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실의 원리(설교)

백배의 결실 그 원리(1)

창26:12~15,23~25


본문의 말씀과 마 13:1~23절까지의 말씀에서 공통된 점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30배 60배 100배의 수확적 법칙이 적용되어 있는데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한마디로 가슴벅찬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해 주시는데, 이삭은 한 해 동안 농사를 지어서 거두어 드린 것이 100배였다고 했습니다. 100배의 수확으로 마침내 창대하고 왕성하여 그 해에 거부가 되었습니다. 이삭이 이렇게 된 비결을 알기 위해서는 3대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은 어떠한 비결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원리가 있습니다. 물론 영적인 원리로도 포함된 말씀입니다.


첫째, 우리는 ‘그 땅, 그 땅을 알아야 한다.

수확의 원리는 토질에 따라서 좌우된다. 아무리 씨가 좋아도 토질이 안좋으면 수확도 별로입니다. 이와 반대로 토질이 좋아도 씨가 나쁘면 수확이 부진합니다. 죽은 씨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땅이란? 마음을 가리킵니다. 여러분 자신을 비교하면서 말씀을 받아먹어야 합니다. 이 땅은 나를 가립니다. 그러니까 오늘 나 자신이 좋은 땅인지, 좋지 못한 땅인지, 여기 둘 중에 하나는 분명한데, 오늘 말씀을 통하여 들으면서 자신을 비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통해서 좋은 땅인지, 나쁜 땅인지 나타날 것인데, 여러분 자신의 양심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좋은 땅을 가리켜, 옥토라고 하셨고, 나쁜 땅을 가리켜 박토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기를 네 가지의 땅을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에도 수확법칙에 토질은 네 종류가 있는데, 1) 길가, 2) 돌발, 3) 가시 밭, 4) 옥토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100배의 수확은 옥토에 떨어진 씨앗에서만이 거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은 ‘한 사람이 다같은 씨앗을 네 종류의 서로 다른 밭에 심었다는 것입니다. 한 씨는 길가에 심어졌고, 또한 씨는 가시밭에 심어졌고, 또한 씨는 돌짝밭에 심어졌고, 그리고 또한 씨는 좋은 땅, 옥토에 심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 13에서 길가에 심기워진 씨는 심자마자 새가(마귀)가 와서 쪼아먹었고, 그리고 가시밭에 심기워진 씨는 가시나무 기운에 막혀서 자라지 못했고 또한 씨는 돌짝밭에 심기워졌는데 그 씨가 자라지 못하고 강렬한 태양열 때문에 타서 죽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좋은 땅에 심기워진 씨는 자라서 열매를 맺었는데 30, 60, 100배의 열매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신 그 의미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천국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씨는 말씀을 가리키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들어서 깨닫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을 가리킨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가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하나님의 말씀이 풍족하게 전해지는 이 때에 말씀을 받는 사람들의 반응은 다 각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같은 말씀을 받는데, 말씀을 받는 반응은 각각입니다.


말씀을 밭는데 길가와 같은 반응을 즉시 나타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말씀을 받아서 마음밭에 간직하지 못하고 사단 마귀에게 다 빼앗겨 버려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길가와 같은 인생은 천년만년 예수를 믿어도 교회에 암적인 존재요, 주의 일 하나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신자는 더 이상 예수를 믿을 필요가 없이 세상 일만하다가 지옥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신자가 오늘 말씀을 받는 가운데 있다면 ‘회개하는 일 외에’는 없습니다. 길가와 같은 신자는 말씀을 들을 때, 그 마음밭에 말씀이 속속 들어가기는 잘합니다만 그 마음속에 새들이 지키고 앉아 있다가 즉 마귀가 지키고 앉아 있다가 말씀의 씨가 들어오면 인정사정 보지 않고 다 빼앗아버립니다. 길가와 같은 부산한 마음에는 복음은 역사할 수 없습니다.


또한 가시나무에 씨가 떨어졌는데, 가시 기운 때문에 씨가 자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가시나무 기운은 무엇을 말하는가?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염려가 많은 사람이요, 걱정이 많은 사람, 생각이 많은 사람,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보다는 다른 곳에만 정신이 쏠려있는 사람,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는 예배드리는 그 생각 속에 다른 것으로 가득히 쌓여있는 사람,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 속에 정착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신앙도 결국 망할 수밖에 없으며, 질식해서 죽는다고 했습니다.


오늘 예배당에 오셔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있는 자신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물론 예배는 드리고 있지만, 온통 자신의 생각이 다른데 만 있지는 않습니까? 몸은 예배당에 와 있습니다만,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기울 리기 보다는 생각이 저- 멀리 세상으로 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서 자랄 틈바구니가 없습니다. 여러분! 예배란 내 마음과 정성을 다하고, 온힘을 다하여서 영과 진리로 내가 아버지 앞에 드리는 것이지, 교회만 들락거린다고 해서 신자로 착각은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내가 예배당에 들어와서 진실로 하나님 앞에 드려야할 마음과 온 정성을 드리지 않고 있다면. 이는 예배가 아닙니다.


