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흔히 말씀을 가리켜 영의 양식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기도는 영적인 호흡이라고 말합니다. 영의 양식인 말씀과 영의 호흡과도 같은 기도는 둘 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음식은 한 두끼 안 먹어도 견딜 수 있지만 호흡은 5분만 쉬지 않아도 다 죽게 됩니다. 이것은 그만큼 기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숨을 쉬고 있다면 그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기 기도하고 있다면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고 산다면 그 사람은 숨통이 막혀 있는 영적으로 답답하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말씀하신 본문 말씀을 가지고 “끈질긴 기도와 기도는 회복의 도구"임을 발견하고자 합니다 (눅18:1-8)
1. 우리는 낙망치 말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1-5절).
첫째,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까?(1절-“저희에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낙망치 말고 기도하라고 비유로 하신 말씀입니다예수님의 제자들의 삶 속에는 부족한 것들이 참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은 기도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것은 알았지만 무슨 내용을 가지고 어떻게 기도하시는 지는 몰랐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에 모든 것이 공개되었지만 늘 한적한 곳으로 가시어 하나님과 은밀하게 나누시는 기도생활 만큼은 제자들이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누가복음 11장 1절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자신들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떻게 기도할 것인지를 말씀하시면서 한 본보기를 가르쳐 주셨습니다(눅11:2-4).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기도할 때 강청하는 끈질긴 기도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11:5-8).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한 것은 매우 잘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4복음서를 통해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은 하였지만 실지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눅22:39-46).
우리가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기도의 방법과 내용을 아무리 잘 설명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실제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기도의 내용과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기도의 응답을 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그 사람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기 때문입니다(눅11:9-13).
둘째, 예수님께서는 언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까?(1절-“항상 기도하고”)
항상 기도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서도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생활 자체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기도하는 생활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6장 18절에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라고 했습니다. 성령 안에서 무시로 곧 어떤 때이든지 기도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순간에도 우리가 기도하는 기도를 들으시고 그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매 순간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여 응답 받는 축복된 삶을 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때문에 기도는 우리의 삶 속에서 습관으로 자리잡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습니다(눅22:39).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본받는 삶, 하나님 앞에 올바른 믿음의 삶을 살려면 매 순간 기도하는 습관이 형성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느헤미야를 보면 어떤 환경이 주어지든지 간에 먼저 반사적으로 하나님께 묻고 기도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느2:4, 4:4, 6;9).
성경에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았던 사람들은 모두가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의 삶 속에 기도하는 모습이 좋은 습관으로 자리잡고 있어야만 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으며,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교만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한 채 살기 때문에 무능력하고 무가치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도하는 것이 나의 삶 속에 습관으로 자리 잡힐 때까지 하나님 앞에 나와서 실제로 기도하겠다는 결단이 성도님들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까? (1절-“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예수님은 낙망치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언제 낙망하게 됩니까? 우리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지지 않았다고 생각될 때 낙망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열심히 기도했는데도 아무런 응답이 없게 될 때 낙망하기 쉽습니다.
우리들이 기도할 때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마치 과부가 재판관에게 나오는 그런 심정 말입니다. 그런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나와서 무릎을 꿇긴 꿇었지만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하고자 할 때 가슴이 너무나 답답하고, 너무 짐이 무거워 종종 기도하다 말고 이렇게 질문합니다. “정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계신가? 하나님은 나 같은 사람에게 관심이 계신가?
하나님께서 혹시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닐까?
더 기도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한 마음이 자꾸 생겨납니다. 기도가 순식간에 응답이 안 오면 “내가 무엇을 잘못 기도하고 있지 않는가?” 질문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한두 번만 기도하면 모든 것을 다 응답해 주시지 왜 오랫동안 기도하게 하시는지 궁금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기도 응답받는 것만 목적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으면서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내 생각과 내 뜻을 다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뜻만을 받아들이면서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해 주실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끈질긴 기도의 요점은 하나님의 반대를 결국 꺾겠다는 것이 아니라, 끈질긴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기도가 응답 받아야 할 방식과 시점에 대한 하나님의 지혜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을 도우시길 꺼려하시거나 자신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되는 것에 대해 마음 내키지 않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단지 우리의 기도가 언제 어떻게 응답 받아야 될지에 대해 우리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기도에 있어서 우리의 끈기는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라는 것과 우리의 끈질긴 간구에 대해 가장 좋은 시기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확신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나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 것을 믿으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때에 하나님의 방법대로 반드시 우리의 기도를 이루어 주실 것을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은 낙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도한 것은 하나님께서 들으셨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그것을 이루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좋으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낙망치 말고 하나님께서 주실 때까지 기대하면서 기도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넷째, 예수님께서는 어떤 비유를 들어 기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까?(2-5절)
예수님께서는 낙망치 말고 기도해야 할 것을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2-5절). 이 재판관에게는 두 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었습니다(2,4절). 이런 재판관은 공의가 법이 아니라 자기가 법이 되어 돈을 탐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재판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불의한 재판관이 과부와 같이 힘없고, 돈 없고, 빽 없는 사람을 거들떠보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과부에게는 없는 것 투성이였지만 그에게는 있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낙망하지 않고 끈질기게 다가가는 태도가 있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인내가 이 여인에게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자주 찾아가 강청하자 재판관은 스트레스와 괴로움을 견디다 못하여 마침내 과부의 소원을 들어주었던 것입니다(5절).
