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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 언약 시절의 제사법

(1)상번제

출애굽기 29:38 에서는 매일 어린 양 두 마리를 드리되 아침에 양 한 마리 저녁에 양 한 마리를 드린다

민수기 28:3 수컷 어린 양 두 마리를 드리되 아침에 양 한 마리, 저녁에 양 한 마리를 드린다.

에스겔 46:13 에서는 아침마다 일년 된 흠없는 어린 양 한 마리씩 잡는다.


(2)안식일

민 28:9 일년 되고 흠없는 수양 둘을 바친다

에스겔 46:4 왕이 번제를 드리되 흠 없는 어린 양 여섯과 흠없는 수양 하나를 상번제 외에 추가한다.


(3)월삭

매월 첫날에 드리는 제사이다.

민수기 28:11 수송아지 둘과 수양 하나와 일 년 되고 흠없는 수양 일곱으로 번제를 드리고 속죄제로서는 수염소 하나를 바친다.

에스겔 46:6 흠 없는 수송아지 하나와 어린 양 여섯과 수양 하나를 드린다.


(4)1월 1일

이스라엘에게 있어 정월 달은, 이스라엘이 국가로서 탄생한 달이다.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출애굽기 12:2) 이스라엘에 있어 '시간'이란, 국가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하나님 이름의 일을 보조해 주고 지시해 주는 기능이 될 뿐이다.

정월달 이 날은 모세가 성소를 처음 세우던 날이다. "제 이년 정월 곧 그 달 초일일에 성막을 세우니라"(출애굽기 40:17) 새로운 성전을 기약하는 에스겔에서 이 날을 절기로 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수송아지 하나를 바치는데 성소를 정결케 하고 제사장이 그 속죄제 희생의 피를 취하여 전 문설주와 제단 아래층 네 모퉁이와 안 뜰 문설주에 바른다. 즉 성소를 새롭게 정결케 하는 속죄제의 의미가 강하다. (45:18-19)


(5)1월 7일

에스겔 45:20 역시 에스겔에만 나오는 절기인데 이스라엘 전체를 속죄하는 절기이다.


(6)유월절

제사에 대한 상세한 규정은 역시 민수기에 나와 있다. 민수기 28:16-23 수송아지 둘과 수양 하나와 흠없는 일 년 된 수양 일곱 드린다. 어린 양 일곱에는 매 어린 양을 드리고 속죄제로서는 수염소 하나를 바친다.

에스겔 45:21-25 왕이 직접 드리는 절기이다. 송아지 하나를 속죄제로 드리고 7일 동안에 매일 흠 없는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이며 또 매일 수염소 하나를 갖추어 속죄제를 드린다.


(7)칠칠절=맥추절=오순절

레위기부터 제사 규정이 상세하게 나온다. 레위기 23:15-22 일 년 되고 흠 없는 어린 양 일곱과 젊은 수소 하나와 수양 둘을 드린다. 속죄제로서는 수염소를 드리고 화목제로서는 1년 된 어린 수양 두 마리를 바친다. 특히 가난한 자를 위한 양식을 배려해서 함께 추수의 기쁨을 누리게 한다.

민수기 28:26-31에 보다 상세하다. 수송아지 둘과 수양 하나와 일 년 된 수양 일곱으로 드리고 어린 양 일곱에는 매 어린양을 드리고 속죄 제물로는 수염소 하나를 드린다. 가난한 자의 배려는 나와 있지 않는다. 민28:31 "너희는 다 흠 없는 것으로 상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에스겔에도 나온다. 46:11-12 제물은 유월절 절기와 같다.


(8)7월 1일

민수기 29:1-6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하나와 일 년 되고 흠 없는 수양 일곱을 드리고 어린 양 일곱에는 매 어린 양을 드리고 속죄 제물로는 수염소 하나를 드린다.


(9)7월10일

민수기 29:7-10 월삭, 유월절, 맥추절, 7월 1일과 동일한 의식이 치러진다.


(10)7월 15일 =초막절=수장절

대속죄일로서 레위기부터 제일 큰 의식이다. (레위기 23:34-44) 이스라엘 전체의 죄를 씻기 위해 일년에 한차례씩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는 날이다.



