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국장 박재준목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암 5:21-27


들어가는 말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예배입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지으실 때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었고 특히 우리들의 형상대로 우리들의 모양대로 우리들이 만드시고 심히 기뻐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들어져서 하나님을 심히 기뻐하게 해야 할 마땅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였고 또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없는 존재로 전락해 버리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하신 하나님이라 인애가 풍성하셔서 자기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없는 존재가 된 부끄러운 모습을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가죽옷을 입고 나올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하나님 앞에 나올 수는 있었지만 과거와 같지 않았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거니시는 것을 보면서 동행하며 교통하는 삶을 살 수는 없었고 또 생명나무에 화염검을 두셔서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과 영원토록 살 수 있는 존재도 될 수 없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이 주신 풍요로운 땅보다는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나서 땀을 흘리고 수고하지 않으면 살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만들어진 피조물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배와 예배 곧 영광을 돌릴 때만이 만나주시고 찾아주시는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즉 예배를 통해서만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방법 즉 하나님과의 회복을 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회복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토록 사람을 통해서 경배를 받으시고 찬양을 받으시며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함으로 임재 하셔서 예배를 받으시고 우리에게 축복과 은혜를 내리시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삶입니다.

우리의 삶속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얼마나 축복된 삶이겠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배하는 백성이었습니다.

가정에서부터 시작하여 동네에는 회당을 지어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배우고 하나님의 법도와 계명을 지키는 것이 마땅하였습니다.

민족적으로는 3대 절기를 지키면서 예배를 지켰습니다.

예컨대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을 가르킵니다. 이 세 절기는 공통적으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기념하는 것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을 다하여 드려야 하는 절기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되는 절기와 제사로 말미암아 그 영적 의미와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형식에 매여 억지로 준수하게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형식(Form)을 나쁜 것으로 여기지 마시길 바랍니다

Form은 상관없지만 그 Form 안에 있어야 할 신령과 진정이 빠져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므로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드려졌던 예배의 순수성으로 만들어진 Form이 이제는 외형적(external)이며 표면적인(outward) Form만을 가지고 예배가 드려지는 모습이 되고 말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형식적이며 외식적인 태도를 가증히 여기시며, 오히려 마음도 생각도 없는 제사를 중단하도록 요구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기념하며 자손대대로 지킬 것을 명령하셨던 절기를 싫어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절기를 지키며 예배를 드린다고는 하지만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지 못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관점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배를 포기하도록 하자거나 혹은 우리들에게 예배를 드리도록 하게 하신 것을 후회하시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돌아서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1.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절기와 제사를 드리자는 것입니다.

암 5:21-22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기를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해 주신 것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또 짐승을 태워서 드리는 ‘번제’와 곡식으로 드리는 ‘소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은 모든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는 의식으로서 참다운 회개와 더불어 하나님과 화해를 이끄는 화목 제사였습니다(삿20:26).


여기서 ‘화목제’란 하나님과 인간과의 화목을 회복하기 위하여 드리기 보다는 화목한 사실에 감사하는 제사를 말합니다. 그리고 화목제의 종류에는 지나간 축복에 대해 감사하는 감사제가 있고, 장차 받을 축복의 조건으로 드리는 서원제가 있으며, 기도의 보조물로 드린 자원제가 있습니다(레3:1-17;7:11-21;7:28-34).


그러나 그들은 절기를 지키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치 않고, 더 이상 마음에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 보시기에 위선과 가증스러움이 가득한 자세로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죄하심을 체험하지 못한 자는 아무리 많은 횟수의 제사를 드려도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화목제를 돌아보지 않겠다고 하신 것은 저들이 진정으로 감사하거나 서원하고 또 자원하여 드리는 것이 아니라 위선으로 가득 찬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를 믿는 자들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과 서원하는 것을 자원하는 마음이 없이 어떤 체면 유지를 위해 위선으로 드린다면, 그 예물은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께 많은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잠 15:8”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여기서 ‘제사’는 진정한 제사의 정신을 상실한 채 단지 의례적인 형식과 율법의 외적 준수에만 집착하여 드리는 값비싼 제물의 제사를 가리키며, ‘기도’는 비록 그 외적 형식은 미비하나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인 순종과 헌신의 기도를 의미합니다.


성경에서는 이처럼 외적 형식에 대한 내적 순종의 우월성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호 5:6, 암 5:22, 마 6:5,6).

삼상 15: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순종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성과 성의가 없는 ‘이스라엘의 절기’를 미워하고 멸시하시며 성회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즉 이 말은 거창한 종교 의식만 있고 마음이 없는 외식하는 자들을 미워하신다는 뜻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지 않으면서 겉치레로 예배를 드리는 그들을 멸시하신 것입니다.


