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주의(Realism)
- NYSKC
- Jan 1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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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주의란 일상적 사실성을 재현하려는 형태를 말한다
사실주의(寫實主義, Realism)는 낭만주의와 함께 19세기 후반에 성행된 문학의 경향이다.
발자크, 스탕달에서 비롯하여, 플로베르에서 확립되고, 다시 졸라의 자연주의를 낳았다.
자연이나 인생 등 문학의 대상을 객관적 태도로써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고 하는 작가의 자세라는 의미로서는 묘사주의라고도 번역된다.
보통 사실주의라고 번역되는 의미에서는 유형적인 표현보다 대상의 개성적 특징을 명확히 묘출(描出)하여, 그 미화(美化)나 주관에 의해 대상의 변모를 피하고, 어디까지나 객관적으로 사실을 표현하는 방법을 말한다.
자연주의는 그것을 다시 실증주의(實證主義)와 과학적 방법에 의해서 해부하고 분석하려고 한 것으로서, 근대 과학의 성과에서 의식적으로 생겨난 것이다.
사실주의를 광의로 해석하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예술은 자연을 모방한다"라고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모든 예술의 근본적 요소라고 생각된다.
극사실주의 [hyperrealism]는 래디컬리얼리즘(radicalrealism). 슈퍼리얼리(superrealism),
포토리얼리즘(photoreaslim)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1960년대 후반 유럽과 미국에서 시도되었는데, 본래는 1962년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발생하여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끼쳤던 전위미술인 팝 아트(pop art)의 영향 아래 발생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몸적물인 대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나 주관을 일절 배재하여 마치 사진을 보듯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상 역시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없는 인물이나 장소를 다룬다. 극사실주의는 이미지화하려는 작가의 의식조차를 억제하려는 점에서 팝 아트와 구별된다. 실제로 사진의 슬라이드를 직접 사용하기도 하는데, 플라스틱으로 제작되어 실물과 거의 완벽하게 같은, 땀구멍까지 묘사된 인물의 조각상과 같은 작품들로 많이 알려져 있다.
신사실주의(Neorealism)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이탈리아에서 꽃핀 문학·영화 운동을 말한다 전쟁의 원인이 된 사건과 전쟁 전후에 생겨난 사회문제를 사실적으로 다루고자 했다.문학적으로 볼때 1920년대에 뿌리를 둔 신사실주의 문학운동은 20년 가까이 파시스트 지배로 억압당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말 파시스트 정권이 몰락하자 다시 힘차게 등장했다.
신사실주의는 그 바탕이 된 이탈리아 초기 사실주의 운동과 전체적인 목표는 비슷하지만, 파시스트 정권의 탄압·저항·전쟁 등이 재능 있는 작가들에게 심어준 격렬한 감정·경험·확신을 원동력으로 삼아 힘차게 솟구쳐올랐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1930, 1940년대에 날카로운 사회의식을 가진 미국과 영국의 작가들이 이탈리아 문학작품을 번역한 것도 이 운동을 더욱 촉진하는 추진력이 되었다.
신사실주의의 뛰어난 작가들로는 노벨상 수상자인 시인 살바토레 콰시모도와 소설가인 알베르토 모라비아, 이그나치오 실로네, 카를로 레비, 바스코 프라톨리니, 카를로 베르나리, 체사레 파베세, 엘리오 비토리니, 카를로 카솔라, 이탈로 칼비노, 쿠르치오 말라파르테(전쟁 이후의 작품), 카를로 에밀리오 가다 등이 있다.
파시스트 시절에도 신사실주의 작품이 이따금 있었으며, 그러한 경향을 대변하는 최초의 작품은 아마도 모라비아의 〈무관심한 사람들 Gli indifferenti〉(1929)일 것이다. 이그나치오 실로네는 〈폰타마라 Fontamara〉(1930)를 위시하여 스위스 망명 때 쓴 반(反)파시스트 작품들로 구체적인 명성을 얻었다. 엘리오 비토리니는 헤밍웨이풍의 훌륭한 작품 〈시칠리아에서 나눈 대화 Conversazione in Sicilia〉(1941)에서 파시스트 정권에 대해 간접적으로 비판을 가하고 있다.