오늘 나 자신이 이러한 신앙인이었다면 분명히 말해서 지금까지 그의 신앙은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는 자입니다. 예배당만 구경하고 다녔을 뿐이지, 예배와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세상의 염려와 재리에 대한 미혹 때문에 자라지를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말씀을 들으시면서 초초마다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면서 그리고 오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어떠한 반응이 나타나고 있는지를 채크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을 받고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본인이 하나님 앞에 나타나는 반응은 놀라울 것이며, 은혜가 너무도 커서 감사합니다. 하고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또한 예수님의 비유가운데 돌밭에 떨어진 씨앗 역시 떨어져서 심기워지지 못하고 강렬한 태양빛으로 타서 죽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주님은 무엇을 우리에게 깨닫도록 하십니까?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드립니다. 그러나 문제는 심각합니다. 말씀을 잘 받아드리고는 무엇엔가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어떤 실패가 오면, 신앙도 포기하고, 믿음도 포기하고 주님도 포기하고 교회와 등을 돌려버리는 데마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결국 이러한 신앙은 지금껏 예배당에는 다녔지만 구경꾼 신자에 불과한 것이다. 교회는 다녔는데 구원과는 상관이 없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말씀을 들으신 대로 예배당에 들어와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태도와 말씀을 받아드리는 사람들의 반응이 다 다르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설교자는 주님의 말씀,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는 선포자요, 여러분을 인도하는 목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 귀한 생명의 말씀이 어려분의 그 가슴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반응이 없을 때는 설교하기도 힘이 들고 설교를 그만두고 강단에 무릎 꿇고 엎드려서 울고 싶은 생각 외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설교를 하면서도 한편으로 그 사람을 응시하고 기도를 합니다. ‘주님, 저~ 형제, 자매, 집사의 마음 문이 열려지도록 도와주옵소서 말씀을 받아먹지 못하고 세상의 어떤 염려로 생각이 복잡한 저들의 마음을 열어 주옵소서! 합니다. 여기 서 있는 저는 20여 년을 목회를 하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며, 또는 각 교회로, 기도원으로 집회를 인도 차 다녀 보았습니다만, 예수 믿고 천당 갈 사람들은 역시 그 사람의 신앙관이 다르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집회를 인해 보면 역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사람인지 아닌지를 보면 알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20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신앙관이 지저분한 사람입니다. 언제나 신앙관이 성령체험 한 번도 없이 은혜받은 것도 없이 한심스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 다시 오실 때 그러한 형편없는 믿음으로 어떻게 하려는지, 불쌍하기도 하고 주의 종의 가슴만 아픕니다. 그런데 여러분! 좋은 땅, 좋은 밭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인내하며, 결실을 맺는 사람들, 이들은 마지막 때 환난을 이긴 자들이요, 우리 주님 오실 때 천년 왕국에 들어갈 자들이요, 복된 성도들로서 보장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눅 8:15에 ‘씨가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정직하고 선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켜서 인내로 열매를 맺는 자들을 두고 말함이라.’ 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고도 아버지께 대한 관심이 없는 돌밭과 같은 인생, 길가와 같은 인생, 가시밭과 같은 인생, 지금까지 들으신 대로 이러한 인생들은 마지막 나팔 불 때, 주님의 마지막 나팔인 일곱째 나팔 때에 그 나팔소리가 들려와도 그들은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우리 주님 재림 나팔 때에도 관심이 없을 것은 뻔한 일입니다.


주님의 나팔소리가 들려와도 지금 말씀에 관심이 없다면 그날에도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회개하라, 고 외치면. 너나 해라, 나는 회개 안 해도 된다는 사람, 분명코 그날에 슬픈 종이 울리는 날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저 유대인들이 성경을 볼 줄 몰라서 그리고 율법을 몰라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밖아 죽였습니까? 유대인들은 성경도 율법도 철저히 지키고 자기들만이 최고의 신앙인들 인줄 알았는데,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 초림 때에 예수님을 영접하지 안았습니다.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저들은 예수를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는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는데,


저들은 아직도 초림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한국교회는 성경도 많이 알고, 설교가 풍년이 든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다시 오실 예수님의 말씀은 관심이 없습니다. 한때 이단집단들이 이장림이나 나이 어린 하방익군 등이 95. 10. 28. 0시에 예수 재림한다고 해서 나라 안팎으로 얼마나 혼란했습니까? 교계는 교계대로, 평신도들은 평신도대로 혼돈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교회는 예수님 재림 소리만 나오면 소화불량증이 걸릴 정도로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는 말씀만 해도 이단으로 귀정짓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우리나라도 저 유대인들처럼 성경 박사라고 해도 예수 재림을 외면할까봐 두려움이 앞서는 것입니다.


