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도 바울의 삶에서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인생의 지혜를 깨닫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시대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고 싶어하지만 시대마다 반복되는 리더십의 원리를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역사를 이끌어간 리더들은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이고 그 위인들은 분명한 특징이 있다"고 집회 둘째 날 새벽기도회에서 말씀을 전했다
Nyskc Univ. 학생 처장 Troas Lee 목사님은 롬1:1-2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주님께 쓰임 받는 자가 되게 하라" 전했다.
"하나님께서는 때에 따라 사람을 쓰심과 인생의 무한함을 기억하며, 자신을 준비하고 오늘 하루를 불꽃과도 같이 소중하게 살라"고 강조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작은 일에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충성하는 자를 높이 쓰시며, 한계를 뛰어 넘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을 쓰신다"고 전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삶을 통해서 그의 삶이 변하게 됩니다.
사도는 다메섹 사건을 통해서 가치관이 변했습니다. 그래서 전에 그렇게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을 이제는 배설물로 여기는 극적인 가치관의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진짜 값진 진주를 발견하고 나니까 과거 보석처럼 여겨졌던 것들이 더 이상 가치 있는 것들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런 가치관의 변화를 경험할 때 새로운 신앙생활에 눈을 뜰 수 있습니다. 이런 온전한 가치관의 변화가 없이 복음의 비밀은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은 평안이며 행복입니다.
삶에 가치관의 변화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사도는 그리스도를 만난 후 이런 가치의 변화를 체험했습니다.
고후11:23-27절에는 그런 사도 바울의 열정의 삶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고난과 고통을 겪었음에도 사도 바울은 오히려 더욱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일에 생명을 걸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전에 가치로 여기던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해 그들을 살리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삶을 대하는 모든 자세가 달라지고 앞으로 더 달라질 것입니다.
바로 이런 변화가 사도 바울이 사용하는 푯대를 향한 인생의 모습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가치의 변화를 경험하고 새로운 목적이 생겼습니다. 그 목적 때문에 모든 단기적인 목표들이 재조정되었습니다. 그 목적 때문에 지치지 않는 삶의 열정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함께 본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Nyskc Staff로서의 추구해야 할 삶은 어떤 것입니까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가노라” 그랬습니다.
가치가 변하고 새로운 열정이 그 삶을 지배할 때 그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를 닮고 그리스도께 잡힌 바 된 인생으로 살기 위해서 사도 바울은 지금도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내가 아직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그랬습니다. 뭘 잡은 줄로 여기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잡았다는 표현이 우리로 오해를 하게 합니다만 여기서 잡는다는 표현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를 안다, 이해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나는 완전할 수 없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니까 잡은 줄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은 겸손이면서 항상 배워야 하고 항상 더 알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나는 아직 그리스도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 그분의 사역과 신비에 대해서 나는 아직 완전히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합니다.
그래서 내게는 지금도 오직 한 일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 한 일 때문에 뒤엣것은 잊어버렸습니다. 오직 앞에 있는 것, 푯대를 향하여 모든 시선을 고정했습니다. 이것이 인생의 모든 추구요, 목적이 되었습니다.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해서 달려가는 것입니다. 과거의 잘못된 삶들, 잘못된 죄들, 잘못된 기억들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혹은 지금까지 자신이 이루었다고 생각한 것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일구어 놓은 많은 교회, 많은 일꾼 이런 것 다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주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느라 과거 지향적인 삶을 삽니다. 과거 자신의 부족했던 모습들이 족쇄가 되어서 주님은 이미 오래전에 용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도는 뭐라고 말씀합니까? 내게는 추구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목적의식이 나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현재는 그것을 위해서 달려가기 위해서 최선으로 준비된 상태입니다. 다른 것들을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여러분! 이 마음을 이해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런데 그가 추구하는 마지막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푯대를 향하여 달음질치고 있는데 그 푯대의 마지막에는 무엇이 있다고 사도는 말씀합니까? 상이 있다고 했습니다.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상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여기서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상이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로 부르신 것이 상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주신 소명이 상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에게 어떤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는데 그것을 이 땅에서 잘 감당할 때 상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세 번째 푯대를 향한 삶에는 분명한 목적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삶이 그것을 향해서 달려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치가 변한 그리스도인의 열정입니다.
13~14절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형제들이여 나는 내 스스로 아직 그리스도를 완전히 터득했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한 가지 일에 내가 집중하고 있다. 그 한 가지 때문에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들만 향하여,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 나의 소망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로 불러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상, 즉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얻게 될 완전한 구원을 주시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나는 지금도 계속해서 달려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의 마음을 이해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우리는 이런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신앙생활에 후회가 없습니다. 그런 신앙생활에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 신앙생활에 영향력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에게 복음을 전해준 선생인 나도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해서 매진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부족해서 날마다 애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중 혹 스스로 온전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으면, 이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목적지가 분명해야 합니다.
열정이 올바른 열정이 되기 위해서는 올바른 삶의 의미와 목적이 정립되어야 합니다.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해서 최적화된 사도 바울의 인생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예수님처럼, 사도바울처럼
사랑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을 들고 땅끝까지 가서 선포하는 발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고 귀신을 내쫒으시며 눈먼자의 눈을 여 어 주신 것처럼 여러분들은 주님의 손발이 되어 주님의 뜻이라면 순종하는 Nyskcian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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