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일 : 2014년 9월 수요
설교자 : 강효열 목사
본문말씀 : 마태복음 6:33
마태복음 6장/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세 종류의 삶이 있습니다.
첫째는 가장 낮은 수준의 생각을 가진 삶입니다.
둘째로는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철학의 단계의 삶이 있습니다.
세 번째는 창조주 하나님의 눈을 가지고 살아가는 수준 높은 단계의 삶이 있습니다.
첫 번째의 삶의 질이라는 것은 동물과 같은 이 땅과 육체에 한정된 생각을 가진 단계입니다. 그래서 단순하게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에 모든 삶의 목적을 두고 살아갑니다. 그저 하루 먹고 살면 그 다음은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이 단계는 지극히 동물적인 단계라고 할 수 있어요. 둘째 단계의 삶은 철학의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철학의 단계에서는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먹고, 마시는 단계를 초월하여 조금 더 인생을 생각하는 단계에 속한 사람들의 프래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단계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이 세상은 지배를 당할 수밖에 없어요. 이 사람들이 세상 지도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은 세상에 한정되어 있기에 첫 번째 단계의 사람이나, 두 번째 단계에 속한 사람이나 사실은 같습니다. 그들은 더 높은 수준의 프래임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우리에게는 이 세상에 속한 수준을 초월할 수 없지만, 그 이상의 프래임을 가져야 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께 속한 생각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마지막 단계의 생각은 창조주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창조의 마지막 날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1장 26절을 보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꼴로 만드셨어요. 그 다음에 그 인간에게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리고 정복할 수 있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제대로 사람 노릇을 할 때가 언제인가 생각해 보면,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을 때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 첫 사람 아담의 수준은 하나님보다 높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할 수 있는 탁월한 권세가 있었어요. 그 권세는 먹고 마시고, 입을 것에 매인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죄까지도 다스릴 수 있도록 힘을 주셨어요. 그리고 이 세상을 하나님이 워하시는 천국과 같은 곳으로 만들게 하셨어요. 그런데, 그 놀라운 권세와 힘으로 죄를 억제하고 이기지 못하고 죄를 선택함으로 죄에게 종노릇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보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던 길을 잠시 멈추어 서서 하늘을 쳐다보고, 하나님 아버지를 깊이 인식해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했던 수준이 어떤 수준에 머물러 있는 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잘못된 것을 깨닫고 내 생각의 틀을 하나님 쪽으로 맞추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요, 제자의 삶입니다. 우리가 생각해 보면, 일주일 가운데 주일 아침은 모든 바쁘게 가던 걸음을 멈추어 서서 그저 몸만 쉬는 날이 아닙니다. 깊이 생각하고 삶을 하나님께 맞추어 가는 가장 축복의 날입니다. 이 날 우리가 생각도 없고 아무런 결단도 없이 교회를 나가는 것이 반복되면 큰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혼자서 생각하면 방향이 없기 때문에 말씀을 통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방향이 있어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존재가 되면서부터 정복하고 다스려야 할 물질에 의해서 정복당하고 끌려 다니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인간은 가장 낮은 하위 수준에 떨어져서 두려움과 외로움 속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가장 낮은 수준에 떨어진 우리들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서 예배를 주셨습니다. 그 예배가 회복될 때 인생은 회복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세 가지 생각을 가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우리는 먼저,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둘째 아들을 보십시오.
그 아들이 어느 날 아버지가 자기에게 물려줄 유산을 가지고 먼 곳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는 모든 것을 다 허비해 버리고 말았어요. 그러자 그 도시에 갑작스러운 흉년이 찾아왔습니다. 돈이 떨어지면 흉년이 찾아와요. 먹을 것이 없어지고 친구도 떠나요. 그래서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라도 먹으려고 찾았어요. 그런데 그것조차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 순간, 그 아들은 아버지의 얼굴을 떠 올렸어요. 그리고 그는 아버지 집에 있는 풍성한 양식들을 생각했어요. 입을 것, 먹을 것, 잠 잘 곳을 생각했어요. 아버지 집에는 없는 것이 없지 않느냐? 아버지 집에 돌아가면 무언가가 해결될 것을 믿었어요. 그리고 거지 꼴로 집으로 돌아갔는데, 이미 아버지가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아들 모습이 나타나자마자 그 먼 거리를 달려와서 아들을 맞이해 주었어요.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을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옷을 갈아 입혀주고, 가락지를 끼워주고, 송아지를 잡고 큰 잔치를 벌여 주었어요. 이 아버지에 대한 바른 생각을 갖는 것이 우리 인생에서 너무도 중요합니다.