요 5:39~40,‘성경을 상고하라. 이는 너희가 성경에 영생이 있다고 생각함이니 그 성경은 나에 관하여 증거하고 있음이라. 너희는 생명을 얻으려고 내게 오기를 원치 아니하는도다.’ 고 말씀합니다. 그토록 성경을 잘 알고, 앵생 얻는 것도 알았지만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거절하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밖았던 것입니다. 오늘 교회들이 추수할 복음을 외치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외쳐야 하는데, 그러나 이 일을 교회들이 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이 재림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들이, 성경을 안다는 사람들이 재림하실 주님의 소식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참으로 성경을 잘 알았고, 율법도 지켰습니다만 그러나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아 죽였습니다. 오늘날도 그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는 말씀을 전하면 한마디로 거절하는 것입니다. 정 목사는 성경을 읽어가다가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도 기쁘고 좋은데, 이 분이 오시면 인류의 최고의 대잔치가 우리 믿음의 백성들 때문에 이루어질 것인데, 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사건입니까? 그러나 이 진리를 가르치면 덮어놓고 무시하고, 핍박하고, 그렇게 친한 사람들까지도 등을 돌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조건 이단으로 몰아 부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가 생명의 말씀인 좋은 소식을 오히려 욕으로 돌린다는 것입니다. 이 기쁜 소식을 욕으로 돌리고, 성경도 많이 알고 기도도 많이 한다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외면합니다. 이들은 유대인들과 같은 자들이요, 바리새인들이요, 이들이야말로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도 주님이 오실 때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는 땅이 좋아야 합니다. 땅이 아무리 넓고 큰 총회장 급 땅이라고 해도 옥토가 아니면 열매 맺는 것은 이미 틀린 것입니다. 성경에 이삭은 좋은 땅, 그 마음 밭에 말씀을 받은 축복받은 자입니다. 이삭이 100배의 큰 복을 받은 땅이 어디인가? 바로 ‘그랄’입니다. (Gerar : 거주지) 그랄이란 곳이다. 이곳은 불레셋 왕 아비멜렉이 통치하는 지역인데, 이곳은 또 아브람이 자기 아내 사래를 누이라고 속이다가 말할 수 없이 망신당한 조상의 전설이 뭍힌 고장이기도 합니다. (창 20:1)


이삭은 아브리함 때에 흉년을 피해서 이곳으로 와서 거주 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느 날 이삭에게 나타나 말씀하시기를 ‘이 땅에 기거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와 함께하고 너에게 복 주리라. 내가 너와 네 씨에게 이 모든 지역들을 주고, 또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리니 내가 네 씨를 하늘의 별들처럼 번성하게 할 것이며 이 모든 지역들을 네 씨에게 주리라. 네 씨 안에서 땅의 모든 민족들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목소리에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들과 내 규례들과 내 법들을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 이삭이 그랄에 거하였더라. 고 했습니다. 순종하고 명령과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켰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지켰습니다. 이 말은 오늘 우리에게 똑같이 주어진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계 1:3, 이 예언의 말씀들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거기에 기록된 것들을 지키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그 때가 가까우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말씀대로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 무엇을 심어야 하는가? (레마) 씨를 심어야 합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토질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씨를 심지 아니하면 수확이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씨가 좋아도 토질이 나쁘면 씨가 자라지 못한다, 그러므로 수확은 없는 것입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비유하는데, 그 말씀이 오늘 내게 올 때에 어떤 반응이 나타는가? 하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씨요, 레마인데, 지금 나 자신의 마음 밭은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말씀이 그 마음에 심어졌습니까? 그 마음에 열매가 맺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어떻습니까? 말씀에는 객관적인 말씀 (로고스)과 주관적인 말씀 (레마)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요 1:1절의 말씀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주관적인 말씀 (로고스)이고, 롬 10:17절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그리스도의 말씀 (레마)의 말씀은 주관적인 말씀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를 못합니다. 학식은 풍부한데 진리에는 눈이 멀다. 그래서 진리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말씀을 많이 들었다고는 하지만 믿음으로 화합지 아니하기에 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히 4:2,‘이는 복음을 전해들은 것은 그들이나 우리나 마찬가지이나 전파된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을 주지 못한 것은 들은 자들이 믿음을 결합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 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해서 복을 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잘 받고도 화합지 못하는 것도 복이 없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화목하고 화합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 때의 흉년을 피하여 그랄로 이사를 한 이삭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신 계시의 말씀은 외롭고 쓸쓸했을 이삭에게는 엄청난 위로와 소망이 아닐 수 없으며, 이것은 이삭에게 있어서 축복의 씨앗이었습니다.