다윗의 천막이 무너지고 퇴락하고 틈이 생긴 이유는 성막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예배가 형식적이며 외식적인 것으로만 하나님께 나아갔기 때문이었던 것처럼 교회가 무너지고 나라가 타락하고 무너지며 가정들이 파괴되는 이유들은 바로 예배가 무너져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이 들어가서 백성들이 하나님을 높이며 경외하며 예배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유럽을 비롯하여 구라파를 그리고 북미와 아시아의 한국에 복음을 씨를 뿌리시고 세계 선교를 주도적으로 이끌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나라에 신앙이 점점 쇠퇴하고 있으며 뒤 이어 한국도 그처럼 성령에 충만하여 하나님을 바라던 간절함과 진정의 열정이 점점 식어 형식만이 남아가는 듯한 것을 우리 모두가 바라보고 있으며 한탄하고 있습니다


예배가 무너지면 교회가 무너지고 나라와 가정이 파멸이 온다는 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요 또한 축복의 말씀인 것입니다

Nyskc Movement는 바로 예배회복운동입니다

예배회복운동은 현재에 형식적이며 외형적으로 들여지는 예배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들여지는 예배로 나아가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하고 다시 리턴하자는 운동입니다 우리들이 이와같이 외형적이고 형식적인 예배로 하나님을 속이고 있는 것은 가증한 것이며 그것은 마음에도 없이 드렸던 가인의 제사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인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는 자기 자신의 정성과 마음을 다 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가 안색이 변하고 동생을 살인한 과정을 보면 결코 그는 하나니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린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자기의 의로 제사를 드렸고 자기의 노력으로 하나님 앞에 나갔으며 꼭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거부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그 자신의 땀과 노력으로 준비한 제물이었고 또 하나님 앞에 나아가 드렸다는 것은 가상하지만 그러나 그에게는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의 뜻을 세웠기 때문에 결국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 들킨 것이요 형식적인 제사의 모형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결국 가인의 예배는 무너졌고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잃게 되는 불쌍한 인생이 되었듯이 형식적인 예배는 결국 하나님과의 교통이 단절되어 스스로가 살아가며 그저 하나님의 주신 인간의 생명이 끝나는데 까지만 살아가는 제한적이며 유한적인 인생이요 영원한 생명을 잃고 방황하는 불쌍한 존재가 된 것처럼 우리들의 외식적인 예배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점점 교회의 무너짐으로 나타날 것이며 나라와 가정이 무너지는 현상으로 보여지게 될 것입니다


사 1:11-13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 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2. 공의와 정의를 앞세우는 예배가 필요합니다.

암 5:23 “네 노래 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그런 이스라엘 백성의 잘못된 신앙의 자세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래를 부르는 것과 비파를 연주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 것은 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과 회개의 표현에서가 아니라 쾌락과 젖어 노래 부르고 술로 인해 흥겨워 비파를 퉁겼기 때문입니다.


솔로몬 성전 건축 이후에 희생 제물과 더불어 찬양대의 찬양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일부가 되었습니다(대상 16:41-42 23:5).

그들은 나팔이나 제금과 비파 등의 악기도 사용하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이 겉으로 화려한 예배를 많이 드렸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실속이 없고 아무런 가치가 없었으므로 결국 이를 그만두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아무리 멋진 예술로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해도 예배의 본질이 실종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도 결코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현대의 젊은이들이 술집에서 젓가락을 두드리면서 복음 성가를 부르고 술에 만취하여 기타를 치면서 찬양하는 것을 간혹 볼 수 있는데 이런 찬양은 하나님께서 결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광란에 까가운 찬양집회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느냐 하는 것은 보는 사람의 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찬양을 하고 있는 자들의 영적인 상태 다시 말하면 그들의 중심이 어떠하느냐가 더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보는 자가 실족할 수 있는 것이라면 아무리 하나님께서 허락된 것이라도 조심할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암 5:24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

이 귀절의 의미는 물이 수로를 따라 자연스럽게 흐르듯 세워진 법과 정의도 자유롭게 시행되게 하라는 뜻입니다. 즉 재판관과 통치자는 법을 옳게 시행하여 편파와 뇌물로 인하여 공법과 정의의 흐름이 막히지 않게 하라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 정의가 통하고 인정을 받아서 악의 영향권을 약하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아모스는 인간 사회에 구현되어야 할 원리로 ‘공법’과 ‘정의’보았다. 공법은 국가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공의는 개개인이 서로 협력하여 함께 이루어 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자연스럽게 시행되는 사회를 만드는 책임을 우리가 부여받았음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선한 사람과 의무와 책임에 충실한 사람이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현대사회는 이런 면에서 정의와 공의가 약한 것이 큰 약점입니다


신앙생활을 몇 년을 하였느냐 하는 것은 싱앙의 경륜을 뜻하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것도 몇 년을 하고 나면 겉모습에서도 그 사람의 직업을 알 수 있고 그 사람의 환경과 조건에 따라 인품이 나오는 것인데 20년을 신앙생활 한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다 똑같이 그리스도의 향기가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하며 살았다면 경건이라는 거룩한 신앙인이 되어야 하는데 세속과 너무나 구별없는 모습 속에서 회개할 수 밖에 없는 존재로 전락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옥에 가는 사람들에게 신앙이 무엇인가 물으면 거의 대부분이 크리스챤이라고 답한다는 조크가 있는데 농담이 아닐 것입니다


(암 5:15)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지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생활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고 법을 올바르게 지키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바라시는 신자들의 삶이요, 빛과 소금으로서의 삶인 것입니다.

