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는 교회를 떠나서 다른 교회에서 성회를 인도한다는 것은 참으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께 맡기고 주님이 쓰시는 종으로서 주님의 뜻을 잘 전달하기만 한다고 하지만 “은혜가 돼었는냐 은혜가 없었느냐”하는 평가가 나오기 마련이다
나 역시 내가 섬기는 교회에 강사 목사님을 초청하여 말씀의 잔치를 갖어보지만 성도들의 반응은 제 각기 나오고 혹이라고 은혜가 없었다고 하면 하지 않느니 못하다는 생각을 갖을 때가 많다 이와같이 교회에서 절기처럼 열고 있는 춘계부흥사경회니 혹은 추계사경회니 축복대성회나 창립기념성회라는 이름으로 각종 성회를 열 때 부담이 아닐 수가 없다
세 주간에 걸처 한국과 호주를 거처 다시 한국까지 가는 곳마다 개교회에서 설교하고 연합성회를 갖는가 하면 목회자 Forum이나 Seminar 강사로 세워져 말씀을 전하고 Nyskc 즉 예배회복에 대한 강의를 하며 지냈다
흔히 목회자들 사이에서 흔히 설 수 없는 대형교회에서 사경회를 4일간 열 번에 설교를 하게 되었다 주제는 “예배가 없는 곳에서 예배가 있는 곳으로”정하고 첫날부터 주어진 말씀에 충실하고자 애썼다
어떤 누구도 설교를 맡고 적당히 하는 목회자가 있겠는가
원고준비 철저히 하고 기도로 무장하였으며 조금이라도 여유로움을 갖어보고자 애쓰지 않는 목회자가 있을까
속된 표현으로 내 무대가 아닌 다른 무대에서 잘 해보고자 하는 소망이 없는 강사가 어디있겠는가 두려움과 간절함으로 하나님 앞에 서기도 하고 사람들 앞에 평가의 대상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한국교회가 120년이 넘어가고 있는 놀라운 축복은 이와같이 많은 교회가 많은 부흥사 혹은 목회자를 초청하여 천국잔치 말씀잔치라고 하는 의미적 부여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을 에수님을 영접하게 하였고 신앙의 슬럼프에서 신앙의 완주를 할 수 있게 하였으며 신약성경의 사복음서는 물론 사도행전에서 나타난 이적과 기사들이 일어나므로서 하나님 살아계심을 체험한 성도들이 있기에 전세계 선교국가가 되지 않았는가
물량적으로나 현상적으로 볼 때 세계적 10대교회 중에 다섯교회가 포함되어 있고 약 오천만이라고 하는 인구 중에 약25%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엄청난 사건을 만들어낸 놀라운 역사가 있었다 그뿐아니라 1973년에 빌리그래함목사님의 방한으로 이루어진 여의도 성회는 무려 백만이라고 하는 인파가 운집하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와같이 각 교회는 물론 연합성회의 부흥회내지는 사경회의 성격은 이처럼 하나님의 역사를 드러낼 뿐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이 현장에서 나타남으로 지산의 모든 교회가 현재도 진행 중에 있다 신학적으로도 부흥회 혹은 사경회를 정립하고자 노력도 하고 있는 것이 그 어느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실천신학부분에서 이런한 연구논문들이 나오고 있고 많은 목회자들이 나오고 있으며 신학교에서 학과를 설치하거나 혹은 과목을 설정하여 한국교회의 부흥의 역사 혹은 부흥사를 연구하고 강의 하고 있기도 하다
내가 초청받아간 교회역시 한국에 대표적인 부흥사라고 붙일 충분한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익 때문에 어찌보면 더 부담을 느끼는 교회였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 교회에 강단에 세워진 목사님들의 면면을 보면 한국에 최고라고 할 수 있는 목사님들이 세워졌고 현재도 그렇게 세워지고 세워져서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못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것 같은 교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벌써 나는 두 번째 축복성회를 인도한 경험이 있었고 이번이 세 번째였다 그동안 좋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초청한 것이라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하였다 그리고 10번에 설교였다 기쁨으로 감사로 누구도 설 수 없는 축복에 자리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하리하며 감당할 능력을 주실 하나님께 맡겼다
그러나 성회가 시작하여 둘째날이 접어들며 조금에 문제가 발생되었다
성회 자체는 문제가 없었고 성도들도 많은 은혜에 들어오고 잇었으며 매 시간마다 성령에 충만하심이 교회 위에 성도들에게 임하였음을 느끼고 있었다