만일 이삭에게 있어서 계시가 임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모르기는 해도 이삭은 그날 밤, 불안한 그랄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갔을지 모릅니다. 일시적 기근 때문에 약속의 땅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가는 길은 무엇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을까요? 일시적인 기근이 있다고 해서 약속의 땅, 아니 교회를 등지고 하나님을 등지고 애굽으로 내려간 자들을 말하는데,

만일 일시적인 어려운 시험과 실패가 있다고 해서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은 일시적인 육적인 편안함은 있을지는 몰라도 그러나 100배의 축복은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백배의 축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절대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어려운 시험과 실패가 있다 해도 우리는 하나님을 등지고 교회를 등지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일시적인 기근이 있다고 해서 약속된 계약을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백배의 축복은 어떻게 하고 돌아섭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창조 첫 날에 흑암과 공허의 땅에 빛이 있었던 것처럼 말세지 말에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계시의 빛을 받아서 승리하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환난의 바람이 불려면 불어라, 험한 시험의 파도가 산더미처럼 밀려올지라도 이제 성도가 되어서 주님만을 따라가는 우리는 겁날 것 없습니다. 뒤돌아서지도 않지만 오직 나와 여러분에게는 방패가 되어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만이 함께 계실뿐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계시의 빛을 받은 그 땅에 많이 심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은 심는 대로 거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콩을 심으면 콩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을 수확합니다. 30배 60배 100배를 수확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도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들을 100배로 거둔다고 했습니다. 썩어질 것들을 천톤 만톤 거두어서 무엇에 쓸까요? 소용없습니다.


갈 6:7~8,‘속지 말라, 하나님은 우롱당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이는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둘 것이기 때문이라. 자신의 육신으로 심는 자는 육신으로부터 썩은 것을 거두고 성령으로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사람이 무엇을 심었던지 간에 그대로 거둔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천연의 법칙인 것을 우리는 기억합시다. 그래서 우리는 심은 것만큼 거둔다는 법칙을 알아야 합니다. 많이 심었으면 많이 거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적게 심었으면 적게 거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100배의 복을 기준으로 계산할 때 한섬을 심었으면 100섬을 거두고, 100섬을 심었으면 만 섬을 거두는 것입니다. 심는 대로 100배로 거둡니다. 옥수수 한 알을 심었는데 수확할 때 보니 수백가 달려 있습니다. 좁쌀 하나를 심었는데, 수천 개의 알을 수확합니다. 참께 한 알을 심었는데 수천 개의 알을 수확합니다. 물고기 한 마리가 수 만개의 알을 낳는다고 합니다.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벽에는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계획하라)는 글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한 선교사가 그 글을 읽다가 그 뒤에 계속해서 써 넣기를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고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끔이 없는 자를 사용하시거나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만을 위해서 위대한 일을 계획하고 위대한 일을 하시리라는 큰 기대와 기적을 바라보고 믿는 자를 통하여 일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들에게 100배의 복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하나님께 대한 연보의 원리에 대해서 말하기를 고후 9:6,‘그러나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넉넉하게 심는 자는 넉넉하게 거둔다는 것이라.’ 7=‘각 사람은 미리 마음속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이나 억지로는 하지 말아야 하리니 이는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드리는 자를 사랑하심이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백배의 복은 자기가 심은 것에 비하여 이루어집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제부터 여러분은 자원하여 심으십시오, 신랑을 맞이하는 신부라면 신랑이 무엇을 기뻐할까를 알아야 합니다. 신랑을 맞이할 신부된 교회가 준비도 없이 신앙의 잠만 자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약혼한 처녀는 날마다, 시간마다, 낮이나 밤이나 신랑을 잊지 못합니다. 약혼한 자는 언제나 신랑을 잊지 못합니다. 언제나 단장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부된 자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인 생명의 씨를 옥토에 심되 할 수 있는 대로 더 많이 심어야 하겠습니다. 100배의 결실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할렐루야!


다음으로 ‘그 땅에 심은 것을 바로 잘 자꾸어야 한다. 100배의 수확이 있기까지는 무조건 심어서도 안 됩니다. 심고 가꾸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땀 흘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100배의 수확의 대가는 잘 관리하고 잘 가꾸어야 합니다. 심은 것들을 잘 가꾸기 위해서는 거름도 주어야 하고, 물도 주어야 하고, 잡초도 제거해야 하고, 그리고 해충도 잡아내야 합니다. 그 심은 것이 가을에 수확이 있기까지는 잘 기르고 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새들도 쫓아야 하고, 각 가지의 병충에도 신경 써야 합니다. 가을이 오기 전에는 잡초를 뽑아내고 해충이 많기 때문에 언제나 약을 쳐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세상 끝 날에는 들에는 잡초가 더 빨리 자라듯이 의인의 번영보다는 악인들이 더 번성하고, 참 보다는 거짓이 더 왕성하고,