마태보음 6장 26절을 보면,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더 귀하지 아니하냐?"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하늘 아버지께서 이 세상에 만들어 놓으신 모든 것들을 다스리시고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공중의 새들도 그렇게 기르시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어진 사람은 얼마나 더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아버지라는 위치는 자식을 책임져야할 위치입니다. 자식이 잘 못사는 것은 첫 번째로 아버지의 잘못입니다. 좋은 아버지는 자식이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아요. 좋은 아버지는 '너는 너고, 나는 나라.'라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제대로 안되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용납하지 않고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깊이 경험하기는 어려워요. 주님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내게 원하는 것을 주지 않고 부족해도,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자식은 하늘의 축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고, 아버지를 미워하고 있는 자식은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술을 너무 마셨어요. 그래서 술을 토해서 온 몸이 엉망이 되는데, 그런 아버지를 찾아가서 자기 옷으로 문지르고 아버지를 끌어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자식이 있어요. 그 자식들은 잘되더라는 것입니다. 못된 아버지라고 해도 잘 섬겨야 할 이유는 그분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내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내가 아버지를 이해 할 수 없어요. 우리가 그것까지 다 깨닫지를 못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성경을 주셔서 하나님의 법으로 우리에게 명령하셨어요. '부모를 공경하라. 네 눈에 틀렸다고 해도 공경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를 축복하리라. 그러나 공경하지 않으면 내가 너를 저주하리라.'고 주님이 협박까지 하시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최소한의 복종이라도 하게 하셔서 복을 주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율법을 통해서 우리이게 주시는말씀은,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아버지를 섬기는 것이 하늘의 아버지를 섬기는 것과 똑같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를 공경하면 천대까지 복을 받는 것입니다. 불순종이 죄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어요.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아브라함은 아들은 이삭을 데리고 삼일 길을 걸어서 모리아 산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산 위로 올라가서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들, 이삭이 전혀 반항하지 않아요. 그저 하나님께서 아버지에게 주신 말씀을 그대로 순종할 뿐이었어요. 이삭은 아버지를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임을 율법을 통해서 배웠어요. 그리고 그 순간에 온전히 제물이 되어서 순종했어요. 이삭은 아버지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하나님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을 때 복을 받게 됩니다. 이삭은 아버지에게 자기의 목숨과 모든 것을 맡겨 놓았어요. 이것이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아버지 사상을 갖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인사하는 것만 봐도, 그 사람의 신앙의 자세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에서는 집안의 어른이 오시면, 그냥 인사를 하지 않아요. 방에 모시고 들어가서 무릎을 꿇고 온 몸을 엎드려서 큰 절을 올립니다. 그것은 공경한다는 마음의 가장 적극적인 표현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그렇게 큰 절을 올릴 수 있는마음이 우리에게 언제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는 좋으신 분'이라는 분명한 사상이 필요합니다.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몰라서 그렇지, 무조건 좋으신 분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그 하나님의 사랑의 프래임을 갖게 되면, 여러분의 믿음은 쭉쭉 자라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좋으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분은 내가 무엇을 먹을까, 내가 무엇을 입을까 하는 것들을 아시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들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들이다.' 라고 하셨어요. 이것이 믿어지고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되면, 우리가 기도하다가 실망하는 일이 없어져요. 우리가 힘들어 지는 이유는 자기 욕심에 끌려서 미혹당하기 때문이지, 하나님은 절대로 좋으신 분이십니다. 자기에게 그 순간에 응답이 없다고 해서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은 죄입니다.
2.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프래임을 가져야 합니다.
