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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예배와 회복된 예배 - 윤사무엘

  • Writer: NYSKC
    NYSKC
  • Jan 15, 2021
  • 8 min read

강의요약


“무너진 예배와 회복된 예배”


윤사무엘 목사 (Nyskc Learned Society 부학회장)


1. 다윗의 무너진 천막과 하나님의 심판


나이스크의 요절말씀인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일으켜서 옛적과 세우고” (암 9:11)은 주전 8세기에 북왕국에서 활동한 아모스의 회복예언에 관한 말씀이다. 당시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던 때였는데 북왕국이 그 어느 때보다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부강했으며, 군사적으로 막강했고, 정치적으로 안정했으며, 문화적으로 찬란했다. 그러나 영적으로 가장 부패하고 타락한 시기였다. 여기서 말하는 다윗의 ‘무너진 천막'(the tabernacle of David that is fallen)이란 참된 예배가 무너졌음을 말한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하나님의 제단이 무너져 있음을 발견하였다.(왕상 18:30, ’저가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수축하되‘ He repaired the altar of the LORD that was broken down.) 바알과 아세라를 좇던 백성들의 상태를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8세기에 남왕국에서 활동하던 이사야도 당시 영적인 상태가 황폐하고 파괴된 것으로 표현하면서 영적 회복을 일으켰다. (사 58: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And they that shall be of thee shall build the old waste places: thou shalt raise up the foundations of many generations; and thou shalt be called, The repairer of the breach, The restorer of paths to dwell in.) 회복의 내용이 바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사 58:13-14)



아모스는 황충의 재앙(7:1-3), 불의 재앙(7:4-6), 다림줄 재앙(7:7-9), 실과 한 광주리의 환상(8:1-14)에 이어 마지막으로 심판 주 되시는 하나님께서 성전 제단에 서신 모습을 환상(9:1-10)으로 보게 된다. 이 다섯 번 째 재앙은 하나님의 심판이 성전에서부터 시작됨을 보여준다. “내가 보니 주께서 단(altar) 곁에 서서 이르시되 기둥 머리를 쳐서 문지방이 움직이게 하며 그것으로 부숴져서 무리의 머리에 떨어지게 하라. 내가 그 남은 자를 칼로 살륙하리니 그 중에서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며 그 중에서 하나도 피하지 못하리라. 저희가 파고 음부로 들어갈찌라도 내 손이 거기서 취하여 낼 것이요 하늘로 올라갈찌라도 내가 거기서 취하여 내리울 것이며 갈멜산 꼭대기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서 찾아낼 것이요 내 눈을 피하여 바다 밑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서 뱀을 명하여 물게 할 것이요 그 원수 앞에 사로잡혀 갈지라도 내가 거기서 칼을 명하여 살륙하게 할 것이라. 내가 저희에게 주목하여 화를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암 9:1-5) 거짓예배, 잘못된 예배에 빠진 자가 받을 재앙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께 가장 큰 범죄는 예배에 관한 것이다.


거짓 예배, 무너진 예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하며 피할 길이 없다.

“주 만군의 여호와는 땅을 만져 녹게 하사 무릇 거기 거한 자로 애통하게 하시며 그 온 땅으로 하수의 넘침 같이 솟아오르며 애굽 강같이 낮아지게 하시는 자요. 그 전을 하늘에 세우시며 그 궁창의 기초를 땅에 두시며 바다 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니 그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내게 구스 족속 같지 아니하냐 ?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블레셋 사람을, 갑돌에서, 아람 사람을 길에서 올라오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 보라 주 여호와 내가 범죄한 나라에 주목하여 지면에서 멸하리라 그러나 야곱의 집은 온전히 멸하지는 아니하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명령하여 이스라엘 족속을 만국 중에 체질하기를 곡식을 체질함 같이 하려니와 그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내 백성 중에서 말하기를 화가 우리에게 미치지 아니하며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 모든 죄인은 칼에 죽으리라”

그러나 심판의 목적은 회복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그냥 못쓰게 망가뜨리려고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때리고 싸매어 바르게 고치기 위함이다. (교육, 훈련, 깨달음, 새출발)