진짜보다는 가짜가 더 판을 치고, 진리보다는 비진리가 잡초처럼 무섭도록 번식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해충이 극성을 부리는 여름처럼 이 세상 끝 날이 가까워질수록 즉 추수기가 가까워질수록 인간 못된 기생충들이 성도들을 괴롭게 합니다. 성도들을 치명적으로 넘어뜨려서 죽이는 거짓 선지자들이 처처에서 일어나는데 이것들이 바로 해충들이요, 기생충들이다. 이단들이다. 그러므로 식물을 가꾼다는 것은 말씀에 대한 관리를 말씀하는데 말씀으로 잘 관리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기름진 옥토라고 해도 해충의 피해와 짐승들로 인하여 땅 (신자)이 쉽게 황패해질 위험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습니다. 마 13장에서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원수들이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려서 곡식의 성장을 방해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밭에는 알곡과 독 보리인 가라지도 같이 자란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곡식과 가라지를 섞어놓으면 무엇이 되는지 아십니까? 바벨 (혼합주의)이 되는 것입니다. 곡식이 완전하게 잘 발육해야 가을에 수확이 풍성합니다. 우리들의 말씀 관리에 있어서도 언제나 기도하고 성령의 계시에 의존해야 합니다. 이삭은 그랄에서 백배의 복을 받기까지 처음 받은 계시의 말씀을 끝까지 잘 지키므로 복을 성취한 것입니다.


백배의 결실 그 원리(2)


창 26:8에, 이삭이 거기 오래 거하였다고 했습니다.

1) 이삭이 거기서 오래 거하였다는 것은 이삭이 고통을 오래 참는 인내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이삭이 100배의 복을 얻기까지는 단 시일에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삭은 많은 자기 억제와 고통스러운 훈련을 쌓으면서 전에 약속한 하나님의 말씀(레마)을 굳게 잡고 그랄에 오래 있었습니다. 이것은 곧 인내를 뜻합니다. 100배의 복은 오랜 인내 끝에 얻어지는 것입니다.


눅 8:15, 좋은 밭이란 인내의 밭이며,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지 않고는 많은 수확을 거 둘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가을의 추수기까지는 많은 아픔과 고통의 우두운 밤을 수없이 견디어 내어야 합니다. ‘클레맨트 스톤(CIement stone)’ 은 말하기를 “모든 아픔과 고난은 보다 좋은 유익을 낳는 씨앗이라” 고 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100배의 하늘의 거룩한 복을 얻어 영적 거부가 되기까지는 오래오래 참고 견디는 인내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할렐루야!


2) 우리에게는 ‘떠나는 용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창 26:16~17,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말하기를 “네가 우리보다 더욱 강하니 우리를 떠나라.” 하더라. 그리하여 이삭이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자기 장막을 치고 거기서 거하더라. 고 했습니다. 이삭이 백배의 복을 받아 큰 부자가 되었는데, 그러나 그 많은 재산을 다 포기하고 그곳을 떠난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 믿음의 신앙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삭은 백배의 축복을 받았지만, 그 해에 불레셋 사람들의 시기, 질투로 인하여 그곳을 떠나야만 했고, 그랄 골짜기로 내려가서 그곳에 장막을 치고 거하였다. 이삭은 그곳에서 우물을 파다가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샘의 근원을 그랄 골짜기에서 얻게 됩니다. 이삭이 그랄에서 불레셋 사람들에게 쫓겨나는 고통이 없었더라면 그토록 소중한 우물은 그랄 골짜기에 영원히 묻혀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좋은 복을 주시기 위해서는 때로는 우리가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재산이나 기업을 몽땅 잃어버리게도 하십니다.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잃어버리게 하십니다. 그러나 내게 있는 재산을 몽땅 잃어버릴지라도 그랄 골짜기의 샘의 근원을 발견했다면 이것은 엄청난 축복이요, 축복받은 성도로 사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예배가 최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성자는 소인과 다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마음에 광활한 르호봇 (장소가 넓다) 의 영토가 있는 사람은 소인과 다투거나 (에섹) 대적 (싯나)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삭은 피땀흘리며 애써서 얻은 우물, 그토록 소중한 우물들을 그랄 목자들에게 양보하고, 또 양보해 가면서 르호봇을 지나 브엘세바 (일곱 우물)로 올라갔습니다. 바로 이 장소인 브엘세바, 일곱 우물에서 이삭이 그날 밤, 하나님을 만납니다. 너무도 놀랍습니다. 이삭이 그랄 골짜기에서 브엘세바로 올라가기까지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인생의 소중한 여정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1) 에섹 (다툼). 2) 대적 (싯나). 3) 르호봇 (장소가 넓다). 이 세가지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는 브엘세바의 계시의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르호봇은 廣大, 곧 “장소가 넓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에섹은 “다툼”인데, 이삭의 목자들과 그랄의 목자들 사이에 우물 때문에 다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그 우물을 다툼, 에섹이라고 이름지었다. 그렇다면 그랄에 목자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육적차원의 사람들이다. 그랄에 목자들은 육적인 목회를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이삭의 목자들은 영적차원의 사람들을 목회하는 목자들이다. 이삭의 목자들은 영적인 사람의 모형이다. 그러니까 육의 사람과 영의 사람들은 단 하루도 다툼이 없이는 살수가 없다.