모세 언약 시절의 제사법과 다윗 언약 이후의 제사법에 있어 제물에 관한 규칙의 차이는?


민29:12-40에서는

첫날에는 흠없는 수송아지 13마리, 수양 2마리, 일 년된 수양 14마리를 드린다. 속죄 제물로는 수염소 한 마리, 둘째 날에는 흠없는 수송아지 12마리와 수양 2마리와 일년 된 수양 14마리를 드리고, 역시 속죄 제물로는 수 염소이다. 셋째 날에부터도 역시 수송아지 숫자가 하나씩 줄어간다. 그래서 일곱째 날에는 수송아지 숫자가 7마리가 된다. 마지막 8일 째에는 거룩한 대회로 모이는데 수송아지 1마리와 수양 1마리와 일 년된 흠 없는 수양 7마리를 드리고 속죄 제물로서는 역시 수 염소 한 마리를 드린다.


겔45:25에서는 유월절과 동일하다.

제사는, 번제→소제→속죄제→화목제 이런 식으로 나열 되지만 실제로는 이루어지는 절차는 속죄제부터이다. 그 위에 번제와 소제가 드려지고 그 다음에 최종적으로 화목 제물이 바쳐진다.(민29:39/레3:5/9:22) 죄 있는 것과는 그 어떤 관계도 갖지 않겠다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레위기나 민수기 시절에 있어, 제사와 제물의 양이 1월달 보다는 7월달에 보다 급증되고 집약 된다. 그것은 7월에 민족 전체를 위한 대 속죄일이 있기 때문이다. 즉 대규모 죄를 겨냥해서 제물도 집중적으로 투입이 되는 것이다.


에스겔 때에 와서 죄의 개념 속에는, 인간이 만든 솔로몬 성전조차도 죄에 오염되어 있음을 밝힌다. 따라서 모세 시절 때는, 백성들의 죄 씻음과 정결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초점이 모아져 있지만 에스겔의 새 성전에서는, 솔로몬 성전 자체에 대한 정결이 우선된다. 그래서 초창기 제사법에 나오지 않는 절기인 1월 1일과 1월 7일 절기가 있다. 1월 1일은 원래 성막이 최초로 세워지던 날이었다(출40:17).


그리고 새 성전에는 뜰이 둘 있는데 안 뜰을 감싸고 있는 바깥뜰을 제외하고서는 솔로몬 성전의 양식과 동일하다. 이와 같이 에스겔의 새 성전은, 이미 무너져 버린 그 솔로몬 성전을 다시 세워 놓고, 왜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가를 회상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보여준 성전이다. 그렇다면 정월달의 절기란, 성전 청결을 위한 특별 절기로 한 해 제사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출애굽 제사법에서는 7월 달의 수장절에 초점이 모아져 있는데 이는 유월절의 희생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기름지게 한 언약의 근원이 됨을 보여주는데 초점을 둔 제사법이기 때문이요, 민수기의 제사법은 7월 달의 대 속죄일에 비중이 가 있는데 이는 인간 제사장과 백성의 우상 숭배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 전 국가의 죄 씻음에 비중이 두고 제시되는 제사법이다.


에스겔의 새 성전은 정월달의 제사에 한 해 제사 성격을 규정한다. 이 제사를 왕이 직접 집행자가 됨으로서 왕 계약인 다윗 언약의 회복과 영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정결 제사이다. 거룩을 유지하기 위한 정결법도 언약에 따라 종속된 채 비중을 달리하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언약을 따라 일하신다. 이것이 새 언약 시대의 면모를 보여주는 계시이다.


