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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의 최후의 심판

당시 네덜란드 시대의 불안을 표현한 작품



보스의 <최후의 심판>은 당시 네덜란드 시대의 불안을 표현한 작품이다.

현존하는 작품들 중 가장 큰 그림으로 야심을 갖고 그렸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 작품 왼쪽 날개에는 필리프의 주문대로 <대 성 야고보 St. James the Greater>가 오른쪽 날개에는 <성 바보 St. Bavo>가 그려져 있다.

순례자들의 수호성인 야고보는 고행자의 모습으로 광야를 걷고 있다.

그의 모자에는 가리비 조개 장식이 달려있는데 순례자 배지이다.

네덜란드 귀족 태생의 바보는 실내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서 있는 모습이다.

전설에 의하면 크리스천으로 개종한 후 바보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자신은 광야에서 은자로 살았다.

패널화 날개를 열면 아담과 이브의 타락으로 시작되는데, 최후의 심판에 인류 최초의 사건이 포함된 건 드문 예이다.

왼쪽 날개에는 에덴동산에서의 타락한 아담과 이브를 <낙원 Paradise>의 장면으로 장식했고 오른쪽 날개에는 이와 반대되는 <지옥 Hell>을 처참한 상황으로 묘사했다.


<낙원> 하단에 아담이 잠들었을 때 그의 갈비뼈 하나를 취해 하나님이 이브를 창조하는 장면이 있고 그 위 선악과를 따 먹게 하려는 유혹이 묘사되어 있으며 중앙에는 칼을 든 천사의 위협을 받고 낙원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의 모습이 있다.

상단에는 하나님을 반역한 천사들의 추방이 묘사되어 있으며 천사들은 지상에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괴물로 변한다.

타락한 천사들의 왕은 루시퍼Lucifer이며 그가 아담을 질시하여 죄를 짓게 만든 장본인이다.

보스는 전설로 내려오는 이야기에 근거해 죄의 기원과 이에 대한 인과응보의 심판을 연결시켰다.



보스는 최후의 심판이 불로써 이루어지는 참상으로 묘사했는데,

13세기의 찬송가 『디에스 이라에 Dies Irae』는 최후의 심판을 “분노의 날, 세계가 불에 타 재로 사라지는 날”로 예고했다.

보스는 요한이 쓴 묵시록에 서술된 그리스도가 정죄하기 위해 재림하는 최후의 날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요한이 환영으로 본 묵시를 드라마처럼 펼쳐 구체적으로 서술한 신약성서 마지막 권인 요한묵시록은 15세기 말 시대적 불안으로 인해 널리 읽혀졌다.


그분은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모든 눈이 그를 볼 것이며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입니다.

땅 위에서는 모든 민족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칠 것입니다.(요한계시록 1:7)



화면 중앙 넓게 펼쳐진 계곡은 최후의 심판의 장소로 알려진 여호사밧 골짜기Valley of Jehoshaphat를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구약시대 예언자 요엘은 최후의 날을 예고했다.


그 날, 나는 남녀 종들에게도 나의 영을 부어주리라.

나는 하늘과 땅에서 징조를 보이리라.

피가 흐르고 불길이 일고 연기가 기둥처럼 솟고

해는 빛을 잃고 달은 피같이 붉어지리라.(요엘 3:2~4)


뭇 민족은 떨쳐 나서

여호사밧 골짜기로 오너라.

내가 거기에 앉아서

사방 모든 민족을 심판하리라.(요엘 4:12)


보스는 사탄의 군대가 저주받은 자들을 무리지어 공격하는 장면을 상세하게 묘사하면서 영원한 고통이 시작되고 있음을 표현했다.

신비주의를 추구한 선각자들은 지옥을 영원히 하나님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가르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지옥은 그런 정신적인 고통의 상태가 아니라 육체적으로 심한 아픔이 끊임 없이 지속되는 악몽과도 같은 곳으로 상상되었다.

보스는 다수가 생각하는 그런 육체적인 고통이 끊임없이 지속되는 지옥을 묘사했다.