많은 신사실주의 작가들은 숨거나(모라비아), 감옥에 갇히거나(파베세·비토리니), 추방당하는(실로네·레비)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들(비토리니·칼비노·카솔라)이 저항운동에 가담했으며, 일부는 헤르메티시즘(콰시모도) 같은 내성적(內省的) 운동이나 다른 사람들(파베세·비토리니)의 작품을 번역하는 데서 피난처를 찾았다.
전쟁이 끝나자 신사실주의 운동은 힘차게 일어났다. 바스코 프라톨리니는 자전적인 작품을 뒤로 하고 피렌체 빈민들의 삶을 감동적으로 생생히 묘사한 〈거리 Il quartiere〉(1944)와 신사실주의 작품의 정수로 손꼽히는 〈가난한 연인들의 이야기 Cronache di poveri amanti〉(1947)를 발표했다. 쿠르치오 말라파르테는 초기에는 파시스트당에 충성을 바쳤지만, 얼마 후 그들과 관계를 끊고 전쟁에 대한 2편의 힘찬 소설 〈카푸트 Kaputt〉(1944)와 피부 La pelle〉(1949)를 썼다.
엘리오 비토리니는 자신의 저항운동 경험을 〈인간과 비인간 Uomini e no〉(1945)에서 솔직히 적고 있다. 카를로 레비는 〈에볼리에서 멈추신 그리스도 Cristo si è fermato a Eboli〉(1945)에서 이탈리아 남부(그가 추방당한 곳) 농민들의 참상을 따뜻한 마음으로 묘사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다른 작가들도 그당시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또는 있던 그대로 전달해야 한다는 충동을 느꼈다. 살바토레 콰시모도는 헤르메티시즘에서 빠져나와, 〈하루 또 하루 Giorno dopo giorno〉(1947)를 시작으로 전쟁과 사회 문제에 대한 시집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모라비아도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여 뛰어난 신사실주의 소설을 많이 발표했다. 체사레 파베세는 파시스트 감옥에서 겪었던 생활을 2권의 소설로 묶었고, 현대의 절망을 다룬 내향적인 소설을 많이 썼다. 이탈로 칼비노는 〈거미집속의 오솔길 Il sentiero dei nidi di ragno〉(1947)에서, 카를로 카솔라는 〈목재 자르기 Il taglio del bosco〉(1959)·〈부베의 연인 La ragazza di Bube〉(1960)에서 자신들의 저항운동 경험을 감동적으로 표현했다.
영화에서의 신사실주의 운동은 이탈리아 문학운동과 병행하여 일어났다. 신사실주의 영화는 다큐멘터리 같은 객관적인 표현 양식을 갖고 있었다. 배우들은 평범한 상황에 처한 보통 사람이거나 또는 그렇게 보였다. 신사실주의 영화는 서둘러서 조잡하게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전통적인 영화제작이 갖고 있던 현실도피적인 이상주의에서 과감히 벗어나 현실의 주제를 대담하게 다룸으로써 전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런 류의 영화로 처음 나온 것은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무방비 도시 Open City〉(1945)로, 나치 점령시 이탈리아인들에게 강요된 난폭한 행위를 보여주는 반파시스트 작품이다. 로셀리니의 〈전화(戰禍)의 저편 Paisan〉(1946)도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전쟁을 6개의 짧은 사건으로 구성한 영화로, 〈무방비 도시〉와 비슷한 종류의 비참한 내용이다.
다른 중요 작품으로는 이탈리아 노동자계급의 일상 생활을 다룬 비토리오 데 시카의 〈구두닦이 Shoeshine〉(1946)·〈자전거도둑 The Bicycle Thief〉(1948)과 시칠리아의 가난한 어부 이야기를 다룬 루키노 비스콘티의 〈흔들리는 대지 La terra trema〉(1948)가 있는데, 이 작품에는 직업배우가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1950년 이후 이탈리아 영화는 사실주의에서 환상적이고 상징주의적이며 문학적 주제를 다루는 경향으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