아버지에 대한 분명한 사상을 갖게 되면, 그 때부터 우리는 적극적인 태도를 갖을 수밖에 없어요. 아버지가 뒤에 있으면 아이들은 자신감이 생겨요. 자기는 힘이 없고 아버지가 병이 들어 힘이 없어도, 그 아이에게 아버지는 매우 큰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늘 아버지를 믿고 있는 우리들이 하위 수준의 생각을 가지고 매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면서 힘 빠진 소리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만나기만 하면 힘이 빠지는 소리만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을 도와줘야 겠지요? 그런데 입에 언제 힘 빠지는 소리가 입에 배어져 있는 사람이 있어요. '목사님, 요즈음은 적자입니다. 제가 인건비 따먹고 살아요.' 그 분이 가게를 하는데, 단 한 번도 이문이 났다는 말이 없는데, 집도 사고 사고 싶은 것도 잘 사요. 그래서 불쌍해서 기도해 주었어요. 집도 사고 사업 장도 넓혀 갔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다시 물었어요. '요즈음도 어렵고 적자를 보십니까?' 그랬더니, 한다는 소리가 '먹을 것을 줄이고 지출을 막으면서 먹을 것도 줄이면서 일을 했어요.' 라고 말합니다. 너무 하위 수준의 프래임을 가지고 있어요. 정말 안되고 있다면, 말을 바꾸십시오. 이렇게 표현할 수 있어요. '제가 요즈음 하나님께 단단히 훈련을 받고 있어요. 제가 요즈음 하나님께 매를 맞고 있어요. 그래서 더 기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라고 대답하면 얼마나 좋아요? 먹을 것이 아직 하루치 더 남았으면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십시오. 반드시 하나님께서 당신의 빈 그릇을 채우실 것입니다. 그분은 너무도 좋으신 분이거든요. 주님은 긍정적인 것이고 믿음이 있는 고백을 순간마다 심는 것을 습관으로 삼으라고 하십니다.
민수기 13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지파별 지도자를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셨습니다. 12명의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 정탐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 열 명의 탁월한 지도자들이 모든 백성들에게 보고한 내용을 보십시오. 열 두 명 가운데서 열 명의 보고 내용이 뭐에요? '그 땅은 너무 좋은 땅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 비해서 메뚜기와도 같아서 도저히 그 땅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요.'라고 보고 했어요. 열 명의 정탐꾼의 생각은 메뚜기 사상이었습니다. 그들은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전혀 하나님을 온전히 믿어온 적이 없던 사람들이라는 것이 정탐 후에 나타나게 되었어요. 그들의 말을 들은 모든 백성들이 밤새 울면서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큰 염려에 빠지게 되었어요. 미래가 완전히 단절되어 버렸어요.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 두 명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그 땅은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곳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올라갑시다.'라고 호소했어요. 그러나 백성들은 그 두 사람의 말을 듣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돌을 들어서 오히려 쳐 죽이려고 했어요. 그러더니 결국 목적지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 길에서 방황하다가 인생을 끝내지 않던가요? 그들의 목적지는 가나안 땅입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방황을 하고 인생을 끝내요. 이런 사람들이 교회 안에도 너무 많아요.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의 마음과 보는 눈이 달랐어요. 그들은 하나님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눈에 보이는 현실과 현상은 전혀 불가능한 상황이었어요. 그러나 그들의 눈은 하나님의 눈과 마주쳐 있었어요.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를 온전히 신뢰하고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백성들이 반대하고 돌로 죽이려고 할 때에도 앞에 나아가서 그들을 막아 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언제나 긍정적입니다. 그리고 안되는 것을 보지 않고, 언제나 되는 쪽으로 보게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의 결론은 부정적인 상황 속에서도 긍정을 찾아냅니다. 그러니까 그런 분들을 보면, 너무 존경할 만해요. 싸우려고 하지 않고, 화도 내지 않아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눈으로 모든 상황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에게 무슨 염려가 있겠습니까? 그들은 부정도 긍정으로 바꾸는 능력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3.하나님 나라 건설에 대한 프래임을 가지십시오.
그러면서 3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프래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구하라'는 말은 매우 적극적이고 믿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천국을 간절히 구하고, 그 천국 건설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늘 아버지의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로움이 뭐에요? 의로움이라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생각과 그분이 이 세상을 다스리시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기준입니다. 그것을 우리도 갖도록 간절히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의가 아니라, 아버지가 가지고 계신 의로움과 그분이 가지고 계신 뜻을 이 세상에서 적극적으로 실현시키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것만 되면 우리가 염려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책임져 주신다고 약속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약속만 가져도 여러분은 승리할 수 있어요. 이 약속만 가지고도 여러분은 몸 바쳐서 죽도록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어요. 이 약속이 믿어지면 인생은 아주 간단해 지고 쉬워집니다. 문제는 그 믿음이 없어서 매일 고생하고 짜고 다니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위한 생각으로 바꾸면 인생은 보장된 것입니다. 무엇을 먹어도, 마셔도 입어도 하나님 앞에서 할 수 있다면.............생각을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이것만 바꾸면 신앙생활은 아주 쉬워요.