(마 5:13,14)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 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오면서 바른 삶과 정직함이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른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의 의와 정의가 넘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우리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바른 신앙적 삶이며 또 Nyskc Movement를 하는 하나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Nyskc는 영혼에 호흡을 위한 기도와 영혼의 양식을 위한 성경애독을 강조하며 신조로 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신앙의 원칙으로 삼으면서 살아가고자 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성도의 열매가 무엇으로 나타나겠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고 전도입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며 또한 구원의 확신과 기쁨과 감사로 나타나는 것이 복음 전파 곧 개인전도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구원에 감격하고 기뻐한 빚진자의 모습에서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와같은 기쁨이 없으며 따라서 복음전파 즉 전도를 못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교회 안에서의 생활과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자세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즉 이중적이라는 것이죠 그러므로 내 신앙을 증거할 수 없는 안타까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토록 자기 자신이 정의와 공의를 벗어나 있는데 복음이 전파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잘못된 생각일 것입니다

경건한 사람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는 향기가 없으므로 결국은 전도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구원의 기쁨이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인류에 구 많은 사람들 중에 내가 주님의 부름을 받았다 택함을 입었다 하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과 감격이며 축복인 것입니다

이렇게 축복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인의 향기로 나타나게 되어 하나님께 마음과 정성과 시간을 드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축복의 도리를 하는 것은 아벨의 신앙이며 아브라함의 신앙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헌신의 모습입니다 따라서 NYSKC의 5대 신조와 원칙은 이러한 점에서 예배가 회복된 성도들에게 나타나는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은 통회 자복하는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법에 대하여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에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그 규례를 제대로 지키기는 어려웠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암 5:25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희생과 소제물을 내게 드렸느냐”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하나님께 드린 제사는 말씀대로 온전하게 드릴 수는 없었습니다 이유는 광야에서의 방랑 기간 중이었으므로 제대로 제물을 가져올 수가 없었던 큰 원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광야 생활 동안 그들을 보호하시며 인도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이 당신께 올바른 의무를 행하지 못하는 삶을 살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롬5:5,8).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제사에 열중하고 그것만을 요구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을 향한 신령과 진정의 예배와 상한 심령으로 나아오며, 하나님의 경외하며 긍휼을 구하는 그 모습을 더욱 원하였으며 그것이 하나님은 예배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시 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암 5:26 “너희가 너희 왕 식굿과 너희 우상 기윤 곧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만들어서 신으로 삼은 별 형상을 지고 가리라”

암5:26절에 나오는 ‘식굿’이란 ‘천막’ 또는 ‘움집’이란 뜻으로 이방 신의 사당을 가르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기윤’이란 이스라엘 사람들이 별을 숭배하기 위해서 세운 신상(神像)을 가리킵니다. 더구나 눈에 보이는 작은 사당을 미신용으로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으며 또 별의 형상을 만들에서 자신들의 신을 삼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에게 바른 예배를 드리기 보다는 줄곧 이방신들을 섬기는 데 빠져 있었다.

세계 어느 나라이든지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곳에는 우상을 섬기고 있는데 한국에도 미신을 믿는 사람들이 몸에 지닌다든지 아니면 집이나 사업장에 부적이라는 것을 부착하거나 소지하고 다닙니다. 비싼 것은 한 장에 몇 만 불도 갑니다. 그것을 문지방에 붙여 걸거나 몸에 차고 다니면 어려움이 화가 오지 않는 다는 미신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뒤에도 여전히 구습을 좇는 삶을 살고 있다면, 우리는 죄악 된 옛 습성을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엡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주 안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예배 의식을 쫒아 형식적이며 외식적인 것으로 예배를 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행위를 기뻐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20세기의 세례 요한 역할을 해왔던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유행하고 있는 질병에 대해 종종 언급하였다. “우리의 근본적 문제는 인종 문제가 아니다. 또한 전쟁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의 근본적 문제는 중심의 문제이다. 우리는 마음이 변화되고, 마음이 바뀌어 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회개를 미루는 사람은 결국 그 영혼이 사단에게 저당 잡혀 있는 사람이다.”(T. 맨톤)

“다시 범죄를 행치 않는 것이 참된 회개이다.”(마틴 루터).

“영적인 성숙은 학식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는 데서 온다.”(레나르 라빈힐)


나가는 말

하나님은 참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들여지는 바른 자세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며 또한 그들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있어서 그 형식을 중시하기보다는 우리와 생명을 나누고 삶을 나누며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실현되도록 최선을 다해야만 합니다

공의가 있고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변화와 생명을 이끌어 내게 되며 피상적인 교회생활에서 피상적인 형식과 습관에서 탈피하여 내실 있는 신앙생활을 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예배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하고, 삶이 변화되는 성공적인 예배를 드리도록 성령께 위탁하며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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