갈 5:17.?‘육신은 성령을 거슬러 욕심을 부리며 성령은 육신을 거스리나니, 이들은 서로 반목하여서 너희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바로 에섹은 곧 우리들의 心田이요, 이 세상이요, 우리네의 가정이요, 이 세계를 말한다. 이 세상은 이차원적 자아의 투쟁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화엄경에는 모든 것은 나의 마음가짐에 달려있고, 만사는 내 마음이 짓는 것이라고 했다.


이 세상 에섹의 모든 다툼의 心田, 에섹을 잘 다스리고 정복할 때에 평화가 있습니다. 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을 소유한 자는 곧 신자라고 하며, 복자라고 말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곧 씨요, 혈통의 씨요, 이삭의 씨는 곧 언약의 자손 (갈 3:16) 성령의 씨이다. 생명의 씨는 곧 사랑의 씨요, 이 생명의 씨, 곧 사랑의 씨가 내 心田에 이 에섹에 있는 자만이 이 세상을 이기는 자입니다.

(요1서 5:4,)‘이는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자는 누구든지 세상을 이기기 때문이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씨는 곧 복의 씨이다. 그래서 복으로 심고 복으로 거두는 성도의 생활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다음으로 싯나(sitnah) 는 “사단”(satan), 또는 ‘대적’이라는 뜻이다. 이 우물을 판 것은 이삭이 에섹의 우물을 그랄 목자들에게 양보한 후, 대적하고 반대했다는 뜻으로 “싯나”라고 했습니다. 이는 곧 대적에게 빼앗겼다는 뜻인데 싯나라는 이름을 지어 불렀습니다. 다시 말하면 싯나의 우물은 사단 마귀에게 시험받은 우물이고, 불레셋의 그랄 목자들에게 대적되는 우물이었다. 에섹의 우물에서 승리를 거두면 전보다 더 많은 대적이 또 생긴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은 대적을 반드시 이겨야 한다. 만일 대적을 이기지 못하면 모든 것을 빼앗기고 영적인 하늘 기업의 축복을 받을 수 없다.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말세의 모든 축복은 이기는 자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계시록 2장 3장에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이기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있다고 했습니다. ① 계 2:7, “에베소교회” 에게 주님은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 가운데 있는 생명 나무를 주어서 먹게 하리라’ ② 계 2:10-11, “스머나교회”에게 주님은 ‘이기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으로부터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③ 계 2:17, “퍼가모교회”에게 주님은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감추어진 만나 를 주어서 먹게 하리라. 또 그에게 흰 돌을 주리라,


④ 계 2:27, “두아티라교회”에게 주님은 ‘이기고 나의 일들을 끝까지 지키는 자에게는 내가 민족들을 다스리는 철장권세를 준다고 했습니다. ⑤ 계 3: 5, “사데교회”에게 주님은 ‘이기는 자는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의 이름을 생명의 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할 것이며, 또 그의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할 것이니라. ⑥ 계 3:12, “필라델피아교회”에게 주님은 ‘이기는 자는 내가 내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으로 삼으리니, ⑦ 계 3:21, “라오디케아교회”에게 주님은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나와 함께 앉을 자격을 주리니,


위에서 말씀을 들으신 대로 생명권, 철장권세, 민족의 통치권, 왕권, 등 약속의 상급은 바로 이기는 자들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십자가의 도, 사랑의 전법으로 이겨야 합니다. 엡 6:12,‘이는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의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정사들과 권세들과 이 세상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높은 곳들에 있는 영적 악에 대항하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고 했습니다. 사단은 아주 강합니다. 폭력으로는 우리가 당해낼 수 없는 아주 강하고 힘을 가지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도, 사랑의 무저항 앞에서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 무력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이삭이 싯나의 대적을 이 사랑의 무저항 전술로 승리한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대적, 원수마귀들을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도, 사랑의 권능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이삭은 곧 예수님의 품격입니다. 이 예수님의 품격이 있는 자가 아브라함의 자손의 영적 기업을 있는 축복의 자손인 것이다. 이삭은 에섹과 싯나를 거쳐서 그 고운 성품이 원수들을 통해서 잘 입증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삭이 그랄 골짜기에서부터 에섹과 싯나를 거쳐서 르호봇에 이르기까지 그랄의 목자들로부터 많은 박해와 환

난을 당했음을 봅니다. 그러나 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이삭은 그때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십자가를 꼭 붙잡고 끝까지 참으며 견뎌낼 때 마침내 승리하고 르호봇에까지 이르게 된것입니다. 이삭은 하나님과 그의 복음을 위하여 많은 핍박을 받은 예수님의 모형이었다.