2. 우상숭배와 언약(계약)의 파기


솔로몬 왕이 살아있던 생전에 하나님께서는 실로사람 예언자 아히야(Ahijah)를 통해 에브라임지파 스레다 집안 느밧의 아들인 여로보암(큰 용사, 다윗성의 무너진 것을 수축하는데 공을 세움, 요셉족속의 역사를 감독하는 자로 임명받음, 왕상 11:26-28)에게 열 지파를 맡기겠다고 약속하셨다. 아히야가 길에서 여로보암을 만나 새 의복을 입히고 나서 예언자가 그 입은 새 옷을 잡아 열 두 조각에 찢고 그에게 이르되 ‘너는 열 조각을 취하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나라를 솔로몬의 손에서 찢어 빼앗아 열 지파를 네게 주고 오직 내 종 다윗을 위하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뺀 성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솔로몬에게 주리니, 이는 저희가 나를 버리고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과 모압의 신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신 밀곰을 숭배하며 그 아비 다윗의 행함 같지 아니하여 내 길로 행치 아니하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과 나의 법도와 나의 율례를 행치 아니함이니라.’ (왕상 11:31-33)


즉 솔로몬의 우상숭배의 죄로 나라가 분열된다는 말씀이었다. 우상숭배로 예배가 무너졌으니, 여로보암에게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라는 사명을 주셨다. “네가 만일 내가 명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의 행함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 내가 이로 인하여 다윗의 자손을 괴롭게 할터이나 영원히 하지는 아니하리라” (왕상 11:38-39) 이 소식을 들은 솔로몬은 회개할 생각은 하지 않고 여로보암을 죽이려고 하자 그는 이집트로 도망하여 이집트 왕 시삭의 보호를 받았고, 솔로몬이 죽은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솔로몬의 왕위를 이은 르호보암이 백성들의 요청(‘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왕상 12:4)을 거절하자 열 지파는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워 북왕국이 수립되었던 것이다. (왕상 12:15)


그러나 불행하게도 여로보암은 이집트 망명 시절 그곳에서 금송아지 우상숭배에 오염이 되었던 것 같았다. 아히야가 충고한 내용과는 반대로 행동하였다. 여로보암 1세는 백성들이 예배드리러 예루살렘으로 출입하게 되면 그 마음이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 자기를 죽이겠다는 두려움 때문에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벧엘과 단에 각기 두고,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팔월 십오일을 종교절기로 정하였다. (왕상 12:25-33). 이리하여 다윗의 장막은 여전히 무너지게 되었다.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들어 죽을 때 여로보암의 아내는 변장하여 실로로 가서 예언자 아히야에게 기도 받으러 갔다.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던 아히야는 하나님의 지시하심으로 변장하고 온 여로보암 왕의 아내에게 꾸짖기를 “가서 여로보암에게 고하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너를 백성 중에서 들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게 하고 나라를 다윗의 집에서 찢어 내어 네게 주었거늘 너는 내 종 다윗이 나의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나를 좇으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였음과 같지 아니하고 너의 이전 사람들보다도 악을 행하고 가서 너를 위하여 다른 신을 만들며 우상을 부어 만들어 나의 노를 격발하고 나를 네 등 뒤에 버렸도다. 그러므로 내가 여로보암의 집에 재앙을 내려 여로보암에게 속한 사내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나 다 끊어 버리되 거름을 쓸어버림같이 여로보암의 집을 말갛게 쓸어 버릴지라.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가 성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들에서 죽은즉 공중의 새가 먹으리니 이는 여호와가 말하였음이니라 하셨나니 너는 일어나 네 집으로 가라 네 발이 성에 들어갈 때에 그 아이가 죽을지라. 온 이스라엘이 저를 위하여 슬퍼하며 장사하려니와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는 오직 이 아이만 묘실에 들어가리니 이는 여로보암의 집 가운데서 저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음이니라” (왕상 14:7-13)


한편 남왕국을 통치하던 르호보암은 예루살렘에서 십 칠년을 치리하는 중 역시 예배가 무너진 상태였다. 그 모친의 이름은 나아마인데 암몬 사람이었다. 이방 여인의 영향으로 할아버지 다윗의 신앙을 이어받지 못하고 아버지 솔로몬처럼 우상숭배에 빠져 예배가 무너져 버렸다. 예배가 무너지니 가정이 무너지고 나라가 무너져 버렸다. “유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열조의 행한 모든 일보다 뛰어나게 하여 그 범한 죄로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으니 이는 저희도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 목상을 세웠음이라. 그 땅에 또 남색하는 자(sodomites)가 있었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국민의 모든 가증한 일을 무리가 본받아 행하였더라.” (왕상 14:22-25)