언약궤는 원래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 차례 피를 들고 뿌리는 장소이다. 그런데 언약궤가 없는 성전에서 피를 뿌리는 곳은 어디인가? 바로 문지방이다. 이 문지방에는 문설주가 있는데 이 문설주에 피를 바른다(겔45:18-19/43:8). 여기서 말하는 성전 문설주란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지점이다. 그리고 안 뜰 문설주란 바깥뜰에서 들어오기 위하여 통과해야 하는 남문, 북문, 동문의 문지방이다. 바로 이곳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다. 새 성전의 문지방은, 거룩과 맞닿은 곳에서 거룩의 엄위성이 얼마나 무서운 가를 실감해야 하는 장소이다. 부지 중에 거룩성을 훼손하고 침범된 점에 대해서도 그냥 용납되고 넘어가지 않는다. 원상 복귀되어 거룩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다른 방도는 있을 수 없다. 오직 왕이 바친 속제제물의 거룩한 피뿐이다(겔45:20). 거룩은 거룩대로 계속 유지되고 백성들도 그대로 하나님과의 생활이 유지될 수 있는 방도는 오직 피 뿐이다.


새 성전에는 문이 세 방향마다 하나 씩 있어 총 6개가 있는데 이러한 방향 규정은 동쪽 문과 여타의 문을 구별하기 위해서이다. 즉 출애굽기에서의 성소의 문이나 솔로몬 성전의 문은 오직 동쪽 한 방향뿐이다. 그러나 새 성전에서는 세 방향으로 문이 나와 있다. 왜 두 개의 문을 더 설치하셔야 하는가? 그것은 동향문의 의의를 부각하기 위해서이다(겔44:1-3). 여기에 보면, 동쪽 문이 닫혀 있다고 했다. 왜 닫혀 있을까? 그곳은 오직 하나님만이 드나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일절 못 들어온다. 전에 있던 솔로몬 성전은 제사장과 백성들이 들어 왔었다.


그러나 새 성전에서는 이제 허용이 안된다. 성전의 온전함을 인간의 손에 맡기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이다. 인간이 들어오는 문은 남쪽이나 북쪽 문에만 국한된다. 이 문들의 가치를 쥐고 있는 것은 이제 동쪽 문에 되었다. 이 문들은 동쪽 문에 종속된다. 동쪽 문의 '닫혀 있음'의 의미를 모르면 열인 문으로 들어와도 소용없다. 그런데 바깥뜰에 있는 동쪽 문만 닫혀 있는 것이 아니다. 바깥뜰에서 안 뜰로 통하는 동쪽 문도 닫혀 있다. 늘 닫혀 있는가? 아니다. 안식일과 월삭에는 개방된다. 그리고 그 날에 그 동쪽 문을 통과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있다. 바로 이스라엘의 왕이다. 마치 바깥뜰의 동쪽 문을 유일하게 사용하실 수 있는 그 하나님의 역할을 왕 자신이 해내는 것이다(겔46:1-3). 다윗 언약에 의해서 왕과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의 위치에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이름답게 제대로 유지시키고 보존하는 책임자는 이제는 오로지 아들로서의 왕 뿐이다. 바깥뜰의 동쪽 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직접 새 성전에 들어오셔야 하는 이유는, 전에 있었던 솔로몬 성전의 죄악성을 지적하고 심판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당부하시기를, 성전의 입구와 성소의 출구에 대해서 주의하라고 하셨다(겔44:5). 그것은 이스라엘의 패역성으로 인해 출입구가 재조정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원래 성전의 동쪽 문으로 출입해야 하는 자는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에 맞게 순종하여 성전의 거룩을 유지해야 될 임무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 동쪽 문은 패역한 이스라엘로 인하여 성전을 더럽히게 한 출입문으로 전락되고 말았다(겔44:7). 따라서 하나님이 나서서 완벽하고 온전히 거룩한 성전을 새로 이룩하셨다면 인간들에게 더 이상 동쪽문은 개방되어서는 안되는 문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이스라엘에게 일해 오신 모든 것이 동쪽과 무관하지 않고 연관있는 사역이었다. 동쪽과 연관있는 사역이란 바로 창세기 3:24절을 두고 말한다.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생명나무와 인간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방향은 오직 동쪽으로 난 길뿐이다. 그렇다면 그 동쪽에서 사역하는 하나님의 일이란 딴 게 아니라 인간에게 생명을 주시는 일이다. 그리고 이 생명은 그 어떤 경우라도 인간이 침투해서 자력으로 얻어 낼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친히 그 방향으로 오셔서 줄 수 있는 생명임을, 동쪽을 차단시키는 방식으로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쪽 방향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인간의 죄악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만이 진실로 인간에게 의와 거룩과 생명을 제공할 수 있음을 나타내는 방향성이다. 그렇다면 동쪽 안 쪽에 설치되어 있는 모든 제사 시설물들은 무엇 때문에 있는가? 그것은 기존 인간의 생명을 죽이고 심판하기 위한 시설이다. 제사장들이 분주하고 제사를 드리고 레위인들이 범죄 해서 망해 버린 성전을 (겔44:10) 왕이 대표해서 다시 재건하는 것도 모두 온전히 죽어 없어져야 될 속된 목숨들을 처리하는 시설들이다. 새 성전의 왕은 온 백성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기 위해 성전에 성전 안으로 들어서야 되는 왕이다. 마치 에스겔이 인자로서, 즉 말씀을 배속에 넣어져 있는 선지자로서 백성의 죄 때문에 당해야 되는 수난을 맞이한 것처럼 왕도 그런 심정으로 이 성전 안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음식을 먹고 난 뒤에는 동쪽 현관을 사용해야 하는데 이는 왕이 온 백성을 대표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영생을 얻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온전한 왕의 헌신으로 율례가 완성되었다는 증거로서 그 동쪽 문지방에서 [정결한 물]이 흘러서 온 이스라엘 경내를 덮는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영생을 주시고 있다는 증거를 방향 설정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것이다. 즉 동쪽 문을 유일하게 사용하실 수는 그 하나님께서만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고 있음을 동쪽 방향을 가지고 설명하시는 것이다(겔47:1-2).


