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교회 안에 실천적 무신론자들이 많다

오늘날 교회 향해 외치는, 강력한 메시지...목사들, ‘급진적인 예언자의 모습’ 닮아야...교회 꾸짖지만, ‘희망의 공동체’ 분명

정의의 예언자 아모스


박철수 | 대장간 | 320쪽 | 20,000원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회개하지 않고 목이 굳은 백성들을 향하여 멸망을 선언했고, 선포가 있은 후 얼마 되지 않아 예언대로 이방인의 땅으로 사로잡혀 갔다.

저자에 따르면, 오늘의 한국교회 또한 이스라엘 못지 않은 허위의식과 타락한 종교로 전락된 지 오래 되었다. “교회는 세상을 운명에 맡겨 버리고 세상으로부터 물러서 버렸다. … 이 땅과 현실은 어디로 가고 ‘예수 천당’ 교리만이 한국 교회의 중심교리가 되었다. 이 땅에서는 추상적인 예수, 죽어서는 천당, 이 얼마나 믿기 쉬운가? 싸구려 복음이 이 땅에 휩쓸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21쪽).”

저자는 불붙은 심장으로 외치듯 아모스의 메시지를 통해 한국교회를 불러 세우고, 그 행태를 강한 어조로 꾸짖고 있다.


책의 1부는 아모스서를 이해하기 위한 서론으로 출애굽, 언약, 성경의 예언자와 그리스 신을 주제로 한 내용이며, 2부는 아모스서 본문 강해로 이루어져 있다. 필자는 눈에 띄는 몇 가지 포인트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저자는 ‘성경의 예언자란 누구인가?’라고 묻는다. 그는 랍비 아브라함 헤셀의 저서 『예언자』에서 내리고 있는 정의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①예언자는 악에 대하여 민감한 사람이다 ②예언자는 사소한 일들에도 관심을 갖는 사람이다 ③예언자는 빛나며 불타는 사람이다 ④예언자는 제일 높은 선을 말하는 사람이다 ⑤예언자는 한 옥타브 높게 말하는 사람이다 ⑥예언자는 우상을 타파하는 사람이다 ⑦예언자는 엄정함과 동정의 사람이다.

둘째, 저자는 아모스를 ‘평신도(?) 신학자’라고 부른다. “예언자 아모스는 종교적 가문이거나 누구에게 종교적 훈련을 받은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훌륭한 대학 출신도 아니다. 그는 먹고 살 만할 정도의 시골 목자 출신이다(69쪽).”

어떤 의미에서 아모스는 ‘반체제 인사’다. “배교와 포악이 가득한 사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 예언자 아모스는 아무것도 무서운 것이 없다. 예언자의 말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을 들은 사람은 침묵할 수 없다(69쪽).”

셋째, 아모스는 우상숭배의 죄악을 고발하고 폭로한다. 아모스서 2장 4-5절에서 유다 왕국이 “거짓 것에 미혹되었다”는 말은 거짓 우상들에게 미혹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오늘 우리에게 우상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나에게 하나님보다 더 귀한 것, 아름다운 것, 좋은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바로 우상이다! 실제로 나의 학벌이, 나의 지위가 나의 성공이 내가 추구할 최고의 것이요 자랑거리리라고 생각한다면 우상을 숭배한 사람이다(95쪽).” 교회 안에 실천적 무신론자들이 많다고, 저자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넷째, 아모스는 이스라엘을 향한 예언(암 2:6-16)에서 물질만능의 불의한 사회를 고발한다.

저자에 따르면, 돈으로 옳고 그름이 가려지는 사회는 병든 사회의 모습이다. “가난한 자가 신한 켤레 값으로 죄인으로 판가름 나는 나라라면 얼마나 병든 나라인가? 인권이 돈으로 결정된다면 얼마나 비극적인가! 노예제도란 인간을 돈과 같은 소유물로 보는 것인데, 이것은 노예제도가 용납되는 사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도 인간이 신 한 켤레 값으로 팔리고 있음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108쪽).”

‘깨끗한 부자’는 있을 수도 없다고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그것은 일종의 기복주의를 표방한 말이다.(109쪽)

다섯째, 저자는 한국교회 목사들이 보수주의적 마인드에서 벗어나 ‘급진적인 예언자의 모습’을 닮아야 한다고 말한다(127쪽).