재판관은 과부의 호소에 얼마동안 무관심했습니다. 과부가 집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도 무시했고, 재판소에서 나올 때 그를 따라 가며 고함을 쳐도 무관심했습니다.
그러나 계절이 바뀌어도 과부의 호소가 계속되자 재판관은 귀찮아졌습니다. ‘저 여자 어떻게 해야 되겠나. 죽이지도 못하고 살리지도 못하고 정말 곤란하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는 밤에 잘 때 그 과부가 꿈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밥을 먹을 때도 그 여자 생각이 나고, 재판소에서 일할 때도 그 여자 생각이 났습니다.
아예 머리 속에 온통 강청하는 과부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불의한 재판관의 마음이 번민으로 가득 차게 되어 결국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게 된 것입니다. 재판관은 과부를 위해서 문제를 풀어준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 그 문제를 풀어주고 과부는 문제 해답을 얻게 된 것입니다.
위대한 일을 성취했던 사람들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노아 웹스터(Noah Webster)는 “웹스터 사전”을 집필하기 위하여 36년간 자료를 수집하고 대서양을 두 번이나 횡단했습니다.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의 유명한 그림 “최후의 심판”은 8년 동안 땀 흘려 완성한 작품이며,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의 “최후의 만찬”도 10년을 걸려 완성한 작품인 것입니다. 심지어, 꿀벌은 살아 있는 동안 지구의 세 바퀴나 되는 거리를 날면서 꿀을 모은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모두 끈기와 인내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원한 맺힌 이 과부는 누가 무어라 말해도 끈질긴 인내로 불의한 재판관에게 호소해서 들어 줄 때까지 매달린 결과로 응답을 받았습니다.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주님 말씀한 것처럼 이 불의한 재판관 앞에 과부는 아예 물러가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기도하다가 죽더라도 기도하다가 죽지 낙심해서 물러가서는 죽지 않겠다는 각오를 하고 매달렸습니다. 그 결과로 응답이 온 것 입니다. 우리도 과부와 같이 끈질기게 기도하라고 주님께서 격려하는 것입니다.
휘튼 칼리지의 에드몬드 학장은 “그만 두기에는 항상 너무 이르다.” 는 말을 자주 하였다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는 말씀은 여러분의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여야 할 말씀입니다.
우리의 기도생활이 연약한 것은 한두 번 기도하다 응답이 없으면 쉽게 포기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낙망하지 않고, 이루어질 때까지 부르짖는 과부의 기도생활을 배우게 된다면 우리의 삶 속에는 기도 응답으로 인한 많은 축복들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관찰1. 불의한 재판관이 과부의 소원을 들어주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습니까?(5절)
Ⅱ. 우리는 믿음을 보이면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6-8절).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재판관을 끈질기게 찾아가 소원이 이루어진 과부에 대한 말씀을 하신 후 6절에서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재판관과 의로우신 하나님을 비교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으로부터 소원을 응답 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부의 소원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하물며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기를 원하시는 의로우신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 받는 일은 얼마나 쉬운 일이겠는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불의한 재판장에게 과부가 기도하는 것에 비한다면 우리의 기도는 너무나 쉬운 일인데 왜 그것을 하지 못하느냐?” 는 말씀입니다.