저주의 심판을 받은 자들은 놀라며, 겁에 질리며 벌거벗겨진 육체는 토막으로 잘리우고, 뱀에 물리며, 용광로 속에서 달궈지고 잔혹한 고문을 가하는 기구 속에 갇혀진다.

고통을 가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화면 중앙에 배가 불룩한 생물체가 한 남자를 쇠꼬챙이에 끼워 양념을 바르고 천천히 굽는다.

발 아래 계란 두 개를 바닥에 놓고 여성 악마는 저주받은 자를 프라이팬에 올려놓고 굽는다.

갖가지 괴물들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오른쪽 날개 <지옥>에는 갈귀처럼 생긴 것을 오른손에 든 괴물이 염라대왕처럼 위엄을 갖추고 있으며 발 사이로 꼬리가 앞으로 나와 있다.

뒤로는 불구덩이가 여기저기 있어 불의 재앙이 땅의 곳곳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중세에 문학을 통해 지옥이 다양한 모습으로 소개되었다.

중세 사람들은 악마가 눈에 보이지 않는 형상이 아니라 온갖 기괴한 동물의 형상을 하고 나타나는 창조물들로 인식했다.

악마는 쥐, 개구리, 두꺼비, 파리, 곤충, 기생충, 물고기, 개, 곰, 돼지, 뱀 등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믿었다.

문학에서 지옥에 관한 일반적인 형식은 지옥을 다녀온 사람이 모험담을 회상하는 방법으로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이었다.

이런 형식의 가장 유명한 것이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편 Inferno’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의 큰 별로 불리우는 그의 작품은 이탈리아 예술가들에게 다양한 영감을 제공했다.

그러나 북유럽에서는 익명의 작가가 쓴 『툰데일의 지옥 환영 Tundale’s Vision of Hell』과 나사로가 부활 후 전한 연옥의 묘사가 더 보편적으로 알려졌다.

『툰데일의 지옥 환영』은 님베겐Nijmwegen 출신 출판업자에 의해 네덜란드어 판으로 1484년 스헤르토겐보스에서 출간되었으며 보스가 이 책을 읽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가 <지상 쾌락의 동산>에서 <지옥> 패널에 그린 내용은 튠데일의 지옥 환영과 관련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보스는 그 밖의 지옥에 관한 문학작품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작품에 등장는 특정한 묘사들인 불구덩이, 용광로, 호수, 강 등을 예로 들면 문학에서 일반적으로 지옥의 요소로 삼았던 것들이다.

화면 중앙 오른편에 불에 달궈진 자를 망치로 두들기는 인간 형상을 한 악마는 보스 이전에 최후의 심판을 묘사한 화가들의 작품에서 발견된다.

보스가 문학작품과 과거 회화에서 일부 인용했음을 알게 해준다.

바위를 기어올라 저주받은 자의 피를 먹어치우는 두꺼비, 독사, 용 등도 과거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사본장식화가들도 사본의 가장자리를 괴물들로 장식했는데 보스가 이런 그로테스크한 것들에서 영감을 받은 건 당연하다.

사본장식화가의 모티프를 변형한 것으로 오리 머리를 한 괴물이 왼손에 활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화살에 맞은 인간을 나무에 거꾸로 매단 채 걸어가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보스는 이런 익히 알려진 괴물과 동물들 외에도 자신이 고안한 다양한 형상의 괴물과 동물들을 삽입하여 지옥의 세계를 더욱 더 넓고 복잡하게 구성했다.

화면 하단 오른편 커다란 칼을 짊어진 날개 있는 괴물은 보스의 창조물이다.

그는 사본장식화가의 삽화를 커다란 패널화로 확대시킨 최초의 화가였으며 자신의 창작을 보태어 구성을 더욱 더 파노라마가 되게 했다.

그의 지옥도는 다양한 형상들로 복잡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되었다.

『툰데일의 지옥 환영』을 포함해서 최후의 심판에 관한 문학 서적과 회화 그리고 설교를 통해서 저주를 받게 되면 어떠한 벌을 받게 되는지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란 어려운데, 당시의 문학과 미술 그리고 관습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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