갑작스러운 사고가 나면 '왜 나는 되는 것이 없어.'라고 말하지 말고, '하나님이 나를 깨닫게 하시는구나.'하고 생각만 바꾸면 여러분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것이 아주 쉬워집니다. 이것은 대단히 논리적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보면, 사람이 깊고, 아주 지적이고, 따듯해지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열정이 있어요. 이것은 학교 공부를 많이 한 것하고는 전혀 달라요. 제 어머니를 뵈면, 어릴 적에 학교 다니다가 북한군이 쳐 들어와서 전쟁을 겪어야 했어요. 그리고 부모님을 다 잃어버렸어요. 그래서 배운 것이 없어요. 그런데 마음 쓰는 것을 보면, 언제나 하나님 중심, 그리고 다른 사람을 섬기려는 중심을 가지고 계세요. 다른 사람하고 싸우는 것이 거의 없어요. 싸우는 것보다 손해보는 것을 선택하세요. 그러니 사람들이 다 좋아하지요. 하나님은 그것을 믿음이라고 인정해 주세요.
이 세상을 보면, 먹고 사는 문제, 쾌락의 문제에 집중하도록 모든 프로그램과 시스템이 짜여져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 신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거기에 시간과 물질과 생각을 다 빼앗겨 버리고 있다면 안됩니다. 우리가 걱정하고 염려하는 모든 것들이 뭐에요? 예수님께서 안타까우셔서 말씀하시는 것들입니다. 먹는 것, 입는 것, 잠자는 것, 즐기는 것들............이것이 아닙니까? 여러분, 가인의 자녀들이 가졌던 생각의 프래임이 무엇입니까? 노아 시대에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의 생각의 프래임이 무엇입니까? 소돔과 고모라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의 프래임이 뭐였어요? 그들은 모두가 이 세상에서의 쾌락에 눈이 어두워져 있었어요.
그들이 싸우는 모든 이유를 보십시오.
이 시대가 싸우고 있는 모든 이유의 근저를 보십시오. 자기가 조금 더 먹고, 조금 더 좋은 것을 취하기 위한 전쟁이 아닙니까! 우리가 눈으로 보이는 세상만 보아서는 안됩니다. 죄악 때문에 멸망하게 될 소돔과 고모라 성으로 들어간 롯을 보십시오. 현상을 좇아간 사람의 최후를 보십시오. 그는 모든 것을 얻은 것 같았으나,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어요. 이 세상이 지금 그래요. 그러나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 같은 사람을 보면, 너무도 대단해요. 자기 문제는 이미 오래 전에 초월했어요. 그리고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준비를 항상 갖추고 있어요. 준비만 되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어떻게 똑같은 이슬을 먹었는데 뱀은 독을 만들어 내고 벌은 꿀을 만들어 냅니까?
깊은 단계에 들어가면 "하나님이 왜? 내게? 왜, 나만 이런 일이 생길까?"라고하는 질문은 없어져요. 하나님에 대한 의문이 완전히 사라져요. 아이들을 보면, 끊임없이 질문을 합니다. 그것은 지식을 채우는 과정이에요. 하위 수준의 프래임을 갖고 있게 되면 삶 자체가 답이 없고, 언제나 의문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결론을 내는 것입니다.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도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왜? 나만? 하고 있으면 안되요.
어떤 한 청년에게 한 가지 일을 맡겨 보았습니다. "왜, 나만 시켜요?"라고 하는 말을 나올 때까지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말을 안해요. 그래서 들어보니, '저는 이렇게 쓰임 받는 것이 좋아요.' 그렇게 말합니다.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언제나 "왜? 나를?" 이라고 합니다. "왜, 저에게만 큰 부담을 주십니까?" 라는 신앙을 뛰어 넘을 때가 언제입니까? 그 때는 영적인 세계를 보는 프래임을 보게 될 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완전히 믿어지는 순간! 의문은 사라집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서 먼저 건설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을 하나님 나라로 건설해 가면서 하나님의 나라까지 가야 합니다. 이 땅에서의 천국이 영원한 천국으로 이어지면서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지금의 삶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보면,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영광으로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않다.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위 수준의 프래임을 가진 사람과, 하위 수준의 사람이 가진 프래임은 너무도 다를 수밖에 없어요. 생각해 보면, 상위 수준의 신앙생활과 하위 수준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삶은 너무 달라요. 자기 수준을 높여 가야 하지 않습니까? 영적 세계에서 높여 가려는 생각이 없이는 높여질 수가 없어요.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처럼 생각을 하지 않고 결단하지 않으면 우리는 높일 수가 없어요. 그러니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 보고, 들여다보고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 다운 생각은 하나님의 틀에 맞추어진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