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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임회장 박승희 목사님

예배의 자세


로마서 12:1-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합당한 예배니라.


무엇을 하든지 자세가 중요합니다. 군인은 군인의 자세가 있고, 농부는 농부의 자세가 있습니다. 경주자는 경주자의 취해야할 자세가 있습니다. 그들의 자세 속에 그들의 속마음이 드러나 있고, 때로는 자세가 속마음 가짐을 바꾸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자세를 중요시 여겼습니다. 특히 예배자의 자세는 더욱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 4:23-24). 예수님께서는 지금 수가성의 우물가에서 그 여인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여인은 자신이 죄인으로 드러날 궁지에 몰리자, 예배를 들먹이면서 화두를 바꾸려고 했습니다. 자신의 삶은 엉망이면서 예배의 장소문제를 언급하면서 자신이 예배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자신의 죄성을 은폐할려고 예배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배를 이용하는 인간들의 타락상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자세의 문제임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성령과 진리로 드리라고 권면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강조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찾으신다는 것은 흔치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진정한 예배자를 보시기어렵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진정한 예배자를 찾고 계십니다. 바울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합당한 예배니라."라고 예배의 자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합당한 예배, 이상적인 예배가 있다는 말은 잘못된 예배가 있다는 말입니다. 예배가 다 예배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선 합당한 예배의 모습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거룩한 예배, 살아있는 예배입니다. 이 시간은 특별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의 자세가 어떤 것인지 하나님께서는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1. 예배의 동기를 점검하라

무엇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에게 예배의 동기를 점검하라는 말씀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중요한 것은 가장 먼저 동기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왜 예배를 드리십니까? 복받기 위해서입니까? 천당가기 위해서입니까?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입니까? 아닙니다. 종교적 혜택을 누리고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 입니까? 이 모든 것 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왜 예배드린다고요? 예배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예배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십니다. 주객이 전도되면 안됩니다.


영국을 여행할 때 제일 먼저 방문하는 곳이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입니다. 그곳에는 유명한 사람들의 묘가 있습니다. 리빙스턴을 비롯하여 엘리자베스 여왕, 음악가, 건축가, 시인, 정치가, 귀족 등 영국의 유명 인사들의 무덤이나 비석들이 그 사원 안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일종의 박물관이니까요.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본래는 그런 목적으로 세워진 곳이 아닙니다. 그곳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전이었습니다.


그러한 곳이 이제는 영국 왕이 취임하는 곳으로, 유명 인사들의 묘지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국의 역사를 보존한다든지 역사를 계승한다든지 또 관람객들에게 영국의 역사를 보여준다는 의미에서는 좋은 역할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사원 안에 들어가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묵상하고 그 하나님의 영광을 느끼고 나올 수가 있을까요? 사람들은 그 안에 들어가서 자기가 알고 있는 유명한 사람들을 확인하고 싶어합니다. 만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전 안에서 정말 시선을 두어야 할 가장 중요한 분, 홀로 찬송과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께는 무관심합니다. 성도들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마음이 다른 곳에 있다면 그는 참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마치 교회의 강대상의 화분에 꽂힌 꽃처럼 청중을 향하여 활짝 핀 꽃잎을 하고 있으면서. 하나님을 향해서는 온갖 철사와 끈으로 흉한 모습만 내보이는 예배당 안의 교인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전혀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자신의 아름다움과 영향력을 과시하는데 바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다.


문제는 그런 사람이 늘 그런 상태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어쩔 때는 아주 하나님께 집중했다가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하나님을 잊고 자신을 드러내기에 바쁜 어리석은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인 저도 장로님들도 권사님들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누구나 예전에 말씀드린 성모 마리아 상 앞의 여인처럼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자신을 섬기는 위선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위선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치명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위선 속에는 모든 수고가 헛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기쁨도 보람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교회의 봉사와 섬김에 기쁨이 없습니다. 불평과 원망이 가득합니다. 누군가를 위해 들러리를 서는 것처럼 허무하게 느껴집니다.

성가대를 해도 교사를 해도 헌금을 해도 남을 위해 희생당하는 느낌이 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마음이 없이 자신을 바라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예배를 드려도 감격이 없습니까?



2. 하나님의 기쁨인가 자기만족인가!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 사이에 갈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성도들에게는 동시에 만족되는 경우가 드’都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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