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의 무소유는 한 인간의 깨달음일뿐이다

법정 승의 대표 저서인 ‘무소유’ 원문이 24일 무료로 일반에 공개됐다.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가 출판사로부터 저작권을 승계받아 ‘무소유’를 일반인들이 누구나 접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맑고 향기롭게’는 이날 법정의 저서 ‘무소유’에 담긴 35편의 글 전문을 온라인에서 모두 공개했다. 해당 사이트에 있는 ‘말씀’ 게시판의 ‘주요 저술’란으로 들어가면 무소유 전문을 볼 수 있다.


‘맑고 향기롭게’ 측이 책 전문을 공개한 것은 자신의 저서를 절판하라는 스님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법정이 입적 이후 ‘무소유’가 품귀현상을 빚으면서 고가(高價)에 매매가 이뤄지는 등 부작용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강원도 산골, 화전민이 살던 주인 없는 오두막을 빌려 홀로 땔감을 구하고 밭을 일구며, 청빈의 도와 맑고 향기로운 삶을 실현하고 계신 법정(法頂)스님은 30년이 넘는 침묵과 무소유의 철저함으로 이 시대의 가장 순수한 정신으로 손꼽히고 있다.


1954년 당대의 큰 스승이었던 효봉의 제자로 출가하였고 70년대 후반 송광사 뒷산에 손수 불일암을 지어 홀로 살았다. 그러나 스님의 명성을 듣고 찾아오는 이들이 많아지자 수필집 <버리고 떠나기>를 쓴 후 훌쩍 강원도로 들어가 거처를 숨기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저서로는 <무소유> <서있는 사람들> <산방한담> <물소리 바람소리> <텅빈 충만> <버리고 떠나기>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등의 수필집과 류시화 시인이 엮은 <산에는 꽃이 피네>가 있다


그가 말하는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 젖 한 깡통, 허름한 요포 여섯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 뿐이오."


마하트마 간디가 1931년 9월 런던에서 열린 제2차 원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도중 세관원에게 소지품을 펼쳐 보이면서 한 말이다. K. 크리팔라니가 엮은 <<간디어록>>을 읽다가 이 구절을 보고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의 내 분수로는.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살만큼 살다가 이 지상의 적(籍)에서 사라져 갈 때에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것 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된 것이다.

물론 일상에 소용되는 물건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될 정도로 꼭 요긴한 것들 만일까?

살펴볼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그의 무소유는 이처럼 오늘을 살고 있는 물질 문명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적지 않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없다

그의 저서를 보면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 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 있지만, 그마 만큼 많이 얽히어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렇게 철저하게 무소유를 주장하며 살았던 법정이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과연 그리스도인들은 법정에 대한 무소유에 대한 의견을 어떻게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무소유를 실천하며 살으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나 그분 자신이 이땅에 오실 때 물질인 육신을 입고오시지 않았는가

이 땅에 살면서 물질에 소중함도 가르켜 주셨으며 또한 물질의 중요성을 말씀하시면서도 그 물질을 소유하기 보다는 나누어야 하는 것임을 강조하셨다


그래서 청지기 정신을 가지라고 하셨고 또한 소유를 늘리기 보다는 천국에 쌓아 두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라고도 하셨다

자수성가한 부장 청년이 찾아 왔을 때 너의 소유를 다 팔아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고도 하셨다 그리고 부자 즉 소유를 좋아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 귀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 힘들다고 하셨다


이처럼 소유하기 보다는 나누기를 좋아하고 소유하기 보다는 소비하는 것이 났다고 했다

법정이나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면 이렇게 법석을 떨지 않아도 될 것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왜냐하면 이미 이천 년 전에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가리키시며 물질은 하나님의 소유일뿐만 아니라 그 소유인 물질은 다 없어질 것이라고 분명히 하였기 때문에 물질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어리석은 것임을 분명히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내 것이라고 하셨다 이것은 소유에 관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인생에 가장 복된 것은 소유를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사용할 것을 강조한 말씀이다

한 인간이 무소유를 강조한 것이 그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맑고 향기로운 샘물’이 되었다는 것에 대해서 너무나 당황스럽다는 것이다


‘산은 산이로되 물은 물’이라고 했던 어떤 승의 죽음에 많은 사람들이 애도한 것을 보았다

또 무소유를 실천하며 살았던 한 사람의 승을 보며 참 진리를 삶을 보는듯 하다고 감탄하며 강도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것을 권면한다


한 인간에 깨달음이 어찌 전능하신 하나님과 비교할 수 있으며 육신을 입고 이땅에 오신 예수님과 비교할 수 있으랴

그러면서도 떨처버릴 수 없는 하나가 있다면 법정이 말한 것처럼 집착에 관한 것이다


“집착(執着)이 괴로움인 것을, 그렇다, 나는 난초에게 너무 집념해 버린 것이다. 이 집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난을 가꾸면서는 산철(승가의 遊行期)에도 나그네길을 떠나지 못한 채 꼼짝 못 하고 말았다. 밖에 볼일이 있어 잠시 방을 비울 때면 환기가 되도록 들창문을 조금 열어 놓아야 했고, 분(盆)을 내놓은 채 나가다가 뒤미처 생각하고는 되돌아와 들여놓고 나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말 지독한 집착이었다.

며칠 후, 난초처럼 말이 없는 친구가 놀러 왔기에 선뜻 그의 품에 분을 안겨주었다. 비로소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날듯 홀가분한 해방감. 3년 가까이 함께 지낸 '유정(有情)'을 따나 보냈는데도 서운하고 허전함보다 홀가분한 마음이 앞섰다.


이때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의 의미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라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 역시 물질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자

소유에서 벗어나 소유하나 그러나 무소유가 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나는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나는 내 것을 주장하지 말고 하나님 것임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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