아모스와 동시대에 북왕국에서 활동한 호세아도 하나님과 무너진 언약과 회복의 희망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호세아와 고멜의 관계를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로 보면서 바알에 빠진 이스라엘의 모습을 고멜로 상징한 것이다. 바알 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을 여성적으로 상징화한 이유는 바알신이 남성신이기 때문이다. 자연을 주관하는 바알의 특징은 땅을 경작하는 농경문화에서는 가장 강력한 숭배의 대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바알은 남성으로서 어머니 신인 땅에 비(정액)를 내려주고, 이로 인해 땅은 생산(열매)을 하게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바알신은 곧 풍요와 다산의 신인 셈이었다. 땅이 풍요를 누리기 위해서는 바알의 정액(비)을 기다리고 맞아야 했다. 호세아서는 남성적 신인 바알을 숭배하는 풍요와 다산을 위한 종교 제의의 내용을 여성의 성적 행위의 모습으로 그래로 묘사하고 있다. 호세아의 결혼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호 1-3장의 특징은 단지 호세아와 고멜의 결혼 이야기가 그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녀들의 이름을 통해 이스라엘의 심판과 구원을 말한다는 데 있다. 세 자녀, 이스르엘, 로루하마, 로암미는 무너진 계약관계를 상징하고 있다. 이들의 이름은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한다면, 이들은 다시 하나님의 사랑(Hesed)으로 구원의 의미로 바꾸어진다(이즈르엘 → 이즈르엘 땅의 축복 / 로루하마(은혜를 받지 못한 자) → 루하마(은혜를 받은 자) / 로암미(내 백성이 아니다)→암미(내 백성). 호 1-3장에 나타난 호세아의 세 자녀들의 상징적 이름들을 통한 심판과 구원이라는 대조적인 모습은 호 4-14장에서 역시 이스라엘의 심판과 구원의 내용을 펼쳐 보임으로써 호세아서 전체가 동일한 내용 구조를 보여준다. 호 1-3장의 중심은 호세아와 고멜의 결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임할 심판이 어떻게 구원으로 바뀌어 질 지에 대한 것이다.


호 2:18-21에 따르면, 심판이 구원으로 바꾸어지는 동기는 첫 번째로 하나님께서 온 땅의 생명들과 언약을 세우시는 일이며, 땅에서 활과 칼의 전쟁의 무기를 없애시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정의와 공의, 은총과 긍휼로 새로운 결혼을 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될 것이며, 하늘과 땅이 서로 침묵의 무관심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응답하는 하나의 일치된 관계로 회복될 것임을 말한다. 여호와께서 하늘에 대답하시니 하늘이 땅에 대답하고, 땅이 곡식과 포도주와 올리브기름으로 이즈르엘에 대답한다는 것이다. 여기 거론된 비옥한 땅 이즈르엘은 곧 호세아의 첫 아이의 이름이다. 이 첫 아이의 이름의 상징은 이즈르엘에서의 예후의 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한다(1:4). 예후가 누구인가? 바알 숭배자들을 모두 척결한 자가 아닌가(왕하 10:28)! 호세아서가 이스라엘의 음란(간음)인 바알 종교 거부를 중요시 하고 있다면, 바알 종교를 척결한 예후에 대해서 호세아는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왜, 호세아서는 첫 아들의 이름을 통해 ‘이스르엘’에서의 예후의 죄를 심판하겠다고 하는 것일까?(호 1:4) 호세아의 첫 번째 아들의 이름인 ‘이스르엘’이 심판의 이유가 되었던 것은 예후의 ‘이스르엘’에서의 폭력과 살인을 문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예후의 혁명이 활과 칼로 폭력과 살인을 저질렀다면, 하나님의 구원의 시대는 모든 활과 칼을 꺾어버리는 평화의 시대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평화의 표상에 온 땅의 생명들과 언약을 맺는 것으로 묘사하는 2장 20(18)절은 창 9장의 노아계약을 떠올리게 한다. 홍수심판 이후 창 9:10에서 하나님은 모든 생명체와 언약(Berith)을 세우시고, 인간들에게 새로운 계명을 준다. 피는 생명이기 때문에 땅에 피를 흘리지 말라는 것이다(창 9:5f). 구약성서에서 처음으로 언급되고 있는 하나님과 온 생명체와의 계약/언약(hyrb)은 하나님의 새 창조 세계 질서의 가장 우선하는 원칙이다. 살인과 폭력의 피로 물든 땅 이즈르엘(예후의 혁명)이 비옥한 풍요의 근원이 되는 길은 오직 이즈르엘 땅이 바로 살인과 폭력이 금지되는 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바알 종교 제의 거부와 사회 정의 실천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알이 비를 내려주어 땅이 풍요로워 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땅에 정의의 씨앗을 뿌릴 때에야 하나님께서 정의의 비를 내려 주실 것이다(호 10:12). 결국 온 땅의 생명들과 맺은 계약은 온 땅에서의 전쟁의 사라짐과 모든 전쟁 무기가 파기된 평화의 세상이며, 정의와 공의의 회복이 가져다주는 결과는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2:20).

