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창문들 저무네.
거리엔 부옇게 물길이 번지고 벗겨진 대지의 표면이
비늘처럼 흘러가네.
햇살의 따가운 못질 뒤에도 나무들은 자꾸만 제 잎 쥐고
휘청거리네.
버려진 오르간처럼
켜켜이 쌓인 공사장 파이프들이 저녁을 연주하네.
노을 따위를 발음하면 삶은 늘 뿌리부터 뒤척인다고,
저기 어깨 둥글게 웅크려 철야기도를 준비하는 가로수.
공중을 만지는 평화로운 연기를 보네.
바람은 오후 6시를 읽는 기술, 혹은
복음. 흔들려야지. 흔들려야지.
깃대처럼 골목에 나를 꽂아두네. 떨어져 빈
나뭇잎 자리까지,
다만 모든 것이 바람의 영역이네.
늦은 상점의 문이 스르륵 밀렸다가 절로 닫히네.
누구일까. 누구일까.
어둠 의 긴 목이 자꾸 기울고 사람들은 정물처럼 늙어가네.
모두가 바람의 존재를 믿었지만 아무도 그의 뼈마디를 보지 못하네.
푸르르,
저마다의 십자로를 건너는 시간,
허파꽈리처럼 웅크려 핀 생의 바람꽃들,
지천이네. 자라, 자라, 잠들지 않는 한밤의 환한 집회를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