 불리워졌습니다(롬 16:1-4).


디모데를 가르친 것은 로이스와 유니게였습니다. "사랑하는 자"(롬 16:12라고 불리워지는 것은 버시였습니다.

두루베나와 두루보사도 주를 위하여 수고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롬 16:12)끝까지 하나님을 따르고 그 이름을 성경에 남긴 여인들을 우리는 얼마든지 열거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여인의 기본적인 의무는 가정을 돌보는 것입니다.


우리도 아는대로 분명히 가정이란 한 여자에 대한 한 남자의 사랑을 기초로한 기독교적인 제도입니다. 또한 그 사랑은 신부인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날까지 어떤 이교의 언어에서든지 그리스도께서 내세우는 우리의 "가정(home)"이라고 부르는 제도와 비교할만한 낱말을 찾아 볼 수는 없습니다.

거기에도 "집" "오두막""거처" "건물" "주소" "동굴""천막"에 해당되는 낱말이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적인 의미에서의 "가정(Home) " 이란 낱말은 있지 않습니다. 이 가정은 서로의 사랑과 봉사 위에 서 있는 정신적인 창작물인 것입니다.


= 어려운 시험 =


가정의 특성이란 그것의 위치나,크기, 또는 안락한 정도나 편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뿐만 아니라 단순한 관습이나 문화 또는 교육이나 어떤 문서에 의존하지도 않습바니다. 이러한 것들은 기독교적인 이념을 벗어날 때모두 타락의 도구들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교인들 누구에게나 어려운 시험이라고 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여 앞으로 나아가고, 일반 세태에 민감하다면 동료들보다 뛰어난 삶을 산다고 하는 것이 가정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일에 비할 때 훨씬 쉬운 일입니다. 그대의 가족은 그대 안에 또는 그대를 통하여 그리스도가 살아계신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그대가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그대는 그대의 가정을 침입하려는 거칠은 기질과 조급한 성미, 흠잡는 버릇,야유,불친절,의심, 이기심 또는 게으름 따위들에게 길을 터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 대신에 그대는 그대의 일상생활을 통하여 성령의 열매 즉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그밖의 그리스도를 닮은 미덕을 나타낼 것입니다.


그대의 가족들뿐만 아니라 식료품상의 주인이나 우체부,또는 우유 배달부, 신문 배달부들도 모두 그대가 경건한 기독교인이라는 사실과 그대가 기독교인으로 지켜야 할 직책을 매일 매일의 생활 가운데서 얼마나 충성스럽게 감당하는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대는 이 귀중한 법칙이 그대의 가족이나 사회의 친구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그대의 일군이나 사업의 모든 일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입니다.


기독교인 어머니가 그의 아들의 성격 형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가는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완전히 아십니다. 성경은 자식들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친 몇몇 여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누구인가 "어머니가 좋으면 아이들도 좋다"고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 역사상 최대로 악명이 높았던 죄수들은 흔히 좋지 못한 어머니를 가졌던 예를 알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고상한 인물, 훌륭한 지도자들은 거의 모두가 선량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어머니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죠지 워싱톤의 어머니가 경건한 분이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또 월터 스콧트의 어머니는 시와 음악을 사랑하는 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폭군 네로의 어머니는 살인자에다 주정뱅이였고, 시인 바이런의 어머니는 거만하고 거칠은 여인이었다고 합니다.


= 사회 면모의 일신 =


오늘날 이혼율은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신문은 가정에서보다 카페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포악하고 방탕한 여인들에 대한 기사로 가득차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헌신적인 기독교인 어머니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우리나라는 원자탄이나 새로운 계획들 보다는 먼저 기독교인의 어머니들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Lord Shaftesburey는 그의 유명한 발언에서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나에게 한 세대의 기독교인 어머니를 주시오. 그러면 나는 책임을 지고 열두달 안에 사회의 모든 면모를 바꾸어 놓겠소."

기독교인 어머니들이 조금만 더 있다면 모든 비행도,부도덕도, 신앙부족도 훨씬 줄어들 것이며 가정의 파탄도 보다 적어질 것입니다. 모든 어머니는 그리스도께서 은혜로주신 자식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쳐주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것은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의무인 것입니다.