여러분! 여기 이삭에게 광대한 르호봇이 주어졌듯이 온 세계는 바로 어린 양 예수님의 영토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삭이 그랄 평지에서 100배의 수확을 거둔 복음의 씨가 좋은 옥토에 떨어져 인내로써 백배를 결실한 모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르호봇은 곧 이삭의 心田이 된다. 그랄 평지와 골짜기와 에섹과 싯나에서 우물 싸움의 갖은 역경과 고통을 다 당하면서 이삭은 예수님의 밭을 갈지 못하도록 원수에 의해서 방해를 받아온 것이다.


히 12:1,‘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씀하셨듯이 르호봇의 그 광대한 땅은 이미 이삭의 마음 밭에 이루어 놓은 曠田임을 알아야 한다. 이 광전이 표상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르호봇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도의 축복은 그 심령속에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광대한 르호봇이 이루어진 자에게만 주어지는 하늘의 기업인 것을 알아야 한다. 르호봇은 이삭의 마음 밭이요 예수님의 心田이다. 누구든지 백배의 축복을 받으려면 먼저 그 마음 밭이 옥토로 바꾸어져야 한다.


빌 2:5~8에 ‘너희 안에 이 생각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도 있는 생각이라. 그는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는 것을 강탈이라 생각지 아니하셨으나 오히려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느니라. 그리하여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자신을 낮추시고 죽음에까지 순종하셨으니, 십자가의 죽음에 까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거둔다. (요 12:24) 고 하셨습니다. 이삭의 모든 육의 소욕은 죽어져서 광대한 르호봇의 心田을 개간하는데 밑 걸음이 되었다. 그랄 평지의 부요의 샘을 희생할 때, 골짜기의 샘을 얻으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일곱가지를 얻는다는 교훈이 있습니다.


1. 골짜기의 샘을 희생하라. 그리하면 아브라함의 우물을 주리라.

2. 아브라함의 우물을 희생하라. 그리하면 르호봇의 우물을 주리라.

3. 생명의 우물을 희생하라. 그리하면 에섹의 우물을 주리라.

4. 에섹의 우물을 희생하라. 그리하면 싯나의 우물을 주리라.

5. 싯나의 우물을 희생하라. 그리하면 르호봇의 우물을 주리라.

6. 르호봇의 우물을 희생하라. 그리하면 브엘세바의 우물을 주리라.

7. 브엘세바의 우물을 희생하라. 그리하면 영원한 하늘의 샘을 주리라. 할렐루야!


그 사람의 마음밭에 광대한 영토. 르호봇의 샘이 있는 자는 에섹과 같이 좁은 땅에서 다툴 필요가 없다. 싯나와 같은 대적의 땅에서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에섹은 양보하고 싯나는 포기하고 르호봇의 샘터로 올라가야만 합니다. 다시 정리를 한다면, 이삭이 그랄 골짜기에서 브엘세바(일곱우물)로 올라가기까지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인생의 소중한 여정이었으며, 바로 이 에섹, 싯나, 르호봇의 3단계를 거치지 않고는 브엘세바의 계시의 하나님을 만

날 수 없습니다. 그 밤에 하나님은 두려움과 고독 속에 잠이든 이삭에게 아브라함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창 26:24, ‘주께서 그 밤에 그에게 나타나시어 말씀하시기를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며 너에게 복을 주고 네 씨를 번성케 하리라.’ 하시더라.


창 26:2에서는 ‘계약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시었고’ 24에서는 ‘그 계약을 성취케 하시는 하나님으로 다시 나타나시었습니다. 그 기간이 얼마인지는 기록이 없어서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그동안 자신을 숨기시었습니다. 그것은 이삭의 신앙을 연단시키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인간의 행위를 익히 아시고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때로는 은밀한 가운데 자신을 숨기시고 우리들의 진실성을 시험하실 때도 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을 만난 그곳에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곳에 장막을 치고 우물을 판 것입니다.


그러니까 1) 단, 2) 장막, 3) 우물은 우리들의 생의 차원을 말해줍니다. 단=(영적차원) 장막= (혼적차원) 우물= (육적차원) 이것은 곧 하나님과 가정, 직장의 순위를 뜻하는 것입니다. 물이 없이면 농사를 짓지 못합니다. 가축도 기를수 없다. 그러나 우물이 우선순위가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 인생의 제일의 순위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되어야 한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상수리 나무 밑에서 제일 먼저 (창 12:8), 단을 쌓았습니다. 상수리나무는 제단 (木)이다. 하나님은 그곳에 임재 하셨습니다. (창 18:1).