호세아서는 “바알과 여호와”, 곧 비와 농업을 관장하는 신이 누구냐라는 근본적인 신앙의 질문과 함께, 구원의 조건이 폭력과 살인, 전쟁을 금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이로부터 호세아서는 묵은 땅을 기경하고(갈아엎고)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를 심는 신앙을 가르쳐 주며, 정의와 은총의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10:12)을 기다리도록 가르치고 있다. 회복의 주체는 하나님이심을 강조한다.


이사야는 자신의 소명 체험(6장)으로부터 심판선언-회개촉구-구원약속의 구도로 66장이 씌여있다. 즉 무너진 예배를 언급하면서 이를 회복하는 길은 회개임을 강조한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자“하는 것이 이사야서의 중심주제인 것이다. (1:18-20, 7:14, 30:15)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모두는 주전 8세기경에 무너진 예배를 회복하자는 예언자들이었다. 이를 요약하여 8세기 예언자 중 마지막 인물인 미가는 6:6-9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여호와께서 성읍을 향하여 외쳐 부르시나니 완전한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니라 너희는 매를 순히 받고 그것을 정하신 자를 순종할지니라.

바로 아모스의 정의, 호세아의 인자(은총), 이사야의 겸손의 신앙이 마태 23:23의 의, 인, 신인 것이다. 이것으로 무너진 예배를 회복하는 것이 계약 갱신(covenant renewal) 예배였다.


3. 회복 - 언약의 갱신

I. 그날에 회개할 때 파기된 언약관계가 다시 회복된다(11-12).

이 약속은 아브라함과 맺었던 것이다.

1) 자손 번성의 약속이었다. 약속의 자녀가 땅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2) 아브라함의 자손과 다윗을 통해 갱신되어진 "지배"의 계약이다. 왕위

를 이을 자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하였다.

3) 그러나 약속을 어길 때 이 모든 계약은 무효가 될 것이라고 했음에도

이들은 계약을 위반했다.

4) 하나님은 회개한 이들에게 종전의 계약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약속하

셨다.


II. 언약관계의 회복(영적 회복)은 환경의 축복을 회복한다(13-15).

이전과는 정 반대의 현상이 발생한다.

1) 하나님이 보내주신 에덴동산은 모든 것이 부족함 없이 풍요로운 환경

이었다.

2) 그러나 인간의 타락은 "환경의 파괴"라는 형벌을 동원했다.

3)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의 언약 계약을 통한, 약속의 자녀들을 위한

가나안의 축복 역시 인간들의 일방적인 약속 파기로 인하여 낙원을

황무지로 변모시켰다.

4) 이제 "그날"이 되면 이 모든 형벌 관계는 끝이 나고 황무지에 장미꽃

피는 은총의 역사가 시작 될 것이다.


회복의 신학적인 기초는 칼빈의 5대 강령 중 하나인 “불가항력적 은총"(irresistible grace)이다. 인간이 제 아무리 거절하고 싶어도 하나님의 은총을 피할 수 없다는 말이다.


암 9:11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키고 옛적과 같이 세우고 저희로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는 이를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그 때에 밭가는 자가 곡식 베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은 녹으리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 저희가 황무한 성읍을 건축하고 거하며 포도원들을 심고 그 포도주를 마시며 과원들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으리라. 내가 저희를 그 본토에 심으리니 저희가 나의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암 9: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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