가정에서 아이들의 생활에 끼치는 어머니의 영향이란 것은 도저히 저울질해 볼 수도 없을만큼 지대한 것입니다. 아이들은 정직이나 절제, 친절, 근면같은 문제에 부딪치면 반드시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보고 그의 태도와 본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지나치게 한가한 어머니들이 너무나 많습니다.그들이 기껏 한다는 일은 이것 저것을 비평이나 하고 남의 흉이나 보며, 헐뜯고, 불평이나 털어 놓으면서 시간을 소비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쓸데 없이 노름이나 하고, 온갖 관심을 육신적인 일에만 쏟고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여인들은 생활을 지탱해 나가는 일에만 온통 시간을 쏟고 있습니다. 이것도 해야하고 저것도 해야하며 바빠서 정신도 못차리는 정도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많은 활동을 하고 있으며 큰 일을 감당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독교적 인격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조금도 시간을 쓰려고들지 않습니다. 너무 한가하거나 혹은 너무나 바쁜 이 두 종류의 여인들은 다 같이 사색의 시간과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고요한 휴식의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그들은 자식들의 영혼을 양육하기 위하여서라도 먼저 자기 자신의 영혼을 배양하는데 시간을 쓰지 않으면 안됩니다.


= 혼자서 할 수는 없다 =


우리는 디모데의 어머니가 기도와 신앙의 여인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녀도 오늘날의 많은 어머니들이나 마찬가지로 자기의 힘만으로 아들을 가르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잘 알았으며, 드디어는 가정에서 드리는 기도의 힘이 얼마나 큰 가를 깨달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무서운 시대 가운데서 주님의 양식과 주님의 권고로서 가족을 키워나간다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힘드는 일중에 하나입니다. 불결한 얘기거리로 가득차 있는 잡지들과 전국적으로 청소년들에게 번지고 있는 부도덕한 상태, 지나간 세대에는 전혀 알려지지도 않았던 수다한 유혹들 속에서 어린이가 주님을 경외하며 자라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대들, 어머니들만으로는 이 일을 해낼 수 없습니다. 그대들은 더 많은 시간을 무릎을 꿇고 기도드리는데 바치지 않으면 안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어머니로서의 그대의 첫째가는 직무는 아이들을 가르쳐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주니을 알게 되면 다른 것들 모두 저절로 그 뒤를 따라올 것입니다. 성경은 아이들이 지금은 교훈이나 훈련을 싫어하고 원망할지라도 어느날엔가는 그들이 일어나 그대를 위하여 복을 빌 것이라고 말합니다.


= 문은 넓게 열려 있다 =


그대들의 어머니들 중에도 항상 그대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던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대는 그대의 마음과 생활을 그리스도에게 의탁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대의 어머니는 이미 하늘나라로 가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그분은 그대를 기다리고 계시며 문은 아직도 열려 있습니다. 주께서는 지금도 권면하시고 호소하시며 간청하시고 또한 요구하시며 환영하십니다.


"어떻게 해야 되느냐?" 고 그대는 물을 것입니다. 오늘부터 그리스도를 그대의 구주로 받아 들이십시오. 그리스도로 하여금 그대의 모든 죄를 용서하고 그대의 생활을 변화시키기도록 하십시오. 그분은 그대가 그분께 가까이 오기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리라..."(계 3:20).

칭찬의 위력

저자 소개 제리 D. 트웬티어 - 저자는 사립, 공립하교 일반 직장 등에서 환경 훈련 경험을 20년이나 하였다. 또한 작가, 상담원, 전문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텍사스 공과대학에서 교육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40권 이상의 저 있으며 현재 주요 기관들을 위해서 인간 관계 훈련. 자기 훈련 등의 강사로 일하고 있다. 목 차 제1부 더 나은 삶을 위하여몇 칼

온 가족이 드려야 하는 가정 예배

“가정예배는 복의 근원입니다” ? 제임스 W. 알렉산더(1804-1859) 청교도들은 가정을 작은 교회로, 아버지를 그 교회의 목사로 생각하였다. 따라서 자기 가족을 감독하며 목양하는 것은 아버지의 의무였다. 사실 오늘날처럼 그리스도인 가정에 가정 예배가 절실이 필요한 때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 예배에 대한 개념은 우리들 주변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가정 예배론

가정예배와 영성형성 개인예배와 가정 예배를 교회에서 드리는 공동예배와 통합하는 한 유익한 길은 가정에서 드리는 예배를 공동예배의 구조를 따라 조직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일을 위해 특히 중요하다. 본 장은 독자들에게 가정예배의 면모를 소개하고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몇 가지 모범적인 예전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