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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주간, 특별새벽기도회 첫째 날..."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은 약하도다"

“He was wounded for our transgressions”“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로 인함이라”(사53:5)

고난 주간을 은혜 가운데 특별새벽기도회로 시작하며....

육신으로 태어난 사람은...물과 성령으로 다시태어나 거듭난 인생으로 살아가야 할 그리스도인이다

육신은 약한 것이므로 깨어 기도하라

육신은 약한 것을 정당화 하는 것은 바른 신앙관이 아니다.

고난 주간에 맞이하여 모든 교회가 일제히 기도회를 열어 성도들의 기도할 것을 권면하고 있는 가운데 Nyskc Movement(예배회복운동)에 함께 하는 교회들도 별도의 기도회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교회는 물론 전 세계에 디아스포라 교회들이 다 고난 주간 특별기도회를 갖고 있다

전통적으로 행하던 아름답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회로 오늘날까지 계속이러지고 있을 뿐아니라 예수님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계속되어야 할 특별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막 14:32-42절의 말씀으로 시작되었다

어떤 이에게는 십자가가 놀라우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가왔고 어떤 이에게는 마른 막대기로 다가온다

왜 그럴까

한 예로 분쟁 있는 어떤 교회 목사님꼐서 싸우는 성도들에게 십자가를 하나씩 주면서 화가 나거나 속상하거나 싸우려고 할 때 십자가를 바라보세요 하였더니 한 주간은 싸움을 안하더랍니다. 싸우려고 하면 십자가에 손에 들려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하지난 줄째 주간을 지나면서 세째 주간에 이르니 손에 쥔 십자가를 내 던지면서 이까짓 막대기가 무엇이냐 하며 내 던지더 랍니다


세상의 어떤 사람들은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어 실패했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에 의해 버림받아 구세주가 되지 못한다 합니다. 자기 한 몸도 지키지 못해 죽임 당한 예수가 어떻게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느냐고 말들 하지요. 그러나, 이런 모든 소리는 다 무지에서 나온 말들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은 그분의 약함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만을 나의 주인님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고난 주간 무엇보다 우리는 그 십자가의 고난을 묵상하며 주님께 감사해야 합니다.세상의 어떤 사람들은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어 실패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 일을 굳이 감당하지 않으셔도 되었습니다. 사람이 지은 죄의 형벌을 받는 것은 예수님께는 책임이 없었습니다.

죄에 대한 형벌은 사람의 죄 때문에 온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굳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으셔도 세상은 아무도 예수님에게 손가락질 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부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죄인인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고후5장 2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십자가를 작정하셨고, 예수님은 영원한 형벌로부터 건지시기 위해 고난의 십자가를 담당하셨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감사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갈3:13)

 

그러나, 이 십자가는 너무나 무거운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었던 예수님은 이 십자가를 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습니다. 이 십자가는 육체를 가진 사람이 당하는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형벌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런 예수님의 심적 상태를 보여주는 말들이 있습니다.


막14:33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절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우리는 이런 구절을 통해 십자가의 고난 앞에 서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과 예수님의 모습 사이에 그다지 큰 차이가 없음을 보게 됩니다.

사실, 우리는 종종 예수님이 얼마나 철저하게 완전한 사람인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구원자이신지를 잊어버립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던 예수님의 모습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36절에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피하고 싶었지만, 주님은 두려움마저 성부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하기로 결단하셨습니다.


우리의 기도도 이렇습니다. 설령 눈앞에 닥친 어려움을 피할 수는 없어도 기도할 때 우리는 그 어려움을 넉넉히 견딜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고통의 정원에서 몸부림치며 기도할 때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도록 반드시 도우실 것입니다.

 

37절에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마음의 고뇌로 가득차 있던 예수님과 달리 아무 생각없이 잠에 곯아 떨어져 있는 그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어찌보면 이 말씀은 ‘그래도 너희는 나를 기억해야 하는 것 아니냐, 너희만은 나의 십자가를 놓고 통곡해야 하지 않느냐’ 그렇게 들립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것처럼 하나님의 뜻이라면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깨어 기도하는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육신은 약한 것이니 육신에 의지하여 피곤하다는 변명하는 육신적인 생각을 벗어나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 하면 우리는 벌싸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버리고 믿음으로 나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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