“과부가 불의한 재판장에게 응답을 받아냈다면 우리가 좋으신 하나님께 간구하여 응답을 얻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인가?” 한번 생각해 보라는 말씀입니다(마7:9-11).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사람의 기도를 응답하신다고 했습니까? (7절)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기도”(7절)를 들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이 택하신 자입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이 택한 자입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우리의 기도만을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택한 자가 되었다 할지라도 “밤낮 부르짖는 끈질긴 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것도 응답되지 않는다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밤낮 부르짖는 기도를 하기를 심히 원하시고 계십니다. 과부처럼 끈질기게 포기치 않고 매달리는 사람의 기도를 하나님은 이루어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구원받았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응답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밤낮 부르짖는 기도가 있을 때 응답 받는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누가 간절히 부르짖어 하나님께 기도하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가진 것이 없이 절박한 상태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절박한 마음으로 우리 교회의 부흥을 위하여 밤낮 부르짖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이 우리 교회에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이 부르짖는 기도를 속히 응답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8절 상반절).
저의 누나가 아메리카 익스프레스 뱅크 미국 은행에 다니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 회사에 함께 지내는 여자가 있었는데 얼마나 저희 누나를 괴롭히는지 너무나 힘들어 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누나는 어머니에게 기도 부탁을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그 여자의 마음을 녹여 주셔서 좋은 마음을 갖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격이 괴팍한 그 여자가 좋은 마음을 가지고 누나를 대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그 여자로부터 괴롭힘을 받으면서도 회사는 계속 나가야 하니까 누나는 너무나 힘들어 했습니다. 어머니는 누나에게 걱정말라고 하면서 계속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누나가 회사에 다녀와 집에 와서는 그 여자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유를 알아보니까 그 여자가 임신을 했는데 태교를 하여 자라나고 있는 아기에게 좋은 영향을 주어야 한다고 하면서 악한 태도와 괴팍한 성격을 버리고 다정다감하게 대하더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법을 통하여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 우리에게서 무엇을 보길 원하십니까?(8절)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8절 하반절에서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즉, “과부처럼 믿음을 가지고 절박한 심정으로 끈질기게 기도하는 사람을 내가 재림할 때에 볼 수가 있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질문의 답은 그런 사람을 만나 보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신뢰함’ ‘의지함’ 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언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합니까? 그것은 내 힘으로 안될 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내 힘으로 뭔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나의 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내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신 것은 “자기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을 내가 만나 볼 수 있겠느냐?”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고 싶어하는 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낙심치 않고 끝까지 간구하는 모습을 보기를 원하고 있으십니다. 기도하는 모습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만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기도하는 모습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요즈음 새벽기도에 나와서 기도하는 분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수요예배보다 새벽기도 나오는 사람이 더 많은 정도로 한 분 두 분 더해져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좋은 일입니다.
죠지 뮬러는 자신이 기도 응답을 받는 비결을 두 가지로 이야기했습니다. 첫째는 “내가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먼저 확인하였다고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하게 되면 “응답 받을 때까지 낙심치 않고 끈질기게 기도하는 것” 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드리는 기도가 나의 욕심과 야망을 위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드리는 기도라고 확신이 서게 되면 이제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않고 이루어 주실 때까지 끊임없이 기도하여 응답 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드리면 반드시 응답받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비가 내릴 때까지 끈질기게 제사를 드리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이 있고 하실 수 없는 일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은 우리가 낙망치 말고 기도하도록 격려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낙망치 않고 기도하면 응답된다는 것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실 수 없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대신하여 기도해 주실 수는 없습니다. 그 때문에 기도는 반드시 우리가 해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 천안 성서침례교회 성도 가운데서 “내가 너희 가운데서 낙망치 않고 기도하면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볼 수 있겠느냐?” 하시면서 찾으실 때 우리 가운데서 여러분이 기도하는 사람으로 발견될 수 있도록 지금 하나님께 결단하고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없이 우리가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과 우리 가정, 우리 교회는 변화될 수 없습니다.
기도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영적인 존재인 사람은 죽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기도를 하면 산다는 말은 기도가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병이든사람이나 죽어가는 사람이 살아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라면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살아나는데 기도가 그중에 하나라고 했습니까
기도가 영혼의 호흡이기 때문에 기도를 하는 것은 호흡은 이루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호흡만 가지고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양식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의 호흡이 기도이므로 과부의 기도를 배우라고 했습니다.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기도를 응답하신다고 했습니다. 항상 낙망하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만약 이 여인처럼 기도하지 않는다면 과연 얻을 것을 얻고 문제를 해결하고 회복될 수 있을까요
그렇지는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시간 이후로 낙망치 않고 끈질긴 기도로 온전히 회복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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