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넷플릭스 영화 <지옥>
내세보다 현세, 초자연보다 사회적 현실에 초점 맞춰....죄 없는 미혼모와 갓난아기까지 지옥 예고 감독 의도...기독교 원죄 교리의 무차별성에 절대적 회의 드러내, 드라마, 기독교는 쳐다보기도 싫다는 피로감 조성해
원죄와 지옥: 원죄에 대한 믿음을 회의하는 서사
지난 19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지옥>이 발표돼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부산행>(2016)으로 흥행감독 반열에 올랐던 연상호 감독의 작품이다.
원래 연상호 감독은 독립영화, 예술영화 부문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져 있던 인물인데, 2016년 대대적인 흥행(천만 관객 달성)에 성공했던 <부산행> 이후 상업영화 영역에서도 입지를 확보했다.
그러나 2018년의 <염력>, 2020년의 <반도>가 평가와 흥행 양쪽에서 좋지 못한 결과를 내놓으며, ‘원히트 원더’ 감독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았다.
그러던 중, 연상호 감독은 이번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지옥>을 통해 다시금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지옥>의 서사는 기본적으로 내세보다는 현세, 초자연의 영역보다는 사회적 현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옥>에 등장하는 초자연 영역, 즉 죽음을 예고하는 홀로그램형 괴물이나 그 죽음을 집행하는 고릴라 형태의 세 괴물은 사실상 그에 반응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이끌어내기 위한 발판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지옥>의 서사에서 초자연 영역이 정말로 중요했다면 이 괴물들을 묘사함에 있어 코믹함과 혐오스러움이 뒤섞인 그런 어설픈 CG처리를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이 괴물들은 사람들을 무작위로 지목해 “어느 날 몇시에 지옥에 간다”는 예고를 하고, 정한 시간이 되면 예고된 자에게 홀연히 나타나 무자비한 린치를 가한 뒤 그 자리에서 태워 죽인다.
문제는 이렇게 죽는 이들이 도대체 왜 이런 기괴한 방식으로 죽임을 당하는지 그 이유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1화 후반부까지 ‘예고살인’을 당하는 이유는 중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인 것처럼 소개된다. 괴물들에 의해 자행되는 불가해한 예고살인을 신의 뜻이라 믿는 신흥종교단체 ‘새진리회’의 창시자이자 의장 정진수(유아인 분)는 전 세계에서 이런 방식으로 죽은 이들 모두가 살인자, 폭력범, 사기꾼, 강간범이라고 밝히며,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이 형벌을 피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널리 확산시킨다.
그러나 이 신흥단체의 가르침은 별다른 범법 혐의가 없는 미혼모 박정자(김신록)의 지옥 예고에 이르자, 허위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게다가 이 미혼모의 죽음 이후 갓 태어난 아기까지 지옥 예고를 받으면서, 이 기괴한 죽음의 예고는 그 사람이 살아온 과정과는 별 상관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게 된다. 갓난아이가 지옥에 간다고 선고를 받는 이 장면에서 연상호 감독의 의도는 분명해진다. 그는 기독교 원죄 교리의 무차별성에 대해 절대적인 회의감을 드러내고 이의를 제기하고자 한다.
갓난아이를 두고 지옥에 갈 ‘죄인’이라고 가르칠 만한 종교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기독교일 것이다.
성경은 모든 인간이 나면서부터 ‘한 사람(아담)’의 죄를 물려받았다고 가르치며(롬 5:12), 이 ‘죄의 삯은 죽음’임을 명시하고 있다(롬 6:23).
그런데 특정한 아기를 두고 형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가르칠 만한 종교가 사실 기독교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힌두교나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전생에 죄업이 많았던 아기는 일찍 죽을 수도 있다.
이슬람의 경우 그들 입장에서 불신자 집안의 아기는 죽어 구원을 얻지 못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지옥>에서 아기에게 내려지는 지옥 예고는 정확히 기독교의 가르침을 회의의 표적으로 삼기 위한 장치로 확인된다.
원죄와 종교: 원죄에 대한 믿음과 광기의 결합
이러한 의도는 <지옥>에 등장하는 신흥종교 ‘새진리회’의 모습을 통해 분명해진다. 일단 단체 이름부터 기독교 계열 이단 교파들을 연상시키는데다, 그 운영 방식 역시 이단 교파들의 방식을 그대로 본딴 모습이다.
여기에 더해 이 단체 창시자이자 초대 의장인 정진수가 예고된 대로 괴물들에게 죽임을 당한 후 차기 지도자 자리를 이어받는 이가 김정칠 목사(이동희 분)인데, 원래 점조직 스터디 그룹 형태로 운영되었던 단체를 본격적으로 사이비 단체로 탈바꿈해 놓는 인물이다.
이로써 드라마 <지옥>의 서사 전반은 왜곡된 방식으로 기독교 원죄 교리를 믿는 이들에 의해 벌어지는 범죄, 사기, 폭력, 그리고 살인을 다루고 있다.
감독의 연출은 사람들을 죽이는 초현실적 괴물의 정체나 배후 등에 대한 관심보다는, 불가해한 상황에 직면한 대중의 광기를 양분삼아 커져가는 종교단체의 기행과 사기 행각에 대한 관심이 커지도록 기획되어 있다.
사실 연상호 감독은 이미 독립영화, 예술영화 감독 시기부터 이단, 사이비 교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식 혹은 종교단체 전반에 대한 회의감과 반감을 자신의 작품에 반영하고 표현하는 일에 많은 힘을 쏟아왔다.
특히 2013년 감독을 맡았던 장편 애니메이션 <사이비>는 비윤리적이고 자질이 없는 목회자가 사기행각에 연루되었을 때, 어떻게 사이비 교주로 타락할 수 있는지 암울하면서도 세밀하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 작품은 훗날 2019년 드라마 <구해줘 2>로 리메이크되었다.
<사이비>와 <구해줘 2>의 서사를 보면 확인되듯, 기독교 계열 이단 교파의 창설, 포교, 성장 과정에 대한 연상호 감독의 이해는 남다른 편이다.
다만 그는 이단 교파 못지 않게 기독교에 대해서도 대단히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시각을 유지한다. 그리고 이 부정적인 시각을 사회에 대한 감독 자신의 염세적 감정을 담아 화면에 펼쳐낸다.
<지옥>에도 이런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괴물들이 사람들을 죽이는 장면보다, 그것에 반응하는 인간들의 비이성적 태도와 광기가 더 끔찍하고 암울하게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감독은 각종 사이비 신흥종교들의 허망함과 부패함을 고발하는 동시에, 기독교 신앙의 기본 가치도 회의하게 만든다. 원죄 교리가 허망하고 근거없다는 주장은 곧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의 갈망 역시 헛되다는 주장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최근 세계적 흥행에 성공한 <오징어 게임>에 이어 넷플릭스의 후발 기대작인 <지옥>까지, 최근 주목받고 있는 이 두 편의 작품 가운데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회의와 조롱의 정서가 공유되고 있다.
이처럼 주요 대중문화 콘텐츠가 기독교 신앙의 기본 가치에 대한 거부와 비판을 지속하게 되면, 시청자들은 식상함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이 식상함은 기독교에 대한 편향적 비판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기독교와 관련된 요소라면 쳐다보기도 싫다는 피로감을 시청자들의 마음 속에 심어줄 것이다.
만일 연상호 감독의 의도가 시청자들로 하여금 애초 기독교 신앙이나 성경의 가르침에 관심조차 두기 싫게 만드는 것이라면, <지옥>은 이런 의도를 충실히 떠받드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