이 시대의 예언자인 목사들은 “시대정신을 간파하고 정의가 없는 이 세상을 향하여 예언자들이 전한 급진적 메시지들을 ‘지금, 여기’에서 전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역설한다.

저자에 따르면, 오늘날 한국교회 목사들이 잘못된 정치·경제·사회 등 다양한 분야를 향해 아무런 메시지가 없다는 것 자체가 비성경적이고 예언자답지 않은 일이다.

예언자는 자기 말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다. 목사가 자기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산천초목을 비롯한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며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엄위한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하는 것이다.

말씀을 전하는 오늘의 목사들은 진리의 말씀을 알기 위해 ‘베뢰아 교인들처럼 마음의 문을 열고’ 진리를 깊이 파고 들어가야 한다(행 17:11). 또 한국교회가 먼저 회개하고 이 부패하고 타락한 세상을 향해 통곡하며, 회개하고 몸소 정의를 실천해야 한다고 저자는 외친다(128쪽).

여섯째, 저자는 아모스가 전하는 ‘정의’의 메시지에 집중한다. “성경이 말하는 정의는 고아·과부·가난한 자·외국인 나그네 등 취약 계층에 대한 사랑의 도움이라면, 오늘날 정치 경제에서 말하는 정의는 추상적인 정의, 공정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172쪽).”

저자에 따르면 성경이 말하는 정의(미슈파트)는 세상에서 말하는 정의와 다양하고 첨예한 견해의 차이가 있다. 성경이 말하는 정의는 추상적이거나 철학자의 사색을 통해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계시에 의한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시편에 따르면 “정의는 하나님의 보좌의 기초요. 우주의 기초다(시 89:14).” 정의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신성한 요구이다. 법은 그분의 척도요 정의는 그분의 저울이다.

크리스 마셜은 말하기를 “정의는 성경에서 가장 자주 반복되는 나타나는 주제들 중 하나다. 예를 들어 성적인 죄에 대한 단어가 약 90번 나오는 반면, 정의에 대한 히브리어와 헬라어에는 1,000번 이상 나온다.”

저자는 ‘희년’의 의미를 심도있게 소개한다. 예수님이 선포했던 희년이란 무엇인가? “희년은 거꾸로 이루어지는 혁명이다. 여기서는 꼭대기로부터 혁명의 불꽃이 타오른다. 하나님의 은혜가 권력자들과 부자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래서 그들은 긍휼히 여기는 눈으로 보게 되고, 자연 자원과 인간 자원을 재분배함으로써 희년에 참여한다. …

희년은 사회에서 개인이 토목과 이상을 통제하기 마련한 제도적 장치 기운데서도 탁월한 사례다. 자선을 부자들 개인의 덕과 의지에만 맡겨 두어서는 안 된다. … 희년은 정의를 경제활동의 새로운 규칙으로 삼으며, 그렇게 해서 사회생활의 피라미드를 평평하게 만든다(183-184쪽).”

일곱째, 저자는 교회가 어떤 공동체인지 상세히 설명한다. ①교회는 성령 충만의 공동체다 ②교회는 차별 없는 사회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새 가족일 뿐만 아니라 코이노니아 공동체다. 교회는 서로서로 함께 하는 공동체다(296쪽).”

③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증인이다 ④교회는 스스로 갱신하는 사회다. “참된 교회는 부단히 자신을 바라보며 회개를 통한 자기갱신을 추구해야 한다. 교회 갱신은 주님이 교회에 부여한 과제인 동시에 주님이 교회에 주신 가능성이다(304쪽).”

저자는 한국교회를 꾸짖지만, 교회가 ‘희망의 공동체’임을 분명히 밝힌다. “하나님 나라는 미래적인 세계 완성에 대한 약속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완성의 성취요 선취이므로 우리의 신앙은 근거 있는 희망으로서 기다리고 서두르면서, 그리스도가 우주적으로 영광을 받고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지는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교회는 주님을 기다리면서 산다(315쪽).”

필자는 ‘정의의 예언자’ 아모스 앞에 오늘의 한국교회를 호출하는 저자의 메시지에 크게 공감한다. 독자는 이 메시지를 통해 전해지는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경청하기 바란다. 오늘의 현실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강력히 추천한다.

송광택 목사 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