따라서 새 성전에서의 동쪽 문지방이라는 건축 구조물은 곧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늘나라를 나타낸다. 그렇다면 여타의 모든 건축 구조물도 하나님과 계약 관계에 있는 다윗 왕과 거기에 속한 백성들을 의미한다. 동쪽 문이 하나님 이외에는 사용할 수 없어 언제나 닫혀 있는 문이라면, 다른 문들은 언제나 열려 있는 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문들을 이용한다. 단 새 언약 관계에 있지 않는 이방인들은 성소에 들어올 수 없다(겔44:9). 오직 새로운 다윗 왕에 의해 언약이 맺어진 돌아온 백성들은 이 문들만을 사용해야 한다(겔46:9-10). 왔던 방향의 문으로 도로 나갈 수 없다. 곧바로 직진해야 한다. 맞은 편 문만으로만 나갈 수 있다. 이것 때문에 새 성전에는 문이 세 방향으로 설치된 것이다. 동쪽 문과 대립시킬 수 있는 문, 서쪽 문은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반대편의 문을 향하여 나아가야 하는가? 그것은 유일하게 동쪽 문 앞에서 제사 드릴 자격이 있는 왕이 행사하는 제사에 의미를 실어주기 위함이다. 왕은 무리 가운데 있어 백성이 들어 올 때에 같이 드어오고 나갈 때에 같이 나가야 한다. 이러한 백성의 중심 역할하는 왕이 하나님 앞에 제사드릴 때는 동쪽 문도 열리게 된다(겔46:12). 백성들은, 왕만이 점유한 그 동쪽 문을 통과하는 방식으로 왕의 일에 합류될 수 있다. 나갈 때에는 자기가 들어 왔던 문으로 도로 돌아가지 않음으로서, 왕에 의해 발생된 추가적인 언약적 가치를 인정하고 새로운 백성이라는 위상을 소지한 채 성전을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들이 통과하는 성전은, 심판 받고 정죄 받았던 성전이 솔로몬 성전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바로 그 심판의 성전을 향하여 왕은 동쪽 문 앞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동쪽 문 앞에서의 제사 행위는, 하나님의 문으로서 동쪽 문이 지닌 언약적 특이성을 더욱 부각시켜 준다. 이처럼 옛 성전과 새 성전과 차이성은 문을 통해서도 인식된다. 새 성전에 등장된 온전한 율법 제시는, 문자 안에 들어있을 것 같은 어떤 주술적 효능을 기대하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택한 왕을 지향토록 하는데 의의가 있다. 이 왕의 제사로 인해 백성의 모든 죄는 용서받고 또한 극복된다는 점은 세 문의 구조로서 설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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