나를 가이드 해준 장로님은 너무나 기쁜마음으로 섬기게되고 헌신하게 되어 감사하다고 하며 자신 뿐아니라 성도들의 반응을 전해 주었다
감사함으로 받아드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하지만 저를 따라오신 목사님들이 몇분이 있었다 미국에서 오래 사셨고 미국화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상당부분에 있어서 한국에 계신 목회자와는 다른 삶에 모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생각의 차이 인식에 차이로 인하여 불편한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된 일이 성회를 기간 내내 나를 짓눌렀고 성회를 끝난 현재까지도 내 마음에 부담으로 작용되고 있다
예컨대 미리 알려주지 못한 내 실수일수도 있고 상대에게 부담 드리려고 한 것이 아니라 한국을 잘 알지 못하는 가운데 한 분의 목사님이 숙소에 대하여 “알아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한 것이 오히려 상대에게 부담을 드렸고 그것이 발전하여 “우리가 목사님만 초청하였지 다른 분들을 초청한 것이 아닌데 왜 우리에게 미리 통보하지 않고 몇 분의 목사님들이 찾아와 부담을 주느냐”하는 뜻으로 저에게 통보하므로서 이것이 성회를 방해하는 요인이 되었다고 생각이 되었다
춘계부흥사경회를 인도하기 위하여 들어간 강사가 사전에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고 한 분도 아닌 네 분의 목사님들과 아들과 같은 청년 하나를 대동한 것처럼 보인 네 잘못이 아주 컸다는 자성을 해본다
그 교회로서는 엄청난 기도와 예산을 준비하여 일년에 한번 있는 절기의 축제를 열고자 한 것인데 난데없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숙소를 달라 먹을 것을 달라 뿐 아니라 우르르 몰려다니고 사무실을 점령하고 숙소로 옮겨갈 때마다 차량의 부족으로 이리저리 준비하게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하는 인상을 주었으니 말씀을 전하여 은혜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교회를 움직이는 담임목사님과 당회에 아주 심각한 전례를 남긴 것만은 죄송하고 미안할 뿐이다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내 섬기는 교회에 목사님 한분을 초청하였는데 생각지도 않게 많은 분들이 찾아와서 부담도 주고 분위기도 자기들 중심으로 옮겨간다면 결코 잘 한 일이 아닐 것이 아닌가 그래서 송구스럽고 부끄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원래는 이런 뜻이 아니였고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었다
저와 함께 한 목사님들은 단순하게 저와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숙소로 인하여 자주 왔다가 갔다가 하는 것이 힘들다는 생각으로 가까운 곳으로 숙소를 옮겨 시간 시간 성회에 참석해야 하겠다는 생각이었고 또 저와 함게 있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저와 상의없이 한 일었다
그 일이 이처럼 초청한 교회에 피해가 되었으니 꾸지람을 듣고 불평을 듣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이 일로 인하여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사람의 생각은 각기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또 성회에 말씀을 소중하게 전했다고 하여도 그 외의 일들 조차도 잘 준비하지 못한다면 결국은 하나님의 잔치에 소란을 피우게 되는 방해꾼이 된 것이 아닌가 한다
나의 불찰로 생긴 이번 성회 안에서 일어난 작은 일은 오히려 나는 또 다른 세계를 알게 되었고 또 다른 사람의 면을 보게 되었으며 좋은 것이 다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회가 크다는 것 하나로만 모든 것이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고 직분에 상응하는 범주에 있는 분이라고 해도 자기에게 손해가 된다고 생각할 때 언제든지 싫어하고 폭언도 일삼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나를 따르는 사람은 나의 책임이며 내가 보호해야 한다”는 것도 다시 깨닫게 된 것이 하나님께 감사요 기쁨으로 되었다
“나를 따라오라......내가 너희를 보호하리라........물 가운데 지날 때나 불 가운데로 지날 때 물이 엄몰하지 못하게 하겠으며 불이 너를 태우지 못하게 하리라....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