우리는 마지막 때가 가까워진 이때, 이제부터는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최우선으로 정하고 예배드려야 합니다. 마지막 때, 우리는 영적 삶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주일 성수와 365일 새벽기도 개근함과, 수요일, 기도회, 금요 심야예배, 구역예배 등, 모든 예배의 모임에 개근하고, 매일 빠짐없이 가정예배로 하루를 시작하는 1등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결심을 가지고 지켜야 합니다. 그 날이 가까워질수록 마라나타의 신앙을 가진 자는 더욱 모이기를 힘쓰는 모범된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때 그의 장막과 우물에는 항상 메마르 않는 기쁨의 영원한 샘물이 넘쳐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아버지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을 통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를 원하신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거리를 신속히 왕래하면서 그 넓은 거리에서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그 성을 사하여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렘 5:1).‘너희는 예루살렘의 거리를 여기저기 달려서, 이제 보고, 알며, 거기 넓은 곳에서 찾으라. 만일 너희가 한 사람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공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내가 그 성읍을 용서하리라.’ 소돔성 안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 가운데 의인 열 사람을 찾지 못해서 그 소돔성과 사람들이 몽땅 멸망을 당했다. (창 18: 32). 정치도 사람이 하고, 농사도 사람이 짓고, 기계도 사람이 움직이고, 돈도 사람이 만듭니다. 사람은 만물의 척도입니다. 사람이 사람 노릇을 바로 해야 복을 받습니다.


사람이 사람 노릇을 못하고 거부가 되면 자신을 패망에 이르게 하는 제일 큰 요인이 되게 합니다. 위대한 신앙은 인격에서 이루어진다. 인격이 잘못 되어 있을 때 그의 신앙은 위선이다. 이삭은 그랄에서 백배의 축복을 받아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엄청난 거부가 되었습니다. (창 26:12). 실로 그의 인격과 신앙은 하나님의 백배의 축복을 받기에 합당했었다.


1.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할례 전에 하갈을 통하여 육의 씨로 난 자였다. 그러나 이삭은 아브라함의 할례 이 후 사라를 통하여 난 영의 씨, 곧 하나님의 씨로 난 자이다. 롬 9: 6~7,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헛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이스라엘에서 난 사람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며 또 아브라함의 씨라 하여 다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 “오직 이삭에게서 난 자만이 너의 씨라 불리리라.” ’고 했습니다.


갈 6: 8, ‘자신의 육신으로 심는 자는 육신으로부터 썩은 것을 거두고 성령으로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고 했습니다. 이스마엘은 육의 씨를 심어 출생한 아들이다. 육의 씨는 영생의 복을 얻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령으로부터 심는 씨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얻는 것인데 이삭이 얻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하든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요 3:6, ‘육신으로 난 것은 육이요, 또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2. 이삭이 백배로 축복받은 기사는 창 22장 이후의 사건이라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이삭은 창 22장에서 이미 죽었던 경험이 있는 자이다. 아브라함은 그때의 경험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롬 4:17, ‘그가 믿은 하나님, 곧 죽은 자들을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그 분 앞에 서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 제단에 헌제 했을 때, 이삭은 이미 죽은 자와 방불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호와 이래로 준비한 대속의 양은 하나님의 언린 양, 예수님을 준지하고 있습니다. 창 22:13).

이삭의 모리아산, 삼일 길은? ‘우리 예수님의 갈보리산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후 3일 만에 부활하심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삭은 죽기까지 천부 하나님께 복종하신 우리 예수님의 상징이었다. 하나님께 절대적인 순종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3일 만에 부활한 예수님의 십자가 무덤의 상처가 그 몸에 있는 자 만이 가능하고, 백배의 축복은 그의 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 흔적이 있는 그러한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갈 6:17).


3. 이삭은 자기중심의 잘못된 생각에서 한때 실수도 있었지만 그랄에 오래 동안 거하면서 하나님의 약속된 계시의 말씀을 굳게 붙잡고 자기를 죽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기 위한 자기 수련에 노력한 결과이며,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화가 이루어진 자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자기를 죽이고 자기를 추방하고, 박해하던 원수가 찾아와서 화친조약을 청했을 때, 그는 과거의 모든 과오를 다 용서하고 그들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선대하였다. (창 26:31). 그의 위대한 관용과 용서는 바로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인 것입니다. 이때 이삭을 박해했던 아비멜렉 왕은 그의 친구 아홋삿과 군대장관 비골과 함께 그의 앞에 무릎을 꿇게 한 것입니다.


링컨은 나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했습니다. 이삭의 관용과 겸손, 그의 용서와 사랑의 친절에서 원수들에게서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끝날이 얼마 남지 아니한 이때에 이 일을 우선으로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백배의 축복을 받기를 노력하기 보다는 백배의 축복을 받은 자의 모습을 만인에게 보여주면서 이렇게 살기 원하는 소원이 오늘 우리에게 있기를 원하면서 주님을 더 가까히 친밀하게 뜨겁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백배라는 말만 들어도 자다가도 기뻐하는 열매맺는 성도 백배의 결실을 맺는 복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마라나타.


충남 연기군 남면 (연남교회) 정기남목사

생명줄 나눔선교회 대표회장

NYSKCIAN(성경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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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SKC MOMENTUM CON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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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20:1-9 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내가 모세로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을 택정하여 3. 부지중 오살한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 중 피의 보수자를 피할 곳이니라 4. 그 성읍들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읍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고를 고할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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