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서 ‘신적 행복’의 예배자들 만나다

[존재를 변화시키는 ‘행복 신학’ 23] 그럼에도 왕을 높이는 예배자들.....

5년 전 몽골에서 한 주간 현지인 교회를 섬긴 적이 있다. 청년들을 데리고 단기선교 중이었는데, 주일 오전예배 때 설교자로 섬기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신적 행복’을 누리는 예배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예수 우리 왕이여 이곳에 오소서/ 보좌로 주여 임하사 찬양을 받아주소서/ 주님을 찬양하오니 주님을 경배하오니/ 왕이신 예수여 오셔서 좌정하사 다스리소서’.

주일 오전예배를 알리는 입례송을 몽골인들이 불렀다. 분명히 몽골어로 들리는데 왜 이리도 내 심금을 울리는지…. 흘러내리는 눈물 때문에 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안경을 벗고 아무도 몰래 눈물을 훔치느라 아주 혼이 났다.

눈물이 앞을 가린 이유는 단 하나다. 영적 불모지 같은 이곳에 교인 20명이 조그마한 예배당에 모여 예수님을 왕으로 예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곳은 영적 전쟁이 치열한 동네였다. 불과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 이단 포교당이 아주 화려한 건물로 들어서 있다. 마을 전체가 단층 게르(ger)로 이루어진 것에 비하면, 3층 현대 스타일로 치장한 이 건물은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신앙이 없는 주민과 아이들은 돈이 많은 이 ‘교회’로 몰려간다고 한다. 엄청난 재력으로 농장도 매입하고 유치원까지 무료로 운영하는 교묘한 이단이다. 가난한 주민들의 환심을 사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이 척박한 땅에 예수님을 ‘우리 왕’으로 높이는 예배자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참으로 충격적이면서도 감격스러웠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그들의 형편이 나아진 것도 없고 여전히 질병과 고통 속에 허덕이는데도, 매주 모여 ‘예수 우리 왕이여’라고 예배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라웠다! 이단 집단의 엄청난 물질 공세에도 미혹되지 않는 그들의 신앙이 정말로 위대하게 보였다.

이러한 감격에 사로잡혀,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는 제목으로 몽골인 통역사와 함께 혼신의 힘을 다해 말씀의 수종을 들었다.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마가복음 9:21-24)”.

귀신들린 아들을 둔 이 아비의 상태가 이곳 주민들의 영적 상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적 무지와 질병의 고통 속에 인생을 포기한 영혼들이 예수님을 만나 소망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간절히 설교했다. 심지어 설교를 듣는 청중 가운데에도 그런 교인이 있는 듯했다.

예배를 마치고 중보기도 시간을 가졌다. 이 지역 특성상 병자들이 많아서 그런지, 우리에게 치유기도를 특별히 요청했다.

그중 어떤 할머니의 사연이 참으로 딱했다. 열 살짜리 손녀가 뇌종양 진단을 받았는데, 더 이상 현대의학으로 치료가 안 된다는 것이다. 일상 중에 쓰러지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할머니는 설교 중에 은혜를 받았다고 했다. 예수님께 절규하듯 부르짖는 그 믿음을 가지고, 그 어떠한 경우에도 삶의 소망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원하시면 자기 손녀도 회복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요청하는데,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주님이 은혜를 주셨으니, 그 결과를 당신이 책임지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나는 청년들과 함께 이 분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치료자 되시는 하나님, 손녀의 병을 고치고자 하는 이분의 마음을 받아주시고, 무엇보다 주님을 향한 갈망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귀신들린 아들을 둔 아비의 믿음을 먼저 고쳐 주셨듯이, 이 할머니에게 더욱 온전한 믿음을 더하여 주소서. 주님이 원하신다면 손녀의 뇌종양 세포를 속히 소멸시켜 주옵소서!”

말씀에 순수하게 반응하는 성도들 모습에 큰 도전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섭리 때문에 일평생 처참한 모습으로 살아갈지도 모른다. 세상으로부터 너희가 믿는 신이 무능하다고 조롱당하는 채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우리 왕’으로 높이는 ‘예배자로서의 사명’이 그들에게 주어졌을지도 모른다. 천국에 잇대어 이 땅을 살아가는 고난의 순례자로서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명이다! 왕을 높이는 영광스런 예배자들의 모습에서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